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본문 요약1장. 현대세계_바른 질문 배우기1963년 주일마다 교회 가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완전히 문을 닫던 마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그린빌에서 ‘폭스 극장’이 주일에 문을 열었다. 이로써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부터 이어오던 기독교가 모든 문화의 중심이던 세상이 끝났다. 콘스탄틴주의라고 불리는 교회와 세상을 하나로 묶었던 낡은 통합이 힘을 잃게 되었으며, 그 결과 (미국의)그리스도인들은 자유롭게 되어 이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신나는 모험으로 만들어 가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질 줄 아는 모험적인 교회에 의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1) 올바른 신학적 질문들사람들의 세계관은 이제 “현대 세계관”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교회는 코페르니쿠스의 경우에서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변증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들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불트만과 틸리히는 기독교가 처음부터 믿기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지적으로 그릇된 걸림돌이 너무 많이 덧씌워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대 신학이 번역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임으로 말미암아 무의식적으로 복음을 왜곡해 왔으며, 또한 복음을 그 본래적인 모습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 결과, 자기 백성들과 함께하는 예수는 잃어버리고 예수에게서 추상화된 관념들만 남게 되었다.성경이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가 믿음을 갖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믿을 것이 무엇이냐에 있다. 틸리히는 조직신학을 새롭게 개조해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신학적인 과제라고 생각한 반면, 바르트는 더 나은 새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보았다. 인류의 전체 역사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과 승천 안에서 다시 정리되어야 한다. 신학의 과제는 예수를 현대적인 범주들로 번역하는 해석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그분을 향하도록 번역하는 것이다. 신학자의 업무는 이 세상이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러운 악이 좀 더 나은 선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옹호되었다. 바르트는 복음을 세상속의 현실 체제에 맞추기를 거부하고 교회를 복음에 맞추려고 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틸리히보다 더 새롭고 더 급진적이다. 바르트에게서 우리는 신학 연구의 목적이 이치에 맞는 개념으로 세상을 설명해 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것, 즉 복음의 놀라운 주장들에 비추어 삶을 재형성하는데 있다는 신약성경의 주장을 재발견한다. 우리는 타협이 아니라 회심을 통해서 이런 지식을 얻는다.2장 새 세계와 기독교 정치1)종교와 정치의 혼합라인홀드 니버는 공적 교회관을 강하게 옹호하였다. 17세기 종교 전쟁이 끝난 후 이들의 관심은 민족국가로 이어진다. 이제 국가를 위해서 싸울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20세기에 들어와서는 국가가 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전에는 교회의 손에 달려 있던 교육과 치료, 공공복지에 대한 책무가 점점 더 국가로 넘어갔다. 금세기에 이 운동은 “복지국가”의 출현으로 인해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전 세대들은 하나님만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행복을 이제는 중앙정부가 줄 수 있고 또 마땅히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2) 불신앙의 정치오늘날 사회운동은 일반적으로 정의로운 평화의 세상을 세우는 데 하나님은 필요 없다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지속적인 창조와 구속의 역사 속에 우리가 속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삶을 세우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신앙이 아니라 불신앙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과제는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평화”와 “정의”라는 거창하지만 껍데기뿐인 말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다”라는 말이 필요한 것이다. 콘스탄틴주의는 언제나 제국을 하나로 결속하기 위해 통일된 국가 종교를 필요로 했다. 오늘날에는 절대적인 국가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새로운 보편적 종교로 등장했다.3) 사회 전략인 교회교회는 사회전략을 갖지 않는다. 교회 자체가 사회 전략이다.요더의 유형론 : 행동주의 교회, 교회는 사회 구조를 뜯어 고친다고 해도 인간의 죄의 결과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고백 교회(십자가의 교회)는 자신의 주된 정치적 사명이 개인의 정신을 바꾸거나 사회를 변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회중으로 하여금 만물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예배하도록 결단케 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효율성이 아니라 신실함이다)3장. 구원은 모험이다.예수는 “나를 따르라”는 간단한 말로 평범한 사람들을 불러 모험에 참여하라고, 가는 길 고비마다 놀라운 일과 마주치게 되는 여행길에 나서라고 초청한다.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처음 제자들처럼) 달리고 있는 기차에 올라타는 셈이다.1) 다시 길을 떠나며구원받는다는 것은 다시 길을 떠나는 것이다. 교회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체험하게 해주는 온갖 종류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며, 이러한 체험을 통해 우리는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삶의 방향감각을 얻게 된다. 우리의 자녀와 다른 이들의 자녀를 초청해 교회라 불리는 이 거대한 모험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2) 모험의 미덕들우리가 이 여행을 지속해 가는 데 필요한 미덕을 계발하는 것이 기독교 윤리요, 이 기독교 윤리는 혁명의 윤리다.3) 명분을 지닌 백성우리가 평화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평화가 세상이 주는 전쟁이나 평화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제자로 사는 삶을 모험으로 받아들이게 된다.4장. 식민지의 삶_기독교 윤리의 기초가 되는 교회콘스탄틴주의에 물든 사고방식은 깨뜨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타난 현상이 기독교 윤리에 물을 타고, “생명의 권리”나 “선택의 자유”같은 철저히 세속적인 기준이 맞춰 기독교 윤리를 걸러내고, 전 세계를 향해 그것을 보편적으로 통하는 상식이라고 자랑하며, 나아가 그것을 기독교라고 말하는 것이다.1)너희는......한 것을 들었다. 그러난 나는 말한다.산상설교는 가시적이고 실제적인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고 있다. 공동체로 있을 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만이 참된 곳일 수가 있으며 특성을 지니며 정치적인 출발점, 곧 교회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볼 때 우리의 윤리는 곧 사회 윤리다. 우리의 모든 윤리적 응답은 바로 여기, 교회에서 시작된다.3)눈으로 보는 것 그대로산상수훈은 명령법이 아니라 직설법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상수훈의 방식은 우리가 따라야할 새롭고 훨씬 엄정한 규칙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방식을 보여주는 그림이다.4)세상의 끝산상설교는 개인이 아니라 교회가 따라야 할 길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예수의 가르침, 하나님나라의 선포는 지극히 종말론적이다. 산상설교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사는 일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보도록 해주는 새로운 개념을 우리에게 열어준다. 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바로 교회다.5장. 평범한 사람들_ 기독교 윤리1) 오묘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윤리란 행함(doing)의 문제이기 전에 먼저 봄(seeing)의 방식이다. 교회가 “윤리”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사람들을 이끌어 기독교적인 삶을 탁월하게 보여주는 인물과 만나게 해 주는 것이다.2) 탁월한 모범이 되는 성도들기독교 윤리는 산상설교와 같은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이신 예수께 우리 자신을 일치시킴으로써 이루어지는 독특한 공동체에서 생겨난다.3) 사례를 통해 다져지는 신앙기독교 윤리가 얻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 다른 평범한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적인 삶을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이다.6장. 모범적인 교회_기쁨으로 진리 말하기1) 목회 훈련감상주의는 우리 자신과 목회를 타락하게 만든다. 사역자(목회자와 마찬가지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을 돕는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어떤 곳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할 때 성직자들은 자신이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결코 알 수 없다. 교회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해질 때에야 비로소 성직자에 대해서도 적합하고 현실적이고 흥미 있는 기대를 걸 수 있다.2) 성공적인 목회설교자에게도 설교자에게 진리를 말해 달라고 요구할 뿐만 아니라 설교자를 향해서도 단호하고 일관되게 진리를 말할 .3) 하나님을 섬김7장. 힘과 진리_목회를 가능케 해주는 미덕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복음의 요구는 참으로 커서, 우리에게 복음의 진리를 위해 기꺼이 고난당할 것을 기대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희생까지도 감수하도록 요구한다. 교회는 신실하게 복음을 따르는 일은 복음을 위해 세움 받은 목사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희생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담대히 인정해야 한다.2) 담대하게 복음의 목회 선언하기우리는 자유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아니다. 우리는 희망의 사람들이다. 교회의 정치는 진리로 충만하고 또한 희망을 주는 것이다.3) 목회를 위한 능력신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실제 목회에 얼마나 연관이 있는가? 역사적 비평적 성서 해석들, 성서 원어에 대한 지식들... 목회자로서 우리는 우리가 행사하는 권위의 출처에 관해 명료할 필요가 있다. 비극적이게도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성서 없이 설교하고 교회 없이 성서를 해석하려 애쓰고 있다. 설교의 성패는 전적으로 기독교 공동체의 본래성을 회복하는데 달려 있다. 만일 목회자들이 자기네 교인들에게 열정적인 모험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그들은 실패자다. 갱신은 고립되고 영웅적인 사상가들이 아니라 앞에서 예로 들었던 그런 사람들의 평범한 행동을 통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다.4) 하나님의 능력으로진리로 충만할 때 힘이 나온다. 종 됨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분께 순종하는 한에서는 힘이 된다. 진정한 과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가 부여한 말씀과 성례전을 베푸는 놀라운 권세를 어떻게 도덕적으로 행사하는 사람이 되느냐이다. 목회자의 활력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시고 계신가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과 관련되어 있다. 만일 목회자가 이 점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지 못한다면 그는 계속해서 변덕이나 부리고 속이는 짓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월터 브루그만)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씨름할 과제는 기독교적인 신념들을 현대적인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즉 그 누구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
넌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거니? 서평교회는 세상 속에 있고, 성도들은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다. 성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승리하기를 원하지만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는 것도 쉽지 않고 너무 빠른 세상 속에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구별하기가 힘들 때도 많다. 이런 기독교인들을 위한 책으로 ‘넌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거니?’를 추천한다. 이 책은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라보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저자인 김종걸 교수는 30여 년간 침례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철학을 가르쳐온 복음주의 학자이며 신학자이며 설교자이다. 그는 침례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해석학을 전공하여 철학박사(Ph.D.)를 받았다. “칸트의 비판철학에 있어서 신의 현존재에 대한 도덕적 증명”, “리꾀르의 인간학적 해석학” 등의 해석학에 관련된 여러 저서 및 논문이 있으며 특히 이 땅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을 위한 현실적인 신앙생활을 다룬 글들을 많이 썼다. ‘안락사’, ‘장례문화’, ‘통일’, ‘여성 지도자’ 등이다. 이 책에서는 평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저자가 수년간 강의실과 교회에서 강조했던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독교인이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이슈와 함께 신앙의 근원적인 질문을 골고루 다루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복음을 향해 결론을 내리도록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1부의 주제는 ‘창조에 대한 원리: 가정을 세우다’로서 신앙의 뿌리가 창조신앙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즉, 창조신앙이 흔들리면 모든 신앙이 흔들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세상을 바라보는 성경적 관점이 필요하다.2부의 주제는 ‘성에 대한 혁명: 성경이 제시하는 길’로 사회적으로 민감하며 점점 부각되고 있는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부분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주제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문화비평의 관점에서 동성애 문제를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 먼저 동성애의 말뜻과 이 현상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동성애를 설명하는 다섯 가지 이론 유형을 논의하고 성경에 나타난 동성애 유형과 의미를 되짚어보고 이를 토대로 기독교가 동성애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몇 가지 관점들을 제시한다. 동성애를 지지하는 세력은 동성애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는 것이라는 거짓 이론들을 퍼트리고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양성평등 문제를 성평등 문제로 환원시키며, “성경의 가르침과 인류의 보편적 성 윤리에 배치되는 비도덕적인 성적 관행”을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규정한다.3부는 교회의 본질 이야기,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존재했던 가난한 자들, 오늘날에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시점에 노인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다. 가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성도에게 세 가지 회심이 있어야 하는데, 첫째는 가슴의 회심이요, 둘째는 영혼의 회심이요, 셋째는 물질로부터의 회심이라고 하였다. 물질로부터의 회심이란 물질에 대한 초연적 자세를 갖는 삶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루터의 말과 같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회심은 물질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저자는 가난과 청지기적 소명에 대해 서술하는데, 그것은 청지기적 소명이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삶의 모습인 나눔의 삶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고령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와있지만 한국교회는 이것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노인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알아보고 성경에서 노인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교회는 노인사역을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를 알려준다. 성경에서는 노인에 대해 ‘지혜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며 교회는 선교적 관점에서 노인문제를 인식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4부는 생명에 대한 고민들, 생명의 종교인데도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이 사회에 어떤 목소리, 자살, 사형제도, 환경 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성경적 답을 제시한다. 성경에는 자살을 금지하는 구절이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죽음의 기간에 대한 결정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사형제도의 폐지는 옳은가, 아니면 사형제도 유지가 더 기독교적인가?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사형제 폐지론에 더 무게를 둔다고 한다. 사형제도의 옳고 그름을 떠나 생명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환경문제에 대하여 기독교적 관점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으로서 환경을 보살피고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존중할 책임이 있으며, 교회 역시 생태계 회복을 위한 책임이 막중하다고 하고 있다.5부에서는 민감한 사회적 이슈인 인권, 양극화, 다문화 사회와 이주자 문제 들을 다루었다. 수많은 인권문제가 우리 사회의 과제로 남아 있는데, 그동안 기독교는 신앙과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교회와 관련된 일은 거룩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세속적이라 하여 사회 전반의 현상들에 관여하지 않았고, 결국 복음의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교회는 내세복음에만 매달려 사회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 한 과거를 깊이 반성하고 사회적으로 고통당하는 약자들도 예외 없이 하나님이 지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가장 존귀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인권 증진에 힘써야 함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양극화’에 대하여 ‘재난’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심각하다고 하였다. 양극화 현상은 한국교회 내부까지 침투하여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던 성장제일주의 가치관과 패러다임을 대신할 새로운 가치 체계의 도입이 시급한데, 그것은 나눔의 패러다임이다. 다문화와 이주자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주자들의 벗으로 살아간다는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수정하고 이들을 하나님 나라의 동반자로서 그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6부는 이러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하여 한국 교회와 사회를 이끌기 위해서는 복음주의적 접근이 해답임을 강조한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교회, 공공성과 신학의 책임, 한국 교회의 반성, 자유주의와 복음주의 등에 대한 다양한 해석학적인 대답들이 있는 상황 가운데 진지한 복음주의적 반성이 결국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변혁을 위한 단초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저자는 기독교 세계관 실천이라는 에토스를 중요시한다. 그것은 우리가 직면하는 일상적인 일에 대한 애정과 충성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소명을 받았다. 이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라는 명령이다. 신앙과 삶의 분리, 그리고?이분법적인 사고와 파편화되어 있는 현실은 한국 교회의 가장 쿤 문제이고 위기이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저자는 기독교 세계관의 실천 토대로서, 1) 기독교적 인간관, 2) 기독교 학문관, 3) 기독교 과학기술관, 4) 기독교적 노동관을 제시했다. 생산성 향상이 지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타인과의 소통을 통하여 공감과 협동을 이루어 공공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성이 더 요청되는데, 이를 위해서도 기독교 세계관이 절실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양을 돌보는 참 목자프롤로그 ? 고대 문명들보다 더 오래되고 사회의 변방지역이자 소외된 직업인 목자들의 이야기 속에 오늘날 우리 시대의 리더십을 이해하는 열쇠가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리더십뿐만 아니라 성경적인 리더십도 포함한다. 저자는 2003-2004 학년도의 안식년 동안 이스라엘, 요르단, 시나이에서 도서관에서의 연구와 현장 인터뷰를 겸하면서 베두인 부족들이 양떼를 기르는 사막과 광야를 깊이 알게 되었고 그들의 목양세계의 일과 리더십에 관한 성경말씀들을 이해하는 뼈대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광야는 하나님이 당신을 공급자, 보호자, 또한 안내자로 반복하여 계시하신 곳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회중을 양 떼(또한 염소 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들 나름의 양 떼 가운데 사역하고 있는 목자들로도 생각해야합니다.”1일 광야: 사막의 풍경은 얼핏 보기에는 로맨틱해 보이지만 극도의 한계상황으로 잘 알려진 이 환경이 사납고 황량한 곳임을 발견하게 된다. 섭씨 51도에서 26도를 오가는 기온의 급변뿐만 아니라 가뭄과 모래바람까지 더해져 사막은 죽음의 장이 되곤 한다. 성경 속에는 수많은 광야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가장 황량한 광야라고 하더라도 소명, 계시, 친밀을 위한 영적인 오아시스를 제공했다. 모세는 40년간 광야에서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했다. 하나님은 광야의 상황에서 새 창조를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사역은 위협받고 목마른 백성이 새 에덴을 갈망했던 영적인 불모지, 즉 “광야에 길을 내는 일”이었다. 광야는 더 나은 것을 위한 촉매제가 될 수도 있고,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재충전할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그 촉매제를 만들 수도 있다.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우리 스스로 광야를 선택할 수도 있다.2일 준비: 현지 목자들에게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은 “목자가 되는 데 어떤 자격 요건이 필요합니까?”라는 것이었다. 그 중 요르단의 베두인 목자인 아부-자말의 대답은 “정말 중요한 일은 목양을 위한 마음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것을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역설적이게도 사막에 사는 주민들은 가뭄만큼이나 물을 흡수하지 목하는 이 땅에 일어나는 반짝 홍수를 두려워한다. 시나이에서는 모든 규모의 소낙비는 홍수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목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소나기 후의 잔잔한 물이다. 양들은 홍수가 지나간 자리에 생긴 물웅덩이와 물가에서 안전하게 목을 넉넉히 축일 수 있다. 목자들은 이 물 폭탄에 대비하여 댐과 운하를 만들어 임시저수지로 물을 모아둔다. 우리는 남을 위해 신선한 우물물을 제공하는 동안 우리 자신들은 뙤약볕 아래서 탈수 상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위한 잔잔한 물은 어디에 있나? 우리 자신의 갈증을 해소하는 것이 남을 섬길 수 있는 힘을 가장 잘 지탱해 주는 근원이다. “다른 모든 것들 외에 네 마음을 지켜라. 그것은 생명의 샘물이기 때문이다”(잠 4:23)5일 솟아나라 우물아!: 광야의 물은 관련 지식과 힘든 수고 없이는 접근하기가 힘들다. 가장 소중히 여겨지는 수자원은 오아시스로, 지하에 샘물이 있어 불모의 황야 한가운데 열대 정원이 조성되어 우거진 수목들이 자란다. 그러나 이런 샘물도 오염될 수 있다. 지하수를 얻는 가장 흔한 방법은 가장 힘든 방법인데, 그것은 우물을 파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는 것은 때로는 무의미하고 판에 박힌 의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물이 있는 곳을 알기에 더 좀 더 깊이 계속 파 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근원이신 분에게 향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분노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성취한다면서 우리의 잔재주와 전략을 사용할 것인가”라는 것이다.7일 나의 양 떼를 먹이라: 내가 방목장에서 경험하면서 배운 한 가지는 만약 양 떼를 돌본다면 언제나 그들을 먹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3~4회나 옮겨 다니면서 양 떼가 올바른 종류의 꼴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 양 떼를 돌보려면 양 떼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칼로리히 여기는 치유를 그의 사역의 핵심으로 삼았다. 예수님은 자주 말씀 한 마디로 병을 고치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에는 직접 손으로 치료하였다. 하나님의 대리 목자의 기대는 여전히 약한 사람을 강하게 하며, 아픈 사람을 치유하며, 다친 사람을 싸매주며, 귀신들린 자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사역환경은 장애인 까지도 온전히 포용하고 있는가? 에이즈의 수치와 고통을 조용히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을 환영하는가?9일 산파와 유모: 새끼 양을 분만하는 출산 전후의 결정적 순간에 일어나는 일은 목자와 양들 사이의 독특하고 친밀한 관계를 시작하게 해 준다. 젖먹이는 어미 양과 그 어린 것들을 위한 역량과 관심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이끌 다윗을 선택할 때에도 명백히 중시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광야에서 몸소 다정하게 이끄셨던 그 백성을 돌보기 위해 연약한 생명을 보존하고 양육하는 데 직접 몸담았던 한 사람을 택하셨다. 다윗은 자신이 살기 위해 양들을 희생시킬 게 아니라, 반대로 양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목자의 도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윗이 목자로서의 양심을 회복한 바로 이곳에, 후에 성전이 세워지게 된다. 하나님은 모세를 모성적인 사역으로 부르셨다. 그는 이스라엘의 산파와 보모였다. 바울은 이것이 교회의 목자들이 갖추어야 할 표준적인 기대치임을 이해했다. 산파와 유모로서의 부르심을 받아들이자.10일 잃어버린 양 되찾기: 목자 리더십의 필수적인 과제 한 가지는, 제 길을 잃은 사람들-이유야 어떻든-을 꾸준히 되찾는 일이다. 그 대다수는 너무 늦은 때에도 그들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모른다.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는 교회 목자들의 전도 사명에 관한 강력한 비전을 제공한다. 리더십은 잃어버린 자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목자 지도자들은 양들을 잃어버린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거친 이웃 동네, 빈 지역, 술집, 그리고 노숙자 보호소 등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11일 흩어진 양 떼 모으기: 시나이에서 온 베두인 사이드는 일곱 살 무렵 서른 마리 정도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것도 거리낌이 없으며 괴롭히는 존재도 없고 배가 부르면, 그냥 누워서 만족감 속에 되새김질을 한다. 만족이란 진정한 필요를 채우고 고갈됐던 자원이 다시 보충되는 것과 관련된다. 예배란 자신의 필요를 돌봄 받은 사람의 만족한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일어난다.13일 목자 지팡이14일 이름을 붙이고 알아본다: 양들은 자신들이 한 목자에게 속해 있음을 한다. 그들은 이름이 붙여져 그것으로 불리며, 매일 계수된다. 동물의 이름 짓기는 태어날 때 시작되어 양떼들과 자라가는 동안에 목자와의 친밀한 결속을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하고 실제적인 표현이다. 수많은 접촉과 친밀함을 통해 목자들은 양떼들을 일컬어 “그들은 우리 가족입니다”라고 한다. 우리는 양으로서 목자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알아준다는 확신과 안전을 온전히 깨닫고 있는가? 또한 우리는 우리 양 떼 가운데 지체들에 관하여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는가? 그들의 이름은 그들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의 시작일 뿐이다.15일 보호: 목자들은 끊임없이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광야의 환경이 양육의 자원인 동시에 온갖 위험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목자들은 이 황량한 환경 속에서 생명유지에 요긴한 것들을 백분 활용하면서도, 상존하는 치명적인 위협들로부터 그들의 소중한 양 떼를 지켜야 한다. 시편 기자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이라고 기도할 때, 그의 확신은 거룩한 목자의 두려움 없는 용기와 경계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목자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요구하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강한 마음”을 요구하신다. 궁극적으로 목양은 개인의 위험과 희생으로 이끄는 우리의 양 뗴들과의 동질화를 요구한다.18일 사자와의 맞대결: 사자, 곰, 호랑이 등 위험한 광야의 육식동물들에게 동물을 잃는 것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아까운 일이었다. 사자들은 평생 동안 주로 두 가지 활동만 한다. 먹이를 먹고 난 뒤의 잠자기와 먹이 찾기이다. 두려움이 없고 능 목자의 “막대기 아래로” 동물들을 지나가게 하면서 그 수를 세고 점검했다. 또 막대기로 동물의 털을 거슬러 훑어봄으로써 각 동물들에게 기생충이나 벼룩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이따금 제 길을 벗어나는 양들을 훈육하는 용도로도 사용하였다. 목자로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현명하고 객관적인 개인들에게 철저하고 발전적인 평가를 맡길 필요가 있다.28일 인도하심: 목자들은 그들의 양 떼를 어디로 데려가려 하는가? 거기까지 가는 데는 무엇이 필요한가? 목자의 인도는 임무파악, 비전부여,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 속에서의 목표 관리 등을 포함한다. 양들은 큰 그림을 보지 못하므로 때때로 그들의 목적지까지 이끌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하심은 명백하고 극적이었다. 그러나 신뢰할 만한 인간 목자에게 위임하신 것도 또한 하나님의 계획에 필수적이었다.31일 함께 일하기: ‘목자’와 ‘친구’의 히브리어 낱말의 철자는 똑같은 자음으로 구성된다. 여섯 살 어린이가 목양 일을 맡는 경우도 있고, 고용한 도우미가 가족 팀에 합류되기도 한다. 많은 경우, 고용된 도우미는 실제로 확대 가족의 일언이 된다. 그들은 모든 업무를 분담하면서 양 떼에게서 나오는 제품도 함께 제공받는다. 성경은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협력하여 동역할 것을 요청한다. 그것은 지도자는 하나님의 양 떼를 함께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오늘날의 ‘팀 정신’은 어떠한가? 팀의 일원들이 서로 가족처럼 느끼는가? 서로 하모니를 이루며 일하는 데 있어 외적인 도전이나 상호 위협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때때로 우리의 사역 경험은 너무나 역기능 가족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과연 진정으로 하나의 비전을 나눌 것이냐의 여부를 평가하는 세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로, 남들에게 함께 나누어주기를 바라는 그 짐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가? 둘째로, 나눈 일이 우리가 실제 일을 거의 다 하고 남들은 그냥 지켜보기나 하지 않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