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비평학교:학번:소속:목차1. 서론2. 본론① 외로움에 대하여② ‘길들인다’의 의미③ 어린이와 어른3. 결론4. 참고문헌1. 서론어린 왕자에 대해 흔히 들은 이야기로는 책을 읽은 후의 느낀 점이 나이대 별로 다르다는 것과 어른들을 위한 책이란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처음 '어린 왕자'를 읽은 후로는 단 한 번도 어린 왕자를 읽은 적이 없었기에 그 내용이 거의 기억에 없을뿐더러 당시에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도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어린 왕자라는 책이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현재 비록 과제를 받아 책에 대해 비평을 하게 되었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어린 왕자'를 읽고 그 주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게 의미가 있다.이 글의 본론에서는 ‘외로움에 대하여’, ‘의 의미’, ‘어린이와 어른’은 주제로 이야기할 것이고, 결론에서는 어린 왕자를 읽은 후의 느낀 점과 한계점을 이야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쓸 때 참고한 참고문헌을 제시할 것이다.2. 본론 - 외로움에 대하여이 책에서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많이 나타난다. 왕, 허영쟁이, 어린 왕자 그리고 여우까지 외로움을 느끼고 있지만, 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첫 번째로 어린 왕자는 소행성 B612를 떠나 지구에 도착해서까지 만난 사람 중 처음으로 만난 왕은 홀로 지내며 자신을 왕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무엇을 다스리냐는 어린 왕자의 질문에 왕은 자기의 별과 다른 모든 행성과 항성을 가리키며 저것을 전부 다스린다고 대답했다. 왕은 허세를 부리며 모든 별이 본인에게 복종하고 있으며 어떠한 불복종도 용서치 않는다고 했다. 이러한 모습은 왕이 자신의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모습이다.어린 왕자가 별을 떠난다고 말하자 왕은 자신의 유일한 신민인 그를 떠나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여 법무 대신으로 임명한다며 다급히 그를 잡았다. 하지만 별에는 왕과 어린 왕자 외에는 어떠한 사람도 없었기에 재판을 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자 왕은 어린 왕자에게 본인 자신을 재판하라며 명했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아무 데서나 자신을 판단할 수 있다고 대답하자 왕은 쥐를 재판하라고 했다. 어린 왕자가 떠난다고 말할 때면 매번 그를 잡으려 했지만 결국 떠나는 어린 왕자를 보며 대사로 임명한다는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허영쟁이었다. 허영쟁이 또한 왕과 마찬가지로 허영을 부리며 자신의 외로움을 표출한다. 허영쟁이는 어린 왕자에게 박수를 치라고 요구했고 그에 박수를 치자 허영쟁이는 모자를 벗어들고 공손히 답례했다. 그것을 반복하니 싫증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허영쟁이는 어린 왕자에게 이 별에서 자신이 가장 잘생겼고 가장 옷을 잘 입고 가장 부자이고 지식이 가장 많다는 것을 인정해 달라며 자신을 숭배해주라고 했다. 하지만 이 별에는 유일하게 허영쟁이 한 명만 살고 있었기에 숭배한다고 말하는 것이 오롯이 허영쟁이에게만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는 말일 뿐 사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었다.세 번째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어린 왕자 본인이다. 이 지구상에는 많고 많은 사람이 있고 지구의 크기 또한 앞선 별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컸지만 어린 왕자는 사람이라곤 도무지 보이지도 않는 사막 한가운데에 내렸다. 어린 왕자는 산에 올라가 친구가 되어줘, 난 외로워라고 외치지만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었다. 외로움을 느낀 어린 왕자는 자신의 친구가 되어줄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사람들은 어디 있니?” 마침내 어린 왕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막은 좀 외롭구나...““사람들이 사는 곳도 역시 외롭지.“ 뱀이 말했다.』뱀의 말은 어쩌면 어린 왕자가 사람들을 찾는다고 해도 그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그곳 역시 사막과 같은 곳일 거라는 의미한다.마지막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는 여우이다. 여우는 자신과 놀고 싶어 하는 어린 왕자에게 자신은 길들여지지 않아서 함께 놀지 못한다고 말했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자신을 길들여 달라고 부탁을 했다. 여우는 자신의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어린 왕자에게 부탁했고 어린 왕자가 이 부탁을 승낙하면서 어린 왕자와 여우가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만약 여우처럼 왕과 허영쟁이가 어린 왕자에게 자신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겠냐고 솔직히 말을 했다면 어린 왕자가 기꺼이 친구가 되어줬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무작정 자신의 허세와 허영심으로 외로움을 표현했기 때문에 어린 왕자가 그들을 떠났다고 생각한다.2. 본론 - ‘길들인다’의 의미『“는 무슨 뜻이야?”“그건 모두들 너무나 잊고 있는 것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는 뜻이야.』어린 왕자와 여우는 관계를 맺음으로써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세상의 많고 많은 여우 중 오직 한 마리밖에 없는 여우가 될 것이고, 여우에게 어린 왕자도 마찬가지로 많은 어린아이 중 단 한 명의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나 더 행복해질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 못하게 될거야.』단조로운 삶을 사는 여우는 어린 왕자가 길들인다면 모든 발걸음 소리 중 어린 왕자의 발걸음 소리는 음악처럼 들려 자신을 굴 밖으로 불러낼 것이고 4시에 어린 왕자가 온다면 3시부터 행복해질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때서야 어린 왕자는 지구에 오천 송이의 장미꽃을 보았고 그 꽃들은 아름다웠지만, 자신이 직접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워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정성을 쏟은 자신의 장미꽃이 그 많은 장미꽃 전부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언제나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이 있고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이는데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리고 산다.2. 본론 - 어린이와 어른어른들에게는 속이 보이는 보아뱀과 안 보이는 보아뱀의 그림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림 따위는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 역사, 산수, 문법에 재미를 붙여보라는 충고를 했고 ‘나’라는 사람은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화가라는 직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은 속이 보이는 보아뱀과 속이 안 보이는 보아뱀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에 반해 어린 왕자는 속이 보이는 보아뱀 그림을 단번에 이해했고 심지어는 상자밖에 없는 그림에서 그 안에 양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며 이 양이 자신이 원하던 양이라고 말한다. 이런 차이는 어른과 어린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 조종사가 된 ‘나’에게는 지리가 큰 도움이 되었다. 비록 어른들은 ‘나’가 그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충고대로 공부한 지리가 비행기 조종사인 ‘나’에게는 실제로 도움이 된 점에서 어른들의 생각이 모두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어린 왕자가 만난 사람 중 사업가는 별을 소유해서 부자가 되려 했고 지리학자는 머지않아 사라질 위험이 있는 덧없는 꽃보다는 바뀌지 않는 산을 더 중요시했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어린 왕자는 어른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별을 떠났다..『“난 비행기를 아직도 고치지 못했어. 마실 물도 없고. 나도 아주 천천히 샘터로 걸어갈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내 친구 여우는...” 그는 나에게 말했다.“얘야, 지금은 여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야!”“왜?”“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데...”그는 내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대답했다.“죽는다고 해도 친구를 하나 가진 것은 좋은 일이야. 나는 내 친구 여우를 가져서 기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어른이 된 ‘나’는 어른에 대한 의견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런 ‘나’도 당장에 살아갈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고 어린 왕자에게는 죽지 않는 것보다도 친구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어느 한쪽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어른에게는 자신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책임이 따르고 자신이 먹고 살아가야 할 일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에 이익을 좇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속이 보이는 보아뱀과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 그림 같은 작고 사사로운 것까지 신경을 쓰기에는 어른에게 주어진 책임이 커서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어른의 잘못이 아니다. 반면 친구, 꽃, 양이 더 중요한 어린 왕자는 ‘어린이’이기에 가능한 생각이다.
학과:학번:이름:중국에 대한 이해중국에 대한 이해1. 중국의 정체성첫 번째로 중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만리장성입니다.만리장성의 시초는 진나라의 진시황이 흉노를 막아내기 위해 축조 했고 당시 만리장성은 토성으로 유목민 이였던 흉노족이 말을 타고 넘지 못할 정도의 높이였습니다. 현재의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지은 것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아메리카 대륙의 은광 개발을 통해 얻은 은으로 아시아에서 무역을 했고 그 중 중국에서는 비단, 차, 도자기 같은 값비싼 물건을 사감으로써 중국에 유입된 은을 바탕으로 자본을 갖춘 중국은 만리장성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특징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로 중국에서는 경계선의 역할을 합니다. 만리장성 이북의 사람들은 유목민으로 농경을 하지 않았고 이남의 사람들은 농경을 하는 민족 이였습니다. 보통 만리장성 이남의 사람들의 문화를 주 문화로 생각하며 그들을 한족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만리장성은 한족과 이민족을 나누는 경계선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나뉜 문화권을 수나라의 수양제가 화북과 화남을 연결하는 대운하 공사를 하였습니다. 대운하 공사를 하여 남쪽의 항저우부터 북쪽의 베이징까지 연결하여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한 국가로서 묶이는 데에 큰 역할을 했고 그 당시의 고구려 원정을 가능하게 했습니다.두 번째로는 중국의 세계관은 천하로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미입니다.일본에서는 왕을 신 그 자체라는 의미로 천황이라고 불렀으나 중국에서는 신의 명을 받았다는 의미로 천자로 불렀고 이는 천자가 뭔가를 잘 못 한다면 혁명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중국인들은 자신(한족)을 중심에 놓고 문화권이 다른 민족 중 서쪽에 사는 사람들을 서융, 북쪽에 사는 사람들을 북적, 남쪽에 사는 사람들을 남만, 동쪽에 사는 사람들을 동이라 부르며 오랑캐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그들을 자기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세 번째로는 중국의 인구수는 세계 1위로 가장 많은 인구가 있습니다. 그 중 한족은 92%이고 나머지는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족은 포용력과 확장력을 가지며 한자를 알거나 알고자하는 사람들을 한족을 받아들입니다. 인구가 많다는 건 많은 인구 중 능력이 있는 인재가 많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기도 하지만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다는 단점을 지니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는 한국전쟁에서 중국의 인해전술입니다.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이 현재 중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다른 문화권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자신의 문화권 안으로 받아들여 준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 이었습니다.2. 문자첫 번째로 세계 최초의 문자는 중국의 갑골문입니다. 갑골문은 은나라에서 처음 쓰였습니다. 갑골문자가 가장 오래된 문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비슷한 시기에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가 있었는데 상형문자와 설형문자는 그림에서 기원하였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문자와 계속성이 없으나 중국의 갑골문자는 지금 중국의 한자와 계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장 오래된 문자라고 부릅니다. 갑골문은 청나라 말기에 장국유에 의해 발견 되었으며 과학적 지식이 없던 과거 은나라 때에 점을 쳐서 미래를 물어보고 그 결과를 거북이 배 껍질이나 소 어깨뼈에 기록할 때 갑골문자로 기록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갑골문은 은나라의 존재를 증명하였고 은나라가 어떤 나라였는지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로 쓰입니다. 갑골문의 내용은 사마천의 「사기」의 내용과 다른 내용도 있지만 많은 부분이 일치합니다.두 번째는 주나라의 금문입니다. 금문은 청동기에 글을 새긴 것입니다, 금문에서 금은 청동기를 부르는 예전 명칭입니다. 금문은 주나라의 봉건제를 매개로 선대에서 후대로 전해지는 청동기 기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금문은 갑골문보다 획수도 많고 복잡한 문자입니다.세 번째는 진나라의 전서입니다. 진시황은 춘추전국시대를 통일 후 문자, 화폐, 도량형을 모두 통일 했습니다. 전국 통일 전에 전국 7웅에서 사용하던 모두 다른 문자들을 전서라는 문자로 통일 했다는 점이 다양할 수 있었던 문화들이 1개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네 번째는 한나라의 예서입니다. 예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곡선의 직선화와 단순화입니다. 단순화된 문자는 서민들로부터 시작되어 지식인들까지 널리 쓰였습니다. 지식인들이 사용한 이유는 기록하는 이들은 복잡하고 곡선이 많아 쓰기 불편한 전서보다 단순하고 간단한 예서가 기록하기에 편리했기 때문입니다.다섯 번째는 초서입니다. 초서는 예술적인 문자일 뿐 파격적이라서 문자로써의 기능을 잃었기 때문에 널리 쓰이지 않았습니다.여섯 번째로는 1850년 홍수전의 태평천국 운동 때 한자의 간략화가 현재 한자인 간체의 원형입니다. 이후로도 복잡한 한자 때문에 높은 문맹률을 낮추고 편의성을 꾀하기 위해 문자개혁을 계속하였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오랜 역사 속에서 한자를 개혁하고 문자를 개혁하여 단순화된 문자를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갑골문 부분에서 사마천의 「사기」의 은나라에 대한 기록이 갑골문의 기록과 비슷하다는 점이 사마천은 한나라의 사람이고 갑골문은 그보다 전에 써져서 문자를 해석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3. 중국의 사상첫 번째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은 제자백가 중 법가 사상을 채택하여 국가를 법으로써 국가를 통치하였습니다. 진시황은 법가 사상을 채택한 후 다른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책들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생매장한 분서갱유를 저질렀습니다. 강력한 법 속에서 백성들의 불만을 커져갔고 결국 얼마가지 못해 진나라는 멸망하였습니다. 진시황의 사상탄압을 좋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은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겨나면 그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