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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헤는밤-천문학의세계 과제9- 우주탐사
    감상문9. 별 헤는 밤 천문학의 세계 - 우주탐사우리가 이렇게 우주에 대해 공부하고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우주여행에 대한 열망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우주에 첫 발을 내딛은 곳은 달이었다. 가장 강력한 우주선을 사용했던, 우리에게 달의 모습을 보여주고 우주여행에 대한 부푼 희망을 심어주었던 아폴로 11호. 우리가 달 이외에 다른 행성에 유인우주선을 보내는 것을 성공하기 전까지는 아폴로 11호와 닐 암스트롱은 닐 암스트롱이 달에 남긴 발자국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MBC 프로그램 '서프라이즈'를 통해서 아폴로호의 숨겨진 이야기나 챌린저호, 구 소련과 미국의 우주 전쟁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학생들에게 우주여행에 대한 관심을 이끌 때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우리가 우주탐사를 원하는 이유는 각자 다르다.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고, 이익을 위해서 우주탐사를 원하기도 한다. 현재까지는 우주탐사를 위해서는 재능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지 검은 배경에 별이 존재하는 무중력공간이 아니다. 우주에서는 우리가 지구에서는 당연하게 여기는 사소한 것들을 포함한 모든 행동이 쉽지 않다. 찰나의 순간에 생사가 결정되기 때문에 강한 체력과 정신력은 필수이다. 이는 미르(Mir)호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미르호는 1986년 구 소련이 발사한 인류 최초의 우주정거장으로 지구궤도를 8만 8000여 회 돌고, 1만6500여 건의 과학실험을 진행했다. 유지비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2001년 3월 23일에 태평양에 수장되었다고 한다. 미르호는 우주에서 우주먼지 등의 각종 위협과 싸우며 15년을 견뎌냈다. 미국의 우주비행사 paul은 미르호에서 우주의 이상과 현실을 느꼈다고 전한다. 우주에서는 우주먼지의 피해를 받거나 어떤 물체와 충돌한 뒤 몇 십초 안에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지 못하면 보조우주선으로 탈출하거나 죽는다고 한다.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도 우주로 나가려는 것은 강한 정신력과 열정이 아니면 이루지 못할 일이다. 우주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은 우주에 가는 것은 지구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천문학자들에게는 그들이 하는 연구자체가 그들의 삶이라고 여길 정도로 우주에 대한 열망이 대단한 것 같다. 어떤 이에게는 죽기 전까지 열망하는 곳이 우주라면, 다른 사람에게 우주는 이윤추구의 장이다. 실제로 거의 한 달에 한 개씩 위성을 쏘아올릴만큼 이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의 사업위성에 대한 욕심은 커져감..... 더욱이 스마트폰, 무선인터넷, 와이파이, 위치추적 등이 이용되면서 인공위성의 중요성이 커짐.. 인공위성도 우리 생활에 중요한 요소지만 우주선에도 그만큼 투자하면... 좀 더 우주탐사에 가능성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독후감/창작| 2021.12.07| 1페이지| 2,500원| 조회(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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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헤는밤-천문학의세계 과제8-블랙홀
    감상문8. 별 헤는 밤 천문학의 세계 - 블랙홀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생활로 시작해서 이전에 봤던 영상들보다 더 관심이 갔다. 원두커피를 마시는 장면은 블랙홀을 나타내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영상이 길지 않고, CG가 많이 사용되어서 좀 더 우주현상에 대해 쉽고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블랙홀 (Black Hole)은 우주의 무법자, 보이지 않는 검은 공포, 보이지 않는 야수라는 별명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물체의 속도가 정말 빠르다면 이 물체는 행성들의 인력에서 벗어나 우리 은하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하는데, 행성들의 인력까지 피해갈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블랙홀이라고 한다. 블랙홀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까지 삼킨다고 하니. 이 우주상에서 블랙홀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블랙홀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별헤는밤 수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평소에 우주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수업시간에 많은 우주관련 지식을 접하면서 많은 천문학 내용 중 블랙홀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블랙홀은 다른 별을 어떻게 잡아먹을까? 개구리가 먹이를 잡아먹는 것처럼 한순간에 꿀꺽 삼킬까? 블랙홀도 별을 먹고 배설물 같은 것을 남길까? 등등 블랙홀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블랙홀은 소용돌이 중심으로, 콩알보다 더 작다고 한다. 콩알보다 작은 녀석이 자기보다 10만배 이상 큰 별들을 쉽게 삼킬 수 있는 이유는 인력(중력)이 크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작은 로켓하나 우주로 쏘아 올리는 것도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렇게 작은 중력장을 가지고 있는 지구도 벗어나는 것이 힘든데, 이보다 더 큰 중력을 가진 블랙홀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블랙홀의 특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극소부피, 극대중력이다.블랙홀의 탄생은 지구에서 감마선관측으로 관측한 적이 있다. 감마선은 투과력이 가장 큰 빛이기 때문에 먼 우주에서 발생한 블랙홀의 탄생을 관측할 수 있었다. 먼 우주에서 거대한 에너지 분출이 발생했는데, 이는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것이었다. 강력한 중력수축 작용으로 인해서 별의 내부 붕괴가 이루어지면서 폭발하였고, 그 폭발은 거대한 별의 죽음과 동시에 블랙홀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다. 블랙홀이 천년에 한번 생긴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이 관측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블랙홀은 천년단위로 하나가 탄생한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에이~ 뭐 천년에 하나면 괜찮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의 우주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천년에 한 개의 블랙홀은 전혀 괜찮지 않는 숫자이다. 게다가 한 번 생긴 블랙홀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한 것이다.블랙홀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Black Hole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관측하는 것일까? 블랙홀은 직접 관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블랙홀이 별을 삼킬 때 블랙홀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물질만 보일 뿐이다. 블랙홀이 별을 삼키는 과정을 본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사용하는 관측방법이 블랙홀이 남긴 피해흔적을 찾는 것이다. 자연재해가 지나가고 나면 흔적이 남는 것처럼 블랙홀이 지나가고 난 후의 흔적을 찾아 블랙홀의 위치를 추측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블랙홀이 주변물질을 빨아들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또 다른 블랙홀을 찾는 방법은 블랙홀이 빛도 굴절시키는 것을 이용해서 빛이 굴절되는 별을 찾아 블랙홀의 위치를 추적하는 방법이다. 이는 마이크로렌징현상이라고도 하는데, 별 앞을 거대한 물체가 지나갈 때 빛이 굴절되는 것을 말한다.
    독후감/창작| 2021.12.07| 2페이지| 2,500원| 조회(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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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하와장강 과제 감상문4 - 대국굴기
    과제4황하와 장강:중국역사의 발자취- 대국굴기 영상 내용정리‘대국굴기’는 포르투칼,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독일, 미국,일본, 러시아 9개 강대국의 변화과정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강대국의 흥망사를 통해 강대국의 조건을 알아보자한다. 당시 명나라가 중국을 지배하던 서기 1500년경은 서방과 동방의 나라들이 단절된 채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특히 당시 유럽의 세계관은 유럽,아프리카,아시아 대륙만이 존재하고 나머지는 망망대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시대에 신항로 개척과 이를 통한 신대륙발견은 진정한 세계사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분리되었던 세계가 연결되고 무역교류가 시작되며 좀 더 많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한 국가 간의 전쟁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당시 신항로 개척으로 인해 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포르투칼과 스페인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15세기경 이베리아 반도에 존재하는 포르투칼과 스페인은 유럽의 중심국가가 아니었다.포르투칼은 봉건국가가 아닌 국민에 의한 왕국으로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로 국가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당시 유럽은 음식저장을 위해 통후추같은 향신료가 사용되면서 향신료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는데 오스만제국이 향신료무역을 독점하면서 향신료 가격은 천정부지로 상승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르투칼 눈에 들어 온 것이 바다였다. 당시 포르투칼 왕자였던 엔리케왕자는 천문학, 수학, 물리학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바다와 항해를 분석하기 시작하였고 항해술을 하나의 학문으로 만들 정도로 항해술을 발전시켰다. 엔리케왕자에게 신항로 개척은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장기적 계획이자 꿈이었다. 1415년 엔리케왕자의 꿈을 실은 탐험선이 리스본의 카보다로카에서 출발하였고 아프리카의 서해안을 탐험하며 기나긴 항해 끝에 당시 세계의 끝으로 여겨지던 서아프리카의 보자도르곶까지 도착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서양의 남쪽으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며 아프리카 최남단인 희망봉까지 탐험하였다. 당시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폐쇄적이며 끊임없는 전쟁을 하는 동안 포르투칼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며 아프리카 서해안을 점령하여 향신료를 독점하면서 국고를 채우고 있었다.포르투칼이 신항로 개척으로 강대국으로 발전하던 이 시기에 스페인이 독립하였다. 15세기경 독립국가였던 포르투칼과 달리 스페인은 무슬림인 무어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8세기에 걸친 전쟁이 진행중이였고 마침내 이사벨1세가 그라나다를 정복하며 독립을 이루었다.강력한 힘과 신념을 바탕으로 독립을 이룬 이사벨1세를 찾아간 것이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다. 콜럼버스는 원래 포르투칼에서 항해를 하며 서쪽으로 신항로를 개척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당시 희망봉 동쪽으로 아시아를 개척하여 인도무역을 진행하려고 했던 포르투칼의 계획과 맞지 않아 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신의 계획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이사벨1세를 찾아갔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인도를 찾아 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1492년 10월 12일. 그 당시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였다. 분리되었던 세계가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곳이 인도인 줄 알았고, 북아메리카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그 해 만들어진 최초의 지구본을 보면 아메리카대륙은 여전히 바다로 나타내고 있었다. 스페인은 신대륙발견에 환호하며 10월 12일 스페인의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콜럼버스가 유럽으로 돌아온 후 가장 먼저만난 사람은 이사벨1세가 아닌 자신의 의견을 거절했던 포르투칼의 주왕2세였다. 주왕2세는 그때까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반신반의 하였고 콜럼버스가 그릇안의 콩으로 신대륙의 모습을 그려주자 그제서야 신대륙의 존재를 믿었고, 이 순간부터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경쟁이 시작되었다.당시 유럽에는 바다에 대해 공유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고 먼저 발견한 사람이 주인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어떠한 국가도 포르투칼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신대륙이 발견되고 1년 후 1494년 6월 7일. 포르투칼과 스페인은 리스본의 작은 교회에서 수박을 자르듯 세계를 둘로 나누는 조약을 체결한다. 포르투칼이 동쪽을 가지고 스페인이 아메리카대륙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두 나라 모두 당시 다른 대륙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세계의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조약은 구체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조약은 훗날 강대국의 식민지 분활의 선례로 여겨지며 이러한 추세는 베를린 조약에서도 등장한다. 유럽 각 국이 모여 이미 발견한 대륙과 미지의 대륙까지 더하여 현재 세계지도의 초기모형을 만들었다. 서양의 대륙확장은 이 조약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조약이 체결되자 포르투칼과 스페인은 바쁘게 움직였다. 먼저 1498년 5월 포르투칼의 바스코 다 가마가 그토록 원했던 인도의 서해안에 도착하였다. 이 곳은 명나라의 정화가 황제의 위험을 보이기 위해 탐험했던 곳이었다. 탐험이 목적이었던 정화와 달리 바스코 다 가마는 기독교 전파와 향신료가 목적이었다.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에 도착하면서 포르투칼의 엔리케왕자의 꿈으로 시작되었던 한 세기 동안의 노력과 축적되었던 항해기술 빛을 본 순간이었다. 그렇게 포르투칼이 동방에서 성공을 거두는 동안 스페인은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한다. 1519년 9월 20일. 포르투칼에 거절당했던 항해가 마젤란이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를 이루어낸 것이다. 이는 미국의 달착륙사건과 맞먹을 만큼 위대한 도전이었다. 1080일 동안 17000km를 항해했던 마젤란의 탐험은 서방국가의 눈이 이제 세계의 1/4가 아닌 세계 전체를 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인류문명의 미래를 밝히는 촛불 같은 존재가 되었다. 지구는 빠르게 자전하였고 제도사들이 밤낮으로 제작한 지도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팔려나갔다.
    독후감/창작| 2021.12.07| 3페이지| 2,500원| 조회(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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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하와장강 감상문 과제2 - 진시황
    황하와 장강 감상문2-진시황중국의 또 다른 이름인 차이나(CHINA). CHINA(CHIN+A)라는 명칭의 어원은 중국의 고대왕조 중 하나인 진(CHIN)에 지역을 의미하는 접미사인 a가 붙어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졌다. 진나라는 중국 최초의 통일왕국이자 처음으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했던 진시황의 나라였다. 그렇다면 진시황은 어떠한 인물일까? 진시황에 대해 얘기 할 때 그의 무덤인 진시황릉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진시황릉은 봉분과 많은 수의 용갱이 있으며 병마용갱 속 약 8000여 병사가 그 곳에서 진시황제를 지키고 있다. 현재 진시황에 대한 기록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만큼 진시황릉과 그곳에서 출토되는 발굴 유물들은 진시황과 현재의 우리를 연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연결 끈이다. 진시황릉은 1974년 4월에 산시성에서 농부들이 우물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다가 발견되었다. 중국고대사의 첫 장을 장식한 인물이자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의 칭호를 썼던 진시황제. 그리고 그의 무덤인 진시황릉. 진시황제의 중국통일이 시작된 곳도 시안이었고 그가 죽어서 영생을 준비하는 곳도 시안이었다. 진시황릉 발견 후 약 40여년에 걸친 발굴 작업을 통해 몇 천년동안 숨어있던 땅속에 진귀한 보물들을 발굴하였다. 진시황릉에서 가장 유명한 약 8000명의 토용병사는 진시황을 호위하여 진시황이 영원한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청동마차는 진시황이 영생을 얻기 위해 떠나는 영혼의 여행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진시황이 혼자 영생의 길을 찾아 떠나는 것을 생각하여 동반자로서 약 600마리 이상의 말들이 존재하고 그 옆에는 말의 무덤을 굽어보고 있는 시종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진시황이 죽어서까지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황궁 내에서 키우던 진귀한 동물들도 존재한다. 진시황이 죽은 후 후궁과 자제들을 함께 순장하여 그들의 유골과 진귀한 보물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봉분과 용갱과 더불어 후손이 제사지내는 사당과 제사에 참석하는 손님을 위한 건축물들도 준비되어있다. 56평방m이상의 땅이 오직 한사람을 위해 쓰였으며 30년에 걸쳐 약 70만명이 동원되어 만든 이 곳은 어느 곳 하나 소홀히 만든 곳이 없다. 각각의 용갱은 지하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무희, 말과 병사 등 다양한 모습의 토용들과 진귀한 물건들이 존재한다.사마천이 작성한 사기는 고대사의 중요한 자료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남아있는 진시황에 대한 거의 유일한 자료인데 각각의 용갱의 발굴을 통해 사마천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용갱을 발굴하는 작업은 역사를 발굴하는 것이다. 진시황릉의 모든 용갱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나무를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용갱을 덮고 있는 주변 흙은 붉을 색을 띄는데 이는 진시황이 죽고 항우가 진나라를 공격하면서 진시황릉 안에 있는 토용들을 깨부수고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용갱 발굴 시 불에 타서 붉은 빛을 띄는 흙과 검게 그을린 나무가 나타나면 본격적으로 용갱 발굴이 시작된다. 용갱 속의 토용은 손, 발과 다리는 일일이 손으로 만들고 다른 부위는 거푸집을 이용하며 토용의 얼굴은 표정과 생김새가 다 다르게 제작되었다. 그렇기에 용갱 속 토용들이 실제모델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하였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토용병사 하나의 무게는 약 200kg으로 병사의 계급이 높아질수록 토용의 키가 커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토용제작자는 인장이나 싸인 등으로 자신이 만든 토용에 표시를 하였다. 신체비율이 맞지 않는 토용들도 발견되곤 하는 데 이는 황실공예가가 아닌 다른 사람도 토용을 만들었다는 증거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진시황이 죽고나서 반란군에 의해 토용들이 파괴되었는데 그로 인해 유물을 복원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병마용에 있는 약 8000개의 토용 중 현재 1500개가 복원되었고 전체가 완벽하게 복원되려면 약 100년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병마용에 있는 토용들이 모두 똑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학자들이 주목하는 몇몇의 토용이 있는데 이는 토용 포면에 채색한 것이 남아 있는 토용들이다. 토용은 검정색으로 칠을 하고 그 위에 채색을 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반란군이 저지른 화재로 인해 채색한 부분이 남아있는 토용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채색이 남아있는 토용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채색이 남아있는 토용을 통해 알아낸 것은 토용의 얼굴색이 모두 같은 색으로 칠해지지 않았으며 이는 다양한 인종을 표현하고, 옷은 빨강, 초록 등 생명을 상징하는 색으로 칠해졌다는 것이다.새로 발굴 작업이 시작된 7호 용갱은 마을에서 죽은 사람을 묻어주기 위해 무덤을 파다가 발견되었다. 이는 진시황릉을 처음 발견할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는데 이를 통해 유적발견은 다 발견될 때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7호용갱 발굴 작업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 쓰임 모를 청동막대였다. 두 번째 발견된 유물은 파괴된 정도가 심해 복원하기 힘든 토용조각들이었다. 더욱이 7호 용갱은 반란군에 의한 파괴, 화재와 더불어 홍수로 인해 다른 용갱보다 더 복원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7호 용갱에서 발견 된 토용은 다른 토용과 달리 좌용으로 용갱에서 좌용이 발견 되는 것은 처음이며 토용의 형태로 보아 병사는 아닐 것으로 추측되었다. 각각의 용갱마다 가지고 있는 역할이 다르다. 그 예로 봉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용갱은 문관용갱으로 불리는데 발견된 토용의 머리, 팔모양, 옷, 기록할 수 있는 칼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문관으로 추정으로 추정되며 봉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아 이는 문관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용갱에서는 그 당시 실제 갑옷인 가죽갑옷과 달리 현대 기술로는 똑같이 만들 수 도 없을 만큼 돌을 얇게 갈아서 제작된 돌로 만든 갑옷이 출토되었다. 이렇게 만들기 힘든 돌갑옷이 많은 것은 사후에 진시황의 영혼을 지켜주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렇듯 각각의 용갱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통해 그 용갱의 의미를 추측할 수 있다 7호용갱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청동막대, 뼈로 만든 작은 조각, 좌용, 입에 벌레를 문 청동으로 만든 학 등으로 강, 새, 놀이하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아음악이 빠질 수 없고 발견된 좌용은 악사일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7호 용갱은 여흥을 즐기는 곳이었을 것이다. 발견된 악사 좌용은 아마도 청동 학을 위해 연주하고 있었을 것이다.학이 죽음을 몰아낸다는 전설이 있어 학은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악사들이 학을 위해 연주했을 것이다. 진시황릉의 또 다른 놀라운 점은 수로이다. 진시황릉 근처에는 리산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산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황릉에 영향을 줄까봐 지하수가 황릉에 유입되지 못하도록 흙과 진흙으로 만든 1300m지하인공수로를 제작하였다. 진시황릉의 구조, 용갱들의 위치뿐만 아니라 돌멩이 하나까지도 단 한 사람 진시황제의 사후세계를 고려하여 제작된 것이다.진시황릉뿐만 아니라 진시황이 남긴 유적은 오늘날 중국의 문화, 경제, 사상에 영향을 주고 있다. 역사에서는 진시황을 폭군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폭군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록 진시황이 폭군으로 불리긴 했으나 강력한 왕권과 튀어난 군사력으로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였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가진다. 진시황은 단지 영토통일에 만족하지 않고 진정한 통일을 위해 다양한 민족의 민족융화정책을 실시하였다. 사마천의 기록인 사기를 보면 진시황은 38살 때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하고 물을 권력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는 이전 왕조의 상징인 불을 끌 수 있는 것이 물이기에 이전왕조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물을 생명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각 나라별 궁전의 규모는 그 나라의 막강한 권력과 엄청난 부를 보여주는 것이나 진시황은 호화로운 궁전 안에서 미친 듯이 일하였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이야기가 전해질정도로 나라의 모든 일에 관여한 중국 유일의 황제이다. 진시황은 실력있는 도시기획가로 평가되어지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만리장성과 수로이다. 만리장성은 진나라를 위협하는 흉노족을 막기 위해 기존에 드문드문 지어진 성곽들을 이어서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만리장성 제작에 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다. 또한 관계시설을 만들어서 가뭄에 시달렸던 국민들의 고충을 해결하였다. 관계시설 확충으로 물 문제를 해결 하여 농사일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수확량 증가 등 긍정적인 효과를 유발하였다. 진나라는 사람보다 법이 우선으로 생각되며 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 그 당시 사법관의 위치가 높았다고 한다. 또한 진시황의 통찰력을 인정하는 것이 그 당시 봉건제를 종식시키며 지방제휴의 세습을 막고 군현제를 실시하였는데 이러한 지방통치제도는 지금과도 비슷하다. 제도뿐만 아니라 금속세공술도 매우 정교하고 석궁의 각 부분을 규격화하여 부품교체가 가능하게 하였는데 이는 현대의 산업화 생산방식과 유사하다. 용갱에서 발견된 검은 아직까지도 녹슬지 않고 날카로운데 이는 크롬 도금 때문으로 현재 기술과 매우 유사한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민생도 빼놓을 수 없는데 효과적인 경제정책 적용을 위해 도량형을 통일하고, 우주관을 반영하여 둥근 모양의 화폐를 만들어 배포함으로써 화폐를 통일하였다.
    독후감/창작| 2021.12.07| 3페이지| 2,500원| 조회(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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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하와장강 감상문 과제1 - 양쯔강
    황하와 장강 감상문 - 양쯔강우리에게 한강이 말로는 민족의 젖줄로 불릴만큼 큰 의미를 가지듯이 중국인에게 황하와 양쯔강은 소중한 보물이자 자부심인 것 같다. 중국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나는 중국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가지 전에 황하와 양쯔강이 중국인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파악하는 것이 앞으로 수업을 듣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고대시대부터 지금까지 강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만 보아도 각 나라의 전성기 때 한강유역을 포함하고 있을 정도로 강은 나라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줄 만큼 큰 역할을 하고 있다.황하와 함께 살아온 중국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요고무이다. 요고무는 먼지와 북소리로 적들의 기선제압을 하며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며 황토공원 사람들의 저항과 생명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주변을 뒤덮을 기세를 가지며 10리밖에서도 물소리가 들린다는 산서성 길현에 있는 호구폭포는 중국 민족의식의 출발점이자 중국정신의 상징으로 황하의 심장으로 불린다. 엄청난 규모의 폭포의 모습에 많은 예술가들의 찬미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거센 폭포의 물줄기를 발전하는 중화민족정신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황하는 어떤 강인 것 일까? 다큐멘터리에서는 황하의 발원지부터 바다와 만나는 끝자락까지 황하의 물줄기를 따라가며 황하의 의미를 찾고 있다. 황하의 근원은 오래전부터 중국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궁금증을 유발하였고, 실제로 기원전 때 황하의 발원지를 찾아나선 기록이 있을 청도로 황하의 근원을 찾는 것은 중국사람들의 오래된 염원 중 하나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중국정부는 1985년 황하의 발원지를 찾았고 기념비를 세우게 된다. 황하의 발원지가 있는 청해성의 청장고원은 황하뿐만 아니라 다른 크고 작은 강들의 수원지이며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곳이다. 청장고원에는 고산지역 대표동물인 검은 야크와 양들이 뛰어다니고 청장고원에서만 볼 수 있는 전 세계에 수 백 마리밖에 존재하지 않는 흑경학들이 날아다니며 바람만이 오가는 곳으로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용이나 주술사가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미지의 곳이다. 청강고원은 평상시에는 메마른 땅처럼 보이지만 비가오면 물이 금방 불어날 정도로 물을 머금고 있는 땅이라고 할 수 있다. 황하의 근원인 작은 샘의 크기는 비온 뒤 생기는 작은 물웅덩이 정도의 크기로, 근처에 기념비가 보이지 않았다면 그저 비온 뒤 생긴 물웅덩이구나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황하의 시작은 매우 작으나 흘러갈수록 여러 작은 물줄기가 만나 하나의 물줄기가 되고 물길을 찾아서 혹은 물길은 만들면서 점점 규모가 커져 중국을 낳고 키운 어머니같은 존재가 되었다. 황하는 중국의 서에서 동을 지나는 4564km길이의 강으로 황하가 키운 민족으로 불리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강 주변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황하와 함께 살아가는 소수민족은 황하에 그들의 희노애락이 녹아져있다. 중국사람들에게 어머니강으로 불리는 황하의 작은 근원지는 중국 민족의 뿌리이자 성지이다.황하가 처음 만나는 대도시는 난주시로 과거 실크로드 때 서역으로 가려면 꼭 들려야하는 곳이였다. 난주시를 지나면 영화화족자치구의 광활한 평원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은 황하를 직접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천하황하부영하(황하가 영하를 부유하게 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하의 영향력을 많이 받고 있는 지역이다. 영화를 지나면 과거 칭기스칸이 말을 타고 위엄을 날리던 시린쿼러 초원을 만날 수 있고, 말을 타고 더 이동하다 보면 황토고원을 만날 수 있다. 황토고원은 전세계 한족을 잇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전설 속 황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황제의 색인 황색은 중국과 중국인의 표상이다. 또한 황색은 황하의 색이다. 황색의 강 황하는 중원지역을 흐르며 고대 문명을 꽃피우는 데 이 문명이 바로 황하문명이다. 황하문명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것은 병마용갱으로 기원전 221년 만들어진 진시황의 지하군대이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하지만 언제나 어머니처럼 따듯하게 품어줄 것 만 같던 황하는 중원지역을 지나 협곡을 지나면 성난 용으로 변하며 황하의 중하류 지역에 많은 재앙을 준다. 재앙의 원인은 황하 속에 존재하는 많은 양의 모래 때문이다. 많은 모래 때문에 강바닥 높이가 높아지게 되어 강우 시 강 주변지역에 범람하게 된다. 고마운 강이 가장 위험한 강으로 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황하가 편안해야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하취수는 오래된 과제이자 중요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57년 삼문현댐이 건설되었는데, 이 댐은 황하에 지어진 첫 댐으로 강 하류의 홍수는 막았지만 모래는 여전히 문제로 주기적으로 인공 홍수를 일으켜 댐 내부의 모래를 제거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댐이 건설 된 후 인공홍수로 인해 하류의 높아진 모래농도 때문에 발생한 죽은 물고기들을 잡는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서탄촌 같은 댐 아래 지역은 인공 홍수가 발생하게 되면 물에 잠기게 되어 일상생활에 많은 피해를 받아 정책적으로 곧 수몰될 예정이다.댐 건설로 인해 누군가는 덕을 봤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을 빼앗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류 부근의 마을은 수몰되는데 반해 하구쪽에는 황하에 실려 온 모래로 인해 여의도 면적의 60배 크기의 새로운 땅이 만들어지며 황하는 땅을 사라지게 하기도하고 만들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산동성에는 1산 1수 1성인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의미하는 곳은 태산, 황하, 공자이다. 그만큼 황하는 중국인들에게 정신적 지주같은 존재로 황하의 물줄기는 우리에게 중국의 전설, 과거 그리고 현재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길잡이 같은 역할을 한다. 황하는 중국의 과거와 오늘을 만든 강으로 중국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중국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강이다. 황하의 발원지에서 바다로 갈수록 작고 맑았던 물줄기가 점점 크고 진한 황색으로 변하는데 이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어린아이 상태로 세상에 태어나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것을 안고 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21.12.07| 2페이지| 2,500원| 조회(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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