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문화아동보육학과2*********송**2023. 09. 28.1. 서 론성경공부는 어린 시절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전부였던 나였지만 이 중 요한복음서 3장 16절의 말씀과 복음서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이기 때문에 요한복음을 모두 읽기로 하였다. 교회를 다닌 지 족히 십 오년은 넘었을 텐데 성경에 대해 생각해 보며 천천히 읽어보며 명상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요한복음이란 성경에 대해 생각을 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타 복음서들에 비해 요한복음서는 영적인 표현이 많기 때문에 조금은 시간을 들여서 이해를 해야 했지만 말씀을 천천히 묵상하며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자세로 임하니 요한복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29일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기록하여 신성에 대한 증언과 선언, 기적을 나타내고 있기에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영생, 축복을 알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이라 느낀다.2. 본 론1)말씀이 육신이 되시다(1:1-18)요한복음의 첫 구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 이시니라"는 부분은 생명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존재했고, 하나님은 사람들의 빛이 되셨음을 알 수 있다. 참례자인 요한은 그 분에 관해 말씀의 소개에서부터 그 분을 증거 하였고, 그 분을 참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곧 하나님께로 난 자가 되었으며 율법이 모세를 통해 주어진 것과 같이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기술하였다. 위 구절은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라면 누구든 다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일 것 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도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주라는 고백이기 때문이다.2)세례 요한의 증언(1:19-51)침례자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과 아님을 인정하며 자신은 그 분을 드러내어 하는 말이"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수님의 '말씀'과 '성령'이라는 점을 놓고 보았을 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 생명이며, 빛이라는 사실을 전해야 한다는 전도의 참 뜻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3)일곱가지 표적1-1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2:1-11)첫 번째 기적으로 나타나는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는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이다.어린 시절 생각해보면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부를 때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을 담은 찬양을 즐겨 불렀던 기억이 있다.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던 자리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결혼 잔치에서 물을 가장 좋은 포도주로 만드셨다. 이 것이 예수의 처음 표적이며 제자들은 그를 믿는다. 이 때를 계기로 물은 유대교와 그 전통을 나타내며 포도주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1-2 왕의 신하 아들 병 고침(4:43-54)예수께서는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어,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시는데 그의 침상 곁에가지도 않으시고 멀리에서 고쳐 주신다. 이는 "살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갔을 때'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볼 수 있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했을 때 우리 영은 새 생명을 얻어 살아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1-3 베데스다에서 병자를 고치심(5:1-47)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자 빗발치는 비난이 있게 되고,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범한 죄와 더불어 하나님과 동등시 하는 신성 모독죄를 범했다고 주장했지만 예수께서는 아들이 임의대로 할 수 없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한다고 대답 하신다. 이 사건은 안식일이지만 하나님의 일이라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사건의 일례로 이 시대에는 주일을 목숨 걸고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목회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알려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주일을 자신의 여가를 위해 범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으셨겠지만 그 외에도주일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 순종하는 일을 한다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보편적으로 정해져 있는 일을 무조건 행해야지만 그 일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편향이 있게 하심(9:1-41)"예수께서 이르시되 본인이나 부모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하며 날 때부터 소경이 된 자를 고치시는 기적에서는 바리새인들이 영적인 눈을 닫고 있음을 말씀하시는 부분이다.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에게 영적인 눈의 회복을 촉구하신것일 수도 있고, 우리에게도 메시지를 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영의 눈은 소경처럼 말씀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믿는 자들이 많다. 영의 눈을 뜨고 예수를 닮아 가는 삶을 살아가라고 하시는 말씀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1-7 나사로의 부활(11:1-57)이 사건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상징을 드러내는 표적이다. 나사로는 무덤에 있는지 이미 나흘이 지났고 사체는 썩어가고 있는 과정이었는데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하며 자신을 확실히 나타내셨다. 명백하게 부패의 상태에서 부패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오는 권세가 있음을 안다면 그가 생명을 주시는 주로 믿는 그들의 신앙 역시 한층 발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유대로 되돌아갔고 예수의 행하신 기적에 대해서는 믿음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위치에만 관심을 갖고 보고 있었다.5)고별설교(13:1-17)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써 제자들에게 모범을 손수 보이셨다. 예수님은 그들의 스승으로써 제자들이 예수의 발을 씻겨도 부족한 상황에 자신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말씀으로 끝까지, 목적지까지, 종착까지로 예수님의 사랑의 무한성을 보여준다.6)고난과 죽음(18장,19장)가룟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을 때 예수님은 그 관리들이 자신을 체포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런 중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허락도 없이 순간 칼을 들어 제사장의 오른쪽 귀를 베어버렸고 이 때 예수님은 칼을 놓으라는 명령과 함께 다친 대제사장의 귀를 치유해 주시고 결박되어 당시 대제사장 가야바의에 예수께서는 문을 잠가 놓고 있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냈고, 그들이 성령을 통해 받을 능력에 관해 말씀하셨지만,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팔일 후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 그에게 증거를 보여주자 그때서야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다" 라고 외쳤다. 며칠 후 예수께서는 다시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을 만나셨고, 그들이 기적적으로 고기를 잡게 해 주시고 조반을 함께 드셨다. 이 후 세 번이나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가를 물으시매, 베드로는 그렇다고 강조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분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인지 예언하셨고, 베드로가 요한에 관해 질문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어떤 길을 각자 가더라도 네 마음과 상황에 비교하지 말라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고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매진하라는 말씀을 하셨다.3. 결 론요한복음의 저자는 사도 요한이다. 이 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려 함이고 그 믿음을 토대로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요한복음에는 증거, 믿음, 생명이란 단어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그렇기에 7가지 표적에 대해서 줄거리를 형성해 보았고 각기 다른 예수의 권능의 범위를 나누어 보았다. 위의 표적들을 통해 예수란 초자연적 능력을 나타내셨고, 믿음은 그리스도에게 개인을 완전히 의탁하는 것을 뜻한다. 요1:12를 볼 때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이며, 예수의 행한 표적으로 인해 확신하고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믿음은 복음의 열쇠이며, 이 복음의 열쇠로 신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며, 이는 영생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참 뜻이라는 사실이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기적과 죽임, 부활, 사명 전 과정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상황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라는 영화에서도 죄 없으신 십자가에 대신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 형벌을 받으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살아간다. 예수님의 사랑을 쉽게 의심하며, 불신과 교만, 정욕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 인간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내 죄가 완전히 속죄되었고, 이제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죄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잘못한 일이 있어도 나의 죄를 진솔히 고백하고 예수님을 다시 나의 구주, 나의 왕,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예수님의 죽음 이 후 가장 크게 마음을 동요했던 구절은 요한복음 21장에서의 베드로와의 상황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날 밤, 주님을 3번이나 부인한 죄책감과 본인에 대한 실망감이 매우 컸을 것이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도 감히 주님을 사랑한다고 따를 수 없었기에 이내 고향으로 돌아와 조용히 어부 일을 하고 있었고, 주님을 사랑하지만 십자가의 길은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눈물로 참회하여도 주님을 선뜻 따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사명자로서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 이 때에도 베드로는 주위 동료 요한을 의식하며 그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이 부분을 봤을 때 베드로에게서는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의 본연의 본성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주님의 부름에도 주위 사람들과 내 과거, 현재 여러 관계들과 상황 에 대해 복잡하게 얽혀있는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주님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 등 현재의 내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키웠던 어린 시절의 나와 현재 모든 상황이 달라지고 얽히고 얽혀 나의 개인적 상황 때문에 예수님의 자리를 뒤로 하고 나의 삶만을 바라보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 대목이 정말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베드로와 나는 정말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 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람의 일을 염려치 말고 그저 따르는 것에 전념하라고 하셨다. 사람의.
한국문화와 기독교2아동보육학과2*********송**2023. 11. 13.- 주 제: 기독교가 한국사회와 문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논하시오1. 서 론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확립한 시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크게 일상생활의 모습을 크게 바꾼 적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 문화가 들어오면서 부터 의복과 사는 집, 먹는 음식도 크게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것은 수 천 년 변화의 크기를 뛰어 넘는 실로 엄청난 변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독교는 일제 강점기 전후에 한국인의 지식인 중에 기독교 신자가 유독 많았다. 한국인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미국과 기독교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으며 해방 뒤 군정도 미국에 의해 통치되었고, 그 이후 초대 대통령 역시 기독교 신자였다. 그리고 2대 대통령 윤보선과 장면 총리도 독실한 기독교 자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기독교는 사랑과 정의라는 고차원적인 종교관을 띄며 기독교의 무차별적 사랑은 유교의 분별적 사랑에 함몰되어 있던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한국은 미국과 같은 특정 국가에 강하고도 급격하게 쏠림 현상이 있는 것은 한국사 전체로 보았을 때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나타난 현상이다. 더불어 기독교 문화는 문화에 대한 성경적 견해로 복음의 '문화 초월성'과 동시, '문화 계약성'에 대한 인정으로 볼 수 있다. 계시로써는 하나님의 말씀은 문화를 초월하며, 구속사의 섭리는 세계의 모든 민족에게 동일하지만 하나님께서 각 민족들에게 말씀하실 때는 그 민족 고유한 문화양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선교 신학에서는 문화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 된지 오래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타문화와 선교의 모형으로 이해해 커뮤니케이션의 원리로 평가하고 있다. 문화는 일반적인 특성으로 사회적 성격, 의미와 가치 지향성으로 특징되며 고정된 실체가 아닌 생명체처럼 성장하고 생명력이 있어 타 문화와 만났을 때 통합, 갈등, 긴장, 보완, 융합 등을 야기 시키는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2. 본 론먼저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의 대표적인 9가지는 남녀평등사상, 교육, 합리적인 과학정신, 의료, 음악, 경제관 변화, 독립운동, 민주주의 기반수립, 사회복지 등에 있다. 1)남녀평등사상: 초기 기독교는 신앙교육뿐만 아니라 가정은 남녀가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을 알려 주었으며 양반 계급 사회가 있었던 전통사회에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양반과 상놈의 구분 없이 모두 평등하게 예배당에 앉아 같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했다. 남녀, 노소, 부귀 차별 없이 같이 예배드린다는 것은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교육: 배재나 이화와 같은 기독교계의 학교는 같은 유형의 수많은 학교를 만들어 냈고, 이것은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 걸쳐서 확산되었다. 기독교는 한국에 선교할 때 가장 큰 역점을 두었던 교육과 의료의 성과는 지금의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서강대학교 등 기독교 계통의 사립학교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 최초의 양병원인 광혜원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이며 한국 교육의 마스타플랜도 미국을 모델로 만들어졌으며, 이 것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유학한 기독교인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을 보통 한국 사람의 언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으며 이 것은 한글을 민족의 언어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3)합리적인 과학정신: 전통적인 미신에 매여 살고 있던 조선사회는 교육과 의학을 통해 서구의 합리적인 과학정신을 심어 주었다. 초기에 한국 사회는 유교와 불교문화가 지배적 이었지만 유교는 신이 없는 윤리체계이고, 불교는 해탈을 추구하는 자력종교의 측면과 보살들의 도움을 통한 타력종교의 양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온전한 종교성을 갖고 있지 못하였고 샤머니즘은 기복을 추구하는 미신으로 보았다. 이에 기독교 신앙의 가치론적 입장은 창조- 타락- 구속(회복)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근거로 비신자에게도 공감대를 형성시켜 주었다. 4)의료: 광혜원을 비롯해서 많은 지역에서 병원이 지어졌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건강증진을 담당하기도 하며 국민들의 건강증진 외에도 지금 우리나라의 의학, 과학 분야의 발전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미쳤다. 5)음악: 선교사들이 들어와 찬송가를 보급하면서 서양의 근대음악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6)경제관 변화: 노동의 중요성을 주장했고, 이 같은 노동의 신성성은 나태하다고 소문이 났던 한국 사람을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민족으로 만들었다. 7)독립운동: 한국 기독교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했다. 예로, 해외의 교회를 통해서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고, 측면으론 국내에서 실력을 양성해 독립을 쟁취하자는 것이었다. 8)민주주의 기반수립: 남한 민주주의 가장 분명한 기반은 기독교였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공산주의를 경험한 기독교인들은 남한으로 월남했고 이들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9)사회복지: 해방 이후 한국의 재건은 이런 국제적 협조로 인해 이뤄졌고, 이 것의 한 복판에 기독교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서구화는 기독교의 유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으며 기독교 자체로는 지배자의 종교가 아니라 한국 입장에선 해방을 선사한 해방자의 종교로 인식되었으며,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왔다는 것은 서양의 모든 것이 들어왔다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기독교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며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을 하였으며, 국내에서 실력을 양성해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다. 기독교는 한국사회에서 약자들을 위한 사회복지 시설을 최초로 마련하였으며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공헌한 가치는 바로 정의다. 선교사들은 학교와 고아원을 운영하는 등 육영사업을 하고 서양의술을 전파하는데 이바지했으며, 남한 민주주의가 가장 분명한 기반 역시 기독교였다. 기독교는 반공세력이 되었고, 오늘날 대한민국 건국이념인 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한국 기독교는 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선교를 위해 힘쓰며 기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한축을 이끌어가며 많은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기독교 문화는 한국의 문명화와 관련해 선교사들은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문명개화론을 전파하였고, 교회는 그런 문명개화론에 따라 교육과 의료를 통해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에 장로교회는 심문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근대적인 출판사를 설립하여 다양한 출판물들을 출판해 출판문화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교회와 학교를 중심으로 근대적인 음악, 미술, 체육, 건축 등 다양한 근대 문화가 도입되어 발전을 하게 되었으며 한국장로교회는 한국의 전통문화에 이러한 다양한 영향을 끼쳤으나 아직도 한국문화 속에 깊숙하게 뿌리내려 생활화 되지는 못한 측면이 있어, 이러한 측면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장로교는 국내 들어온 후 한국의 근대화를 통해 근대문화를 형성하는데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서양 근대 의식과 근대문화를 전해주는 가운데 내한 선교사들의 눈에 한국 문화의 특색 가운데 지나친 '노름, 음주, 흡연'습관이 있었는데 춤추고, 담배피우고, 노름하는 것을 죄로 보고 그리스도인으로서는 하지 못할 일 이라는 청교도적인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선교사들은 그런 습관들을 개혁코자 했으며, 금주와 금연이 교인이 되는 중요한 자격이자 절차로 규정되었다. 특히 조상숭배인 제사금지, 안식일 준수, 부모 공경, 축첩을 비롯한 불법 결혼 금지, 술 취함과 노름, 아편 금지 들을 세례의 조건으로 규정했다. 한국 장로교회는 한국의 전통문화에 다양한 영향을 끼쳤으며 인민주권이 서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위정자들의 여성들을 비하하는 관습이라 하였고, 한문은 양반들의 병이라고 지적하면서 조선 사람들은 이 병을 피하고 신속한 한글을 배워 실용학문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알렸다. 이처럼 기독교는 물질적인 차원에서 실용적인 학문, 지식, 기예가 발달해 농공상이 발전하고 공정한 법률이 엄격하게 집행되고 위정자와 국민이 단결되어 정치가 안정된 나라, 정신적 차원에서 애국적이고 계몽되어 도덕이 발전된 나라, 자주독립국가가 되길 촉구하였다. 한국 기독교는 사회가 지니고 있던 온갖 병들고 불우한 비인간화된 문화요소들을 복음으로 치유하고 갱신하는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는 이중적이며 우리에게는 이미 특정한 문화가 주어져 있고, 거기에는 신앙적 가치관으로 볼 때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있다. 이처럼 문화는 지극히 복합적인 개념이고 하나의 총체 개념으로 복합성을 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가치론적 입장은 기독교문화에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고 비신자에게도 공감대를 형성시켜주는 근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