「놀러오세요 동물의 숲」 기획서게임과 디지털 스토리텔링Ⅰ. 게임 기획2005년, 닌텐도가 우리나라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 때, 「동물의 숲」은 그 인기의 중심에 있었던 게임이었다. 「동물의 숲」은 유저가 마을의 주민이나 촌장이 되어서 특정한 목표 없이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노는 게임이다. 가구를 수집하여 방을 꾸미거나 마을을 꾸미고, 동물 주민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친밀해진다. 유저가 하고 싶은 것을 즐기는 게 전부인 게임이다. 이 게임은 ‘건설 및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커뮤니케이션 게임’등 여러 표현으로 불린다. 샌드박스 게임이라고 분류되기도 한다. 이는 자유도를 기반으로 하여, 특정한 목표가 없거나, 목표가 존재하더라도 그 목표를 유저가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하여 사용자가 하고 싶은 대로 플레이할 수 있게 하는 장르를 말한다. 목표를 달성해 성취감을 얻는 전통적인 게임의 전개보다는, 자신의 아바타로 가상의 세계를 탐험하는 가상 체험이 주가 된다. 따라서 어떤 콘텐츠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게임 속에 배치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우리는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을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돈과 생계 문제를 벗어나기 어렵다. 자유롭지만 결코 자유롭지 못한 삶이다. 그런데 ‘동물의 숲’ 속 세계는 유저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한다. 싸워 이겨야 할 보스도, 넘어서야 할 라이벌도 없다. 여타 게임에서처럼 퀘스트, 레벨 업, 장비 강화도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동물의 숲」에는 뚜렷한 목표도 없고, 심지어는 엔딩도 없다. 플레이어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집 대출금을 갚아 집 평수를 넓히는 것’이 많은 유저들의 목표이지만, 이는 게임을 지속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데에만 그 영향력을 다하고 있다. 가령 유저가 땅을 파서 화석을 발견했다고 하자. 유저에게는 어떠한 퀘스트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유저는 그 화석을 마음대로 처리한다. 집 안에 전시해놓기도 하고, 박물관에 맡겨 컬렉션을 완성해도 좋고, 너굴 상점에 비싼 값으로 가 매겨진다. / 박물관에 명화, 곤충, 어류, 화석을 기증하여 컬렉션을 완성한다. / 꽃과 나무를 심어 마을을 최고 환경으로 만든다.위의 퀘스트는 모두 유저의 자율이며, 퀘스트를 하지 않아도 게임 진행에 아무런 무리가 없다.A 행위(액션)캐릭터는 탑뷰(1인칭 어드벤처 시점)으로 진행된다. 기본 액션은 걷기, 달리기가 있고, 특수액션으로는 낚싯대, 삽과 같은 도구 사용 시 동작이 있다.NPC가 말할 때 말풍선에 텍스트가 뜨는 동시에 ‘동물어’가 들린다. 한국어 같으면서도 한국어처럼 들리지 않는다. 일종의 외계어다. 기쁜 상태, 우울한 상태, 화가 난 상태 등 동물들의 심리 상태에 따라 말투에 기복이 있다.감정 표현 액션을 배울 수 있다. 랜덤으로 나타나는 ‘스승’ NPC에게 말을 걸면 감정 표현 액션을 가르쳐 준다. 부끄럼, 쩔쩔매기, 화내기, 웃기 등의 동작이 있다.다른 NPC가 유저 캐릭터에게 관심을 가질 때, ‘물음표’ 혹은 ‘느낌표’가 NPC 주위에 떠오른다.T 주제What: 시골 마을에서의 사소한 일상이 삶의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Why: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게임의 주도권을 잡는 게임이다. 사소한 것으로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How: ‘나’ 캐릭터의 서사적 성장 요소를 추가할 수 있다. 가령 직업을 선택하거나,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거나, 농사를 지을 수도 있다.Ⅲ. 3차원 분석1) 게임 플랫폼(구동형태)동물의 숲 시리즈는 게임기(닌텐도 NDS)에서, 콘솔 게임(닌텐도 Wii), 모바일(안드로이드, iOS) 등 PC를 제외한 거의 모든 플랫폼을 거쳤다. 그 중 분석 주제인 「놀러오세요 동물의 숲」 은 휴대용 게임기(닌텐도 NDS)를 통해 플레이한다. 출시 당시 1억 대 넘게 판매되어, 플랫폼의 접근성은 매우 높았다. 그러나 닌텐도 NDS의 상위 버전인 닌텐도 3DS, 닌텐도 스위치가 출시되면서 NDS 유저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 단점이다. 뿐만 아니라 닌텐도 NDS의 128MB 용량 제한 때문에 같은 시리즈의 타4) 타임 어택(시간 제한)이 없다: “제한 시간 안에 해야 한다”가 아니라, “~을 해내면 ~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원동력이 된다. 게임 플레이어 스스로 해야 할 이유를 주체적으로 찾을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대출금 갚기’가 있다. 대출금을 갚는 것에는 시간 제한도, 강제성도 없다. 그러나 대출금을 갚으면 집이 더 넓어지고, 꾸밀 공간이 생긴다. 집 업그레이드는 19,800벨 - 120,000벨 - 298,000벨 -598,000벨 - 728,000벨 - 948,000벨 순서로 점점 값이 오른다. 각 단계에 따라 방이 생기고, 층이 생기는 등의 업그레이드가 있다.3. 만들어라1) 마을을 꾸며라- 마을의 ‘에이블 시스터즈 가게’에서 재료비 350벨을 지불한 뒤 마이디자인을 그릴 수 있다. 자신이 그린 디자인을 전시할 수 있다. 자신이 만든 패턴으로 의류(옷, 모자, 우산)을 만들 수 있다. 길, 울타리, 조약돌, 화단, 수로 등의 패턴을 만들어 마을을 꾸미기도 한다. 집의 벽지, 바닥을 깔 수도 있다.꽃과 나무를 심는다. 이때 꽃은 교배도 가능하다. 별자리 만들기, 마을 멜로디 변경 등이 가능하다.2) 집 안을 꾸며라 (‘해피룸 아카데미’)집의 가구배열, 레어 아이템 배치 여부 등을 체크하여 점수가 매겨진다. 매주 우편함에 편지가 도착한다. 방마다 테마를 정하는 것이 좋다. 가령 럭셔리 테마 벽지, 바닥, 가구 수집으로 테마를 정할 수도 있다.Ⅰ. 개요플랫폼닌텐도 NDS작품명놀러오세요 동물의 숲주제유저가 마을의 주민이나 촌장이 되어서 특정한 목표 없이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노는 게임소재나만의 마을 만들기장르육성 시뮬레이션 및 RPG 게임시점탑뷰(1인칭 어드벤처 시점)주요 대상층10대 ~ 50대(수요 연령층의 나이 제한을 최대한 배제), 주로 여성(수요 성별)게임의 특성유저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게임을 진행한다. 돈을 모아 집을 업그레이드 시키거나, 가구를 테마별로 구매해 방을 꾸미거나, 꽃과 나무를 심어 마을을 꾸미기도 한다.기획의도우리는 우춰 있는 것이 아니라, 잡초가 자리고 바퀴벌레가 생기기도 하고, 기존 동물 주민들도 이사를 떠난다.경쟁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지친 사람들이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집’과 같은 게임이다. 현실에서는 이사를 가더라도 동물의 숲은 여전히 그대로다. ‘마을의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고, 유저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동물의 숲」의 스토리텔링이다.3. 시퀀스 정리동기 발생행동단계목표 완료“동물의 숲”에서 살게 된 ‘나’(인간)‘너굴’을 통해 마을에 대한 정보를 얻음얻은 정보를 토대로 게임 플레이 방식을 정함나만의 마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나4. 플롯플롯내용발단‘나’는 택시에서 내린다. 동물의 숲에 도착한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건 처음이고, 인간은 ‘나’ 뿐이다.전개마을 회관에 방문하여 이장님과 인사를 나눈다.이장님은 너굴 상점에 방문하라고 말한다.너굴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동물 주민들과 인사를 나눈다.위기집 대출금이 쌓여 있다. 갚아야 한다.주민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 때 갈등이 생긴다.주민들이 이사를 떠난다.절정자신만의 마을을 형성해간다. 주민들과 돈독한 관계를 이룬다. 주민들의 액자 사진을 모으게 된다. 동물 주민과 일정 수준 이상의 친분을 쌓으면 그 주민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선물 받을 수 있다.집 대출금을 갚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집을 업그레이드한다.결말이웃들과 관계를 쌓으며, ‘나만의 마을’을 만들어간다.5. 보조서사(다변수 서사, 퀘스트, 돌발 서사, 매개체 요소)1) 다변수 서사집합분산형 서사의 형태에 가장 가깝다.여러 이벤트성 사건들이 발생하면, ‘나’가 이에 따른 반응을 보이면, 이 반응에 따라 또다른 이벤트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서사가 ‘집합’하고 ‘분산’하는 매개의 중심은 ‘나’다.2) 퀘스트 작성퀘스트 이름너굴 상점에서의 아르바이트수행 가능조건마을회관에서 이장과 대화를 나눈다.퀘스트 종류게임 플레이방식 가이드연속퀘스트 유무유진행 맵과 부여장소너굴상점퀘스트 부여방법너굴과의 대화퀘스트 부여NPC너굴퀘스트 ‘커뮤니케이션’을 중심 테마로 하는 게임이다. 즉, ‘유저의 행동이 게임에 반영되어 게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만큼 유저의 자유도는 무한대로 보장된다. 이렇다 할 스토리도 없고, 그저 “인간인 ‘나’가 동물 세계에 이사를 와, 자유롭게 삶을 꾸려나간다”는 대전제가 존재할 뿐이다. 이 게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업데이트 버전인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에서는 유저가 주민이 아닌 촌장이 되어 각종 조례와 공공사업을 통해 마을을 보다 자유롭게 꾸밀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유저가 할 수 있는 행동과 동물 주민들의 행동 패턴이 다양해졌으며, 기존의 멀티플레이 외에도 닌텐도의 엇갈림 통신 기능을 활용하기도 했다.그럼에도 여전히 “특정한 목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논다”는 게임의 전제는 벗어나고 있지 않다. 플레이 초기, 높은 자유도는 유저들에게 다양한 방식의 흥미를 제공했지만, 일정 수준의 성취를 거두고 난 뒤에는 ‘높은 자유도’가 더 이상의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게임을 오랜 시간 지속할만한 ‘스토리라인의 부재’로 인해, 중도 이탈자를 막을 만한 방안이 없다. 이러한 한계의 극복방안으로 ‘나’ 캐릭터의 서사를 게임의 메인 스토리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 또, 게임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동일하게 흘러간다는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긴 시간동안 접속하지 못하면, 기존의 마을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으로 변해 더 이상 게임을 지속하지 않는 유저가 발생하기도 한다.창작한 전사“기억을 잃은 채 ‘동물의 숲’에 던져졌다. ‘나’는 이전에 어떤 존재였으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인간의 몸으로 ‘동물 세계’에서 도착하게 되었을까?”‘나’는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택시 기사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대화창에 “내 이름은…….”이라고 뜨는데, 충돌음과 함께 화면이 검게 변한다.화면이 밝아지자, ‘나’는 처음 보는 공간에 도착해 있다. 택시와 택시 기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고, 자신만 덩그러니 땅바닥에 누었다.
현의 노래가 들려오는 곳소설 『현의 노래』와 국악극 「현의 노래」를 감상하고“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현재의 불확실성과, 미래에 대한 선택의 기로 사이에 놓인 우리들은 과거, 즉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을 택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해 역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질문에 대답하기까지 기다릴 뿐이다. 요즈음 나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전공 공부와 취업 문제에 대한 고민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우연히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를 읽게 되었다.『현의 노래』는 가야금의 예인 우륵의 생애를 중심으로 악기 가야금의 탄생과, 멸망하는 가야국의 현실을 그린 작품이다. 우륵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실존 인물이다. 역사서에 따르면 “가야국이 어지러워져 우륵이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 진흥왕에게 투항하였는데, 왕은 그를 맞아 거처를 마련해 주고 사람을 보내 전수받게 했다고 한다.”는 것이 우륵에 대한 대부분의 서술이다. 당시 시대는 6세기였기 때문에, 남아 있는 역사적 사료가 많지 않다. 따라서 작가가 대부분의 내용을 역사적 상상력을 동반하여 소설을 썼을 것이다.우륵은 예인으로서 가야금에 가지는 열정과 ‘목표’가 분명했으며, 왕의 총애를 받는 ‘행운’을 누렸고, 이후 신라 진흥왕이 그를 받아들여주는 ‘기회’가 제공된다. 기존 소설의 문제적 인물들이 행동하고 움직이는 데에 주어지는 조건 세가지다. 물론 이 세가지 중에 역사적 사실도 존재하지만, 이것을 문학적 장치로 이용하여 작가는 우륵의 서사와 우륵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여 충분히 ‘문학적’으로 서술해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전제한다.작가는 먼저 주인공 우륵에게 다양한 갈래의 인물 관계를 만든다. 우륵의 제자인 니문, 우륵과 대비되는 신라의 대장장이 야로, 궁에서 도망친 시녀 아라 등 각기 ‘가야금’, ‘신라’, ‘대가야’를 나타내는 표시의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우륵과 제자 니문과의 관계에서 둘의 대화를 통해 가야금에 대한 서술을 더욱 심층적으로 드러낸다. 소설의 핵심 소재인 ‘가야금의 소리’에 대한 문학적 의미 확장이 역사적인 의미까지 나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 대장장이 야로는, 작가가 만든 허구인물로 우륵과 대비되어 매우 욕심이 많은 인물로 그려진다. 신라 장군 이사부에게 죽임을 당하는 말로 역시 반대된다고 볼 수 있다. 야로의 등장으로 ‘무기’와 ‘악기’의 차이점, 그리고 궁극적으로 두 물건이 일치한다는 것을 통해 부흥하는 신라와 멸망하는 가야의 역사적 관계, 예인 우륵과 대장장이 야로의 대비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또한 왕의 죽음에 순장자로 지목되어 도망치는 시녀 ‘아라’를 통해 당시 대가야국의 풍습과 생활을 세밀하게 서술한다. 특히 순장에 대해 꼼꼼하게 묘사하여 역사적 사실을 적절히 문학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매개를 가진다. 이렇게 신라 시대에 ‘있을 법한’ 인물들을 작가가 허구적으로 만들어 내어, 역사 사료를 바탕으로 그것들을 적절히 문학의 재료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소설은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조국을 등지고 망명하여 음악을 연주한 우륵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고스란히 형상화하고 있다. 온전한 악기를 만들어 자신이 바라던 소리를 만드는데 일생을 바친 우륵 외에도 제자인 니문, 우륵의 아내 비화, 왕의 시녀인 아라, 대장장이 야로, 신라 장군 이사부 등 다양한 인물의 삶을 통해 소설의 재미를 높인다.우륵은 ‘살아있음의 경이로움’을 연주했다. 모순되게도, 국악극 「현의 노래」에서 살아있음을 기리는 연주소리는 순장을 할 때 사용되었다. 우륵은 ‘별의 침묵이 소리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기에 죽음이 아닌 살아있음을 기리는 연주를 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은 살아있기에 아름답다. “몸은 소리에 실려 없었던 새로운 시간 속으로 흘러 나갔고, 흘러 나간 몸이 다시 돌아와 줄을 당겼다.” 내가 소리인지, 인간인지, 또 시인지 인간인지 헷갈리는 경지이다.이 작품은 쇠와 금을 대조적으로 다루는 듯하다. 하지만 오히려 쇠가 금보다 더 시적이다. 김훈이 ‘현의 노래’에 이어 ‘칼의 노래’도 집필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또한 단지 존재를 위해서, 쇠와 금은 다뤄지고 또 다뤄진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면 존재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을 것이다. 칼을 갈다가 손을 베이듯이, 팽팽한 현을 퉁기다 손끝이 튿어진다. 또한 “언젠가 내가 시에서 한 말들이 비수가 되어 나를 찌른다”. 모두 죽음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것들이다. 이것은 동시에 삶과 접해 있음을 뜻한다.나는 이 소설을 읽고 우륵이 갖는 ‘소리’에 대한 믿음에 큰 인상을 받았다. ‘의미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매우 굳건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꼭, 내가 하는 일이 무의미하고 쓸모없어 보여도 나 스스로 그것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괜찮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우륵은 극 처음과 마지막에 ‘소리’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말한다. “악기는 인간 몸의 연장”, “소리는 제가끔의 길이 있다. 늘 새로움으로 덧없는 것이고, 덧없음으로 늘 새롭다.”와 같은 우륵의 말을 들으면서 ‘시’의 정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시가 금이라면, 선율과 노랫말이 시편일 것이다. 따라서 극 밖의 서술자가 “악기의 잠은 혼곤했고 아무도 그 잠을 깨울 수 없었지만, 잠든 악기는 그 깊은 잠 속에서 무언가 소리를 내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없어져도 ‘시’는 남을 것이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주법을 잃은 악기들은 시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현의 노래’는 악기 없이도 존재한다. 우륵은 단지 온몸을 다해 금을 발견’하는 데에 열중했고, 그것을 노래로 옮겼다. 사람들이 평생을 시를 품고서 시를 찾는 데에 열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그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의 삶을 빗대어보면서, 삶에 대한 교훈과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영화 「일 포스티노」 비평문 클러스터링주제: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말하는 ‘시를 통한 소통’주제문: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네루다의 시를 통해 진정한 소통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도입부: 영화 「일 포스티노」의 간단한 줄거리 소개 및 화두 제시중간: 시를 통해 역설하는 소통의 중요성결론: 현대인들이 소통에 있어서 가져야 할 자세(도입부)1단락: 영화 「일 포스티노」의 줄거리와 앞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중간)2단락: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3단락: “발견을 통한 소통” 키워드를 제시하기4단락: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일의 중요성(결론)5단락: ‘시를 통한 소통’에서 알 수 있는 오늘날의 소통의 자세6단락: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인용시는 어디에나 있으며,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영화 『일 포스티노』‘일 포스티노(Il Postino)’는 이탈리아어로, 해석하면 ‘한 우편배달부’라는 뜻이다. 영화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우편배달부 청년 ‘마리오’가 시를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가 서사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칠레의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가 1943년 정치적 이유로 인해 이탈리아의 작은 섬으로 망명을 오게 되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여자들이 시를 좋아하니까”라는 단순한 이유로 막연히 시를 잘 쓰고 싶어 했던 마리오에게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된다는 것은 절호의 기회였다. “시란 메타포”라는 질문에 마리오는 자신의 나름대로 답을 찾아가면서 성장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무 말도 엮어낼 줄 모르는 어부들일 뿐”이라고 말하던 마리오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그물은 서글프다”고 빗대어 말하기도 하며, 베아트리체에게 아무런 말도 못하던 마리오가, 집회에서 자작시를 낭송하기를 마음을 먹기도 한다. 시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의 아름다움이 단지 언어나 정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고 표현하여 누군가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순간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론서들이 세상에 나왔을까. 수많은 철학자들과 시인들이 수십, 수백 년간 고찰해왔던 질문이다. 그런데 우편배달부 마리오가 묻는다. “시를 쓰고 싶어요, 메타포란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것은 메타포인가요?” 순진무구한 마리오의 질문에 네루다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시란 무엇인지’, 메타포를 사용하여 그저 보여줄 뿐이다.이 영화는 시란 특별한 것이 아니며, 누구든 느낀 대로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똑똑하거나 책을 많이 읽은 사람만이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발견을 통한 소통’이 중요한 키워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시가 꼭 엄중해야만 하고, 절망과 슬픔에 대해 노래해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여도 상관없다. 오히려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 말하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하고 있다. “시는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에요.”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읽히지 않은 시는 그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가 시인이면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할 수 있잖아요”라며 마리오는 자신이 ‘시를 모르기 때문에’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 마리오에게 네루다는 오히려 “당장 해변으로 가라. 그걸 감상하면 메타포가 나올 것이다. 너는 네가 사는 섬의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되묻는다.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표현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느냐고 역설하는 것이다.“네루다의 시는 언어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생동이다”라는 말처럼, 시란 언어가 아닌 자연에 있다. 언어는 그저 도구일 뿐이다. 이는 곧 ‘시는 어디에나 있으며 그저 발견하는 것’이며, 결국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까지 의미한다. 마리오가 섬의 아름다운 소리들을 녹음하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교회의 종소리, 별이 떠 있는 모습, 태아의 심장 소리까지. 이 소리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마리오가 그것을 발견했을 뿐이다. 마리오가 그 소리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녹음하는 순간, 모든 소리들은 그제야 ‘시’가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의 중요성을 ‘시’라는 그 자체의 은유를 통해 그저 보여주고 있다. 마리오가 네루다를 위해 남긴 것들은 언어를 갖추지 않았는데도 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마리오가 죽었을지라도 그가 발견하여 남겨놓은 소리들은 발견된 ‘시’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학과 통폐합 논의에 대한 비판도입: 대학 학과 통폐합 최근 사례를 소개, 문제 제기1. 학과 통폐합의 실제 사례와 그 이유중간: 취업 열기의 영향을 맞은 대학가의 위기, 학과 통폐합으로 인한 폐해1. 취업이 극단적으로 중요시되는 현실-취업 열기에 대한 자료 제시하여 심각성 드러내기-꿈보다 취업을 좇게 되는 학생들(순수학문 소외, 실용학문 강세)2. 학문에서 효율과 경제성을 따지는 현실을 비판-‘대학’의 본래 의미 제시, 재고 필요성-정확한 기준 없이 순수학문은 통폐합, 실용학문은 지원-학과 선택의 폭이 줄어듦.-대학이 단지 취업을 위한 발판이 되어 대학 의미 퇴색-통폐합 과정에서 학생들의 교육권 침해 문제결론: 순수학문의 위기와 대학과 학생 간의 상생을 위한 극복방안1. 학문 탐구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과 자세 재고2. 정부 차원에서 학생들을 취업에 내몰리게 해서는 안 됨3. 학생들의 꿈과 재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획일화된 인재개발 벗어나야 함(학과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함)대학가는 요즘 취업 열기로 뜨겁다. 각종 자격증과 고시 시험, 언어능력 시험부터 다양한 대외활동에 학생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런데 최근, 대학생들이 대학을 상대로 시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 기사화되었다. “실적 보고서를 기준으로 하위 15% 학부·학과를 통폐합하겠다”, “취업률을 기준으로 학과를 통폐합하겠다”며 자신의 학과가 통폐합될 것이라는 통보를 들어서다. 이러한 학과 통폐합은 전공과목 간의 경계를 허물어 현대사회에 걸맞는 융복합 인재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반발하는 것은 학과 통폐합의 피해가 오롯이 순수 인문, 예술 학문에 집중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이렇듯 학과 통폐합 문제는 대학과 학생 간의 갈등을 빚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프라임(PRIME)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을 진행하여,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기도 했다. 2018년, 인문사회 분야에서 정원이 총 2천500명 줄고, 공학 분야는 4천500명이 증가한 것을 보아도 대학의 ‘취업학원화’를 목격할 수 있다.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대학에 왜 가는가?”라는 질문이 필수적이며,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을 먼저 정의해야 한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대학은 불씨처럼 반짝이는 개개의 특별한 재능(genius)들을 한데 모아 젊은이들의 마음에 불길을 일으킬 수 있을 때 그 본연의 임무를 다하게 된다. 만일 이 점을 망각한다면 미국의 대학은 해가 갈수록 풍족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공적 중요성은 위축되고 말 것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곧 대학은 학문 탐구를 기반으로 ‘나’를 개발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그런데 취업률 이외의 명확한 기준이나 목적 없이 학과를 통폐합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따라 교육정책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른 피해는 모두 학생들이 입고 있다. 배우고 싶은 학문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취업에 내몰리게 된다. 심지어 아무런 사전 통지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전공과 전혀 관련없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학생들의 교육권까지 침해한다는 문제를 가진다. 또한 대학이 학생들의 꿈과 재능을 펼치는 장으로서 기능하지 못한 채, 단지 취업을 위한 발판에 머물게 된다. 이는 곧 “우리가 대학에 가야 할 이유”까지도 퇴색하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 대학에 진학할 청소년들에게도 학과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는 문제점도 동반된다.
모옌 「영아 유기」, 「철의 아이」 감상문 소설에는 주인공 남자의 내면 묘사가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남자가 느끼는 고통이 대부분 ‘감정의 상대성’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해바라기 밭에서 여자아이를 처음 발견했을 때, 남자는 “싸구려 연민”을 느끼고 있고, 그것이 여자 아이에게가 은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에게는 “극도로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마음을 선하게 먹는다고 반드시 보답을 받는 것은 아님이 우주의 평범한 규칙”이라고 남자는 생각한다. 아마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대부분의 서민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졌으리라 추측해본다. “많고 빠르고 훌륭하고 유익한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공산주의의 이념 아래, 모든 것은 결과중심으로, 이익 중심으로 설명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의 선한 의지에 따른 행동들은 쉽게 그 의도가 곡해되었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것은 나쁜 행동이라고 단정되는 것이 당시의 규칙이었다. 버려진 여자아이를 주워 오자 그것을 질책하던 아내는 포대 안에 든 돈을 발견하고 화색이 도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남자는 이 통념화된 규칙에 꽤 고통스러워했던 것 같다. 인간으로서 유발되는 자연스러운 감정과 시대가 요구하는 결과중심적 사고의 충돌인 것이다. 따라서 남자는 “다시는 좋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나쁜 일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그래서 남자는 버려진 여자 아이에 대해 “수많은 모순을 한 몸에 안은 존재로,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리지 않을 수도 없는 괴물”이라고 서술한다. 이 부분뿐만 아니라, 소설 전반적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인 남자의 상황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상황에 맞닥뜨린 남자는, “전 인류에 대한 혐오감이 치밀”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 더욱 증오스럽다”고 말한다. 인간적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후 남자는 자신을 문 개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변호하기도 한다. 모든 것에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너무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남자는 “그래, 나는 나 자신에게 인류를 증오하면서 또한 지극한 사랑으로 대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남자를 결코 ‘착하기만 한 인물’로 묘사하지 않았다. 아이를 맡아 키워달라는 고모의 말에 줄행랑 치는 남자의 모습에서, 남자 역시도 공산주의 체제에 둔감해진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또, “해바라기 밭”이 가지는 상징에 대해 생각했다. 여자 아이를 처음 발견하는 공간인 만큼 소설에서 중요한 장치와 상징으로서 기능하고 있을 것이다. 해바라기 밭은, “따뜻하고 운치 가득한 낙원”, “농촌의 경제생활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는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다. 하지만 해바라기는 동시에 “기계적으로, 둔하게 자기 줄기를 따라 흔들거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것은 당시에 급격하게 성장하여 풍요로워진 모습과, 동시에 무력해지고 인간애에 둔감해진 사람들의 모습을 중의적으로 나타낸 상징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쨌거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해바라기 숲이다. 우리는 노란 꽃이 만개한 땅 위에 살고 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상에 지배당하는 것이 옳은가?그리고 노란색, 빨간색 등 색채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 색채에 대해 다른 학우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소설에서 나타난 상징, 민담의 상상력, 색채를 중심으로 감상을 적어보려고 한다.는 차가움을 통해 따뜻함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고 느껴졌다. 이 소설에는 ‘철의 아이’에 대한 민담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철’의 상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철’은, 당시 중국의 철강 제련 사업에 사용되었던, 문명과 도시적 발달을 상징한다. 또한 당시 철강 제련 사업에는 ‘민공 20만명이 동원’되었다. 사업은 국가에서 실행하였을지라도 그것을 직접 노동하여 제련한 것은 일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 아이들의 부모도 철도 사업에서 노동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철’은 가장 차가우면서도 따뜻하다. 서민들의 땀이 전부 녹아들어 있는 노동의 산물인 동시에, ‘철강 제련’과 문명으로 상징되는 ‘기차’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철강 제련 사업은 일반 사람들의 일자리를 제공한 동시에 농업의 일자리를 빼앗아간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모티프가 된 “철 도깨비 이야기” 역시 민담으로, 서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된 이야기이다. 이러한 발칙한 상상력은 철을 만들고, 철의 마을에서 살아간 사람들에게서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이러한 대비되는 서술이 등장하는 부분을 찾아보았다. “태양이 정말 크고 밝았다”라는 묘사 뒤에 바로 “철로 된 기차 바퀴는 빨간색”이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어쩌면 차가운 것인 철과 뜨거운 것인 태양을 동일시 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또, “기차에서 가장 맛있는 부분은 바퀴”라는 서술에도 이러한 의도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철’에 대한 양면적 인식은 철을 먹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철’이 가장 차갑고 폭력적으로 사용된 ‘포탑’을 “폭신한”, “너무 익어 물러 터진 복숭아”같다고 묘사한다. 또한, 가장 맛있는 것은 솥, 가장 맛없는 것은 총이라는 서술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철이 가지는 폭력성을 비트는 따뜻한 상상력이다. 철강 제련 사업으로 무뎌지고 차가워진 당시 시대상을 “깨물고”, “물어뜯고”, “씹어 먹는” 발칙한 상상력을 보여준 것이다. ‘나’가 철을 씹어 먹는 순간 ‘철’은 더 이상 폭력성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여기서 민담의 상상력 ‘철 도깨비’를 모티프로 사용하여 더 흥미로웠고, ‘철을 먹는다’는 문학적 표현이 더욱 쉽게 이해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나는 이 소설에서 동물과 색채의 상상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특히 달걀을 깨자 병아리가 나오고, “우리는 먹을 수가 없었”지만 할머니들의 강요 때문에 억지로 먹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할머니들과 우리들 사이의 결코 넘을 수 없는 벽, 인식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모두 똑같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쩌면 공산주의의 시대 상황에 대해 아이의 시선으로 비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또, 무언가를 먹는 장면은 이후 철의 아이의 권유로 철을 먹는 것이 또 있다. 이때에는 철을 먹고, 맛있다고 여기기까지 한다. 오히려 먹을 수 있는 쪽을 따지라면 병아리인데도 말이다. 나는 오히려 먹는 행위가 소멸시키고 죽이는 행위라고 보았는데, 병아리는 생명을 가진 존재이고 철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비인간적인 쪽은 우리들이 아니라 할머니들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동물과 사물의 대비는 철도와 뱀에서도 나타난다. “철은 아주 차가웠고, 꿈틀거리지도 않았고, 꼬리를 휘두르지도 않았다”라는 점에서 철과 뱀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생명을 가진 뱀은 두꺼비를 잔인하게 죽인다. 하지만 철은 아니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과연 둘 중 어느 쪽이 더 폭력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