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베르베르의 『나무』중에서초인종이 울리자 겁에 질린 프레드 할아버지와 뤼세트 할머니.초인종을 울린 것은 ‘그들’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그들’은 자식들로부터 소식이 끊기면 찾아온다는 CDPD(휴식, 평화, 안락센터)의 사람들이다.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이들은 반항하는 노인들을 잡아갔다. 설마 했는데 프레드 할아버지와 뤼세트 할머니는 자식으로부터 버림받았다.노인들은 사회보장 적자의 원인으로 치부되면서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노인 배척 운동가들은 처방전을 남발하고 마구잡이로 노인들의 생명을 연장시킨다는 이유로 의사들을 비난했다. 학자들의 분석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산도 대폭 삭감되었다.정부는 인공심장의 생산을 중단시켰고, 피부, 신장, 간의 대용물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동결시켰다. 대통령마저 노인들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나라의 모든 경제문제가 노인의 증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75세 노인에게서 나온 것이고 그의 [뛰어난 임무 수행 능력]이 첨단 의학 덕분에 발휘되고 있는데도 그 사실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70세 이상 노인들에 대해서는 차등적으로 의료서비스 제한 조치가 취해졌다. 광고도 반노(反老) 캠페인으로 제작되고 노인을 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내용의 광고가 대부분이었다.레스토랑에서는 [70세 이상 출입금지] 팻말을 내놓았다. 노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CDPD(휴식, 평화, 안락센터) 직원들은 또 프레드와 뤼세트 집의 초인종을 울렸다. 프레드 부부는 여전히 반응을 하지 않고 숨죽이고 있었지만 직원들은 떠나지 않고 문을 두드리며 집요하게 문 열 것을 요구했다. 심지어 발길질까지 해댔다.이웃인 풀트랑 부부는 이미 잡혀서 버스에 타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CDPD(휴식, 평화, 안락센터)에 대해 몹시 부정적이었다. 그곳(CDPD)에 들어간 노인들의 소식은 알 수도 없었고 독극물 주사로 안락사 당한다고 추측할 정도다. 반면 프레드는 그럴 리 없다고 확신했다. 그 확신은 곧 깨지지만.CDPD(휴식, 평화, 안락센터) 직원들은 급기야 노루발장도리로 현관문을 따기 시작했다. 그러자 프레드는 아내 뤼서트와 함께 창밖으로 뛰어 내렸고 CDPD(휴식, 평화, 안락센터)버스에 올라타 운전석에서 차를 몰고 그곳을 떠났다.프레드와 노인들이 탄 CDPD(휴식, 평화, 안락센터)버스는 산으로 향했다.버스에 갇혀 있던 노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프레드의 행동을 칭찬하면서도 산 속 열악한 환경과 자신들의 건강문제를 걱정했다. 프레드는 노인들을 데리고 산속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불을 피웠는데 그 연기 때문에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연기배출 시스템을 만들고 사냥도 시작했으나 사냥으로 인해 또 사망자가 발생했다.갑자기 동굴에 낯선 노인 네 명이 나타났다. 어느 센터에서 탈출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발랑베르그라는 전직 의사도 있었다. 그 의사의 말에 따르면 버스를 타고 탈주한 노인들에 대한 소식이 일파만파 퍼졌고 정부에서는 탈주한 노인들의 시신을 찾았다는 거짓 발표를 했다고 한다. 버스 탈주 소식에 힘을 얻은 다른 센터의 노인들도 더 합류할지 모른다. 현재 동굴에 있는 노인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산에서의 생활을 지혜롭게 이어나가고 있었다.예상대로 노인의 수도 늘어갔다. 그들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노인들도 쓸모가 많으니 존중해 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배포했다. 또한 CDPD(휴식, 평화, 안락센터)에 갇혀있는 노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수용된 노인의 자식 행세를 하고 나섰으나 이 일은 관계 당국의 의심을 받게 되어 차질이 생겼다. 대신 게릴라 활동까지 전개해 많은 노인들을 해방시켰다.경찰과 CDPD(휴식, 평화, 안락센터)는 반란자인 의 동굴을 찾아내 공격을 시도했지만 반란자들도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어 진압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그럴수록 정부의 태도는 더욱 강경하고 포악해졌다. 이에 대해 은 게릴라 공격으로 반발했고 산에서의 생활도 만족하게 되었다.반란자들의 세력에 정부가 수그러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완강했다.독감바이러스를 숲속에 퍼뜨려 노인들은 죽어 나갔고 생존자들도 결국 CDPD 대원들에게 체포되었다.의 수장이었던 프레드는 주사를 맞고 죽기 전에「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게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 * *『황혼의 반란』을 읽어가는 중에 ‘고려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려시대 나이 많은 부모님을 버리는 풍습이라고 알고 있으나 실존 하지 않았던 설화라고 한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에서별똥별 같은 [고약한 것]이 파리의 어느 공원 한복판을 덮쳤다. 엄청난 충격이었다.이른 새벽시간의 이 충격으로 세 명이 희생되었는데 그들은 마약 밀매업자였다고 한다.그 별똥별은 직경이 70m나 되는 바윗덩어리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약한 악취까지 풍겨 큰 문젯거리였다. 신문에서는 그 골칫거리 바윗덩어리를 [우주의 배설물(똥)]이라고 규정했다.바람을 타고 다니는 냄새 때문에 주민들은 고통스러웠다. 사람들은 향수를 뿌리거나 방독면을 쓰고 다녔지만 악취는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파리들도 손절하고 도망갈 정도였다.한 때 관광거리였던 이 [우주의 똥]을 피해 공원 주변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고 인적 또한 끊겼다.파리시에서는 [우주의 똥]을 옮겨서 센 강에 빠뜨린 다음 바다로 가게끔 하려했으나 그도 여의치 않았다. 어마어마한 크기와 무게를 감당할 장비가 없었다. 깨부수는 것도 불가능했다.그때 한 젊은 기술자(프랑수아 샤비뇰)가 콘크리트로 덮어버리자고 제안을 했고 그 제안은 곧바로 실행되었다. 하지만 시멘트를 덮어도 악취가 풍기기는 마찬가지였다.차선책으로 석고를 발라봤지만 소용없었다. 둥글둥글 모양만 변할 뿐이었다.젊은 기술자는 기체를 전혀 투과시키지 않는 자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유리’였다.유리로 덮은 다음에야 고약한 냄새가 사라졌다.파리는 기쁨의 도가니가 되었다. 떠났던 주민들도 돌아오고 축하를 위해 무도회도 여는 등 축제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이 유리 코팅된 바위덩어리를 불가사의한 기념물이라면서 기뻐했다.그때 또 다른 차원의 우주에서 보석장사를 하고 있는 외계인(글라프나우에트)이 자신이 지구에 버렸던 물건(우주의 똥)을 다시 회수해 갔다. 외계인 보석장수는 고객에게 진주를 보여주었다. -그곳에서는 진주로 통할지 모르겠지만 지구에서는 처치 곤란한 똥덩어리였다- 외계인 여성고객이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양식진주라고 감탄하면서 만든 비법을 보석장수에게 물었지만 정보를 공유하지는 않는다. 대단한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고객님이 마음에 들어 하시는 그 진주는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오물덩어리입니다’라고 밝힐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다만 기존의 조개를 이용한 진주 생산방식은 품질이 떨어지고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방법으로 만든 진주는 광택은 물론 퀄리티가 뛰어나다고 했다. 외계인 여성 고객은 더 완벽한 것은 본 적이 없다며 감동해 마지않는다. 결국 고액을 지불하고 진주를 구입해서 친구들에게 자랑했다.보석장수는 지난 번 보다 더 악취가 강한 오물덩어리를 같은 장소에 갖다 놓았다. 파리에 있는 공원 뿐 아니라 지구 곳곳의 대도시, 랜드마크에도 한 덩이씩 투척했다. 외계인 보석장수가 성공하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 따 놓은 당상이었다. 생산비가 들지 않는 가성비 갑인 사업이다. 악취를 없앨 수 있도록 오물덩어리를 만진 손만 깨끗이 씻으면 될 일이었다.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 소설의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 지구가 신이 갖고 노는 여러 개의 구슬 중 하나에 불과함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 중에서어느 과학자가 피부를 투명하게 만드는 연구를 했고 동·식물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는 성공을 거두었다. 장미, 참나무, 개구리, 쥐 등의 생체 피부를 투명하게 만드는 데 성공 후 이 과학자의 다음 실험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다. 궁극에 인간의 피부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이 실험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실험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어느 날 밤, 과학자는 자신을 피 실험자로 하는 실험에도 성공을 했다. 투명해진 살갗을 통해 오장육부가 다 보인다. 거울을 통해 본 자신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고, 그 중에서도 눈이 가장 무서웠으며 그 외의 장기들은 살아있음을 알게 해주도록 팔딱거린다. 인간의 생체가 어떻게 순환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원래대로의 불투명한 피부로 되돌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과학자는 혐오스러운 자신의 모습에 사람들이 더 이상 놀라거나 기절하지 않도록 옷을 차려 입고 밖으로 나왔다.사람들은 피부가 투명하고 장기가 다 보이는 과학자의 모습에 기함을 한다. 폭력성은 견디면서도 누군가가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은 못 견뎌한다.투명피부의 인간은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자신의 모습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서커스단을 찾아 나섰다. 서커스 단장은 그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고 그를 서커스단의 일원으로 받아 들였다. 서커스 단원 중에 있는 한국인 공중그네 곡예사가 투명피부 인간의 모습에 관심과 호기심을 강하게 보였다. 그녀는 그의 모습이 혐오스럽기는커녕 오히려 피부가 투명한 사람들이 더 나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투명피부 과학자는 그녀의 말에 한 가지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녀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의 피부는 어떻게 될까하는 것이다.과연 어떻게 될까? 아빠처럼 투명해질까? 엄마를 닮을까? 아니면 반반씩 닮을까?피부가 투명해진 이 과학자가 또 다시 새로운 실험에 성공을 했을지는 밝히지 않은 열린 결말로 이 소설은 끝을 맺었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에게도 궁금증이 생기게 만들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과거 엉뚱한 사람들의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이 오늘날 현실이 된 것이 한 둘이 아님을 감안한다면 무엇이든 그 가능성을 무조건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세상은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성별, 인종, 국가, 종교 등 어디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서로를 혐오하거나 거부하거나 거부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혐오와 거부감이 극에 달했을 때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도 경험을 하고 있다.
복녀는 15세에 20살이나 많은 홀아비에게 80원에 팔려 시집을 갔다.서른 중반쯤 된 남편은 한참 일할 나이임에도 극도로 게을러 농사를 제대로 짓지도 않고 민심을 잃어 농사지을 밭마저 얻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의 게으름은 처가로부터도 밉보이게 되어 결국 평양성 안으로 막일을 하러 들어가 지냈지만 남편의 게으름으로 살기는 여전히 막막해 빈민굴로 밀려나 살게 되었다.빈민굴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업은 거지였다. 부업은 도둑질인데 복녀도 생업에 나서서 일은 하지 않고 왜 빌어먹느냐는 사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입지를 합리화시킨다.19세가 된 복녀는 얼굴이 예뻤지만 선비 집안 출신이라 일하는데 여러 제약이 있어 여전히 가난했고 굶기를 밥 먹듯 했다.어느 날 복녀는 소나무의 해충인 송충이를 잡는 인부로 뽑혀 열심히 일을 하게 되었다. 하루에 32전이나 벌기도 했다. 그런데 열심히 하는 복녀에 비해 같은 작업을 하게 된 다른 여자들은 어느 순간 일은 안 하고 노닥거리기만 하는데 돈은 8전이나 더 받아갔다. 관리 감독도 그녀들의 근무태만을 묵인하는 눈치다. 그러던 중 하루는 관리 감독이 복녀를 찾았는데 그날 이후부터 복녀도 일을 제대로 안 하고 돈을 많이 받는 인부가 되었다. 그 때부터 복녀의 삶의 가치관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외간남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는 생각도 못 했으나 편하게 돈 버는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의 외모를 꾸미기까지 하면서 자존감을 확인해간다.1년 후복녀 부부의 생활은 살만해졌다. 그러자 복녀의 성격은 노골적으로 바뀌었다.어느 가을, 빈민굴의 여자들이 칠성문 밖에 있는 중국인의 밭에서 감자, 배추를 훔치게 되었다. 복녀도 그녀들처럼 도둑질을 하다가 중국인 왕서방에게 들켜 그의 집에 다녀오게 되고 그 대가로 3원이라는 돈을 받는다. 적지 않은 금액으로 추측된다. 그 때부터 왕서방은 남편이 있는 복녀 집을 대놓고 드나들었는데 한 번 다녀갈 때마다 1~2원씩 놓고 가면 복녀 부부는 좋아라했다. 게으르고 속 없는 복녀의 남편에게 복녀는 화수분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 돈을 뿜어내는 방법이 무엇이 되었든 그저 돈 만 내놓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 부부는 적어도 빈민굴에서는 부자가 되었다.그런데 왕서방이 백 원에 한 처녀를 아내로 데려오게 되었다. 복녀는 질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새 신부가 오는 날 숨어서 지켜보다가 신랑신부가 있는 방에 들어가 왕서방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고 이끈다. 가네, 못가네 실랑이를 벌이다가 복녀는 낫을 휘둘렀고 그 낫을 빼앗은 왕서방에게 목을 맞고 쓰러진다.복녀의 시체는 3일 동안 무덤으로 가지 못했다. 왕서방과 복녀의 남편, 그리고 한방 의사 세 사람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성사된 후 복녀의 사인이 뇌일혈이라는 한방 의사의 진단이 내려지고 나서야 공동묘지로 실려 가게 되었다.‘복녀’라는 복스럽고 행운만 따를 것 같은 이름과 그러지 못한 현실에 빗대어 반어법적인 이름을 주인공에게 붙여준 것 같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시대적 배경에서 먹고 살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부정한 생계유지 수단을 선택해야했던 여인들을 욕하거나 손가락질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부정한 행실을 일삼은 주인공에게 비참한 죽음이라는 가차 없는 형벌을 가함으로써 여성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닌가 싶다.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이어서 이미 교과서적이고 천편일률적인 해석이 있어 왔겠지만 그러한 ‘보편성’을 떠나 조금 색다른 생각을 써보고 싶어 「감자」의 독후감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단순한 의미에서 ‘불륜’이나 ‘부적절한 남녀관계’, ‘부정한 여인’의 말로는 ‘극단적인 죽음’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복녀는 죽어서도 그 시신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고 농락을 당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 신념이 가치관과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게 했고 조금은 뻔뻔하게 살도록 만들었다. 그래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었을 때였다. 그녀의 부정함에 대한 응징에는 오류가 있었다. 일방적일 수 없는 남녀관계에서 여성만이 자신의 부정한 행위에 대한 가혹한 대가를 치렀다는 것이다. 게으른 남편은 복녀 덕을 톡톡히 보았고 왕서방도 돈으로 살인을 무마해 처벌을 피하면서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었다. 결론적으로 복녀만 불쌍한 여자가 되었다. 결혼을 하게 되는 과정부터 그 배우자까지 석연치 않으면서 복녀를 돈에 희생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80원에 팔려가듯 20살이나 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될 때부터 그녀의 비극은 시작된 것이 아닐까?
영화 영화 는 1998년 10월 개봉된 영화로 피터 위어 감독, 짐 캐리 주연의 작품이다.피터 위어 감독의 작품으로는 대표적으로 가 있다. 는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다.영화 속 감독은 크리스토프이고 주인공은 트루먼이다. 제목만으로는 춤과 노래가 들어간 뮤지컬 영화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믹한 역할을 많이 소화했던 짐 캐리가 주연이라 작품의 분위기를 짐작하기가 힘들었는데 모든 예상을 뒤엎은 영화의 내용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 여운은 상당히 오래 이어졌고 혹시나 주변에 몰카가 있지는 않는지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작은 섬에서 평범한 삶을 사는 30세 보험회사원 트루먼 버뱅크는 10,909일 째 아침을 맞이한다.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웃과 나누는 아침 인사를 나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늘 똑같은 출근 모습이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하늘에서 조명이 떨어지는데 그 일은 항공사고로 인해 잔해가 떨어진 것으로 보도되어 단순한 해프닝으로 지나가는 것 같았다. 가상임에도 언론의 힘은 그 자체를 맹목적으로 믿게 만든다. 촬영현장에서나 볼 법한 조명기구가 떨어졌어도 그건 항공사고라 믿어야 하는 것이 트루먼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런 징조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의 삶이 조금이라도 다이내믹했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가 허락되었다면, 일상에서 좀 수상쩍지만 사소하게 벌어지는 일들에 민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사고와 모든 일상이 다 사실이라고 믿게 할 만큼 거대한 세트가 트루먼이 살아가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런 세상에, 너무 따분한 일상에 30살이 된 트루먼은 점점 싫증을 느낀 것은 아닐까? 한결같은 사람들과의 한결같은 대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일상이 그도 어딘가 의심스럽지 않았을까? 전 세계적으로 열광하는 쇼를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은 동물원 원숭이처럼 철저히 사육되고 감시당하고 관찰되어진다. 그 추악한 본질은 거대한 자본과 그저 젊은 청년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인생을 영상으로 미화한 드라마 뒤에 꽁꽁 숨어버렸다.세트장이지만 섬으로 설정된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트루먼에게 물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트라우마까지 만들어 줄만큼 제작진은 잔인했고 감독은 트루먼이라는 한 인격체를 자신의 소유물인양 좌지우지, 쥐락펴락했다. 트루먼 쇼의 극중 감독 크리스토프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하는 큰 오류를 범했다. 제작진과의 마찰을 일으키는 출연진들은 가차 없이 하차시켜 트루먼의 인간관계에도 혼란을 초래한다.배우의 하차는 트루먼에게 첫사랑을 떠나보내게 하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힘들어해야하는 아픈 경험을 남겼다. 이 모든 일은 통과의례라는 미명하에 아름답게 편집되었다.물론 사람이 살면서 첫사랑에 실패도 하고 언젠가 부모님과는 이별의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 순간이 자연스럽게 맞게 되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면 그 사실을 안 순간 당사자가 느낄 배신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트루먼은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마저 느낀다. 그가 하고자하는 일에 아무도 동조하지 않는다. 어떤 핑계를 대든 막으려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평생을 통제 당했다. 감정도 강요당했다.출연자들은 뜬금없이 특정 제품을 홍보하는 듯한 대사를 하곤 한다. 일명 PPL(Product Placement)로, 이 거대한 ‘쇼’를 30년간 제작해 올 수 있었던 경제적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트루먼이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기 이전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눈앞에서 납치되듯 사라졌다. 그리고 트루먼은 그저 친구로 지냈던 여성과 결혼을 했다. 첫사랑이었던 여자가 남긴 말이 사실인 것처럼 트루먼의 일상에는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그 균열은 트루먼의 의심이 조금씩 만들어낸 진실에 대한 갈구이다.의심은 확신이 되고 실체를 확인하기 위한 트루먼의 몸부림은 정해진 틀을 벗어나 예측 불가한 상황을 만드는 일탈행위로 간주된다. 난데없이 여행사를 찾아가 비행기 예약을 하려 하지만 여행사 직원은 성수기를 핑계로 당장은 예약이 불가함을 알린다. 어떠한 방법을 이용해도 섬 밖으로 빠져나가는 여행이나 돌발행동은 일체 허용이 되지 않도록 시나리오가 짜여 있다.트루먼의 일거수일투족은 철저하게 몰래 카메라로 촬영당하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방송되었다. 요즘 법을 기준으로 하면 완전한 범죄이다. 신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다.첫사랑의 의미심장한 말, 우연이라기엔 의문투성이의 일들. 트루먼은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내는 물론 엄마마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정확히 무슨 일이 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막연하게 불길함을 감지했다. 그리고 자신이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불길한 모든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사고로 아빠가 사망하는 일이 트라우마가 되었다. 트루먼이 섬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든 감독의 기획이었다. 단순히 섬이라는 공간이 아닌, 감독 자신의 연출이 아닌 이상 자신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장치였을 것이다. 감독의 의도가 뭐가 됐든 트루먼의 삶은 철저하게 조작되고 통제되었다. 그게 분명한 사실인 것을 안 이상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트루먼에게 결정할 권리가 있다. 이미 그는 그의 선택으로 삶을 살았어야 옳았다.트루먼 역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세계에서 빠져 나갈 수 없음을 인지하고 어느 순간 트릭을 사용해 화면에서 사라진다. 제작진에게는 비상이 걸렸고 전 출연진들은 이 잡듯이 섬 전체를 샅샅이 뒤진다. 그 장면은 잔인한 연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렵고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경찰이 범죄자를 추적하는 것보다 집요해보이고 치밀했다. 아니, 연쇄살인범에게 쫓기는 장면보다 무서웠다. 그것은 어쩌면 트루먼을 자신이 창조해냈다고 생각하는 감독 크리스토프의 집착일지도 모른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30년을 지켜봐왔으니 자식 같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실제로 크리스토프는 그러한 착각에 빠져있었다. 조물주, 또는 창조주가 된 것 같은 오만함이 있었다. 트루먼은 그런 크리스토프의 집착과 오만함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바다를 선택해 배를 타고 섬에서의 탈출을 시도한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크리스토프 감독은 그의 탈출을 방해하기 위해 거대한 파도와 비바람, 천둥, 번개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트루먼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까지 치닫는다. 하지만 죽기를 각오한 트루먼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트루먼의 배가 마지막으로 가 닿은 곳은 세트의 끝 벽이었다. 잠시 절망에 빠졌던 트루먼은 그 벽을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이자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으로 가는 입구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