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의 예술과 가치주제:공연 감상후 유기적으로 컨텐츠 구성목차1. 오페라 메피스토펠레2. 독일의 파우스트 박사 전설3. 원작 소설 괴테의 파우스트4. 괴테와 음악5. 괴테와 음악가들6. 오페라 속에 나타난 '메피스토펠레','파우스트'7. 오페라 감상문 : 국립오페라극단의 메피스토펠레를 보고8. 참고문헌1. 오페라 '메피스토펠레'-대본, 작곡 Arrigo Boito (1842.2.24~1918.6.10)-시기 16세기-중세 독일과 고대 그리스-초연 1868. 3. 5. 밀라노-연주형태 총 3시간프롤로그제 1막제 2막제 3막제 4막에필로그-등장인물메피스토펠레 (Mefistofele 악마) B파우스트 (Faust 철학자) T마르게르테 (Margherite 시골 소녀) S마르타 (Martha 그녀의 어머니) A바그너 (Wagner 파우스트의 학생) T헬렌 (Helen 트로이의 미녀) S네레오( Nereo 수행원) T-주요아리아 벌판을 거쳐, 목장을 지나 Dai Campi, dai prati (테너)시대적 배경보이토가 독일에서 처음 이탈리아 반도로 귀향하여 시도한 작품이 괴테의 대규모 극시인 였다. 이것 역시 독일 정신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각색하여 자신의 최초의 오페라 의 대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곡을 붙였는데 운이 좋게도 라 스칼라 극장에서 마침 새로운 작품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당시 드물게 약관 26세의 작곡가로 직접 지휘하여 초연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곡은 너무나 길고 지루했다. 장대한 대목들도 있었지만, 관객들을 시종 집중시킬 만큼 매력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7년 후에 그는 대폭 수정하여 1875년 볼로냐에서 이 오페라를 다시 올렸는데 그때부터 긍정적인 레퍼토리가 되었다.시놉시스서막장소는 천상으로, 신비스런 성가가 울려 퍼지면서 신을 찬양하는 가운 데 냉소풍의 스케르초가 메피스토펠레의 출현을 알린다. 그는 철학자 파우스트를 타락시켜 그의 영혼을 앗아 올 수 있다고 호언하며 신과 내.제2장무대는 브르켄의 산정이다. 악마들의 잔치를 맞이하기 위해 파우스트는 이곳으로 이끌려와서 그들과 함께 빙빙 돌며 춤을 춘다. 그러나 사탄들이 벌이는 잔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마르게리테의 환상을 보는데, 온몸이 사슬에 묶인 채 그녀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파우스트는 자신을 그녀에게 데려가 달라 고 메피스토펠레에게 요청한다.제 3막감옥 안, 짚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마르게르테가 심한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아기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독약을 먹여 살해한 죄로 투옥되어 있었다. 파우스트가 나타나자 그녀 는 옛날의 추억을 중얼거리는데,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 때문에 초래된 불행한 운명을 한탄한다. 그는 미친 마르게리테를 달래어 감옥 을 도망칠 것을 약속받지만, 그때 메피스토펠레가 나타나 해가 솟는다고 외치자 그녀는 움찔 놀라며 뒷걸음질 친다. 다시 착란에 빠진 그녀 는 파우스트의 필사적인 격려에도 불구하고 빈사의 상태로 [고난의 날 은 사라지도다 Spunta l'aurora pallida]를 부르며 죽는다. 그러자 하늘의 성가대가 [그녀는 구원을 받았다! salva!]고 노래하며 그녀의 영혼이 하늘의 부름을 받아 승천했다고 알린다.제 4막고대 그리스의 템페 계곡이다. 트로이의 헬렌은 그녀의 하녀들에게 에워싸여 토로이의 멸망에 대한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파우스트가 15세 기의 기사 복장을 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미모와 매력을 칭찬하며 구애한다. 그녀도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들은 함께[영원하고 아름다운 이상의 모습이여! Ah Amore! misterio celeste!를 노래한 다. 메피스토펠레는 매우 즐거워하면서 물러가고, 무대에서는 합창과 함께 발레단이 춤을 추는 장면이 연출된다.에필로그파우스트의 서재이다. 다시 늙은 파우스트는 책을 뒤적거리면서 과거를 회상하고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한다. 메피스토펠레가 나타나 서 파우스트를 틀림없이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장담하며 자신의 마 법 외투를 어, 이탈리아의 단테와 함께 세계 문학사에 끼친 영향이나 작품의 완성도에서 대등한 평가를 받는 최고의 작가임은 누구나 공인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에 의해 영어가, 단테에 의해 이탈리아어가 다듬어졌듯이, 독일어는 괴테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괴테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83세까지 장수를 누리면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친화력",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 등을 남겼고, 음악, 자연 과학 등에도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바이마르 공국의 정치에도 참여하여 총리로서도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그러나 괴테를 세계의 대문호로 인정하게 한 작품은 "파우스트"였다. 그만큼 그는 파우스트 한 작품을 평생 동안 다듬고 또 다듬어서 내 놓은 것이다. 그 제 1부는 59세 때에 발표했다. 그러나 제 2부는 그가 사망하던 해에 유고집으로 출판되어 전작을 완성하기까지 거의 60여 년이 걸렸다.이 소설의 주제는 파우스트라는 이름을 가진 한 인물을 두고 신(神)과 악마가 벌이는 대결 구도이다. 파우스트라는 인물에 대한 전설은 이미 유럽 전역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전설적 이야기가 괴테에 의해 비로소 소설로 완성된 것이다.제 1 부괴테가 24년간 심혈을 기울여 쓴 부분이다. 신학, 철학, 법학, 의학 등 모든 학문을 탐구해도 마음에 충족을 느끼지 못해 한탄하던 파우스트는 절망한 나머지 독배를 든다. 그러나 부활절 종소리에 다시 삶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된다. 그 때 파우스트는 자기를 찾아 온 악마 메피스토텔레스에게 자신의 모든 지적, 물적 욕망을 채워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미 메피스토텔레스는 신으로부터 파우스트를 이러한 방법으로 유혹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뒤였다.메피스토텔레스는 파우스트를 술집으로 데려갔으나 좋아하지 않자, 마녀의 주방으로 자리를 옮겨 어떤 여자라도 최고의 미녀처럼 보이게 하는 마약을 먹인다. 마약을 마신 파우스트는 평범하지만 마음씨 곱고 착한 마르가레테를 만나 이내 사랑에 빠진다. 이 아하게도 충만한 환희와 평화를 느끼며 죽어 간다.이 절명의 순간에 메피스토텔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려가려 하나 천사들이 내려와 뿌린 장미꽃이 방해가 되어 데려가지 못하고, 오히려 천사들이 그의 속죄한 여인 그레트헨은 천상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파우스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고 이에 대한 답으로 신비스러운 천상의 합창 소리가 울려 퍼진다. 결국 악마 메피스토텔레스는 신과의 내기에 패하고, 현세에 있을 동안 악마에 이끌려 다니며 온갖 죄악을 저질렀던 파우스트의 영혼은 착한 그레트헨의 기도에 힘입어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4. 괴테와 음악독일 문학사와 세계 문학사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 -1832)는 음악사에 있어서도 매우 강렬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문학사에서 괴테만큼 음악 속에 심오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작가는 없었다.괴테가 남긴 방대한 문학작품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끊임없는 창조의 원천이 되어 많은 영감을 제공하여 주었으며, 그러한 괴테의 문학 정신은 음악의 모든 장르에 폭넓게 스며들어 있다. 괴테의 문학작품은 텍스트로 사용되어 징슈필 (Singspiel), 오페라, 극부수 음악, 오라토리오, 칸타타, 리트(Lied) 등으로 재창조되었고, 텍스트가 직접 사용되지 않았어도 독주곡에서 실내악, 관현악, 교향곡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기악곡 속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괴테의 희곡, 산문 작품 중 음악의 소재로 사용되지 않은 작품은 거의 없고, 수많은 서정시들 중에서도 리트로 작곡되지 않은 시를 찾기란 매우 힘들다. 이렇듯 괴테의 시 중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고 애송하는 시에 대한 세팅(setting)들은 헤아리기조차 힘들다.괴테는 자신의 작품들이 음악의 소재로 사용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시들이 노래로 불려지기를 원했다. 괴테는 자신의 시가 노래로 불려지기를 원한만큼, 그에 따른 만족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패로디의 방법을 이용하였다. 따라서 그의 서정 위대함을 알지 못하였다.괴테는 모짜르트를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생각하였지만 모짜르트는 괴테를 전혀 알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괴테가 모짜르트를 처음 본 것은 14살 때였는데 모짜르트는 그의 누나와 함께 연주 여행 중이던 프랑크푸르트에서였다. 그 때 모짜르트의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모짜르트는 괴테의 시에 의한 리트를 한 곡(오랑캐꽃;Das Veilchen, Erwin und Elmire 중에서)을 남기고 있지만 그 시는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누구의 시인지도 몰랐다고 한다.서로가 서로를 존경했던 베토벤과 괴테와의 만남도 서로에게는 불행이었다. 그들은 테플리츠 에서 한 번 만난 후 서로에 대한 존경심도 사라졌다. 매우 조숙했던 작곡가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는 소년 시절부터 괴테를 흠모하고 끊임없이 그의 시에 곡을 붙였지만 괴테에게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다만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과 교제를 나눈 것이 그 시대의 대 작곡가들과 인연이 없었던 괴테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괴테는 멘델스존을 통하여 바하의 음악에 접근할 수 있었고 베토벤의 위대함을 재인식할 수 있었다.괴테가 깊은 관계를 맺고 음악적 교양을 얻은 작곡가들은 당시 멘델스존과 뢰베(Carl Loewe, 1796-1869) 등의 스승이었으며 베를린 음악학교 교장이었던 첼터(Carl Friedrich Zelter, 1758-1832)와 괴테의 시에 처음 곡을 붙였던 라이햐르트(Friedrich Reichardt, 1752-1814), 그리고 뢰베, 에버바인(Karl Eberwein, 1786-1868), 훔멜(Johann Nepomuk Hummel, 1778-1837) 등이 있었다. 괴테는 이들 중 첼터와 뢰베를 그 시대의 대표적 작곡가로 높이 평가하였으며 그들에 의하여 '파우스트'가 음악화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괴테의 주변에는 그의 대작 '파우스트'에 어울릴 만한 작품을 쓸 만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