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서양사상과 지성사줄거리본 책은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인 볼테르가 종교적 원인으로 억울하게 죽은 장 칼라스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종교를 주제로 편협한 신앙을 비판하기 위해 ‘관용’을 주제로 작성하였다. 장 칼라스는 68세이며 한 가족의 가장으로 프랑스의 툴루즈라는 도시에 살았다. 툴루즈는 구교도에 미친 광신도들이 들끓었으며, 위그노(신교도)들을 4000명 학살했던 날을 기리는 기괴한 연례행사를 치룰 정도로 비이성적인 도시였다. 칼라스 가족은 개종한 한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신교도였으며, 칼라스는 광신에 사로잡힌 아버지가 아니었기에 개종한 그 아들에게도 생활비를 대줄만큼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아들 중 우울한 기질을 갖고 있던 마르크 앙투안은 자살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어느 날 자신의 친구인 라베스와 칼라스의 가족과 저녁식사를 마친 후 목숨을 끊게 된다. 마르크 앙투안이 죽고 난 후, 사람들의 절규의 소리가 들리며 툴루즈 도시의 들끓고 있던 광신도들이 몰려왔고, 편협한 그들은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한 광신도가 장 칼라스가 아들을 죽였다고 외쳤고, 마르크 앙투안이 자살한 다음날 개종하기로 되어있었던 사실과 합쳐지며 칼라스 가족이 아들이 개종하기를 원치 않아 죽였다는 것으로 소문은 점점 커져갔다. 결국 툴루즈의 행정관이던 다비드는 이 소문을 듣고 정석의 절차가 아닌 규칙을 어긴 절차를 이행하며 저녁 식사를 했던 사람들을 모두 가두었다. 위그노 학살 연례행사가 예정된 날 가장 먼저 장 칼라스의 처형을 준비하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무대’라 칭하며 기대된다는 목소리들을 거리낌없이 내곤 했다. 이를 재판하기 위해 13명의 판사들은 칼라스의 의견을 더 들어보자는 의견과, 사형을 집행하자는 의견으로 나뉘며 서로 분분하게 주장하였다. 만약 정말 칼라스가 살해했다고 가정해본다면, 68세라는 노인의 나이에 혼자 건장한 청년을 살해하기에는 힘들다. 그렇기에 저녁 식사를 같이 했던 아내, 아들 피에르, 결국 이 노인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공범들이 죄를 자백할 것이라고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칼라스는 끝까지 신을 무죄의 증거로 내세웠고, 이러한 모습은 판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남은 가족들을 석방한다면 판사들을 설득했던 한 판사의 예측이 틀렸으며 그들이 무죄임이 결백해지기 때문에 이들 중 아들 피에르 칼라스를 추방하였다. 이 또한 불합리적이었다. 광신도들은 이성이 압도하면 압도할수록 불합리한 변명을 내세우며 더 미쳐가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 후 판사들은 아들인 피에르에게 개종하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고 위협하였고, 칼라스의 아내는 수녀원에 갇혔다. 아내는 이성이 광신보다 우세한 파리로 도망쳤고, 이 소문이 파리와 유럽에 퍼지면서 동정심을 받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판사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신교도를 처형하는게 낫다고 말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이 사건으로 볼테르는 경악하게 되었고, 종교를 대하는 관점에서의 불관용과 관용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다.볼테르가 이 책에서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성과 관용’이다. 볼테르는 관용을 자연법에 비추어 설명한다. 여기서 자연법이란 자연이 인류에게 가르쳐주는 법으로, 우리는 정의가 무엇인지 자연법을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볼테르는 인간의 이성으로부터 관용의 해결책을 찾으면서 광신자들을 감소시킬 수 있는 대책으로 정신병을 이성의 요법에 맡기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이성을 계속하여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성이란 온화하고, 너그러움을 고취하고, 불화를 잠재운다고 정의하였다. 볼테르는 자신의 세계인 프랑스 시대보다 이전 고대의 시대가 더 이성적이며 관용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 국가를 예시로 들면서 박해와 관용의 대립되는 의미를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 사람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었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관습법을 갖고 있었다. 자신들이 모르는 미지의 신을 위해 제단을 세우기도 하였고, 생각의 차이를 동기로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또한 반종교적인 성격을 가져 타인의 증을 미치는 학문적인 열정이 아니라, 무분별한 열정으로 다른 사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무분별한 열정의 예시로는, 쳐들어가서 계단과 신상을 뒤엎는 것, 자신이 갖고 있던 로마의 재산을 돌려주지 않는 것 (이 경우는 좋은 의미로 가난한 사람에게 재산을 나눠준 것이었지만 이를 모른 황제가 오해한 사례이다) 등이 있다. 그로 인해 로마인들은 이들에게 박해를 가하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자신의 종교를 설교하기 위해서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포교하고 다녔다. 이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비난을 안 살 수 없는 행동이었다. 결국 이러한 박해라는 재앙은 자신들이 원인의 장본인이었으며, 합당한 원인을 제공했던 것이었다.그렇다면 역사에서 재앙이던 박해를 불러온 원인인 종교에 대해 볼테르는 어떻게 생각할까? 볼테르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만든 거짓 전설의 위험성을 언급하며 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암시하고 있다. 볼테르는 무신론을 비판했으며,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거짓으로 꾸며낸 순교 이야기들은 언제나 무리 지어 다니며 자신과 같은 신자가 처형되는 현장에 따라가고 되려 돕고 있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처형된다면 처형당한 형제를 도운 신자들 모두 함께 처형되어야 마땅하지만 전설에서는 그런 모습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전설의 모순이었다. 볼테르는 이렇게 거짓으로 꾸며낸 전설은 신앙심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되려 신앙심을 사라지게 하고 신앙으로부터의 진심을 찾을 수 없게 된다 하였다. 결국 자연법에 따르고 싶어지며 신을 믿고 싶지 않은 무신론으로 기울게 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거짓된 전설의 위험성이 있음에도 전설을 만들어내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어리석은 자기 형제들을 죽이는 박해자, 살인자’라고 표현하며 거짓 전설과 무신론을 비판했다.볼테르는 자신이 중요하게 내세우는 관용과 같은 선상의 단어인 자비심을 언급하였다. 자비심을 엿볼 수 있는 사례로는 ‘성 마태와 성 누가’ 사이에서의 의견차이가 있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사전에 비용을 계산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예수와 자기자신들에게 소중한 사람들 사이를 저울질하지 마라 라는 의미이다. 예수는 율법의 모든 조항을 지켰으나 박해자들은 이러한 모든 것을 남용했다. 예수는 끝내 희생자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불합리적이며 비이성적인 편협한 태도는 역사를 전쟁으로 지속하게 한 것이다. 볼테르는 편협한 태도에 가르침을 주는 증언들을 책에 실었다. 대표적인 증언으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얘기한 “하느님이 용인한 자들을 우리가 박해할 것인가?” 등이 있다. 이러한 증언들을 보며, 편협하고 박해하는 행동은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명시해주고 있다.볼테르는 어느 예수회 신부가 르텔리에 신부에게 편지를 보낸 내용을 첨부했다. 그 내용에는 참혹하게 이교도들을 학살하려는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러한 경우에도 우리는 언제나 무조건적으로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볼테르는 우리에게 시사하였는데, 관용을 베풀 필요가 없는 예외적인 경우가 분명하게 존재함을 알려주었다. 바로 국가에서 범죄를 저지른 잘못인 경우이다. 종교에 빠져 있던 그 시대에는 광신이 불러일으키는 순간, 잘못을 범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볼테르는 관용을 누리기 위한 자격으로 광신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덴마크를 예시로 들자면 세례를 받은 직후 죽은 아이들은 영원한 축복을 누린다는 교리로 인해 죄다 아이들을 죽였다. 이러한 경우에는 관용을 베풀 필요가 없다. 그들은 아이들의 목숨에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살인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는 법률 또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종교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너그러운 마음이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과거 알렉산드르 주교와 아리우스 신부가 성부로부터 로고스의 발현 방식에 대해 논쟁 중일 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보낸 구절로부터 이를 알 수 있다. 바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다는 구절이었다. 이는 로고스가 어떻게 발현되는지가 중요우리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은 매우 잔인한 일이다. 또한 볼테르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인간을 ‘거대한 공간에서 세상 밖에서는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미미한 피조물’이라 칭한다. 볼테르는 이러한 미미한 존재들 간의 사소한 차이로 증오 박해의 계기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이 책을 아직 읽지 못한 주변 지인들에게 추천할 때 특히 어떤 면을 강조하면 좋을까요?이 책에서의 관용의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듯이, 이 책을 읽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용이라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단순히 생각만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용을 진정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또 내가 관용을 실천하며 살기 위해서는 시각을 더 넓혀야 한다. 이 책에서는 이 좁은 마음과 좁은 시야로 가려져 있던 넓은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아닌 우주와 지구에 빗대어서, 또 생태계에서의 최정상의 지위인 인간이 아닌, 하느님의 피조물 중 그저 하나라는 것에 빗대어서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끝까지 읽는 다면 누구라도 내 존재가 하찮게 느껴질 것이며,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논쟁들이 가엾게 느껴질 것이다. 이를 읽고 나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일상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며, 인간들 간의 대립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는 책을 읽고 난 후,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기에 내 지인들에게도 더 넓은 시야와 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관용이라는 것은 시대를 제한하지 않고 인간이 평생 끌어와야 할 도리이며, 전 세계 인구 모두가 관용을 선호하는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기 때문에 더욱 강조하며 추천할 것이다.현대 사회에서 관용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과거보다 안정적이고 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