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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는 포스트휴먼이 될 수 있을까 -'묘씨생'에서 포착할 수 있는 포스트휴먼 조건과 주체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고양이는 포스트휴먼이 될 수 있을까-「묘씨생」에서 포착할 수 있는 포스트휴먼 조건과 주체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최**1.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인공지능의 시대다, 지겹도록 들어봤지만 나는 크게 체감을 못 했던 것 같다. ‘오케이 구글’이나 ‘시리’처럼 모바일 인공지능 서비스는 내가 부르고 싶어서 부른 것도 아닌데 툭 튀어나와 내가 하고 있던 작업을 방해할 때가 많아서 이용하지 않는다. 우리집 텔레비전과 연결되어 있는 ‘기가지니’는 TV를 켜달라고 하면 TV가 이미 켜져 있다고 대답해온다. TV 모니터는 까만데 말이다. ‘기가지니’는 모든 명령 앞에 “기가지니”라고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는다.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그럴 때면 나는 내 목소리가 닿지 않을 기계에게 “왜 저래?” 하면서 익숙한 리모컨으로 TV를 켜곤 했다.내가 인공지능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얼마나 사람들의 일상에 밀접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종종 뉴스 사회면을 볼 때면 그것이 사람들의 ‘삶’과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은 대강 알 수 있었다. 지난 1월, 20대 여성의 캐릭터를 차용한 ai 채팅봇 ‘이루다’에게 성희롱 채팅이 쏟아져 논란이 되었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여성의 몸을 본딴 자위 인형/기구 ‘리얼돌’에 대한 논쟁도 작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어차피 진짜 인간도 아닌데 그것들에 ‘인권’이 어디 있냐며, 어떻게 그들에게 하는 게 성폭력일 수 있냐는 비아냥 섞인 물음들은 비단 (여)성폭력 문제에만 한정된 질문이 아니었다.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성의 얼굴, 목소리, 말투를 장착하고 나온 인공지능, 여성의 얼굴, 몸을 한 인형은 인간 여성과 어떻게 다른가? ‘사물’은 ‘인권’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가. 인간에게 하면 안 되는 것은 인간이 아닌 것에겐 해도 되는 것인가….‘그것들’엔 인권이 없는데 뭐가 문제냐는 질문은 사실 별로 의미있는 답을 끌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20대 여대생의 캐릭터를 가수 있기 때문이다.포스트휴먼 논의는 과거형(이미 포스트휴먼이 되었다), 현재형(지금 포스트휴먼이 살고 있다), 미래형 (아직 도착한 건 아니지만 포스트휴먼이 올 것이다)등 모든 시제로 다뤄지고 있다. 이 분야를 공부해본 적이 없으므로 어떤 시제가 가장 그럴싸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명백히 인간의 형태를 본땄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 관한 논의는 이미 끝난 것도, 아직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필요한 이야기일 지도 모르겠다.이 글은 차미령이 에서 분석하고 있는 ‘포스트휴먼 내러티브’들이, 그 중에서도 저자가 동물-되기의 포스트휴먼 내러티브로 제시한 황정은의 「묘씨생」을 어떻게 포스트휴먼 내러티브로 볼 수 있는지를 재고해보기 위해 쓴다. 저자의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설득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찾으려면 과연 나의 견해와 저자의 견해 가운데 어느 부분이 충돌하는가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저자가 텍스트에서 드러내고 있는 논지와 포스트휴먼에 대한 나의 이해를 정리해보고, 「묘씨생」을 이해하는 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저자는 텍스트에서 인간과 휴먼을 병용하고 있다. 나 역시 인간과 휴먼의 번역에 대해 조금 고민을 해보았지만, 그 고민을 여기에 적는 것이 이 글의 목적에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번역에 대한 논의는 아쉽게도 묻어둔 채로 ‘포스트휴먼’ 담론의 발원지와 그것이 비판하고 있는 주체로서의 ‘휴먼’이라는 단어를 중점적으로 사용하려고 한다.2.은 2010년대 여성 소설에서 포스트휴먼 ‘몸’의 징후를 읽어내는 글이다. 글의 서두에서 저자는 해러웨이와 브라이도티를 인용하여 포스트휴먼 개념에 대한 이해, 나아가 포스트휴먼 내러티브의 주체를 제시한다. 이 부분을 다시 정리해보는 이유는, 저자가 해러웨이와 브라이도티의 논의를 요약 및 재서술하는 방식에서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드러나고, 그러한 내용들이 저자가 하고 싶은 말까지 가는 계단이 되어주기 때문이다.해러웨이는 근대에 ‘사실’을 만들어내는 지식 생산자를 ‘겸’이고, 사이보그는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이다.브라이도티는 ‘휴먼’이 타자(여성, 자연, 동물, 친환경, 반핵 등)와의 구분을 통해, 그들과의 경계를 만들어내면서 비로소 보편성과 규범성의 기준이 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휴먼이 성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차이로써의 타자들은 구조적으로 평가, 통제, 차별, 배제의 대상이 된다. 이 구조적 타자들이 단순히 휴머니즘에 반대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대안적 주체성을 제공하는 ‘포스트휴먼 기획’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눈여겨 볼만한 지점으로 보인다.저자가 해러웨이와 브라이도티의 지식에서 빌려온 새로운 내러티브 주체들은 사이보그, 앙코마우스, 개, 동물, 기계, 지구이다. 이 모더니티의 타자들의 눈으로 본 세상은 기존 ‘휴먼’이 보던 세상과는 다르다. 따라서 보편성으로서의 ‘휴먼’은 해체되고, 다른 존재들을 향해 확장될 수 있는 관계적 능력이 조명되며, 어떻게 해야 덜 폭력적인 세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된다.저자는 자신이 주목한 내용들에 따라 포스트휴먼 내러티브를 SF장르 바깥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보고, 황정은, 박솔뫼, 박민정, 윤이형, 임솔아, 김애란의 2010년대 소설에서 ‘휴먼-아닌’몸의 이야기, ‘포스트휴먼 조건’ 하의 몸 이야기를 찾아 분석한다. 이 소설들은 1)동물의 시선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2)인류가 부른 재앙 속에서 동물과 관계맺고 3)여성의 얼굴을 한 사이보그에 대한 윤리를 고민하고 4)자본세라는 운명과 대결해야 하고 5)공간에 따라 다른 의미를 부여받는 신체에 대해 토론하고 6)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와 한계를 그리는 이야기다. 저자는 2010년대 여성소설에서 포스트휴먼의 조건, 곤경, 가능성을 포착하고 나아가 이 포스트휴먼 내러티브를 통해 궁극적으로 열린 우리가 되어 ‘더불어 사는 법을 찾아가기’를 소망한다.3.여기에서는 포스트휴먼에 대한 나의 이해를 적어보려 한다. 포스트휴먼에 대한 이해는 근대의 ‘휴먼’ 개념을 성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휴먼을 성찰한다는 것은 단순을 수 있는 초월성을 갖고,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동질성도 갖는다(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모두 이성을 갖고 있는 동질적인 존재). ‘휴먼’은 이성을 발휘해 명확하고 순수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그 ‘휴먼’이 지식을 생산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보편’이 되어야 한다. 보편적 존재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보편이 아닌 존재가 있어야 한다. ‘휴먼’이 있으면, ‘휴먼이 아닌’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차별과 통제의 대상이었던 여성, 동물, 자연, 흑인 등은 ‘휴먼이 아닌’ 타자로 규정되었다. 이 ‘휴먼’과 타자의 경계선을 공고히 하기 위해 차이가 발명되어갔다. 흑인은 백인보다 뇌가 더 작아서 백인보다 더 멍청하고, 여성은 감정적이고 예민한(객관적으로 지식을 생산하기엔 부적절한 특성들) 성질을 유발하는 여성 호르몬을 갖고 있다는 등의 ‘지식’들이 그것의 일종이다.‘휴먼’과 타자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일 자체가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덜 폭력적인 세상으로 이행하기 위해선 그 구분 자체에 대한 반성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따라서 ‘포스트휴먼 주체’란 단순히 ‘휴먼이 아니’기만 해서 성립이 되는 것이 아니라 ‘휴먼’ 주체의 성질들을 담보해주던 모든 경계가 해체되었을 때 가능해진다. 정상과 정상이 아닌 것, 보편과 보편이 아닌 것 사이의 구분 또한 무의미해진다. 어떤 시간대, 어떤 지역, 어떤 문화 안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질적인 ‘포스트휴먼 주체’가 된다.타자가, 타자와의 차이가 있었기에 보편적 ‘휴먼’이 가능했던 기존의 인식 체계에서 그 구분선이 융합되고 균열한다면 대체 어떤 일이 생길까? 바로 ‘포스트휴먼’이 기존의 언어질서 밖에 서서 새로운 인식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이고, “선택지 밖에서 선택”하길 선택하는 것이며, 따라서 완전히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추동하는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덧붙여, 저자는 에서 소설들을 ‘휴먼-아닌’ 몸의 이야기 혹은 ‘포스트휴먼 조건’ 아래의 몸이야기로 읽고 있기 때문에 ‘포스트휴먼 조건’이s)’으로서의 인간을 기준으로 만물의 우열과 위계를 규정해왔던 인간종(anthropos)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넘어서는 포스트-인간종중심주의(post-anthropocentric)를 조건에 포함시킨다. 브라이도티가 조에(zoe) 평등주의만으로 포스트휴먼 주체성이 확보되는 건 아니(포스트-인간종중심주의만으로 포스트휴먼을 설명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에 따라, 나는 이 세 가지 축 모두에 걸치고 있는 것을 ‘포스트휴먼 조건’ 하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려 한다.4.「묘씨생」은 고양이 ‘몸’을 통해 본 인간세계를 그려낸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시선과 내러티브의 주체의 위치에 있는 건 고양이다. 이 사실을 논의의 최상단에 두었을 때 저자가 이 소설을 ‘포스트휴먼 내러티브’로 분석하고 강조하는 지점은 다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1) 독자들은 고양이라는 “인간 아닌 존재”(이 ‘인간 아닌 존재’가 non-anthropos를 말하는 것인지, non-human을 말하는 것인지가 쟁점일 듯하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생생하게 실감하며 ‘동물-되기’를 체험한다.2) 고양이의 몸은 동물이라고 해서 단순히 자연의 몸일 수 없다. 사람들이 길고양이에게 부여한 불길함이라는 상징, 사람이 만들어낸 중성화라는 규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구성된 몸’이다. (‘앙코마우스’ 역시 실험실 안에서 ‘발명된 동물’이라는 점에서 고양이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3) 해러웨이가 새로운 증언자로 호명한 ‘앙코마우스’의 시선으로 실험실을 보면 보일이 본 실험실과는 다를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대목이 떠오른다. 걷어차이고, 배가 갈리고, 귀가 잘리는 고양이의 모습은 암유전자를 이식받아 인간 대신 고통받는 실험쥐 앙코마우스의 모습과 겹쳐보인. 고양이의 시선에서 보니 인간 세상은 차라리 완파되는 게 나을 정도로 잔혹하다.내가 느낀 의문은 다음과 같다.1) 고양이 몸은 non-anthropos로서 등장하는가, non-human으로서 등장하는가. 3에서 짚었던 ‘휴먼’의 의미를 되새기며 「묘씨생」을 ‘휴먼-아다.
    인문/어학| 2022.09.17| 6페이지| 2,000원| 조회(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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