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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언 매큐언 '속죄' 서평
    진정한 속죄의 의미:이언 매큐언의 에 대한 서평이 소설이 처음 국내에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는 부커 상을 수상한 작품인 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었다. 반면에 지금은 이 라는 작품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듯하다. 영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그리고 애초에 영화화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는 흥미진진한 서사와 강한 여운을 남기는 결말 등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이 소설은 크게 3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에서는 1935년 어느 여름날,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을 목격한 열세 살의 브리오니가 친언니인 세실리아와 그의 연인인 로비에게 평생 씻을 수 없을 죄를 짓게 되는 과정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위주로 세밀하게 묘사된다. 제2부는 브리오니의 오해로 인해 강간범이라는 누명을 쓰게 된 로비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 겪게 되는 고통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제3부에서는 간호사가 된 브리오니가 부상병들을 돌보며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노력하고, 언니와 로비를 방문하여 용서를 구한다.처음 읽으면서 특이하다고 생각될 만한 부분은 제1부의 분량이 소설의 절반 가까이 된다는 점인데,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사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소설가가 된 브리오니가 쓴 작품의 내용이었고, 그의 속죄의 대상이었던 두 연인들은 이미 전쟁 중에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설의 제1부부터 제3부까지의 내용 중 주인공에게 실제로 벌어졌던 일은 제1부, 그러니까 주인공의 열세 살 무렵 그 여름날의 사건밖에는 없는 것이다. 또, 에필로그에 의하면 브리오니는 이 소설의 집필을 1940년에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 초판 원고가 바로 제3부에 언급되는 임을, 또 바로 이 처녀작이 본 작품의 제1부의 원형이 되었음을 눈치 빠른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제3부에서 브리오니는 자신이 의식의 흐름 기법을 비롯한 모더니즘 문학 사조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언급한다. 이는 이후에 등장하는 잡지사로부터 온 편지에서도 드러나는데, 이 편지에 의하면 브리오니의 이라는 중편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기교에 너무 의존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주며, “지나치게 말이 많고 너무 감상적”이다. 제1부까지를 읽으면서 이와 같은 감상을 느꼈거나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 풍의 문체가 연상되었을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브리오니 탈리스라는 인물의 고유한 문체까지 염두에 둔 작가의 역량에 경탄할 만한 부분이다. 또한 이 작품의 메타픽션적인 성격으로 인해 작중 묘사된 브리오니의 집필 과정은 실제 작가인 이언 매큐언의 집필 과정을 투영시킨 것이라고 짐작되는데, 폭격기나 군복의 디테일 등 세세한 것까지 자문을 구하고 철저히 자료조사를 하여 1930~40년대의 모습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가의 열정 또한 놀랍다.책 후반부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에도 언급되는 얘기지만, 브리오니가 이 소설을 쓰게 되는 이유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속죄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속죄는 성공했을까? 어찌 보면 소설이라는 공상적 세계 안에서 속죄의 대상인 두 인물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모습과 자신이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브리오니의 행동이 말년에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는 얄팍한 자기 위안으로 느껴지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겠다. 브리오니 자신도 이런 행위에 대한 진정성을 끝까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중략)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나는 개인적 차원에서라면, 소설이라는 장치를 이용한 브리오니의 속죄는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의 오해가 불러온 비극에 의해, 속죄의 대상이 되어야 할 두 사람은 이미 죽어버렸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브리오니가 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작중 그의 말을 빌리자면 “소설이야말로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최고의 형식”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 속에서 브리오니는 자신의 죄를 독자들에게 낱낱이 보여줄 수 있으며, 우리 독자들은 그가 느끼는 죄책감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이 성공적으로 써질수록, 다시 말해 이런 교감이 잘 이루어질수록 독자들은 브리오니를 더욱 더 비난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비난은 그 자신이 감당해야할 죗값이 될 것이다. 소설이라는 도구에는 시간을 초월하게 해준다는 속성 또한 존재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그녀가 출판한 소설 덕분에 의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소설이 없었다면 그 일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을”것이라는 브리오니 본인의 말처럼, 본인이 죽는다면 아무도 관심 가질 일 없고, 따라서 비난받을 일도 없을 터인 사건에 대해서 브리오니는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속죄를 이어가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살펴봤을 때, 브리오니가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에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행동은 위선적인 자기위로였다기보다는 본인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속죄였다고 보아야 옳을 것 같다.그러나 아무리 브리오니가 진정어린 속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완전한 속죄일까? 아니, 애초에 두 연인의 비극이 브리오니 자신만의 잘못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브리오니의 오해가 원인이 된 것은 맞지만, 결국 작품 속의 비극에는 사회적인 요인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계급 사회의 잔재가 남아있던 시대에, 명문가의 막내딸인 브리오니와 파출부의 아들이었던 로비 중 사람들은 누구의 편을 들어줬을까? 주인공의 언니인 세실리아도 작중 로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너한테 달려들었어. 그들 모두. 심지어 아버지마저도. (…) 그들은 어리석고 병적으로 흥분해 있던 어린 여자애의 증언을 믿기로 결정했던 거야. (…) 다른 식구들, 난 그들이 한 짓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경찰을 포함한 주위 어른들 모두 무관심과 편견에 휩싸여 당시 열세 살에 불과했던 어린아이의 증언을 의심할 생각조차 못했고, 심지어는 브리오니가 자신의 상상을 현실이라고 믿도록 은근히 몰아가기도 했던 것이다. 게다가, 브리오니에게는 공범이 있었다. 바로 강간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였던 롤라와 마셜이다. 브리오니는 그 당시 오해로 인해 진범의 정체를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 두 명은 분명히 로비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했던 것이다. 브리오니도 훗날 이를 깨닫고는 “우리가, 롤라와 마셜과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어찌 보면 진짜 비난을 받아야 할 인물들은 죄책감을 갖고 속죄를 위해 평생 노력해온 주인공보다는, 처음부터 진실을 알았음에도 죄의식조차 없어 보이는 나머지 두 명의 ‘공범’인 것이다.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얘기겠지만, 결국 이 작품에서의 완전한 속죄라는 건 브리오니 개인의 속죄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한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인 힘이 한 소녀의 사소한 오해를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최근 만들어진 용어 중 “cancel culture”라는 말이 있다. 소셜 미디어라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는 장을 이용해, 사회적으로 권위를 누리고 있는 인물이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겠다는 취지에서 생겨난 인터넷 문화이다. 주로 유명인이 오래 전 온라인에 남긴 공격적인 발언 등을 문제시삼아 그 유명인을 인터넷 상에서, 더 나아가서는 현실 세계에서도 “취소” 해버리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의도는 좋았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근거 없는 비방이나 오해를 근거로 어느 특정 인물을 완전히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고, 이 때문에 cancel culture는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문화에 참여하는 주체는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다. 의 주인공인 브리오니와 비슷한 나이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브리오니의 오해는 현대 사회의 cancel culture와 닮아 있다. 오해와 그 오해를 진실로 만들어 준 상상력, 그리고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는 그 나이 특유의 오만으로 인해 사실은 죄가 없는 여러 명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소셜 미디어의 cancel culture가 비판받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은 변한다’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인물이 온라인상에 수년 전 남긴 말에 대해 본인이 아무리 진정어린 사과문을 올리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라고 주장해도 정의감과 오만에 휩싸인 대중은 그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기에서 이 작품의 제목인 의 또 다른 의미가 드러난다. 브리오니는 변했다. 과연 독자들은 브리오니를 용서할 수 있는가?-PAGE * MERGEFORMAT1-
    독후감/창작| 2021.06.11| 3페이지| 1,500원| 조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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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프카 변신 독서 비평문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사실 예전에도 몇 번 읽은 적이 있는 작품이다. 어릴 때 처음 읽었을 때는 그저 결말이 슬픈 우화 정도로만 받아들였었고,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읽었을 때는 주인공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현대인’ 정도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기에 그에게 안타까움과 동정심을 느꼈었다. 이번에 과제 때문에 다시 읽게 되었을 때 그러한 기존의 감상이 크게 변한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에 대한 생각은 조금 바뀌게 된 것 같다.워낙 해석이 다양한 작품이지만, 그냥 표면적으로만 읽는다 해도 이 작품의 큰 주제(중 하나)가 “인간 소외”라는 점은 누구에게나 이견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 말했듯이 중고등학생 시절에만 해도 나는 그 인간 소외의 이유를 산업화와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인간 역시 ‘돈 버는 기계’처럼 취급되는 현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인공이 ‘갑충’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그의 비극을 초래한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의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였다고 생각한다.주인공의 직업은 외판사원이다. 그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경제생활을 하는 가장 큰 동기는 가족이다. 부모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서, 또 여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실현하고 싶은지 등에 대한 고려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온전히 타인만을 위해 자신의 자아를 외면한 것이다. 이 때 외면되었던 그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한 것이 ‘갑충’의 형태라고 한다면, 주인공은 자신이 벌레가 되었다는 현실에서도 눈을 돌리려고 한다. 그의 집으로 찾아온 직장 상사에게 “곧 옷을 입고 견본 꾸러미를 꾸려서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그의 가족조차 그의 내면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사람들이 익숙해졌던 것이다. 식구들이나 그레고르 역시도, 식구들은 돈을 감사하게 받았고, 그는 기꺼이 가져다주었으나, 특별한 따뜻함은 더 이상 우러나지 않았다.”), 주인공의 변신이 비유적인 것이든 어떤 것이든 그의 내부에서 일어난 비정상적인 변화(정신이상 등)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가 ‘갑충’이 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의 가족 중에선 아무도 눈치 챈 사람이 없을 만큼 그는 철저히 소외된 것이다.나는 주인공이 겪게 된 비극의 가장 큰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읽었을 땐 왜 이 점을 눈치 채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점이 작품 내에서도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나 오히려 놀라기도 했다. 나에게는 이 작품이 타인과의 해로운 인간관계를 청산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경고문으로 읽혔다. 또는 ‘나’가 아닌 타인만을 위해 사는 삶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주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작중에서 그레고르의 아버지는 빚으로 거의 모든 재산을 잃고, 몸도 좋지 않아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데 사실은 아버지에겐 주인공의 생각보다 많은 재산이 남아 있었고, 일을 하지 못할 만큼 몸 상태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주인공에게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무의미한 희생을 강요했던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도 경제 활동을 하는 한 명에게 나머지 가족 구성원이 경제적으로 의존하다가 결국 큰 갈등으로 번지는 사례가 심심찮게 들린다. 사실 이는 ‘해로운 인간관계’의 한 형태일 뿐이고 어쨌든 그런 관계는 아무리 가족이라 할지라도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작품 속에서 그레고르도 처음부터 가족들이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완전히 의존하는 구도를 만들지 않았으면 그가 결국 벌레(현실적인 상황에 대입해 본다면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벌레만도 못한 존재’가 아닐까)로 전락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지 않았을까 싶다.
    독후감/창작| 2021.06.11| 2페이지| 1,000원| 조회(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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