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을 보고폴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러 가는 노먼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충격에 빠져 오열하거나 흐트러진 모습으로 절규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놀란 모습을 보였지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또는 폴을 죽인 사람을 알고자 집착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저는 때로는 이렇게 덤덤하지 않을 그 마음을 무던하게 풀어내는 모습이 슬픔을 극대화시킬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아버지가 노먼에게 부러진 손이 어느 쪽이었냐고 물으며 오른손을 한 번, 한 번 쥐었다 피는 장면은 죽은 아들의 마지막 순간이 어땠을지 상상이라도 해보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단박에 느끼게 해줬습니다. 어쩌면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것 보다, “오른손이 아팠겠구나,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걱정이 오히려 더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어쩌면 이들은 폴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이지요.제목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 ?A river runs through it?. 처음에는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제목은 자연인 강이 저절로 흐른다는 의미로 쓰이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그렇다면 왜 through라는 단어 뒤에 itself가 아닌 it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했을까? 라며 다소 사소한 것을 신경 쓰며 영화를 봤습니다. 원어민이 아니라 정확한 의미의 사용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영화에서 노먼은 이렇게 말합니다. “Eventually, all things merge into one, and a river runs through it.” 흐르는 강물에서 낚시를 하고 있노라면, 모든 감정과 감각이 한 데로 모여 결국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강은 그것을 통해 흐릅니다. 제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도, 얼렁뚱땅 의역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 라인이 이 영화의 정체성이라 생각합니다. 이토록 덤덤함 뒤에 가려진 수백 개의 감정과 수백 개의 이야기. 사랑하는 가족이 떠났지만, 너무도 안타깝게 떠났지만 결국에 남은 사람들은 다시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낚시를 하는 그 모습이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럽습니다. 그 안의 복잡한 마음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겠지만, 결국엔 함께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