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의 개선방안으로써 역사교육의 중요성한국에 입장에서 일본의 역사인식은 틀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역사인식’ 이라는 것은 단순히 ‘문제가 있다’ 또는 ‘올바르다’ 라는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그런 것처럼 역사라는 것도 관심을 기울이고 학문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 일반적인 시민들이 이해하는 의미 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할 것이다. 때문에 역사인식에는 정해져 있는 법칙이 같은 것이 없다. 역사라는 것이 철학적 주제처럼 인식이라는 틀 안에서 시간과 공간의 힘에 의해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생명체처럼 여겨지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역사라는 것은 특정 지역이나 민족의 사상을 기준으로 놓고 해석할 수는 없는 것도 이와 같다. 역사인식은 세계를 살아가는 개인의 머리와 심장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지금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와 동아시아 침략은 살아 숨쉬고 있는 진행형의 역사이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역사임에도 우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속에서 참혹하게 죽어간 조선병사들보다 일제 식민치하의 대한제국 독립운동가들의 고단함을 더 뼈저리게 느끼고 슬퍼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인식일 것이다. 우리는 일왕에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책임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서 그만큼 오래전 일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마음속에 35년간 지속된 식민지 시대의 아픔은 아직 피부로 느껴지는 아픔이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역사인식인 것이다. 현재 한일관계에 장애가 되고 있는 문제들은 역사적 문제이며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한일 양국이 역사적 감정에서 비롯한 긴장에서 촉발한 힘싸움이기 때문이다.‘歴史認識とは何か‘에서 오누마교수는 일본인의 역사인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2차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전쟁 참여와 그로 인해서 쓰여진 폭력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들을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설명해제는 일본의 국제여성기금과 한국의 정의연의 대립에서 그 인식의 차이가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누마교수는 국제여성기금의 활동에 직접 참여하였고 그 의의도 좋게 평가하고 있음을 책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한국여론의 반대에 의해 국제여성기금의 의미가 퇴색되고 보상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못한 점을 굉장히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반대로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정의연에서는 완전히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고 한국 국민의 대부분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누마교수와 같이 한국을 위해 진심을 다해 노력하는 일본의 지식인이 직접 참여하고 지지하고 있는 일본 당국의 피해자 배상 활동이 한국에서 완벽하게 배척당할 수 있는 원리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역사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오누마교수를 포함한 일본인의 주장으로는 일본은 지속적으로 전쟁에서 피해 받은 국가들에게 사과를 표명했고 그것이 국가차원에서 법률적으로 완전히 상대국에게 만족할 만한 식의 해결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국가 운영하고 민간의 자금으로 피해를 보상하는 방식의 아시아여성기금의 활동은 그의 입장에서 굉장히 합리적이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졌을 것이고 한국의 여론에 의해서 이것이 무산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굉장한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정의연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인가한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한국인의 의식구조 속에서는 정의연의 주장은 검토할 필요도 없을 만큼 타당하게 여겨지고 있다.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와 한국인은 일본 정부의 명백하게 죄를 뉘우치고 이를 반성하며 문제를 개선하려는 입장을 원하고 이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적인 방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전쟁의 피해자로서 한국인의 입장에서 정의연과 한국 여론의 주장은 타당하다. 반대로 국가가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 것을 민관이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피해자를 위로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일본의 아시아여 역사문제는 외면하도록 발전했을 것이다. 일부 극우 일본인을 제외한 일본인 들에게 전쟁이란 우리들처럼 살아있는 기억이 아닌 것이다. 일본인에게 2차세계대전에 대한 책임이란 것은 더 이상 감정적으로 책임을 느끼지 않는 문제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국가의 요구에 의해 전쟁에 이용되었고 국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수많은 일본인이 피해를 받았다. 어떤 민족보다 자신과 감정을 교류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일본의 민족성에 힘입어서 과오를 범한 과거의 일본인 보다 전쟁이라는 역사속에서 피해 받은 다수의 일본인 들에게 집중을 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닌 것이다.즉, 위안부 문제는 역사를 해석하는 주체인 국민들의 민족성에 근거해서 그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세상을 움직이는 전체적인 시대정신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현재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역사 인식에 근거한 문제는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한 가지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의견대립은 한 측이 다른 측의 의견을 단순히 인정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문제에 대한 의견을 조율하고 양보하는 과정에서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다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위안부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치욕스러운 과거사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접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피해자였기 때문에 가해자의 입장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고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관계의 지속가능한 해결이라고 볼 수 없다.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이 한국과 동남아시에서 자행한 반인륜적인 범죄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사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절대적인 문제해결이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양국 시민의 성숙한 논의야 말로 시대를 초월한 문제 해결법일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구체적인 문제해결 방안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김영삼 정부가 이미 행한 것처럼 국가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식민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주체적으로고 나가는 것은 다소 경직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반일 감정을 일으키고 애국심을 유발하는 부분에 집중한 위안부 자료와 식민지 시대의 역사교육은 지양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언론 또한 한일관계의 부정적인 부분을 여론의 관심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멈춰야 할 것이다. 이것들이 현실적으로 먼저 선행되고 나서 한일 양국은 생산적인 논의의 단계로 발전할 수 있다. 일본은 버블경제 이후에 세계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며 서서히 패권을 빼앗기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일본인들의 세계를 보는 시각 즉, 역사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일본정부와 일부 극우일본인의 시대착오적인 인식에 영향 받지 않고 올바른 방향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해결책오누마교수가 책의 제목을 ‘歴史認識とは何か‘라고 지은 것처럼 우리는 역사에서 비롯된 문제를 접근할 때는 인식의 차원에서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한일관계의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은 인식의 전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현재의 한일 관계라는 것은 우리가 한미관계라고 부르는 것과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한일 관계라는 단어만 들어도 그 인식 속에는 양국의 계속된 갈등 속에서 벌어진 문제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다. 현재의 한일관계는 과거의 한일 관계에서 학습된 부정적인 이미지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관계개선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애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애려고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부터 즉시 해결하는 방법도 효과적일 지도 모르지만 이미 꽤 오랜 기간 동안 우리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음에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해방이후에 계속해서 갈등과 해소를 반복해 오면서 국민들과 기업은 때로는 교류를 활발히 하기도하고 때로는 국가보다 앞서서 반일감정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런 선례를 보면 이전에 답습해오던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역사적인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 사교육의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 한국의 민간과 기업은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수정에 민감한 태도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면서도 일본의 답답한 태도에 감정적 대응을 멈춰야 하겠다. 한일 관계를 새롭게 공부하는 어린아이들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나서 한국의 이익과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19세기의 제국주의도 이러한 역사적 고찰없이 국가의 번영만을 앞세워 식민지를 만들고 세계대전을 발생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세계질서에 부합하지 못하고 인류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사상들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때문에 우리가 일본을 미워하는 마음을 억제하고 객관적으로 역사를 교육하고 세계와 소통하려는 노력은 애국심과 국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과거와 달리 시대를 이끄는 사상은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세기 초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에는 평화적 노선으로 세계의 질서가 잡혀가고 인터넷의 발명과 4차산업 혁명을 통해서 국가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질서 아래에서 역사 또한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보면 삼국시대 이래로 계속해서 갈등과 해소를 계속해왔다. 천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그렇다고 예전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취업을 하고 한국의 한류가 일본에서 인기를 끈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 일본어를 배우고 한일 관계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과 한국에 유학을 와서 수업을 듣는 일본 학생들을 보면 앞으로 한일 관계는 같은 패턴을 되풀이하면서도 계속 긍정적인 발전을 할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역사라는 것은 정해진 길로 흘러가지 않는다. 정해진 것은 인간의 고정된 사고방식뿐이다. 한일관계의 문제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고 식민지 시대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모두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국가간 문제는 문명이 시작된 이래 국가라는 것이 그리고 민족이라는 것이 인간의 의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