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 전쟁과 젠더 서평‘전쟁’, 과거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행해지던 이 행위는 내게 있어 단순히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잔인한 살육전이라는 것 외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나는 전쟁이 굉장히 모순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은 옳지 않으며 비도덕적이고 반인류적인 행위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인간은 오랜 경험으로 전쟁의 잔혹함과 종전 후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각국이 서로 협력하며 평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도 ‘인간’들에 의해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품을 것이다. ‘도대체 왜 전쟁은 끊이질 않는 것인가, 우리는 왜 전쟁을 하는가?’ 나는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길 바랐다.‘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 전쟁과 젠더(저자 와카쿠와 미도리)’의 저자는 일본인이다. 과연 전범국가인 일본의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리고 전쟁과 젠더는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을까? 이 책은 들어가는 글과 총 6장의 본문 그리고 마무리 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쟁의 원인과 전쟁의 유지, 전쟁 종결을 위한 방안까지 차례대로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전쟁이 현대의 가장 큰 위험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본능은 원래 공격적이며 전쟁은 이러한 인간의 본능이 잘 드러난 것이라는 통설은 전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또한 약육강식과 다윈주의는 이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의 본능이 공격적이라는 것을 부인한다. 또한 전쟁은 기능 오차이며, 무기의 발명이 인간의 살육과 억제의 균형을 깨뜨렸다고 주장한다. 이를 동물에 비유해 설명하는데 늑대와 독수리는 같은 크기의 동물, 동족이라도 일격의 공격으로 쓰러트릴 수 있지만 비둘기와 침팬지는 그렇지 못하다. 본래 인간도 이런 비둘기 침팬지와 다름 없었고 동족간의 살육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무기의 발명이 인간을 독수리의 부리를 가진 비둘기, 도끼를 든 침팬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무기를 발명하고 서로 죽이는 것을 미덕으로까지 여기게 된 인류의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탐구하며,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전쟁은 가부장적 제도의 산물이며 전쟁의 종결을 위해서는 그 체제를 탈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젠더이론’을 제안하며 늘 전쟁을 주도해온 남성의 시각이 아닌 역사적으로 전쟁을 수행한 적이 없는 젠더인 여성들의 입장에서 전쟁을 다루고자 했다.작가는 전쟁의 원인이 가부장제 남성지배형 국가라는 사실과 젠더적인 시각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여성의 시점에서 말하는 전쟁을 저술목적으로 하며 젠더이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서 가부장제란 여성을 부정하는 사회이며 경쟁, 계급, 공격성, 관료제, 대지로부터의 소외 등 남성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가치 체계이다. 가부장제의 완벽한 발달 형태인 자본주의는 이른바 여성의 하등한 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형태이다. 가정주부의 무상 노동이 자본주의 존속의 기본 조건인 셈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작가는 전쟁의 원인을 가부장제 남성지배형 국가라 주장한다. 그 근거로 선사시대 모계제 문화의 유적에는 전쟁의 흔적이 없었다는 리안 아이슬러의 주장을 제시한다. 즉, 모계제 중심사회에서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작가는 전쟁, 그리고 나아가 식민주의는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굴복시키도록 가르치는 시스템이 공적 세계로 확대된 것이라 말한다. 남성은 가부장제 사회 아래 여성들의 우위에 설 수 있었으며 사회의 중추적 인물로서 전쟁을 주도해 왔다. 반면에 여성은 남성의 사회활동을 위한 내조와 가사일을 담당하는 것이 그 역할로 여겨졌으며 전쟁이 발생하면 성폭력과 같은 피해를 입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가부장제 사회가 미친 영향의 또 다른 예로 노벨상 수상자 성비를 들 수 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는 남성이 우세한데 이는 남성이 더 우월하다는 남성들의 주장과는 달리 단지 여성이 노벨상을 수상할 만큼 교육을 받고 무엇에 몰두할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들은 철저히 억압되어 왔다. 하지만 작가는 여성 역시 폭력적일 수 있으며 전쟁을 좋아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단지 가부장제라는 사회 구조로 인해 전쟁은 남성의 전유물이 되었고 여성의 역할은 가사노동으로 굳어진 것이다. 책의 본문에 따르면, 엥겔스는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을 통해 사유 재산에 기초한 지배계층화가 모계 중심이었거나 남녀가 대등했던 선사시대를 남성 지배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저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론가는 엥겔스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계급이 소멸함으로써 국가도 소멸할 것이라는 엥겔스의 이론을 너무도 낙관적이고 비현실적이라 말하며 전쟁 종결의 대안은 실현 불가능한 모계제 사회가 아니라 남녀평등의 협조형 사회라 주장한다.‘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저자 히로세 다카시)’는 전쟁의 원인이라는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작가가 팔레스타인의 난민촌을 방문한 후, 이스라엘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저녁식사를 대접받으며 우연히 유대인의 손목에 각인된 유대인 수용소 번호를 보고 충격을 받아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으며 시작된다. 작가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해석과 세계사에서 발생한 전쟁들을 살펴보며 그 답을 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작가가 내린 결론은 ‘개인의 의지’이다. 전쟁은 공격적인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호전적인 인간의 의지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와 비교한다면 크게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공통점에 대해 언급하자면, 두 작가 모두 인간의 본능이 공격적이라는 점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의 작가는 인간의 본능이 아닌 사회적 구조에서 전쟁의 원인을 찾고 있고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의 작가는 공격적인 인간의 본능이 아닌 호전적인 인간의 의지가 전쟁의 원인이라 주장한다. 차이점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전쟁의 원인을 전자의 경우 사회적 구조에서 후자의 경우 개인적 성향에서 찾는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는 가부장제라는 사회적 구조를 주장하며 전쟁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한다. 반면에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는 호전적인 개인의 의지라는 개인적 성향을 전쟁의 원인으로 제기한다.처음 작가가 전쟁 발생의 원인에서 가부장제를 언급했을 때,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제껏 전쟁은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재앙이라고만 여겨왔지 그 원인을 사회적 구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에 대한 근거로 ‘젠더이론’ 남성과 여성의 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나는 젠더란 단순히 인간의 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사회적, 문화적으로 형성되는 여성성과 남성성 즉,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영향을 받아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타고난 권리를 누리며 여성을 지배할 수 있었고 여성은 그런 남성에게 순종적인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곤 했다. 이것 역시 가부장제라는 사회의 영향으로 인한 성적 역할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것들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작가의 주장은 꽤나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전쟁의 원인에는 이 밖에도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한다고 본다. 리안 아이슬러는 선사시대의 모계사회에서는 전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가부장제가 전쟁의 원인이라는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가부장제란 불과 몇 천년 동안 지속되었던 사회적 제도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단순히 이런 사회적 제도만을 이유로 수많은 사상자를 낳고 인류에 절망을 안겨준 전쟁이 발발하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주장대로 무기의 발명과 가부장제 사회가 전쟁의 원인이라면 나는 무기의 발명 쪽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싶다. 초기 전쟁이란 생산이 증가함에 따라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고 무기의 발명이 이루어지면서 시작된다고 보는 경우가 있다. 이때부터 사회는 무기를 들 수 있는 남성을 중심으로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만약, 이때 모계사회가 유지되었다면 어떨까? 어쩌면 여성들이 지금까지의 전쟁을 주도해 왔을 지도 모른다. 작가 역시 여성도 폭력적일 수 있으며 전쟁을 좋아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단지 신체적 조건으로 인해 남성이 전투에 있어 여성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을 뿐이다. 또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작가의 주장처럼 ‘개인의 의지’ 가 전쟁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의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 중세의 종교 전쟁 등 이 모든 역사적 전쟁들 역시 인간의 탐욕과 개인의 다름에서 비롯된 ‘개인의 의지’가 없다면 발생할 수 없는 전쟁들이었다. 나는 전쟁의 원인이 가부장제에 있다는 작가의 주장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의하는 부분도 많았다. 다만 가부장제가 전쟁의 원인이라 하는 것보단 전쟁의 원인들 중 하나라고 정의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것이다. 전쟁의 원인은 사회적 구조와 개인의 의지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문화의 의미와 개념문화의 의미와 개념에 대해 서술하기 전에 문화의 이중적 성격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문화는 상반되는 개념인 물질적 성격과 비물질적 성격을 지닌다. 물질적 성격이란 문화산업, 문화상품, 문화콘텐츠, 예술비즈니스 등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 문화콘텐츠란 상품으로써 문화를 채우고 상품화시킨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반면에 비물질적 성격이란 문화는 심미적이고 정신적인 가치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문화는 산업화, 물질화되는 만큼 오히려 그 비물질적 본성 때문에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문화가 없어도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즐기는 것은 그만큼 매력적인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매력적인 문화를 즐기기 위해, 즉 문화의 비물질적 측면을 위해 문화를 구입하는데 이것은 참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문화는 심미적이고 정신적인 가치인데 그것을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니 말이다. 이처럼 문화는 비물질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에 물질적인 상품이 될 수 있으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드느냐’ 보다 ‘어떻게 만드느냐’ 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소설 해리포터는 어떻게 다양한 상품화가 되었고, 왜 이러한 상품화가 가능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본격적으로 문화의 의미와 개념에 대해 말하자면, 먼저 문화의 의미는 미학적 논의 혹은 사회학적 논의로서의 문화로 의미를 둘러싼 투쟁이 벌어지는 장소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미학적 논의란 음악비평가들의 클래식 음악 비평을 예로 들 수 있는데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미학적 논의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학적 논의란 문화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에서 정부가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에 반하는 영화에 대한 정부와 영화인들의 대립을 예로 들 수 있다. 또 다른 예로는 마르크스 사상을 가진 밴드 rage Against the Machine이 1996년 발매한 “Bulls on parade”라는 곡으로 이 곡은 미국의 자본주의에 반하는 정치적 성향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본주의에 반하는 정치적 성향을 내세우면서 자본주의의 대표적 회사인 대형기획사 SONY에 소속되어 있으며 정작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어린 학생들이었고 rage Against the Machine는 이 곡을 통해 억만장자가 되었다.문화의 개념에는 Raymond Williams의 문화에 대한 3가지 정의를 들 수 있다. Raymond Williams의 문화에 대한 3가지 정의는 첫째 지적, 정신적, 미학적 발전의 일반적 과정, 둘째 개인, 집단, 혹은 어떤 인가의 삶의 특별한 방식, 셋째 지적, 특히 예술적 행위의 작품과 그 실천을 말한다. 여기서 지적, 정신적, 미학적 발전의 일반적 과정이란 서구에서 나온 개념으로 예부터 이어져 오던 문명부터 르네상스, 낭만주의, 고전주의 등 문화 발전의 과정과 흐름을 의미하며 개인, 집단, 혹은 어떤 인간의 삶의 특별한 방식이란 한국문화, 미국문화, 전통문화, 직장인문화 등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적, 특히 예술적 행위의 작품과 그 실천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생각하는 문화, 음악, 영화, 건축 등 예술적 행위를 통해 만들어지고 실천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문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우며 현재 문화라는 단어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Raymond Williams의 문화에 대한 3가지 정의”는 문화의 정의를 언급할 때, 가장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 현대 사회에서는 두 번째, 세 번째 문화의 정의가 주로 다루어진다. 또한 이 두 가지는 밀접한 상호관련이 있으며 한 묶음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첫 번째 정의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우리는 문화를 생각할 때, 일반적으로 K-POP, 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를 떠올리곤 한다. 대중문화에서 대중이라는 말은 대중적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따르는 것, 즉 Popular의 의미이다. 대중문화는 판단 기준으로 계량화 시킨 수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모두 수치에 집착한다. 대중적이란 대규모 수용자와 상업적 소비의 사회적 성격으로 Raymond Williams는 대중문화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열등한 종류의 작업 혹은 작품,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으려는 의도적인 작업 혹은 작품, 사람들이 실제로 만드는 작업과 작품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열등한 종류의 작업 혹은 작품이란 너무 대중적이라 싫어하는 것으로 상업적, 수준이 낮은 것을 의미하며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으려는 의도적인 작업 혹은 작품이란 음악차트에 있는 음악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개중에는 인기가 없는 곡도 있지만 이것이 대중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인기를 얻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의 좁은 의미는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이고 넓은 의미는 사람들의 혹은 사람들 속으로라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상업적이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며 대중문화는 처음부터 상업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넓은 의미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대중문화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면 대중문화는 19세기 이후의 상업적인 지향의 문화 혹은 대중의, 대중을 위한 문화라고 볼 수 있다. 문화의 역사는 길지만 대중문화의 역사는 짧은 편인데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혁명, 도시화,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대중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진 신분제, 생활양식에 따라 문화를 구분했지만 자본주의 이후 돈은 있지만 배운 게 없는 자본가들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문화들이 맞지 않았고 새로운 문화를 필요로 하게 되어 나타난 문화가 바로 대중이 주인이 되는 대중문화이다. 대중문화는 john Storey에 의해 6가지 틀로 정의되는데 첫째 계량화된 문화, 둘째 고급문화의 잔존물로서의 문화, 셋째 대량문화, 넷째 포크 컬쳐, 다섯째 헤게모니 투쟁의 장, 여섯째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이다. 계량화된 문화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화로 계량화시킨 수치가 높은 문화를 말한다. 하지만 인기가 없다고 해서 대중문화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고급문화의 잔존물로서의 문화는 고급문화가 존재하고 남아있는 찌꺼기가 대중문화라는 것으로 대중문화는 질이 떨어진다는 가치판단이 있는 부정적인 개념이다. 이는 문제가 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개념으로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구별은 아래 서술되어 있다. 대량문화는 말 그대로 대량 소비를 목표로 대량적으로 생산해내는 것을 말하며 할리우드 영화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대량생산은 여러 사람 입맛에 맞아야 하고 이를 위해 질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인식을 깔고 있어 이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질이 낮다고 판단하는 문제점이 있다. 포크 컬쳐는 민속문화, 민중문화의 의미로 보통 사람들이 주인이 되고 그들로부터 유래된 문화를 말하지만 당위적인 개념으로 보통 사람의 기준이 모호하다. 헤게모니 투쟁의 장은 헤게모니란 무력이 아닌 지적, 도덕적 리더십으로 장악한 패권을 말하는데, 즉 무력으로 싸우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목소리와 힘을 키우기 위해 교섭을 통해 투쟁하는 것을 말하는데 지금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것은 산업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산업에 휘둘리지 말고 헤게모니 투쟁을 통해 소비자의 목소리를 키워야 하며 산업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더라도 대중문화 속에서는 사람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이후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으로 모더니즘은 근대적인 생각,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생각들을 의미한다. 대중문화의 틀 상위 네 가지는 대중문화의 개념, 하위 두 가지는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이라 할 수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우디 앨런 감독의 41번째 작품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th In Paris)’는 2011년 칸 국제영화제의 개막 작품으로 선정됨과 동시에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등 수많은 영화제에서 수상의 영애를 안았고 그의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되었다. 주연으로는 오웬 윌슨(길 펜더 역), 마리옹 꼬띠아르(아드리나 역), 레이첼 맥 아담스(이네즈 역) 등의 배우들이 출현한 로맨틱 코미디로 한국에서는 2012년에 개봉했다. 이 영화는 시간여행이라는 플롯을 이용해 주인공이 현재와 과거의 파리를 넘나들고 위대한 예술가들을 등장시켜 파리의 예술과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낸 작품으로 미국언론과 로저 에버트, 스캇도 오원 윌슨(뉴욕타임즈) 등의 영화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바 있다.‘미드나잇 인 파리’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매우 잘 만들어진 거대한 예술작품이다. 영화의 연출과 구성 그리고 인물들의 대사까지 모두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이를 통해 뛰어난 흡입력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보여지 듯이 ‘자정의 파리’가 영화의 흐름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주인공인 길은 소설가이자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하는 인물로 자정의 파리에서 클래식 푸조를 타고 1920년대, 즉 자신이 꿈꾸는 황금시대로의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위대한 예술가로 널리 알려진 피카소, 헤밍웨이, 거투르트 스타인 등과 예술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여인 아드리나를 만나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장면들을 나열하는 과정에서 과거 파리의 풍경과 배경음악을 통해 은연중에 파리의 예술과 아름다움을 부각시킨다. 시간적 배경의 변화에서는 1920년대의 클래식푸조, 1890년대의 마차와 마부 등 그 시대의 상징적인 물체를 이용해 시대의 이동을 자연스럽게 연결 지어 잔잔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예술가들을 주인공의 시각을 통해 바라보며 그들의 실제와 사생활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것 역시 보는 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재미를 주면서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영화의 흐름을 통해 감독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영화에서는 도입부에서부터 현대 파리의 풍경을 보여주고 이를 보며 과거의 파리를 찬양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여진다. 영화 전반에 걸쳐 과거의 파리를 즐기는 현실도피적이고 몽상가적인 주인공을 통해 과거로의 갈망을 잘 표출하고 있다. 노스텔지어 샵을 운영하는 주인공의 소설 속 남자도 이러한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요소이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1920년대의 파리를 꿈꾸던 자신과 같이 1890년대의 파리를 황금시대라 칭하는 아드리나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를 갈망하는 1890년대 예술가들을 보며 그는 과거에 남겠다는 아드리나에게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우리가 여기에 머무르면 지금이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이 대사는 주인공의 깨달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에 대해 잘 표현하고 있다. 결국은 현재로 돌아와 현실을 직시하고 현재의 파리를 선택하는 그를 보며 이 사실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삶. 나는 이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