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를 읽고배롱나무꽃으로 매미소리로 여름의 정령들이 기특하게 지상에 찾아와 태양의 정원을 꾸미고 있다. 이 향그러운 계절을 배경으로 시집의 길이를 닮은 소설을 만났다. 책표지엔 풀길을 걸어가는 고개 숙인 소녀의 뒷모습뿐, 얼굴은 볼 수 없다. 끝내 소녀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것처럼.이 작품에 대한 각계각층의 찬사는 화려하다. 깊고 서정적이며 감동적인 섬세한 사랑, 문장의 정밀한 묘사로 유년의 신비와 고독과 애환등 원형적 감정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는.저자 클레어 키건은 이 책으로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양동이와 그 안의 물에 반사된 소녀의 모습이라는 이미지에 사로잡혀 이 책을 빚어냈다. 애정 없는 부모로부터 먼 시골 친척 부부에게 맡겨진 소녀가 지낸 짧고 눈부신 여름날의 페이지속으로 들어가 본다.일요일 미사를 마치고 아빠는 엄마의 고향 쪽으로 차를 몰고 소녀를 데리고 간다. 소녀는 분필을 칠한 듯한 구름을 본다. 이따금 작은 갈색 새 떼가 전속력으로 날아가 사라지는 모습도. 땅에 끌리는 수양버들이 보이고 아빠는 존이라는 분과 인사를 나누고 헬맷처럼 짧게 자른 머리를 한 아주머니는 소녀에게 입맞춤을 해준다. 산들바람이 마당을 가로지르고 아주머니는 빵 굽는 냄새가 풍기는 부엌으로 들어간다. 길쭉한 물잔에 꽂힌 프랑스 국화는 물 잔만큼이나 고요하고 어디에도 아이의 흔적이 없다. 이처럼 한 편의 산문시를 보는 듯 묘사는 고혹적이다.에드나 아주머니의 집에 맡겨진 소녀는 지금의 자신이 낯설다. 작가는 인물의 동작이나 사물이나 그림자묘사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어른들은 안부를 묻기도 하고 웅덩이처럼 고인 크림이 부어진 페이스트리 위를 보며 식사를 한다. 그리고 하얀 구름이 헛간을 넘어 다가오는데 아빠는 소녀의 짐도 안 내려 주고 가버린다.아빠의 말이나 행동에서 소녀의 마음이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녀에게 이곳에 가겠냐고 의향을 물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먹을 건 엄청나게 축낸다고 부부에게 소개하고 많이 먹는 대신 일을 시키라고 하는 무뚝뚝한 아빠. 그리고 작별인사도 없는 아빠는 전혀 살갑지도 다정하지도 않다. 소녀는 이런 아빠에게 익숙해졌는지 무덤덤할 뿐이다.아주머니가 소녀를 잔디밭과 텃밭이 보이는 방으로 안내한다. 불쑥 우물에 가보자는 아주머니 말투에 어떤 비밀이 있을 것 같았는데 모르는 일은 모르는 체로 지내자고 생각한다. 어른답게 놓아버리며 스스럼없이 적응해 버리는 소녀의 마음이 무던하다.둘은 밭으로 내려간다. 풀들은 은색으로 바람에 구부러지고 젖소들이 구경하며 풀 뜯는 소리 바람의 속삭임, 둘 다 말 없는 가운데 꼭 ‘과수원길’이라는 노래가 들려올 것 같다.소녀가 우물에서 마신 물맛은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맛이다. 소녀는 양가감정을 갖기도 한다. 나도 이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는데 언제부터였던가. 아마 사춘기의 혼돈을 겪으면서 감정의 분화가 동시에 일어나 안개 같은 몽롱한 눈빛으로 비칠 때가 찾아오기도 하던 것이었다. 동전의 양면 같은...소녀는 임신한 엄마와 언니들을 떠올리며 잠이 들었는데 모르는 사람 집에 자신의 딸을 보내지 않는다는 아주머니의 말이 잠결에 들려온다.가난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살피지 못하게 한다. 낯선 곳에서 서먹한 환경에 던져진 시간들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천사는 단비처럼 행운의 손을 내밀기도 한다, 킨셀라부부처럼.가난은 지혜라는 선물을 주기 위해 허락된다는 믿음을 견지하며 인내와 노력 그리고 희망으로 단단해지며 성장하는 것인지도.소녀는 일하는 아저씨를 부르는 일, 우편함으로 순록처럼 달려 편지를 꺼내오는 일, 텃밭에서 파를 뜯어오는 일등의 집안일을 하며 아주머니와 점점 가까워진다. 킨셀라 아저씨는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학교지붕교체 비용 마련을 위해 자선복권을 사기도 한다. 소녀는 점점 이곳에서 이웃들과도 친하게 지낸다.항용 작가의 묘사는 풀밭의 서술에 핀 들국화처럼 시적이다. 아저씨의 마음속 저 안쪽에서 커다란 문제가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느니 아저씨는 자기가 한 말의 파문에 갇혀서 있다느니. 날개를 가다듬는 창틀 쪽의 앉아있는 참새는 고양이 냄새를 맡았는지 불안해 보이고...해리레드먼드 부인이 킨셀라아저씨께 와달라고 한다. 초상집에 가본 적 없는 소녀도 갔다가 밀드러드 아주머니를 따라 나온다. 그녀는 킨셀라 씨의 아들이 늙은 사냥개를 따라서 거름구덩이에 들어가 빠져 죽었다는 사실을 들려준다.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죽은 아들로 인한 상처로 개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저씨는 소녀의 손을 잡고 바닷가로 나간다. 아빠가 한 번도 소녀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소녀는 힘든 기분이 든다. 소녀의 영혼은 무심한 듯 여름날의 열매처럼 차곡차곡 영글어간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결론도 내리면서.아저씨는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입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일러준다. 소녀는 부부와 함께 지내면서 심부름 잘하고 분별력 있는 모습으로 비친다.남동생을 낳았다는 글이 적혀있고 주말에 데려다 달라는 편지가 엄마로부터 왔다. 소녀는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 가방에 옷이랑 아저씨와 읽었던 책들을 넣는다. 물건을 모으면서 함께한 나날, 장소, 대화를 그리고 강렬한 태양의 얼굴을 떠올린다.아저씨는 이웃집 송아지를 낳는데 도우러 나가고 아주머니는 착유실로 나가고 소녀는 아주머니가 차를 마시도록 물을 뜨러 밭으로 나가고.
‘어떤 슬픔은 함께 할 수 없다’를 읽고 ?손택수지음 (시집)이 시집을 읽기 전에 붉은 빛이 여전합니까라는 시집을 먼저 읽었다. 삶의 기쁨과 경이를 외면하지 않고 나아가는 감각이 시가 주는 꿈이고 실제임을 알았다. 그가 그려낸 이미지 안에 어떤 사유가 용해되어 있고 동시에 그것이 삶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 자연스레 다음 작품을 만나고 싶었다. 시집을 그림 보듯 훑어보니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깃털처럼 가벼웠다.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 그가 펴낸 시세계로 들어가본다.손택수시인은 담양에서 태어나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서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우수한 문학상을 다수 받은 강인하고 노력하는 불굴의 시인이다. 시인의 말에서 잎들이 다 사라진 나무일 때 공중으로 뻗어간 뼈로부터 광대무변한 하늘의 엽맥을 발견하여 뿌리내릴 줄 아는 깊이의 시인임을 읽을 수 있다.이 시집은 총 4부로 되어 있다. 1부는 그 눈빛들이 나의 말이다, 2부는 우리는 해지는 너른 벌판을 함께 보았다, 3부는 겨울은 지상의 가장 오래된 종교, 4부는 순간의 발행인이라는 제목으로 딸린 수십 편의 시들이 서늘하면서도 아름다운 집을 이루고 있다.‘귀의 가난’이나 ‘머뭇거릴 섭’은 경청에 가치를 시에 기대어 들려준다. ‘저녁 숲의 눈동자’는 숲속에서 바라본 저녁의 풍경을 관찰해서 눈동자로 은유하여 표현한 시다. 시인의 프리즘을 통과한 저녁 숲의 스케치와 색감과 향기가 그대로 전해져 온다.‘한모금 물방울을 붙들고’는 지리적으로 먼 아프리카 부족의 경건한 어떤 관습을 상상하며 기억속에 떠도는 한 사람을 떠올린 시다. 전혀 다른 상황에서 유사함을 찾아내는 시안이 놀랍다. ‘11월의 기린에게’는 습작하고 싶은 첫 시다. 시행의 어미가 다정하고 공손한 어감을 준다. 옥탑방의 철제 계단에서 모딜리아니의 여인을 떠올리고 초원의 기린을 가져오고 안부를 여쭙고 시는 대체로 아름다우나 미처 용해되지 않는 시어들이 투박한 껍질처럼 수용하기 난감하기도 했다. 현대시의 민낯같이. 또한 시인의 불안한 내면을 엿볼수도 있겠다. 안부는 시인 자신의 존재를 묻고있으니.‘먼 집’은 외손인 시인이 시골집의 조부모중 한 분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썼는데 쓸쓸하면서도 정갈하다. ‘바닷가 수도원’은 시인의 종교를 짐작케한다. 이곳에서 피정을 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멋진 은유들이 시어를 조개처럼 만지게 하고 싶게 한다. 시의 연못에 몸을 맡긴 수련처럼 시의 연못에 잠길 수 있어서 행복한 오후가 저물어간다. 시가 건네는 축복의 선물이다. 필사하고 싶은 목록에 넣어둔다.‘바다 무덤’은 태어나지 못한 생명에 대한 상처의 기록이다. 시인부부의 아픈 기억을 시로 풀어내었다. 이러한 애도작업으로 시인은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졌을 것이다. 좋은 시는 고백의 기록이므로. 바다가 자장가로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져 주었으므로. 세상에 공표하여 실컷 눈물을 흘렸으므. 허나 시인의 고백은 여간 혹독한 일이었으리라 여겨진다.‘나무의 장례’는 나무를 벤 뒤의 모습을 세밀히 관찰하여 쓴 시다. 이 시편에서도 어떤 유사성이 있는 낯섦의 표현은 현대시의 단골이다. 가지 하나가 당신이라는 비유로 시는 맺는다. ‘흰 바위산의 약속’은 산정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 그가 나일수도 있다고 오르고 또 오른다. 늘 빈자리로 남아있는 산정에서 쓴 간결한 일기같은 소품이다. 시인은 나라는 유기체가 통합된 유기체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들로 시인은 자기를 겨우 지켜내지 않았을까.‘밥물 눈금’은 가난의 쓸쓸함을 풍긴다. 가난한 지붕들이 내 손가락마디에는 있다라는 시행들이나 한 끼라도 아끼려고 친구 집에 마실 가던 소년의 저녁도 떠오른다라는 문장들에서...시인은 자존심도 시를 위해 꿈을 위해 다 내려놓고 쓰는 것 같아 시인이라는 실존에 대해 다시 헤아려보게 된다. 나만의 철학이 있지 않으면 이 생태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 주춤하게 만든다.‘이력서에 쓴 시’는 이력서를 시처럼 쓴 지나온 기록이다. 시인의 내력을 고백하는 용기가 시를 읽힐 수 있다니 누군가의 공감을 살 것이다. 시련의 길목을 지나는 이에게 작은 힘이 될 듯하다, 등대처럼. ‘모과의 방’은 모과 향을 따라 펼쳐지는 시인의 심상을 따라가는 길이 아주 유쾌하다. 마치 마술사의 마술을 보는 것같다.‘세잔의 방’은 섬세한 관찰을 통해 시어로 복원해내는 시력이 감탄을 자아낸다. 한번쯤 향기의 방향이나 행방에 대해서 상상해본적이 있으나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글로 표현한다는 것을 그저 희망사항으로 남겨둘 뿐이었는데 시어로 안착시키기에는 묘연했는데 이 시에서 그 안개같은 현상들을 시어로 투명하게 그려내주고 있다. 시인의 시 쓰는 경지는 구름 위에 닿아있는 듯. ‘반고흐 생각’은 화가에 대해 이야기하다 돌연 방향을 틀어 시인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환부라는 유사점을 연결고리로 만들어서.‘의자 위에 두고 온 오후’라는 시는 사람이나 흔히 보는 비둘기나 길고양이에게도 세심하게 배려하는 시인의 감수성을 느끼게 한다. 자꾸 입가에 미소마저 돌게 하는 농담이 스며있기도 한다. 그런데 마지막 연에서 떠나온 자리에 두고 온 몸을 문득 생각하는 시인, 유체이탈의 이 불안한 그림자는 영 서먹하다.‘함평’은 갈대를 타고 올라가는 게를 사람들이 양식으로 채취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갈대처럼 나도 술상 맞은편을 향해 솔깃하게 휘어졌을 것이다라든가 비문이 된 문장이 나를 비문으로 만든다/갈대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달밤의 게들 향수병을 앓게 한다라는 문장은 달이 강변의 배경을 돋보이게 하듯 그렇게 한다. 이 강변으로 달려가 한 컷 찰칵하고 싶다.‘어떤 슬픔은 함께 할 수 없다’는 혼자서 중얼거리는 사람이 슬픈 사람일거라는 사유를 지니게 하는 시다. 바로 시인의 현실이었으리라. 자유롭지도 않으면서 고립돼 있기까지 한 이 삶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누구나 이런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일이 잘 안풀릴 때가 그때 이 시는 보편적인 이해를 얻으리라. 고립되어 있는 슬픔을 건너가는 힘이 되어주리라 믿어본다. 시는 힘이니까. 때로 구원이니까.‘눈사람’은 대상을 대하는 시각을 바꿔 쓴 역발상의 시다. 눈사람이 눈을 치운다고 했으니. 눈사람이 나를 뭉친다고 했으니. 또 마지막 연은 빗자루가 펜/백지를 넘긴다는 상상의 작위는 한계를 잊는다. 눈을 가지고 노는 아이가 추위를 잊은 것처럼.‘동백에 들다’는 1에서 28이라는 숫자로 이어진 연작시 형태의 산문시다. 그 중 22라는 숫자로 된 시편은 필사하고 싶은 인상적인 시다. 물고기의 얼음을 홑이불로 비유한 표현이나 겨울은 지상의 가장 오래된 종교라는 문장은 신선하며 경이롭다. 26의 산문시도 담아두고 싶은 시다. 화장할 때 마지막으로 남아 타는 것이 심장이나니 심장만 남아 꺼져가는 불을 지키고 있다고, 재가 묻은 심장, 나 지상을 뜨고 자취란 자취 까무룩히 잊힌 뒤 무슨 그리움이 남아 닫은 눈꺼풀 커튼 젖히듯 잠시 떠보고 싶을 때/로 끝나는 문장들은 아득하고 먼 곳을 바라보게 하면서도 우주의 섭리에 이슬처럼 젖게 한다. 인생의 허무와 그 뒤편을 짚어보게 한다.28의 시를 보겠다. 방파제 끝 등대에 그리운 이름 하나 새겨놓았더니 그 이름 파도에 쓸려가버렸다 떨어져나간 페인트칠 따라 흔적도 없다 방파제 끝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갔던 저녁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 지워진 이름이 점등을 한다/ 바다로 간 이름이 바다를 비추고 있다여기까지 읽으면서 감탄이 절로 흘러 나왔다. 젊은 현대시인들에게서 볼 수 없는 삶의 비의같은 탁월한 이미지로 된 문장들에게서. 그래서 시인들이 이 시집을 뽑아 세워 고산문학상이라는 큰 상을 수여했구나!‘동탄’이라는 부제의 연작시가 이어진다. ‘제비집’-동탄1은 허물어진 집자리의 흔적을 못잊는 제비나 신도시로 바뀐 고향땅을 못잊는 사람이나 떠돌기는 마찬가지다. 늙은 개이야기가 실린 ‘입춘첩’은 복수초가 피어 봄을 알린다. 동탄9까지 계속 이어지는 시는 마치 여행장소를 거쳐가며 구경하는 것처럼 다채롭구나.
‘심장에 가까운 말’을 읽고 ?박소란지음 (시집)올해의 현대문학상에 박소란시인이 수상했다. 그녀의 시들을 읽으면서 흥미로웠고 다른 시들도 찾아 읽고 싶었다. 이유는 몽상이 화려하게 펼쳐지기보다 일상에서 시를 찾아내어 미의 세계를 빚어간다는 점이 돌올했다. 내가 추구하는 시 쓰기의 방향과 일치했다. 난 일상이 모두 시로 되는 지점을 소망했다. 그러던 차에 이 시인의 시들을 조우했으니 기쁜 일이다, 생일처럼. 하지만 아쉬운 점은 나비가 훨훨 춤을 추듯 유려하거나 삶을 못견디도록 정답게 그리거나 그런 향기까지 바란다는 것은 나만의 미흡한 착각일지도.시인은 경남 마산에서 자라고 동국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문학수첩으로 등단했다. 시집의 차례를 들여다보면 제3부로 되어 있고 총 52편의 작품이 수록되어있다.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었을 그녀의 창작품은 수 시간의 집적인 독서와 습작의 결과물이리라 여겨본다. 보이지 않게 고단하고 외로운 시간들을 너끈히 견디며 홀로 시와 지낸 산물일 것이다.‘노래는 아무것도’를 보면 2연/한 시절 누군가의 노래/ 심장 가까운 곳을 맴돌던 말//에서 제목을 가져온 것 같다. 시인은 아프면 좋겠다고 시를 맺는다. 아픈 것이 삶의 비의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인가.‘나의 고양이가 되어주렴’은 검정 비닐봉지를 나의 텅 빈 마음과 고양이로 오버랩시켜 시적 형상화를 거둔 시창작법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매력이 있다. 특히 마지막 연이 씁쓸한 마음의 상처를 상기시킨다.‘없다’는 제목이 단정적이다. 우체통이 소재가 된다. 이곳엔 주소가 없고 집이 없고 나른한 하품이 없고 울음이 없고 짖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이 사물에 대한 속성들을 여러 각도로 묘사하고 직접 교감의 행위들을 펼쳐 보인다. 시인은 울지 못한 짖지 못한 우체통이 되어 우체부인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 짐작으로 확신에 찬 듯.‘참 따듯한 주머니’는 필사하고 싶다. 길바닥의 십원짜리는 값싼 화장이 뭉개진 작고 동그란 얼굴을 한 시인이기도 하고 바닥에 닿은 결핍의 누군가이기도 하다. 십원을 주운 주머니는 참 따뜻하고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고 시인은 말한다. 기다릴 수밖에 없겠지 기다림이 기다림의 잃어버린 모양을 문득 알아볼 때까지//라는 연은 뭉클하다. 이 세상 지금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찾아온 위안같다.‘배가 고파요’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계유지를 위한 삼계탕집 인부로 지닌 노동에 관한 이야기다. 어머니의 노동을 생각하며 삼계탕을 먹어도 마음의 허기는 가시질 않는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절절히 배어있는 좋은 시다.‘베개’를 의인화해서 감정이입을 시킨 작품이다. 슬픔으로 베개를 흐느끼게 한다. 베개는 시인자신의 감정 상관물이다. 곁에 잠든 이는 무심하다, 나의 감정에는. 베다라는 말은 베이다라는 말처럼 아픈 밤이 스며있다는 것도 알았다.‘장(葬)’은 멍에서 출발해 멍에 도착하는 수미상관식 시쓰기에 성공했다. 최승호시인의 ‘북어’가 떠오르고 이 시에서 식탁에 오른 생선을 시체라고 묘사한 부분처럼 시인들의 생각은 비슷한 것 같다. 시의 이미지가 엄숙하고 생을 다른 각도에서 헤아려보게 해서 감동이었다.‘그녀가 참외를 깍을 때’는 필사하고 싶었다. 지인의 노란 웃음이 가득 풍긴다. 그것을 먹는 사람들, 시간을 잊은 산처럼 머물고 싶다는 아름다운 풍광의 기억은 내게도 있다. 그런데 참외의 기다란 허물속에 작고 심약한 날벌레가 몰래 우는 것을 시인은 바라본다. 시인의 눈이 섬세하며 아프다, 그 가녀린 날벌레의 상한 심정처럼. 참외의 껍질을 허물로 표현한 언어의 감수성도 빼어나다.‘돌멩이를 사랑한다는 것’도 필사하고 싶었다. 이 시는 해석에 헤매이게하는 부분도 있지만 일상을 사랑한다는 것, 만나는 이웃을 사랑하기, 우연히 날아온 무엇에 맞아 피흘리더라도 궁지에 몰린 사랑,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노인’은 칠이 벗겨진 버려진 밥상을 노인과 동일시한다. 밥상에 대한 묘사가 세밀하다. 생의 비의를 드러낸다. 시인의 시안이 이쯤되면 범상치않고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신기할 따름이다. 필사하고 싶은 시가 자꾸 늘어만간다.‘다음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다. 제목이 참 심심한 듯 의미심장하다. 지금이 아닌 다음에의 기약을 상상하며 당신의 부재를 견디는 시다. 그 부재의 이유는 추측으로 여운을 자아낸다.‘메리, 메리’는 어릴 적 잃어버린 새끼 푸들의 이름이다. 간밤에 죽은 할머니를 만나고 출근을 하고 검은 양복의 모자, 어릴 적 잃어버린 새끼 푸들, 뉴스, 조문이라는 글자, 흉몽이라는 시어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시의 종결에서 큰소리로 기분이 좋아 노래하며, 창밖의 할머니는 웃으며 손짓한다. 메리를 부르는 처음과 끝이 수미상관식 기법이다. 삶에서 죽음의 기척을 느끼게 해주는 섬뜩한 시다. 이렇게 느끼며 사는 것도 필요할 듯 싶다.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가 이런 기척을 전해줄 수 있어 특별하다. 저쪽을 들여다 보게 한다. 마치 저녁이 오는 쪽을 향해 창문을 열어 길을 내다보게 하는 것처럼.‘울음의 방’은 울지 않아서 슬프다는 시인은 스무살 꼬깃해진 표정을 가방에 밀어 넣고 싸구려 자취방에서 살고 있는 울음을 만난다. 엄마가 죽던 밤, 사랑이 외면하던 마지막 순간에도 곰팡이의 방에서 울음은 아프다. 방에서 어디론가 떠나버린 말수가 적어 겉돌기만 하던 시인의 울음은 행방이 묘연하기만 하다.‘체념을 위하여’는 얼마전 가족의 장례를 치르고 난 나에게 매우 와닿는 시다. 어머니의 장례, 애인의 뒷걸음질, 시험에 낙방하고 난 뒤 찾아 나선 낯선 가게의 일자리 그리고 체념을 신앙으로 경배한 그녀의 시. 이렇게 시는 그녀의 삶을 침묵으로 살 수 있게끔 지탱하여 준 힘이구나. 시가 시인을 구원해 주는구나. 독자인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주관적인 고통을 위로받고, 일반화하게 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서 시는 시인이나 읽는 이에게 모두 사랑이구나.‘주소’는 단시다. 읽으면서 시인의 자괴감이 축축하게 묻어나온다. 마치 비를 맞고 선 거리의 풀잎들처럼. 그녀의 앞날이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시에게 빌어본다.‘기침을 하며 떠도는 귀신이’에서 시인은 싸락눈, 신법사 앞을 지날 때 기침을 하며 떠도는 귀신이 붙겠다는 중얼거림을 듣는다. 정종, 도둑고양이, 피가 흩뿌려진 길, 등짝을 치는 바람을 지나 자취방으로 들어온 시인은 헛기침이 돌고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밤을 맞이한다. 이 시의 이미지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비애나 절망이나 음울함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때가 있다. 이런 불투명한 어두운 단어들로 도배될 때가 있다. 아마 시인도 이런 힘든 시간을 이렇게 시를 매만지면서 건너왔나보다. 시에 기대면서.‘경에게’는 친구가 속한 현재 생활의 비애를 그리고 있는 통속적인 시 같은 느낌이다. 약간 휘황찬란한 뒷골목의 세계에서 쓸 법한 퇴폐의 언어를 시속에 구겨 넣은 것 같은 이 황당함마저도 시는 허용하고 묵인한다. 시의 가슴은 떠도는 먼지도 포용한다. 점점 시의 개념이 시를 읽을수록 늘어나는 이유다.‘통속적 하루’는 필사하고 싶은 좋은 시다. 낙막이라는 시어는 어감이 좋다. 외롭고 허전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 맹목이라는 시어는 어떤가. 사물을 볼 수 없는 눈이라는 뜻이다. 어둠의 그늘이 조용히 내리는 저녁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뭔가 사랑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심경을 바깥 늦가을의 풍경에 빗대어 표현한 아름다운 시다. 감정을 묘사로써 잘 드러낸 듯하다. 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다. 헝클어진 감정을 적절한 이미지의 옷을 입혀 백지에 등장시키는 일은 마음의 정화요 삶의 오롯함일 것이다.‘약국은 벌써 문을 닫았고’는 해 저문 거리에서 시인은 아프다. 약국은 닫았고 시린 이마를 짚어주는 붉은 이는 누구인가. 그도 없는 하루의 끄트머리에서 이리도 초췌하거나 절룩거리거나 온통 암흑이지 않는가, 밤하늘에 별도 달도 잊혀져버린 것 같은 지친 시인에게는.‘망명’은 참혹하다. 이렇듯 과격한 시어들과 문장들이라니. 모국의 절망을 넘어 망명을 가고 싶은 그녀의 심정을 차마 지켜보기 힘들다. 시는 다채로운 시인의 심정을 어디까지 견디며 아름다운 문장의 숲으로 걸어갈 것인가.‘미자’는 불광천의 눈내린 밤 거리를 거닐다 문득 누군가 휘갈겨 쓴 이름인데 이름을 사랑한 선득한 고백을 따라 시인의 상념은 이어진다. 돌이켜보면 사랑이란 이름의 무수한 날들은 하나같이 사랑 밖에 객/사했듯이 눈의 계절이 저물면 저 아픈 고백 또한 질척이는 농담이/ 되고 말 일//이라고. 사랑을 무화시키고 있어서 허무감이 짙게 몰려오는 것 같다.‘나프탈렌’이라는 제목은 울음이 다 닳도록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안녕을 연습하는 일/ 이라는 연과 공통점이 보인다. 또 마지막 연의 이별의 냄새를/ 내가 맡는 일/ 잠시/ 쓰디쓴 웃음을 머금는 일/처럼 시인의 쓸쓸한 심정이 차츰 나프탈렌처럼 삭아가면서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희망의 빛을 떠올려본다.‘김밥천국’은 연인이 버스승 강장 옆 가게에서 밥을 먹는 풍경을 그렸다. 일상의 풍경 한 대목을 묘사했다. 소시민의 어느 12월, 바깥에서 허기를 달래는 모습이다. 시인은 이를 놓치지 않고 시의 그릇에 담아 지면에 내놓는다. 참 시가 정겹다.‘안부’는 필사하고 싶은 시다. 소도시 원룸의 아버지가 건네는 인사에서 작별을 떠올린다. 그리고 안녕하지 못했던 날들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본다. 그렇게 일장춘몽으로 나날은 흘러간다. 그래서 시인은 유언을 적어두었다. 생이 너무 꿈같이 잡히지 않아서.
‘봄밤은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최지은 (시집)우연히 본 시집 표지가 참 예쁘다. 제목도 서정적이면서도 아쉬움을 담고 있다. 이제 곧 여름이 시작된다. 며칠 전 시인들의 시작(時作)에 얽힌 에세이를 읽었는데 거기서 최지은 시인의 시 쓰기에 관한 습관이나 방법이나 동기 등이 관심을 끌어 이 시집을 접하게 되었다.시인은 2017년 창비 신인 시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의 구성은 총 4부로 되어있다. 제1부는 이 꿈을 어떻게 끝내야 할까에 수록된 8편의 시와 제2부 한없이 고요한, 여름 다락에 포함된 14편의 시와 제3부에 듣고 싶은 말이 들릴 때까지에 들어있는 16편의 시와 제4부 나만의 장난을 이어갑니다에 실린 9편의 시이다.‘폭염’은 일요일 오후에 거북이, 새우, 올빼미떼, 개들이 등장하는 시로 소란하고 열띤 이미지가 감돈다. 제목과 잘 어울린다. ‘칠월 어느 아침’은 낳아준 어머니의 꿈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여름이 열리고 다시 지금으로 옮아와 생일을 맞이하고 어머니의 부재로 짧은 꿈은 숨겨두자는 어두운 아침이다. 시적 화자의 어둡고 아픈 감정이 고스란히 다가온다. ‘우리들’은 심야버스에서 지난날의 회상인 듯 우리들(가족)이 기다리고 딸기, 잠자리 그리고 죽은 검은 개가 등장하고 꿈을 꾼 듯 시는 끝난다.‘전주’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전주에 아버지의 방은 물이 차있다. 안으로 고인물, 상한 냄새나는 물, 그 물은 무엇인가? 슬픔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같은. 일이 난 지는 보름쯤 지난 상태라고 했으므로. 죽음의 이미지를 물로 그리고 있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부고’는 필사하고 싶은 시다. 일요일의 정오, 수건에서 풀내음, 방바닥은 숲의 언저리같아 숲으로 가는 시인의 상상력이 펼쳐진다. 가느다란 비, 직박구리, 너는 손을 내밀어 새를 불러 앉히고 물가에 놓인 작은 베개, 꿈속으로 들어가고 목소리, 큰 독수리, 흰꼬리수리, 헛간문이 날아오는 것처럼 큰 독수리, 그리고 직박구리, 다시 꿈밖으로 돌아오고 숲과 흐느낌이 묻은. 아버지, 그의 검은 개, 성당에서의 부모의 결혼, 그리고 생활, 아버지의 홀피뎀, 꿈 속의 아버지 다시 현재 그리고 홀로 남겨진 검은 개의 주소는 어디? 꽤 긴 산문시다. ‘메니에르의 숲’에서 메니에르는 현기증 발작을 일으키는 병이라 적혀있다. 이 시도 아버지를 향하여 쓰여졌다. 망원동의 눈이 내린다. 너는 책을 읽으며 오후를 지나간다. 숲을 걷는다. 순록, 물속, 통나무집, 이 세상에 부재의 아버지가 나타난다. 시적 화자는 2인칭의 너를 등장시켜 그 너로 하여금 꿈결에선 듯 아버지와의 기척을 그린다. 시적화자와 너는 동일인이다. 이런 시적 기술이 난해함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또 다시 꿈으로 돌아가고...... 할머니, 신비로운 그 숲,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시적화자는 아버지를 잊지 못하고 의식속에 살아있다는 울먹거림이 전해진다.‘밤, 겨울, 우유의 시간’은 검은 개와 겨울밤에서 꿈속으로 잠기는 1인칭의 시적화자, 꿈 속의 노젓는 아버지, 물, 물고기, 어둠, 아버지의 죽음. 함께 우유를 나눠마시는 아버지의 집, /막히는 보름달, 한 쪽 뿔이 없는 노루 한 마리, 검은등 할미새, 호랑지빠귀, 강의 부빙 위로 내려 앉는 눈의 소리를 듣는다. 숨은 검은 눈의 동물, 사랑을 찾는 양서류, 잠든 이끼들, 아름답고 두려운 숲, 눈 내린 숲속에 붉은 여름 자두 하나 눈에 들어왔을 때 내가 만든 꿈, 겨울, 시, 나의 어둠을 알아챘습니다./이 연은 참으로 아름다워서 거의 그대로 베껴둔다. 그리고 곤줄박이가 꿈속의 자두를 찌르고 달아나고 미미한 자두의 맥박을 느끼고, 천장에 매달린 아버지를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보고 다시 꿈 속으로 데려간다. 아버지에 대한 상념이 시를 쓰는 힘이라고 해도 될까. 줄곧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나는 시적화자의 심정이 느껴져 애달프다.‘구름숲에서 잠들어 있는 너희 어린이들에게’는 미모사, 할머니의 여름 속에서의 시적화자는 그 풍경속에서 박새소리를 듣는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애틋함을 시의 이미지 묘사일곱’은 자두가 있는 빗방울이 있고 새로운 뼈가 돋을 것 같은 오월이 있으나 어쩐지 불완전한 시기다.‘열세살’은 언니와의 추억이다. 들키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물고기는 여전히 물음으로 읽힌다. 소녀는 물고기 꿈을 꾼다. 시인에게 물고기는 불가분의 관계인 듯 마치 혈연처럼. ‘한없이 고요한, 여름 다락’ 제목이 마치 한 행처럼 되어 있다. 시적 화자는 고요한 여름 다락에서 못다 이룬 어머니와의 정을 상상속에서 나누는 꿈을 꾼다. 열네살 여름 속에서 꿈을 꾸다가 여름 구름을 녹이는 소낙비처럼 꿈이 끝나고 포돗빛 하늘 해가 지고 금빛 구름은 눈이 부시고 어머니의 소리 없는 목소리에 잠이 들고 여름은 꿈처럼 깊어간다는 시적화자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사무친다.‘시리즈’는 학창시절을 회상한 듯하다. 운동장, 당번, 미술시간, 음악실등의 단어들에 배열순서에 따라 전개되고 일기장, 너와 내이름 바꿔적기도 하던 친한 친구를 떠올린다. ‘여름’은 아이들, 체육복, 물방울 등의 단어들은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그 물방울은 상큼한 여름을 은유하는 듯하다. 두 번째 제목인 ‘여름’은 노란귤의 금빛 석양, 친구와의 대화, 우정의 시간들을 그리고 있다. 석양이 그려진 작은 수채화 같다. ‘여름이 오기 전에’라는 시는 산문시다. 큰 엄마의 태몽, 돌아가신 할머니의 꿈, 여섯 살 시적화자의 추억이 어린 시다.‘한낮의 에스키스’에서 에스키스는 밑그림이라는 뜻이다. 시인은 대낮의 그집 그안에서 보냈던 그녀의 숨소리를 떠올린다. 한사람 눈감으면 이 세상에 없는 그사람을 회상한다. 언제까지 추억속에 머물 듯 한 그의 내면이 시속에 펼쳐질것인가. 어떻게 시인은 현재를 살아가는지 궁금할 정도로 몽상의 시학은 추억속에서 날아다닌다. ‘벌레’는 자매들이 다정히 살아가는 시간, 물위에 집을 짓고 사는 벌레들 그 추억의 한때를 그리고 있다.‘열다섯’은 전학가서 혼자 집에 있을 때 새엄마의 책갈피 자목련 꽃잎을 찢은 일을 떠올리며 소리없는 오후에 시를 썼다라고 마지막 행을 썼다. 아마도 시인의 추억은 시 지나간다.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면서, 아마도 시인은 태어나기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일지도. 태몽이전의 상태, 무의 존재, 자연의 일부로. 시인의 상상력이 활달하여 필사하고 싶은 시다. 중간에 여백도 없고 문장부호도 없고 시어들이 행도 연도 무시하고 마구마구 엠블런스가 신호등을 무시하듯 소리없이 달려간다. 마치 바람에 실려가듯. 즉흥적인 시같은 신명나게 쓰여진 시의 속력을 닮고 싶다.‘불면’은 두 행이다. 봄밤처럼 짧다. 시사하는 이미지가 선명하다. 마치 한 장의 그림처럼. ‘기일’은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쓴 시다. 시인은 보육원에 잠깐 맡겨진 것일까. 원장선생님의 빨간 금붕어를 눈뭉치 속에 숨긴 걸 보면. 시적화자는 눈뭉치속에 몽상을 펼쳐나간다. 눈이 내리듯 이어나가는 시인의 몽상은 거침이 없다. 눈뭉치속에 아버지를 기다리며 아버지가 타고 있는 배 버스 기차를 집어 넣고 아버지와 함께 산 풍남동 두 번째 집도 넣는다. 눈이 내리는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목소리’는 꿈 문으로 들어간 시적 화자가 아기 코끼리, 아기 사슴, 하얀 토끼, 파란 토마토가 된다. 또 나는 새벽, 구름, 계곡, 돌멩이, 이끼, 연잎 위 버려진 맹꽁이 알, 동백 열매 껍질, 상한 이파리, 아홉 번 죽고 열한번 째 다시 태어난 나비, 고양이의 분홍빛 혀가 홀짝이는 여름비,언 호수 아래 눈 뜬 물고기, 해질녘 떠돌이 개, 곱슬머리 여자애까지. 목소리는 시적 화자의 내면의 소리다. 죽은 아버지의 등돌린 모습이 보이고 상상은 막을 내린다. 아버지에 대한 회상은 줄기차다. 마치 눈내리는 겨울날의 어떤 때처럼......‘삼나무숲으로 가는 복도’는 길잃은 제이는 삼나무숲 이국의 국립공원에 있다. 간밤의 통화를 되짚으면서 시적 화자는 숲을 상상하고 제이를 끼어 넣고. 아버지의 장례식장 복도를 떠올리고 지금의 버스안에서 제이는 되살아나고 계속 숲속의 비비추는 따라다니고 제이는 횡설수설 나란히 걷고 이것이 시의 전부다. 그래서 제목의 복도는 아버지의 장례식장 음을 쥐고 서있는 화자는 계속 죽음 냄새를 맡고 얼음의 냄새가 몸안으로 흐른다고. ‘히어리의 숲’은 호숫가의 안개가 꿈으로 흘러들었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할머니에 대한 상상의 단초이다. 이 봄바람 속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히어리의 숲. 잊으라는 할머니의 조언.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 미래의 노파는 시적화자인가.‘유월’은 화초를 묻고 오는 길에 쓴 시다. 시적 화자는 1인칭 나로 다행히 상상이 가벼워서 읽기가 무난하다. 참새 한 마리가 /바람이 많이 불지요‘라고 했는데 메리 올리버의 시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 어감을 시인은 다정하고 연악한 풍금소리나 조그맣고 가벼워서 멀리 날아갈 것 같은 그런말이라고 한다. ‘눈 내리는 병원의 봄’은 짧다. 할머니의 병상일지의 한 순간인 듯 싶다. 시인에게 할머니는 엄마의 품 같은 존재같다.‘창문 닫기’는 새벽 한 시에 창문으로 본 아파트 놀이터에 보랏빛 물고기를 보고 내려가고 물속으로 잠기고 수면위로 라일락 그림자가 일렁이고 부모의 얼굴이 떠오르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자 물이 되어버린 내가 배고픈 고양이, 어린이, 쌍둥이할머니, 토마토, 하얀 달, 피아노가 물위로 떠오르고.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고 시를 쓰고. 이 시는 시집의 제목이 담긴 시다. 창밖에 보랏빛 물고기가 맴을 도는데 봄밤은 끝나가고 시는 너무 짧다고 한다. 시인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깊은 것인가, 넓은 것인가.‘하나의 시’는 꽤나 난해하다. 숲에서 혼자 우는 아이, 보는 사람 없이도 울고 있는 아이는 시인가. 시는 웃음보다 울음쪽으로 기우는 것 같으니까. ‘내 뒷마당 푸조나무 위로 눈이 내리고’는 일곱 살의 시절로 돌아간 화자의 눈에 비친 새엄마의 매질로 몸안으로 손가락이 돋아난 그 시절을 회상한다. 가슴속 손가락으로 푸조나무를 어루만지고 상상의 날개를 펴고 접어 다시 꿈을 깨고 온종일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시인의 기억은 언제 끝날는지.‘기록’은 구름을 그리면서 소녀를 생각한다. 그 소녀의 이마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얕다.
‘햇볕쬐기’를 읽고-조온윤 우연히 묵시라는 시를 읽었는데 느낌이 마음에 와 닿았다. 요즈음의 난해시 답지 않게 읽기가 수월했다. 일상을 시로 형상화 낸 기술이 좋았다. 나도 이런 시를 꿈꾸고 있었으니까. 삶의 모든 것이 다정다감한 시로 변신하기를 염원했으니 이 시가 눈에 꽂힐 수 밖에 없었다. 시읽기는 계속 될 것인데 다음 시도 지향이나 모색하고픈 지점에서 만난 시편이 될 것이다. 독서는 매양 이렇게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었다. 제1부는 11편이 제2부는 10편이 제3부는 8편이 제4부는 8편이 제5부는 8편으로 된 45편의 시들이 실려있다.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났고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당선되며 시작활동을 했다. 다음의 시집을 기다려본다. ‘날개뼈’는 1연에서 결론을 나머지 연에서 수식하는 연의 도치법으로 되어 있다. 신화적인 서사가 숨겨져 있으나 조그마한 것에 기울일 줄 아는 따뜻함이 있다. 태양에게 다가갔던 이카로스의 죽음은 공양의 의미로 전환되었다. ‘묵시’는 첫 연의 날씨 이미지가 신비롭다. 자문자답의 형식이 흥미롭다. 나의 왼손입니다로 끝맺는 이 시는 필사하고 싶다. 오랜만에 시에서 온화한 체온을 느껴본다. ‘휴일’은 물음으로 시작한다, 느닷없지만 미적이다. 마지막 연에서 나는 창세를 기다리는 풍경화입니다라는 구절은 모네의 수련 연못처럼 인상적이다. ‘중심잡기’는 거룩함쪽으로 기우는 시라고 해도 무방하다. 3연에 햇빛 쬐기라는 시구가 나오는데 이 시집의 제목이다. 맨발로 시작하여 젖은 발로 끝나는 수미쌍관법의 시라고 해도 괜찮다. 필사하고 싶다. ‘원주율’은 타인과의 포옹으로 차례가 오면 자연스레 원주율이 되는, 온기를 담은 희박한 상상력의 쾌거로 여겨진다. ‘그림자 숲’은 언어의 기교적인 면이 농후하다. 그러면서 상세히 시상을 집중한다. 눈을 뜨지 않아도 눈꺼풀 너머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심안인가. 새를 기르지 않아도 새를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빛과 산책’에서 시적 화자는 빛에 대한 명상을 한다. 맹인이 감지하는 빛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며, 오늘은 빛과 함께 산책을 하네라고 마지막 연을 놓는다. ‘단체 관람’은 상상이 만들어낸 비유와 상념이 흥미롭다. 그냥 스칠 수도 있는 평범한 상황을 시로 만들어낸 탁월함이 다정하다. 내가 원하는 시쓰기의 방향과도 닮아서 애정이 가는 시다. 어찌 신대륙같은 소재만이 이 세상을 사랑하게 하겠는가, 이런 미소한 일상이 쌓여 시로 보여질 때 세상을 다정하게 하는 것을 쓴다라고 믿고 싶다. 일상은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 되고 가치로운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꿈을 향해 조급해하는 우둔한 마음에 들려주고 싶은 시다. ‘다른 차원에서 만나요’는 시의 제목이 문장으로 되어 있다. 이 시는 오독으로 읽힌다. 안타깝다고 쓰지 않겠다, 시에게 미안한 말인 듯 싶어서. ‘토르소’는 그로테스크하다. 실패작들로 미완성의 나로 이어지는 시의 맥락은 호감이 간다. ‘회심’은 ?해도라는 어미가 반복 등장하여 리듬을 불러 일으킨다. 부정이나 의지를 이어지게 하는 함축을 가진 어미다. 죄에서 기도로 시상은 물이 흘러가듯 막힘이 없다. 삶이 과정이듯 기도는 진행중이다. 2부의 시편들은 연인과의 쓸쓸하고 아름다운 시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림자 무사’에서 제목이 만화같다. 그림자와 나란히 걷고 싶어하는 마음은 그림자를 수용하는 것으로 해석 된다. ‘더빙’은 두 연만 제외하고 한 행이 한 연을 차지하는 단시다. 대체로 수정되거나 보충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의 말이나 행위가 삐걱이는 느낌을 주는 제목의 시다. ‘사랑의 기원’은 연인과의 한때에서 시상을 전개하며 신이 남녀를 창조하는 기원을 살피고 사랑하기 위해 높이 동전을 튕긴다. ‘불행연습’은 불행과는 상반되게 시상 전개는 경쾌하리만치 활달하다. 조 시인의 상상력을 따라가다보면 시에서 다루어지지 못할 지경의 경계는 없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몽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매혹적이다. ‘증후군’은 잔잔한 선율이 흐르는 실내악같다. 같은 공간에 같은 기분으로 살아가는 달큼함을 자긍하는 시적화자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증후군이라는 어감 대신에 찔레꽃향기라고 제목을 칭해도 될 듯 싶다, ‘유리 행성’은 기억속의 너가 안경을 낀 모습이라고 할까. 우리는 언제나 같은 문을 열고 같은 너머를 열고 같은 빛을 향해 걸어간다, 갈등이 비껴간 빛의 시간으로. ‘끝과 끝’은 시작이 끝이고 그 역도 성립한다. 단순한 이치를 시로 만들어낸 창작의 노고는 온전히 시인의 담당이었을 것이다. 뒤의 두편의 시에서 오독이기도 난해하기도 한 부분은 그냥 넘어뛰기로 한다. ‘백야행’은 빛에 관한 내용이다. ‘콘크리트 산책법’에서 시간은 모래성같다라고 속삭인다. 제3부에 담긴 시편들을 살펴보면 ‘오존주의보’는 환경오염에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계절산책’은 구름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이 참신했다. 시인의 상상력은 고착화된 나의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는 효과가 있어서 좋은 시인들의 시집을 찾아 읽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시간의 바다’에서 시간을 바다로 연상하여 시의 흐름을 이어가는 사고가 흥미롭다.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강가에서’는 제목이 낯설다. 시상의 폭이 이국적이고 할머니와 호랑이의 시선을 찾아낸 시안이 광맥을 더듬어 금을 캐낸 작업 같아 눈물겹다. ‘주변인’은 같은 궤도를 돌고 바깥에 있지 않으므로 따듯하다. ‘연소시계’는 묘사가 거창하다. 허나 식탁의 이미지로 인해 온갖 추위는 온화한 기운을 입는다. 제4부에서 ‘검은 돌 흰 돌의 시간’에서 흰돌 같은 문고리는 희망의 상징으로 봐도 상관없다. 헤매임 속에서 길을 찾았다면 그것은 흰 돌의 시간이다. 여전히 시어는 상냥하지 않다. ‘세계관’은 비참한 전생들을 열거한다. 나의 의지로 살고자 한 세계의 일부를 보여준다. 몽상의 자유를 유감없이 나부낀다. ‘시월의 유령들’은 핼러윈에 환영받지 못하는 유령들이 다시 찾아온다는 불길한 예감을 들려준다. ‘밤의 마피아’는 기괴하다. 목소리는 누구일까. 피 흘리며 걸어가는 수세기 전의 언덕은 어디로 가는가. 시속에 설의법은 궁금을 일으키며 리듬을 만든다. ‘밤도 밖도 밝던’ 제목이 수식으로 끝나있다. 색다른 밤의 이미지가 경이롭게 느껴진다. ‘계단의 방향’은 갈등하다가 미안해하다가 울어버렸던 계단에 앉아 너의 안부를 묻는 시인의 심정이 만져진다. ‘파수꾼’은 누구를 무엇을 말함일까. 현재의 안목으로 오독으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귤’은 필사하고 싶은 작품이다. 몽상의 흐름이 거침이 없다. 정물 한 개로 꽤 긴 시를 이어가는 시력은 부럽다. 귤로부터 성서로 믿음로 절반의 해로 확장해가는 상상의 끝은 어디일는지. 여기에 없는 너까지 시속으로 끌어당기는 그의 시적 자유로움에 경탄한다. 제5부가 마지막이다. ‘별’에서 제목은 기린이 생각하는 먼 곳일까. 기린의 사고는 지구 바깥을 돌다가 다시 밤이 지붕처럼 깔린 지구 안쪽을 들여다본다. 그 수백년이 지난 눈동자를 별이라고 하고 싶다. ‘먼 곳’은 어디일까. 종이비행기를 멀리 날리는 것 같은 시처럼 여겨진다. 허나 무거운 주제 죽음이 스며있다. ‘십오행’을 읽으면 시인의 혼잣말이 유려하게 들려온다. 영원에 관한 시인의 유연한 풀이는 충분히 향유 할 만하다. ‘십오행을 쓰기 위하여’에서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일까. 첫 번째 밤은 촛농처럼 흐르고 애정이 담긴 할머니가 보이고 행복한 꿈이 흐르는 밤이 있고. ‘낫 크리스천의 아침식사’는 간단명료하다. 상상이 주변이어서 편안하다. 밥을 먹는 장면에서 빈 욕조의 무릎이나 순무는 아무리 미학적 접근이라도 부담이 된다. 마지막 문장 내가 나를 삼키고/ 나는 좀 더 자라며는 기괴하나 변화 측면에서 용인이 된다.‘공복 산책’은 죽음의 유혹을 들으며 걷다가 살아가야 할 이유도 없이 살아가다가 만나는 사람들 나무들의 단순한 풍경을 보며 마지막 연에 중얼거린다. 내 지친 마음은/거기에 가 쉬어도 충분하겠지 라고. 자연스런 죽음을 말한다. ‘설인’에서 시인은 가족들이 잠자는 사이에 안개속에 길을 잃고 산다는 다른 세계에 속하는 하얀 괴물 설인이 된다. ‘무족영원’은 마지막 작품이다. 끝까지 살기위해 꼬리와 다리를 자른 도마뱀과 나누는 대화다. 도마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시인은 사랑의 말을 하는 사람이고 잘 듣는 사람이다. 만물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의 태도와 윤리가 몸에 배어 있다는 뜻이다. 타인에게 태양에게 거리의 유지 정도에 따라 마음의 조도와 명암이 달라진다. 이 시에서 산책자로서의 시적 화자는 없는 존재/ 다른 세계를 찾는 탐색의 행위자, 구도의 행위에 근접한다. 그리고 시인은 너의 부재를 통해 너의 존재를 충분히 느낀다. 그는 처음을 향해 걷는 걸음만이 세계로부터 나가는 문임을, 빛없이도 빛과 산책하는 법을 안다. 시는 언어의 무한처럼 무한 영역이다. 시공을 초월하고 침묵을 말하게 하는 마술과 같으나 숨결이 있는 유기적 생명체로 활물이다. 시를 언어로 담근 술이라고 말한다. 난해한 몇 편의 현대시는 한편의 시들이 한 잔의 술처럼 독했다. 낯선 술이었다. 뱉어내고 싶을 정도로 넘기기 어려운 시들, 허나 그 향기에 매료 되어 가시가 있는 장미꽃이라 여기며 멈춤 없이 지나왔다. 낯선 시들의 읽기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부드러움을 얻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