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의 서사 구조 및 사상적 특징 비교1. 서론2. 구운몽 작품 분석1) 서사 구조2) 사상적 특징3. 옥루몽 작품 분석1) 서사 구조2) 사상적 특징4. 구운몽과 옥루몽의 비교5. 결론※ 참고문헌1. 서 론우리 문학에서 ‘꿈’이라는 소재는 현재와 과거를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진 소재이다. 특히 고전소설에서 나타나는 꿈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독자에게 교훈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학적 세계는 우리나라 소설사에서 ‘몽유록’ 혹은 ‘몽자류’라는 하나의 틀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고전소설의 유형 분류에 따르면, 환몽소설은 서사구조의 기본 틀이 현실과 꿈이 변환하는 ‘현실-꿈-현실’의 환몽구조로 이루어진 소설을 의미한다. 환몽구조는 당대의 작자들이 지녔던 이념을 우회적으로 표출하기에 적절한 수단이었다. 역사적으로 작자들은 당대 지배 이념과 끊임없는 대응 속에서 수많은 욕망과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환몽소설은 이러한 작자들의 욕망과 갈등을 환몽구조라는 형식을 통해 꿈속에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몽유록이 지어지기 시작한 15~16세기를 거쳐 과 같은 몽유장편소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17세기에 이르러 보다 발전되고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19세기 의 등장으로 환몽소설은 유·불·도 삼교 사상과 매우 밀접한 관련 속에서 전개된다. 과 은 모두 전형적인 몽자류 소설이라는 점, 현실세계의 내적 자아가 소망했던 것들이 꿈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특징을 지닌다.본 글에서는 이러한 특징에 주목하여 과 의 서사 구조 및 사상적 특징을 분석하고자 한다. 분석을 통해 구조적 특징을 면밀하게 살피고, 두 작품을 비교 분석 통해 환몽구조의 구조적 특징을 파악하고자 한다.2. 구운몽 작품 분석1) 서사 구조입몽전 현실세계성진이 육관대사의 심부름으로 용왕을 찾아가 용왕이 권하는 술을 마시고 석교에서 8선녀와 만나 서로 희롱을 함.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온 후, 세속의 세계를 동경하다가 스승인 육관대사에게 그러한 마음을 들켜 인간세계로 보내짐.몽경의 꿈의 세계성진이 양처사 가문에 양소유라는 이름으로 환생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국가의 충의를 다지며 입신양명함. 그 후에 2처 6첩을 거느리게 됨. 훗날 부귀공명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고 호승으로 변한 육관대사의 도움으로 꿈에서 깨어남.각몽 이후 현실세계꿈에서 깨어나 8선녀와 더불어 극락세계로 돌아감.입몽 전 현실 세계에서는 승려인 성진이 석교에서 8선녀를 만난다. 그러다 불가 생활에 대한 회의에 빠지게 되어 인간 세상의 부귀공명을 추구하는 대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몽경의 꿈의 세계는 성진이 양소유로 환생한 이후의 이야기로, 양소유가 8선녀들과 만남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몽 이후의 현실에서는 성진이 부귀공명이 일장춘몽인 것을 깨닫고 극락세계로 돌아간다.2) 사상적 특징에는 유불선 사상이 혼합되어 나타나며 불교사상이 주가 된다. 작품 내에서 보살 대도를 얻어 모두 극락세계로 갔더라는 부분을 통해 불교적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입신양명과 부귀공명처럼 당시 양반 사회의 이상적 인생관을 강조하는 것을 통해 유교적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작품의 비현실적 내용인 신선 사상을 통해서는 도교적 사상을 알 수 있다.서포 김만중은 작품 창작 당시 조선조 숭유억불 정책으로 정치, 사회, 문화 모든 것이 지배이데올로기인 유교 이념의 토대 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추구하는 또 다른 이념 세계에 대한 갈구의 방향을 불교적 깨우침에 두고 형상화하였다. 이는 당시 금기시되었던 불교와 도교에 대한 서포의 관심을 알 수 있게 한다. 그의 그러한 관심은 그가 당시 정치 상황에서 잦은 유배를 당하며 유교 사회 속에서 겪은 심한 고초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련의 과정에서 그의 가치관은 유·불 둘이 아닌 하나임을 강조하는 일심동체를 통하여 불교적 깨우침을 얻게 된 것을 파악할 수 있다.구운몽의 주인공 양소유의 삶을 작자 김만중의 삶과 대비해 보면, 김만중 또한 벼슬길에 나아가 부귀공명을 누리다 당시 사회의 세력다툼에서 밀려나 덧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삶은 구운몽의 양소유에게 나타나 불교사상으로 표현된 것이다.3. 옥루몽 작품 분석1) 서사 구조입몽전 현실세계천상에서 문창성이 인간 세상을 그리워하는 시를 지어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삼. 다섯 명의 선녀들과 백옥루에서 희롱한 죄로 모두가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됨.몽경의 꿈의 세계문창성이 양창곡으로 다시 태어남. 15세가 되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나고, 같이 인간으로 환생한 여러 여인들을 만나 인연을 맺으며 여러 고난을 겪지만 결국 극복함.각몽 이후 현실세계강남홍의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전생의 신분을 알려주고 각몽을 암시한 후 40년을 더 살며 부귀영화를 누림.에서는 과 달리 강남홍에게 꿈을 꾸게 하여 자신의 온전한 정체를 인식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천상에서 적강하여 40년 뒤 다시 천상계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예언을 듣게 된다. 이후 그들이 40년간 행복한 여생을 마치는 장면으로 작품이 종결된다. 각몽을 암시하기만 할 뿐 꿈에서 깨지 않은 채 서사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 점은 에서 성진이 잠을 깨면서 꿈속의 존재인 양소유에서 성진으로 의식의 전환되는 것과는 다른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2) 사상적 특징 창작 이후 거의 2세기가 지난 뒤에 등장하게 된 은 무려 64회라는 장편 서사구조를 이룬다. 또한 의 불교적 이념 세계와는 전혀 다른 도교적 이념 세계의 추구를 볼 수 있다. 의 작자 남영로는 도교 이념을 바탕으로 ‘현실-꿈-현실’의 환몽구조를 천상계와 지상계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통해 드러낸다. 그는 도교의 최대 욕망인 장생불사를 작품 속에 나타내고 있는데, 세속적인 삶을 40년 동안 영위하며 신선이 되어 올라간다는 점은 수행과 깨달음을 강조한 과는 다르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남영로는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김만중과는 달리 조부가 벼슬에 뜻이 없었다. 그는 당시 부패한 과거제도에 의해 연이어 낙방하게 되고, 과거를 단념한 채 지방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의 문장력은 상당한 수준이었음에도 자신의 출신으로 인해 야인(野人)으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그에게 당시 사회에 대한 시대 의식은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그로 인한 자연스러운 도교 사상의 수용이 이루어졌을 것이다.4. 구운몽과 옥루몽의 비교지금까지 논한 바를 바탕으로 과 을 비교하자면 구조상의 측면에서는 두 작품 모두 환몽구조를 기반으로 한 몽유록이며, 그중에서도 현실의 인물과 꿈속의 인물이 다른 몽자류 소설이다. 의 성진은 각몽 이후에 금강경을 전하고 불가에 충실한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반면 에서는 각몽 이후의 장면에 대한 묘사가 없이 끝맺음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의 차이는 구운몽에서 이루어진 환몽구조가 독자층에게 널리 읽혔기 때문에 옥루몽에서 또다시 그 구조를 답습하는 것이 독자층에게 식상함을 안겨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작자가 의도적으로 변형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도교 사상에서 인간의 최대 욕망인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작품 속 주인공에게 삶의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효과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열하일기 감상문국어국문학과 1학년2021년, 코로나로 인한 세상과의 거리두기에 지쳐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갑갑한 심정에 어디론가 멀리 떠나기를 희망하던 자가 있었다. 바로 연암 박지원. 그가 바로 화려한 외출의 기록인 열하일기 의 저자이다.열하일기 는 조선의 실학자 박지원이 그의 삼종형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 건륭황제의 70세 만수절 축하 사절을 가기 위해 청나라 열하를 여행하고 온 과정을 기록한 일기이다. 이 책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정조대왕 4년, 청나라 건륭황제 45년(1780년) 여름을 배경으로 한다. 박지원은 북학파, 즉 청나라로부터 배움을 추구하는 자였다. 그는 청나라의 문명을 직접 접하고 싶어 했지만 당시 관직이 없었기에 늘 청나라에 방문한 주변인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입장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팔촌 남짓 되는 형의 중국 사절 일정을 함께 가게 되면서 그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된다. 요즘 같았다면 비행기로 몇 시간 만에 가는 거리를 말과 사람의 걸음을 통해 몇 개월에 걸쳐서 가니 힘든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 땅에서만 지내던 그에게 이번 여정은 수행원으로서, 그리고 인간 박지원으로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이었다.설렘 가득한 그의 마음은 책에 기록되어 있는 그의 시선을 통해서도 자주 나타난다. 책의 내용 중 「도강록(渡江錄)」에서는 기와를 이는 법에 관한 그의 통찰이 잘 드러난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기와 이는 방식을 비교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그 묘사가 기와를 잘 다루는 전문가의 지식을 필요할 정도로 정교하다. 이 대목에서 박지원이 북학파의 이념인 이용후생(利用厚生)을 단순히 복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념을 일상생활에서 적용하여 이치와 원리를 파헤쳐내는 모습을 보며 그가 명분만 추구하던 당대의 지배층들과는 확연히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여행을 가면 관광지를 돌아보며 그저 ‘보편적인’ 감상만 늘어놓기 일쑤였는데, 당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와를 보며 그 원리를 깨치고 자신의 이념을 적용하는 그의 열정이 감탄스러웠다. 그의 이용후생에 대한 집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신수필(馹迅隨筆)」에서는 말을 타고 스쳐 가는 광경을 보며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있다. 이 대목에서는 ‘수레’와 관련된 박지원의 가치관이 잘 드러난다. 당대에 수레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앞서간 수레가 남긴 길만 따라가면 자연스레 길이 생겼다. 단 수레바퀴는 완전히 둥글어야 하며 양쪽 바퀴가 평행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땅이 험하기 때문에 수레가 다니기 힘들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박지원은 수레가 다니면 자연히 길이 생기기 마련인데 조선의 수레는 바퀴의 형태가 온전하지 못했기에 수레가 다니지 못한 것이라고 현실적으로 문제점을 꼬집는다. ‘땅이 험난하기에 수레가 못 다닌다’는 논증은 직관적으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 자신이 당시의 조선인이더라도 수레가 다니지 못하는 이유를 수레 자체에서가 아닌 주위의 환경에서 찾았을 것이고 대중적인 여론에 휩쓸려 진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당시 명분을 중시하던 선비들이 같은 여행길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이러한 이치에 이를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지원은 끊임없는 사유로 사물의 본질을 파고드는 탁월한 안목의 소유자다. 매일 같은 패턴으로 생활하는 선비들과 달리 변화를 추구하고 매사에 의문을 가지며 사고를 해왔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는 열하일기에 나타난 문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연암은 정조가 기획한 문체반정의 주요 인물이던 만큼, 기존의 도문일치(道文一致)의 글에서 벗어나 개인적 감정을 솔직하고 자유분방하게 드러내는 글쓰기를 표방하였다.이 부분을 읽으며 나의 공부 방식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는데, 평소에 나는 호기심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일 때는 더 이상의 노력을 하기보다는 머리 깊은 곳으로 넣어두는 성격이었다. 그렇게 궁금증은 잊혀져 가고 결국 해결하지 못한다. 반면 연암은 스스로 충분히 학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떠오르는 의문을 해결하며 지혜와 안목을 넓혀간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질문하고 있는가? 당장 학교의 수업시간만 봐도 학생이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나친 질문은 칭찬보다는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로 돌아온다. 만약 연암이 현재의 이러한 학습환경을 본다면 무엇이라 말했을까. 문득 나 자신부터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것. 답을 찾을 때까지 파고들 것. 연암의 학습방식을 추구한다면 우리도 주변의 사물과 이치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연암의 호기심은 길의 구경거리를 볼 때도 멈출 줄 모른다. 만수절 행사를 위해 연희패들이 요술을 부리며 공연을 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비현실적인 묘기에 시선을 빼앗긴다. 연암은 이것을 보며 요술쟁이들이 사람들의 눈을 속인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이 자신을 속인다고 표현했다. 이 대목에서는 인간의 오감 중 정보를 가장 많이 받아들이는 ‘시각’에 관한 연암의 깨달음이 나타난다. 우리의 눈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의 진위를 판단하는 일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몫이라는 것이다.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한 번 믿기 시작하면 자기 자신을 속여가면서 거짓을 진실로 치부한다. 이 얼마나 맹목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인가. 이는 조선 시대 뿐만이 아니라 현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인터넷상의 요술꾼들이 남긴 정보를 구경꾼들은 무차별적으로 수용하고 스스로 눈과 귀를 막는다. 여기서 조선 시대와 현대가 다른 점은, 현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결국 누군가는 편협한 사고의 희생양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연암은 요술의 구경꾼들을 무턱대고 북벌을 주창하는 사람들에 비유하며 비판을 남겼지만, 현대의 우리도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진실을 외면한 채 잘못된 신념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람들을 정확히 꼬집어 말한 연암의 사유방식에 놀라울 따름이다.연암이 중국 여행을 통해 성장한 만큼 그 성장은 나에게 자극을 주었다. 중국의 문물에 압도당하지 않고, 우리가 배울 점을 배우되 조선 선비의 자존심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도 배움에 있어서 진취적인 자세로 임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또한 사소한 경험을 헛되이 지나치지 않고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하는 연암은 그동안 일상과 배움을 분리하여 생각했던 나의 태도를 반성하게 이끌었다.연암은 조선의 지식인들을 비판하지만, 그도 결론적으로 조선의 ‘선비’였다. 그는 탈유학 혹은 세계관의 탈바꿈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의 저서 열하일기는 진정한 지식인의 자세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도록 이끌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목만이 가득한 북벌론에서 벗어나 이용후생을 실천한 청나라의 수용할 점을 인정하고 조선의 상황을 발전시키기 위해 현실적인 궁리를 하는 그의 주체적인 자세를 우리는 높게 평가해야 한다.- “사람들은 다만 희로애락애오욕 칠정 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 모두가 울 수 있다는 건 모르지.”ㆍ이 구절은 연암의 일행이 드넓은 요동벌판을 보며 감동하던 순간, 연암이 말한 구절 중 일부이다. 연암은 일행이 하늘과 땅의 경계가 훤히 보이는 벌판에 도착하여 감탄할 때, ‘멋진 울음터’라고 이 장소를 칭한다. 입이 벌어지는 경관을 보고 멋진 울음터라니, 처음에는 이렇게 표현한 연암의 의도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곧 이어지는 구절을 통해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슬픈 감정을 느낄 때만 우는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애오욕 일곱 가지 감정 모두에서 울음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슬플 때 운다는 것은 지금까지 정말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기쁠 때나 사랑할 때, 혹은 욕심을 느낄 때도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사항이다.나의 경우에는 연암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나는 친구의 대학 합격 소식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똑같이 미움에 사무쳐 눈물을 흘렸다.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나의 눈물에 대해 ‘지나치게 감성적이다.’ 혹은 ‘불필요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눈물이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눈물은 나에게 있어서 벅차오르는 감정의 표현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번 울음을 터뜨리고 나면 나는 그 감정의 바닥을 찍게 되고 다시 회복할 힘이 생긴다. 감정을 마음속에 켜켜이 쌓아놓더라도 울음으로 분출하고 나면 다시 평정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는 울음에 대해서 몸소 경험해본 바를 바탕으로 그 기능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 이러한 입장에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놀랍게도 연암은 내가 느낀 바를 정확히 언급하고 있었다. 여기서 인간의 감정에 대한 연암의 통찰이 잘 드러난다. 단순히 울음을 슬픔과 연결짓는 것이 아니라 선입견을 배제하고 넓은 시각으로 울음의 기능을 생각한 연암의 사유 방식이 존경스러웠다. 이 구절을 연암의 생각에 적극 공감하며 읽었는데, 마치 처음으로 나와 같은 사고를 하는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