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어떻게 르네상스 운동의 출발지가 되었는가?Ⅰ. 서론‘르네상스’는 재생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중세와 구분 짓기 위하여 쥘 미슐레가 1885년 최초로 사용하고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저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에서 정의한 개념으로서 “1350년경에서 1550년경에 이탈리아반도에서 등장하여 16세기 전반까지 북유럽 등으로 전파된 사상과 문학, 예술에 속한 된 변화들을 뜻함.”이라고 할 수 있다.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의 부활이라고 볼 수 있으며, 중세의 말이라고 볼 수도 있고 혹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탈 중세라는 종합적인 의미로 볼 수 있으며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전환을 통하여 예술과 인문 등에 큰 변화를 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르네상스는 보통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북유럽 르네상스 두 개로 구분 지어지는 편인데, 본 리포트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중점을 두어 이탈리아가 어떻게 르네상스 운동의 출발지가 되었는지에 대하여 이탈리아 상인들, 이탈리아반도의 문화적 원천 등에 중점을 맞추어 설명할 계획입니다.Ⅱ. 이탈리아 르네상스“하나의 단위로 인식되는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의 이탈리아 문화는 근대 의식의 출발기와 맞닿아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한 줄로 생각되는 말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14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이탈리아의 사상과 문학, 예술의 변화이며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의 변환 점이다. 탈 중세의 시작으로서 중세 말 혹은 근대의 시작으로도 볼 수 있다.이탈리아 르네상스 후에 북유럽으로 전파되어 북유럽 르네상스가 시작되긴 했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 역시 프랑스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았다는 점은 신기하게 인식 될 수 있다. 유럽문화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했던 프랑스는 12세기와 13세기 초에 라틴 고전연구가 비교적 활발한 편이였으며 13세기 이탈리아는 프랑스 볼로냐 대학을 다닌 학자들을 통하여 프랑스의 고전학을 수입함으로써 르네상스의 출발지가 될 수 있었다.였다. “이탈리아 상인들은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상업과 은행 기술들을 보전시켰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업, 은행, 정보 그리고 근대적 은행제도들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들은 산업을 발전시켰고, 오늘날 우리가 르네상스라 부르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냈다. 그들에 의해서 농촌적이고, 집단적이고, 종교적인 삶의 방식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도시적이고, 개인적이고, 세속적인 삶의 방식이 나타났다.” 르네상스시기 상인들이 이탈리아에서 어떤 위상을 가졌는지 잘 표현하는 말이며 왜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지중해를 지배하고 중계무역을 통하여 부를 쌓은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들에서 지배계층은 상인들이였고 이해타산에 밝은 상인들은 종교와 중세적 문화관에 비교적 덜 얽매이면서 이해타산적인 그리고 도시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또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자본을 권력지향성의 도구로서 자신들의 정치적 성공을 회화작품을 통해 확인하면서 동시에 이후의 권력유지에 필요한 이념적인 명분을 위해 회화의 시각적이고 커뮤니케이션적인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결과적으로 자본은 예술후원의 과정을 통해 도시의 군사, 정치적인 번영과 경제적인 발전을 보장하는 데 방점을 찍는 효과를 보였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적 예술적 변화를 동반하였다.이탈리아 상인들의 교역활동이 어떻게 이탈리아가 르네상스 출발지가 되게 하였는지에 대하여서는 시대별 이탈리아상인의 활동을 이야기하고 소결론에서 활동들을 연관 지어 제 생각을 말하겠습니다.Ⅲ - 1 12세기중세 지중해의 교류를 활성화 시킨 것은 ‘십자군 전쟁’이다. 이탈리아는 지중해의 중간에 위치하였고 큰 항구도시들이 번성하였다는 지리적 이점을 통하여 비잔티움, 이슬람 세계와 지속적으로 교역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십자군 전쟁은 이렇게 성장하고 있던 이탈리아 항구도시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특히 제 1차 십자군 전쟁 이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던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4개의 기독교 왕국 ‘라틴 왕국’에 물자와 인력을 공급하는 막대한 부를 쌓아올리고 거만하게 행동하게 되자 1171년 동로마제국 마누엘 황제는 베네치아 상인들의 부를 몰수한다. 후에 다른 황제들이 재산 및 특권을 돌려주지만, 4차 십자군 전쟁에서 베네치아가 이슬람 세력이 아니고 같은 기독교 일파였던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함락시킴으로서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제국영토의 8분의 3을 획득하게 되는 등 지중해에 면한 항구도시와 그 주변 도서들을 점령하게 된다.이러한 베네치아를 견제하기 위하여 동로마제국은 경쟁 도시국가라고 볼 수 있는 제노바를 적극적으로 기용하였고 후에 베네치아 상인들의 특권은 제노바 상인들에게도 이어진다.12세기 이탈리아 반도 북부의 도시국가들은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경제적 침탈, 십자군 전쟁 특수, 비잔티움제국, 이슬람제국, 상파뉴 정기시 삼각무역 등으로 인한 막대한 부를 쌓으면서 점차 지중해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게 된다.Ⅲ - 2 13세기12세기 지중해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한 이탈리아반도 북부 도시국가들에게 위기가 찾아오게 되는데, 교황의 강력한 이슬람세력과의 무역금지령이 그 원인이었다. 이슬람 제국을 통하여 향료와 비단 등 핵심적인 무역품을 구매하였고 그것이 부의 원천이 되었던 도시국가들에게 큰 위기였지만 키프로스 섬을 통한 밀무역 그리고 유럽지역까지 진출한 몽골제국에 의하여 아시아와의 직통교역로가 확보됨으로서 도시국가들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후에 몽골제국이 쪼개지고 한국들이 이슬람으로 개종되어 교역을 향료등의 교역이 막히자 교황청은 무역을 재개시켜주었고 키프로스 섬은 베네치아에게 점령되어 가혹한 수탈을 당하게 된다. 이 시기에 피렌체 역시 눈부신 성장을 하게 되는데 성장의 주요한 동력은 ‘거대한 상사’ 들이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메디치가문으로 대표되는 메디치 상사이지만 바르디 상사와 페루치 상사 역시 “기독교 세계를 떠받치는 두 기둥”으로 불리며 거대한 세력을 자랑했다.이 시기 피렌체의 상사들은 남부이탈리아와의 곡물무역, 잉글랜드와의 양모무역 그리고 교황청의 금융거래를 대신국의 해체로 아시아로 가는 직교역로가 닫혀 버렸고, 15세기에는 성장하는 이슬람 제국들이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식민지들을 점령하였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아라곤 왕조가 등장하여 시칠리아 섬을 장악하는 등 서지중해에서 우월한 지위를 누리게 되었으며 대서양 연안 항구들도 이탈리아 세력의 경쟁자로 부상하는 등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상업도시들은 극복을 위해 팽창주의를 선택 베네치아는 베로나, 파도바, 라벤나를 정복하였고 피렌체는 오랜 경쟁자인 피사를 병합하는 등 팽창해갔으며 직물산업의 성장 및 여러 상업기술의 발달로 극복하였다. 그러나 동지중해의 물건을 수입하여 유럽시장에 물건을 판매하고 유럽 상품을 다시 동방으로 수출하는 기본 구조는 15세기에도 여전히 유지 되었다.Ⅲ - 4 小결론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있어서 상인들의 활동이 르네상스의 원천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주요한 원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3개 있습니다.첫 번째로 자유로운 문화적 교류이다. 이탈리아 상인들은 초기에는 아직 남아있던 동로마 제국을 통하여 고대 로마의 서적들을 받아들이기가 쉬웠고, 교황이 가까이 있음에도 이슬람 세력과도 무역해야 하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관용으로 새로운 문화, 문명적 요인들에 좀 더 친화적이었다.두 번째로 봉건제도의 영향이 미미한 강대한 도시국가들의 존재이다. 교황 권과 황제권의 대립에서 벗어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커다란 자치를 누렸고 도시적이고, 개인적인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시국가들을 지탱하는 핵심은 이탈리아의 상인이었다.세 번째로 상인들의 교역활동으로 모인 이탈리아의 부유함이다. 아시아의 향료와 비단 등을 수입해 유럽으로 수출하고 직물을 아시아로 수출함으로서 중계무역의 중심지로서 부를 창출하였고 후에 메디치가문으로 대표되는 예술가와 학문에 대한 투자로 르네상스 문화의 바탕이 되었다.후에 15세기 대서양항로가 발견되기 시작하고, 오스만 제국에 의해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무역의 길이 끊기면서 이탈리아의 상업도시들은 점차 쇠퇴하게 되고 이탈리아 르.(중략) 알프스 이북으로부터 전래된 고전학과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이탈리아의 전통적 수사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으며 중세 이탈리아의 수사학이 고전의 지혜와 결합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르네상스 휴머니즘 혹은 휴머니스트 적 문화가 발흥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적 원천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하는 단락이라 생각하여 가져온 글로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의 문화적 원천은 크게 3가지로 이슬람문화와 비잔틴문화와의 지속적인 교류 및 비잔틴제국 멸망 후 동로마제국의 인재들이 이탈리아로 넘어간 것, 프랑스의 고전학, 그리고 이탈리아 자체적인 고대에 대한 동경 및 수사학과 지혜라고 생각한다.이 3가지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습니다.Ⅳ - 1 이슬람과 비잔틴문화의 영향“번역은 비잔틴, 아랍, 유대 전통의 이탈리아 유입에 있어 중요한 수단이었다. 특히 번역의 주체들이 사용한 지방 속어들은 번역의 기술적인 과정에 도입되어 문화 유입을 가속화시켰다: “여기 아랍어에서 번역한 번역본이 있다. 나는 어휘들을 읽고 속어로 번역하였으며 대주교 로메니코는 이를 후에 라틴어로 읽었다.”“이러한 인문적 교류의 한 편에서는 바그다드의 철학자, 번역가들의 모임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유대철학은 10-12세기에 이탈리아 북부에 유대신비철학 중심의 신플라톤주의를 확산시켰으며, 13-14세기에는 이전 세기 말의 아랍 영향을 등에 업고 기독교 철학 및 라틴 스콜라 철학과 접하였다(이븐 가비롤Gabirol의 Fons Vitae). 당시 유대 지식인들은 스페인에서 추방과 박해를 경험하면서도 1409년 파도바 대학에 의해 수용되기 전까지 시칠리아 팔레르모(Palermo)의 프리드리히 2세의 궁정에서 활동하는 등 왕성한 번역 및 주석 작업을 몰두하였다. 그 외에도 비잔틴 제국과의 오랜 교류를 배경으로 노르만 왕국의 궁정에서는 3개 국어가 통용되고 있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그리스어, 아랍어로부터의 라틴어 번역이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위의 논문 사례들에서 이야기하듯이 이탈리아 도시국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