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기능 또는 발달을 저해하는 지속적인 부주의 및 과잉행동-충동성이 (1) 그리고/또는 (2)의 특징을 갖는다.1. 부주의: 다음 9개 증상 가운데 6개 이상이 적어도 6개월 동안 발달 수준에 적합하지 않고 사회적, 학업적/직업적 활동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지속됨.주의점: 이러한 증상은 단지 반항적 행동, 적대감 또는 과제나 지시 이해의 실패로 인한 양상이 아니어야 한다.청소년 후기나 성인(17세 이상)의 경우에는 적어도 5가지의 증상을 만족해야 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독서감상문이 책은 저자의 ‘나도 모르게 차별은 한’ 경험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자는 혐오표현에 관한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여하며 자신도 모르게 ‘결정장애’ 라는 말을 썼다. 그리고 토론회가 끝난 후 다른 참여자로부터 그 표현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나 또한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러한 ‘결정장애’ 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단어를 쓸 때 저자도 나도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혐오를 표현하고 차별을 하고자 해서가 아닌 정말 아무 생각없이 썼을 것이다.이렇듯 우리는 차별을 하고자 해서 차별하는 말과 행동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무 자각없이, 생각없이 차별을 한다. 책 속 저자의 말처럼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만 있는 상황.’ 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그러면서도 우리는 착각을 한다. 나는 편견이 없을 거라는 착각, 나는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착각.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차별을 하고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이 책의 제목인 ‘선량한 차별주의자’ 라는 말이 이러한 우리들의 모순된 사고와 사회를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는 정말 편견없는 사람일까?이 책의 1부에서는 어떻게 차별을 보지 못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만들어지는지 생각해본다.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1장에서는 나의 위치로 인해 불평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하고 있다. 기울어진 땅에서는 평행봉도 기울어져 보일 수밖에 없듯이 불평등을 인식하기 어렵다. 특권을 누리는 자는 너무나 일상적이기에 그것을 특권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서 다수자 차별론이 등장하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이미 사라졌다며 부정되기도 한다.우리는 한곳에만 서있는 게 아니다2장에서는 정체성의 교차성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차별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서는 주류가 되고, 어떤 경우에서는 소수자가 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서 소수자가 다른 소수자를 차별할 수도 있다. ‘차별은 두 집단을 구분하는 이분법으로 보이지만, 그 이분법을 여러 차원에서 중첩시켜 입체적으로 보아야 차별의 현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라는 말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새는 새장을 보지 못한다3장에서는 차별받는 사람도 사회의 고정관념을 내면화하여 차별의 질서가 유지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명문대학교의 본캠과 ‘분캠’에서 ‘분캠’ 학생들이 스스로 차별 대우를 당연하다고 인정하는 현상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사회적 정체성과 낙인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보이지 않는 새장에 갇히기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고정관념은 보이지 않는 새장이 되어 소수자의 행동을 제약한다.2부에서는 차별이 어떻게 지워지는지, 어떻게 ‘정당한 차별’ 로 위장되는지 살펴본다.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이유4장에서는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유머에 숨겨진 사회적 권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유머를 바라 볼 때는 ‘왜 웃긴가? 누가 웃는가? 누가 웃지 않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먼저 우월성이론에 따르면 누군가를 비하하는 유머가 재미있는 이유는 비하받는 대상보다 자신이 우월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같은 유머라도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집단은 웃을 수 있고, 약자 집단은 웃을 수 없다. 때문에 권력관계를 간과하고 두 집단 간의 상호비하를 같은 무게로 바라보면 오류가 생긴다. 또한 비하성 유머는 차별을 더 강화시킨다. 편견규범이론에 따르면 평소에 드러내지 못했던 특정집단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유머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분출되고, 차별이 용인되는 분위기를 가져온다.어떤 차별은 공정하다는 생각능력주의는 불평등한 구조를 정당화시킨다. 능력주의가 실제로 공정하기 위해서는 똑같은 조건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한 평가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공정한 기준을 정하기 위해선 존 롤스의 무지의 장막이라는 개념을 활용할 수 있다. 무지의 장막이란, 개개인이 어떤 조건에 처해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가정하고 사회질서를 정하는 것이다. 또한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 또한 간접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개개인에 맞게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토익 몇 점 이상 이라는 채용기준이 모두에게 필요한지, 불리하진 않는지 생각해야 한다.쫓겨나는 사람들1964년 미국에서 ‘민권법’이 통과되면서 인종, 피부색, 종교 등을 이유로 손님을 차별하거나 분리하는 행위가 금지되었다. 이에 흑인 손님을 거부해왔던 모텔 주인 롤스턴이 소송을 걸었으나 패배했다. 우리나라에는 ‘민권법’과 같은 법이 없는 상태로, 특정 집단에 대한 출입금지 조치 등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상태다. 사우나에서 외국인 출입금지, 어린이집 외국인 원생 거부, 카페나 식당의 ‘노키즈존, 노스쿨존’과 같은 아동청소년 출입금지 조치 등이 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감이 들거나, 이들 중 일부가 민폐를 끼친다는 이유로 영업을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불편한 감정으로 인한 식당과 카페, 공공시설에서의 이러한 분리는 사회 곳곳에서의 분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인종분리의 역사와도 비슷하다.“내 눈에는 안 보였으면 좋겠어”성소수자들의 퀴어축제가 있을 때마다 축제를 반대하는 여론이 존재한다. 퀴어축제에 대한 반대논리는 ‘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정체성을 드러내는가’이다. 평등한 현대 사회라면 공공의 장소, 광장에 들어설 수 있는 자격은 모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수자들은 이러한 공적 공간에 입장이 불허되고, 사적영역에 남게 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특정 집단에게 공개적으로 혐오를 표출하고, 이들을 눈에 띄지 않게 만든다. 그리스의 폴리스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배제한 상태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착각에 빠져있다.3부에서는 앞에서 살핀 내용을 바탕으로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를 이야기 한다.평등은 변화의 두려움을 딛고 온다.18년 6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가 지하철 도착시간을 지연시키면서 공공질서를 해친다는 비판이 일었다. 시위에 등장하는 비판 논리는 때로는 다수가 동의하는 질서가 공공질서이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소수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만능논리가 될 수 있다. 부당한 법에 항거하기 위해서 법을 위반하는 시민불복종은 정의를 이루는 방도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시민불복종에 어떻게 화답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모두를 위한 평등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존재할 수 있을까? 화장실은 모든 인간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지만 다양성을 모두 고려하여 공간을 설계하기는 힘들다. 이와 같은 딜레마로 인해서 ‘보편성과 다양성’에 대한 상반된 논의가 등장한다. 보편성을 강조하자는 입장에서는 우리를 구분짓는 범주를 없애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이미 존재하는 차이를 무시하고 일부 집단에 대한 배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는 보편성을 공유하지만 세상에 차별이 있는 한 차이는 실재하고 그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차별금지법에 대하여차별금지법의 제정은 헌법이나 국제인권조약에 이미 존재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법률을 통해 선언적인 권리에서 실질적 권리로 보장해주는 역할을 한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도부터 제정이 시도되었으나 여전히 미완상태이다. 이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여론이 계속해서 존재했기 때문인데, 대표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동성애자 차별이 정당하다는 일부 보수 기독교의 반대여론이 있다. 그러나 다수결의 한계로 발생하는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차별하는 다수의 주장을 수용하여 인권의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편, 차별금지법 자체는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기본원칙으로 아직 불완전한 형식적 평등에 가깝다. 차별금지법 이상의 진정한 평등을 위해서는 적극적 우대조치가 필요하다. 평등은 선량한 마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유진과 유진」 독서 감상문「유진과 유진」이라는 책은 ‘큰 유진’과 ‘작은 유진’ 각각의 시점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유치원 시절 아동 성추행이라는 같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그 사건을 기억하는 ‘큰 유진’과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유진’ 이 중학생이 되어 서로를 만나 상처와 아픔을 공유하고 성장해 나가는 성장소설이다.같은 유치원에서 원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큰 유진’ 과 ‘작은 유진’ 은 중학생이 되어 같은 반 친구로 다시 만나게 된다. 큰 유진은 작은 유진을 기억하고 작은 유진에게 아는 척을 하지만 작은 유진은 큰 유진을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유치원에서의 일 조차 기억하지 못한다.작은 유진은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지만 큰 유진은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 휴대폰이 없는 큰 유진은 절친 소라를 통해 남자친구 건우와의 연락을 이어간다. 그런데 건우는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을 착각하여 큰 유진에게 전교 1등을 축하한다고 하지만 큰 유진은 그게 자신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못한다.작은 유진은 수학여행에 가 미영과 아이들에 의해 술과 담배를 하게 된다. 작은 유진은 그 후로 계속해서 그러한 것들을 입에 대게 된다.작은 유진은 큰 유진을 불러 자신에게 있었던 사건을 묻는다. 큰 유진은 망설이다가 유치원 원장이 아이들을 성추행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며 작은 유진에게 말한다.작은 유진은 그 이야기를 듣고 집에 가서 샤워를 하며 온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은 유진은 계속 담배를 피우고 공포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검색창에 기억상실에 대한 자료를 검색한다.그리고 작은 유진은 자신을 때수건으로 씻기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게 된다. 큰 유진에게 가 큰 유진의 엄마는 그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물어보자 큰 유진은 자신의 엄마는 전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한편 큰 유진은 남자친구 건우와 놀이공원으로 놀러갔다가 전교 1등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내가 아니라 동명이인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큰 유진은 죄책감을 날려버릴 수 있게 된다.큰 유진은 작은 유진이 요즘들어 변하고 있다고 느꼈다.작은 유진은 외할머니에게 그 때 있었던 일에 대해 물었다. 할머니는 작은 유진에게 별 수 없다는 듯이 다 털어놓았다. 작은 유진은 엄마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잊으라고 소리치는 것이었고 할아버지가 자신을 보고 깨진 그릇이라고 했던 것도 다 알게되었다.작은 유진은 외할머니와의 만남 후 거리를 배회하다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았고 학원에 갈 시간에 연습실에 가서 춤을 춘다. 그러다 야외 공연을 하다 들키는 바람에 엄마 아빠가 모두 알게되고 집에 돌아와 이유도 말하지 못한 채 아빠에게 맞게된다.한편 작은 유진은 건우로부터 그만 만나자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유를 물어보니 건우의 엄마가 그런 애랑 만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큰 유진은 이 일을 통해 또 그 기억이 떠오르고 소라를 불러 모든 것을 이야기 하자 소라는 작은 유진을 위로해 준다.그런데 그 때 작은 유진에게 전화가 와 자신이 갇혀있다고 한다. 큰 유진과 소라는 작은 유진의 집에서 작은 유진을 빼내 같이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간다. 작은 유진은 큰 유진을 달래주고 바다에 도착해서 컵라면을 먹고 춤을 춘다.잠시후 부모님들이 도착해 소라와 큰 유진을 데리고 집에간다. 작은 유진의 엄마는 멀리서 작은 유진을 지켜볼 뿐이다. 그 날 작은 유진은 엄마를 원망하기도 하고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하게되며 책은 결말이 난다.유치원에서 당했던 성추행에 대해 큰 유진은 기억을 하고 작은 유진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큰 유진과 작은 유진에게는 어떤 차이가 존재했던 것일까?‘엄마가 울음을 터뜨리며 나를 안았고, 아빠는 주먹으로 벽을 쳤다. 그때의 내 기분은 슬프면서도 달콤했던 것 같다. “사랑해, 사랑해. 엄마가 우리 유진이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거 알지?” 그때 엄마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사랑해”와 “네 잘 못이 아니야”였다. 내 인생 중에 그 시기만큼 주복받고, 관심의 대상이 될 때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 장면은 큰 유진이 기억하는 원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게 알려졌을 때 큰 유진 부모님의 반응이다. 큰 유진의 부모님은 큰 유진을 보듬어 주며 네 잘못이 아니라고 계속해서 위로했다.‘때밀이 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거칠게 미는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가 울자 그 여자는 아이의 뺨을 때렸다. “넌 아무 일도 없었어. 아무 일도 없었던 거라구! 알았어?”, “앞으로 다시 그 얘기 꺼내지마. 그럼 너 죽고, 엄마도 죽는 거야. 알았어?” 나는 너무 무서워 최대한 큰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지러울 정도로 오래 끄덕인다.’ 이 장면은 작은 유진이 기억하는 사건 이후 엄마의 반응이다. 힘든 일을 당한 아이에게 잊으라며 공포심을 유발할 정도로 작은 유진을 몰아붙힌다.큰 유진은 부모님의 관심과 도움으로 성추행에 대한 기억을 억지로 잊어야 하는 일이 없었고 그나마 잘 이겨낼 수 있었던 반면 작은 유진은 그러한 사건을 당한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할아버지에 의해 부모님도 작은 유진에게 계속해서 충격을 줌으로써 두려움으로 인해 성추행을 당한 것에 대한 기억을 억지로 잊어야만했고 정말 기억상실이 나타난 것이다.책을 다 읽고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이라는 단어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크고 작다의 단순히 외형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꽃에 물을 주고 양분을 주면 쑥쑥 자라는 원리와 같이 큰 유진에게는 자신에게 양분이 되어줄 주변 환경이 존재 했고 작은 유진에게는 그런한 환경이 존재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큰 유진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고, 작은 유진은 꾸역꾸역 자랐던 건 아닐까.
「굿 윌 헌팅」 감상문 이라는 영화를 보고 윌이라는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또 이후에 그런 윌이 바뀌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윌이라는 인물은 왜 그런 반항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할까? 에 대해 나는 은연중 자신을 이해해주고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에 의해, 방어기제에 의해,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은연중 자신을 이해해주고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라는 생각은 내가 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니 아무도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 것 같고 세상이 날 이해해주지 않아 내 편이 없다고 느끼게 되면 반항심이 들어 그런 행동을 하게 될 거 같다고 생각했다. 윌이 스카일라와 말 다툼을 하는 장면에서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을 내비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 또한 부모님과 의견 차이로 인해 충돌하게 될 때면 세상에 정말 내 편 하나가 없는 느낌에 괜히 부모님께 말을 함부로 하거나 일부로 청개구리 같은 행동을 했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나의 마음속에는 부모님이 전혀 싫지 않고 그저 나를 조금만 더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니 윌도 나와 조금은 비슷한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알아봐 달라 소리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방어기제에 의해서라는 생각으로 먼저 방어기제란 두렵거나 불쾌한 정황이나 욕구 불만에 직면하였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자동적으로 취하는 적응 행위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나는 그 중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라는 말이 와 닿았다. 윌은 살아가며 크고 작은 많은 상처들을 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보호해 줄 울타리는 없었고 결국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윌에게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아 방어기제로써 스스로를 지키려 하는 윌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다음으로 사랑을 받아보지 못 해서라는 생각은 앞에서의 첫 번째 생각과 두 번째 생각이 윌의 마음을 헤아려보아서 나온 생각이라면 세 번째 생각은 윌이 그런 마음을 갖게 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유년 시절 가족에게 버려지고 폭행을 당해 심리적으로 위태로워졌기에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고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윌은 어린 시절에 애정 대신 받게 된 폭력에 의해 세상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그렇기에 자기만의 방식대로 벽을 쌓으며 방어기제를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다고 결론을 내었다.두 번째 주제 ‘그랬던 윌이 무엇을 계기로 마음을 열고 변화하게 되었을까?’에 대해 나는 공감을 받았기 때문에, 숀의 진심어린 조언 덕분에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위의 주제에서 말했듯이 윌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누군가 자기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역할을 숀이라는 인물이 네 잘못이 아니라며 윌에게 따듯한 위로와 이해하는 마음을 내 비추어 줬기에 수년간 자신을 주변으로 쌓은 차가운 눈덩이 같은 마음의 벽이 한순간에 사르륵 녹아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미래 세계의 이상적이고 이상한 사회를 그려낸 소설이다. 이 소설 속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 완벽히 통제된 사회, 그 속에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그러나 자유와 자아가 사라진 사회. 이 소설은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자유와 행복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소설의 도입부에서는 세계국가라는 거대한 정부가 지배하는 미래 사회를 보여준다. 이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철저히 계급에 의해 분류되고 계획되며 관리된다. 사람들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나며 그때부터 자신의 역할과 계급이 결정된다. 계급은 알파와 같은 높은 계급부터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과 같은 낮은 계급으로 나누어진다. 각 계급은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도록 계획되고 그에 따라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계급과 역할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이 사회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소마라는 약물을 통해 행복만을 느끼도록 철저히 관리되고 통제된다.소마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고통이나 슬픔을 겪지 않게 하도록 불쾌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먹는 약물인데, 이 약물은 감정을 억압하고 사람들을 평화롭고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덕분에 사람들은 늘 행복하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는 갈등이나 고통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평온하게 돌아가는 듯 보인다. 사람들은 고통과 갈등 없는 세상에서 자신에 대한 성찰과 성장을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소설에서 중요한 인물로는 버나드 마르크스, 존 더 세비지, 무스타파 몬드가 있다. 버나드 마르크스는 알파 플러스 계급으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신체적인 조건이 다른 알파 플러스 계급과 다르게 태어났다. 그래서 열등감을 느끼며 세계국가의 사회적 규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개인적인 불만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레니나 크라운이라는 베타 계급의 여성과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여행을 가기도 한다. 다음으로 존이라는 인물은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자란 인물로 세계국가의 규범을 비판하는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무스타파 몬드는 세계국가의 세계 관리자 중 한 명으로 사회의 최고 지도자이다.나는 이 소설 속에서 존과 무스타파 몬드가 가지는 생각의 대립점을 가장 흥미롭게 생각했다. 존이라는 인물은 앞서 말했듯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자랐고, 원주민 보호구역은 세계국가 속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고통도 경험하며, 자아를 찾고 살아간다. 그래서 존은이 사회에 처음 들어와 세계국가 질서에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며 놀라게 된다. 모든 사람이 소마를 먹고, 고통 없이 기계처럼 살아가는 것을 보고 이곳에서의 삶은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꿈꾸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 그들은 고통이나 갈등을 겪지만, 그 대신 그들의 감정과 생각은 사라지고, 그들은 그저 주어진 대로 살 뿐이야.” 존은 이러한 대사를 남기며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고통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다운 삶이라고 주장한다.그런 존과 대립되는 인물로서 사회 지도자인 무스타파 몬드는 사회가 왜 통제되고 고통없이 살도록 만들어져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인물이다. 그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고통을 없애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깊은 감정과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소마를 제공하고 감정을 억제하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무스타파 몬드는 ‘고통 없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이나 자유에 대해 생각할 필요 없이 사회에서 정해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말한다.하지만 존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회가 인간의 감정을 억제하고 자아를 억압함으로써 고통과 갈등을 제거하려 하는 방식은 잘못된 것이라는 걸 말이다. 존은 여러 감정을 자유롭고 다채롭게 경험하고 때때로 찾아오는 고통을 극복해 가며 성장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한 존은 이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의 형태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게 된다. 존에게는 자유의지를 잃은 채 고통을 피하고 편안하게 살아가기보다는 진정한 자유와 자아를 찾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멋진 신세계」는 우리가 행복과 자유를 어떻게 정의하고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고통과 갈등을 피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선택하는 삶이 행복한 삶인지에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고통과 갈등을 경험하며 자기 자신을 찾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오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이 소설은 단순히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를 넘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의 자유와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나는 이 소설을 크게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관점과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심리가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얼마나 어떻게 억압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멋진 신세계」 속 사회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철저히 제한된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계급과 그에 맞게 조건화되는 모든 과정 속에서 말이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계획되며, 사람들은 스스로 고민하거나 선택할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자유롭다고 생각할 때조차 실제로는 외부에 의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강제로 결정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세계국가 속 사람들의 생각의 반경은 사회가 만들어 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자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유를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존의 대사가 이 점을 잘 설명해 준다. 존이 말하는 자유는 단순히 외적인 자유뿐만이 아니라 내적인 성찰과 선택의 자유를 포함한 자기 결정권이다. 나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며 당연하게 생각하고 당연하게 따라 행했던 모든 일들이 어쩌면 이 사회가 규정한 틀 안에 갇혀 그 틀 밖은 생각하지도 못한 채 살아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자유의지가 상실된 사회는 아니더라도 개인의 자아는 사회적 규범에 맞춰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인간의 심리와 사회의 통제는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사회는 사람들의 행동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상태마저 통제한다. 소마라는 약물을 통해 심리적인 갈등과 고통을 없애고, 이로 인해 편안하고 인위적인 행복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게 만든다. 소마는 사람들을 무비판적이고 수동적이게 만들기 때문에 소마를 먹는 사람들은 고통 없이 일상을 누릴 수 있지만 그러한 소마를 통해 누리는 행복은 표면적이고 일시적일 뿐이다. “희망은… 똑 같은 길을 반복하는 것, 고통도 반복되지 않는다.”라는 무스타파 몬드의 말은 사회에서 개인의 심리적 통찰이 어떻게 통제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들은 회피하고 감정을 억제하는 것을 이상적인 상태로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