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안의 야크 감상문이 영화는 내가 본 화려하고 내용 없이 액션만 가득한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현실의 삶과 환경문제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보여주고 가치관과 직업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영화는 부탄의 수도 팀푸에서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지만 직업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하기 위해 호주로 이민을 가려는 선생 유겐으로부터 시작된다. 유겐은 할머니에게 교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고민을 털어놓지만, 할머니는 남들이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직업을 왜 버리냐며 이해하지 못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개인의 행복과 남들에게 인정받는 행복, 사회를 지키려는 자와 행복을 추구하려는 자의 갈등을 볼 수 있었다. 할머니가 사회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가정한다면 유겐은 국가를 벗어나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자신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인 측면을 잠시 배제하고 먼저 개인적인 측면에서 볼 때 나는 할머니의 의견보다 유겐의 의견에 표를 던진다. 왜냐하면 유겐은 교사보다 음악을 하는 것에 있어 큰 가치를 두고 있으며 행복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남들의 입장과 달리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 행복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직업은 물론 사회적인 입지나 자신의 위상에 도움이 되겠지만, 자신이 결국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몰가치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인, 국가적인 측면에서는 할머니의 의견에 더 공감이 된다. 이후에 나오는 벽지인 ”루나나“ 마을을 보게 되면 교사가 없어 아이들은 기본적인 교육도 배우지 못한 상태이다. 공리주의 입장에서 사회 전체의 이익 혹은 행복의 합과 개인이 원하는 꿈을 이루어 얻는 행복의 합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전자가 압도적으로 클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헌법을 보면 ”모든 국민은 개인으로서 존중받고 행복추구권을 갖는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이것은 “공공의 복지에 반하지 않는“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따라서 나는 조금 비약적일 수도 있지만 유겐의 행복추구권보다 사회 전체의 복지 즉,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권리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유겐은 국가의 구성원이기 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인격체로서 충분히 자유를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의 현재 직업은 공무원이고 공공의 복리를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 그가 사회에서 맡은 역할이다. 만약에 유겐이 교사를 포기하고 호주로 이민을 가게 된다면 아이들은 교육을 못 받게 될 것이고 그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국가의 미래 구성원의 발전 가능성을 저하하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사회 전체의 행복도 낮아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가 행복을 추구하기 전에 사회에 이바지하고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교육자의 역할을 맡아 미래 세대를 교육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할머니와의 갈등 이후 유겐은 장관을 찾아가 결국 그만두고 싶다고 얘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교사 계약기간 5년 중 아직 1년이 남았다며 유겐을 벽지 마을인 ”루나나“라는 마을의 교사로 발령을 내린다. 유겐은 망연자실하며 팀푸로부터 8일이나 걸리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유겐은 마중을 나온 청년 미첸과 6일간의 여정을 함께 하게 되는데, 루나나 마을에 도착하기 전 산악지대에서 그가 말한 대사가 머릿속에 남는다. 그가 어릴 적에는 이 언덕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지금은 다 녹아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대사였다. 이 짤막한 대사에서 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영화에서 유겐은 눈이 녹은 것이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말해주지만 미첸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 환경을 최소한의 생계목적으로 활용하는 주체가 있는 반면에 환경을 파괴하고 개발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주체가 있다. 단지 환경을 최소한의 생계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인 주체에 의해 환경이 파괴되는 것도 모른 채 생계수단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보금자리가 헤쳐지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그들은 왜 환경으로 이익을 극대화 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것인가? 실제로 영화 속에서 ”루나나“ 마을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친환경적인 태양광 발전에 온전히 의존하며 살아가고 야크를 사육하는 등 그들은 정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환경을 이용하고 사람들은 자족하며 일상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자연을 파괴하여 이익을 극대화 함에도 경쟁의 풍토와 치열한 사회 속에서 행복이라는 가치는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자살률과 실업률등 부정적 지표들만 높게 나타난다. 객관적인 지표 국가 총 행복지수 GNP를 조사해봐도 우리나라와 부탄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음에도 왜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유겐은 루나나 마을에 도착하게 되고 마을의 열악한 상황을 보고 경악하며 자신은 도저히 이런 곳에서 살수도, 가르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도 ”펨 잠“이라는 아이와 먼 곳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온 할머니와 손녀를 보고 마음이 바뀌어 교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 영화 중반부 유겐은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살돈이라는 처녀를 만난다. 노래에 관심이 많던 유겐은 그녀가 부른 노래가 ‘야크의 노래’라는 것을 알게되고 이 마을에서는 야크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 때문에 고기를 먹기 위해 야크를 잡는 것이 슬퍼 촌장님이 이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부분에서도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며 연민을 느끼고 환경을 사랑하는 루나나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주인공도 노래를 들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것이 과연 행복할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칠판도 없었던 교실은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었고 아이들 또한 배우고 싶은 열의로 가득했다. 하지만 겨울이 다가와 그는 떠날지 말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는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결국 부탄을 떠나는 결정을 하고 영화는 유겐이 호주 시드니의 어느 주점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마지막에 야크의 노래를 열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행복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내게 던진 것 같다. 특히 촌장이 말했던 부탄이라는 우리나라가 세계 행복지수 1위 나라인데, 유겐과 같이 교육을 받은 다수의 사람들이 이 나라를 왜 떠나려고 하는지 안타깝고 의문이 든다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나도 이 대사를 들으며 반성하게 되었다. 나조차도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생각하며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한국을 떠나 흔히 선진국이라고 불리우는 국가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교육을 제공한 나라는 한국인데 우리는 왜 타국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가? 이에 대해 나는 우리가 자족하는 마음을 찾지 못하고 정신적 성숙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적 풍토의 영향도 있겠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 마음가짐에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 칸트는 행복의 조건을 세 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 할 일이 있고,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셋째 희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을 너무 먼 곳에서 찾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본다. 영화 속 부탄처럼 극빈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욕구는 이미 다 충족되어 사소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돈, 명예, 권력 등 사치적이고 희소가치가 높은 것들을 가지려고 경쟁하며 자랑하려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물론 그런 가치들이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그것들을 얻기 위해 우리의 이타심, 배려심, 사랑 등의 가치를 희생하며 자족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루나나 마을 사람들은 경쟁으로 얻는 가치 대신 공동체적인 가치들을 우선시하여 이웃들과 사랑하며 자신이 가진 것에 자족하고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아간다. 우리도 칸트와 루나나 마을 사람들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무한한 가치를 매기고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또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삶의 열정을 느끼면서 새로운 것을 갈망한다면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으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공동체적인 가치를 향유하며 살면서 자족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