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삐삐윤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0
검색어 입력폼
  • 판매자 표지 명(明) 청(淸) 시대 농업과 생산
    명(明) 청(淸) 시대 농업과 생산
    2023년도 1학기*********레포트 과제명(明)·청(淸) 시대 농업과 생산Ⅰ. 서론Ⅱ. 농업Ⅲ. 수공업Ⅳ. 상업Ⅴ. 결론참고문헌사학과***********Ⅰ. 서론20세기까지 중국 경제의 중심은 농업이며, 농업은 기후와 토양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중국은 960만㎢의 넓은 공간 위에 평지, 산지, 사막 등 다양한 지형과 함께 아열대부터 한대를 이르는 기후를 가진 나라이다. 그래서 중국은 여러 개의 농업지구로 나눌 수 있다.당대 이전까지 중국농업의 중심지역은 화북이었다. 화북은 우경(牛耕), 심경(深耕), 관개 등이 가능해져 농업 생산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황토지대의 기후와 토양조건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화북농업의 발전으로 북위 시대에 세계 최초의 종합 농서인 가사협(賈思?, ?~?)의 제민요술(齊民要術) 이 편찬되었다. 한편 화중·화남에는 후한 말부터 5호 16국 시대에 걸쳐 화북 인구의 강남 이주에 의해 개발이 진전되어 벼농사가 한층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비록 강남의 벼농사 방법이 불을 질러 풀을 태우고 물을 대는 ‘화경수누(火耕水?)’였는데도 농업생산력은 거의 화북과 맞먹을 정도였다.당 중기 이후부터 중국농업의 중심은 점차 화북에서 강남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벼 품종이 다양해짐에 따라서 연작법(連作法)을 시행하였다. 8세기부터는 도(稻)·맥(麥) 이모작이 시작되었으며 장강(長江) 이남의 여러 지역에서 논이 개발되고 이앙법이 실시되었다.명 중엽 이후 장강 하류 지역의 송강부(松江府)와 소주부(蘇州府) 일대에서는 면화 재배와 면직업이 번성했고, 소주(蘇州), 호주(湖州), 가흥(嘉興), 항주(杭州) 일대에는 뽕나무 재배와 양잠업, 견직업이 현저히 발달하였다. 이들 지역은 주로 장강 하류 지역의 해안에 존재하고 있어 모래가 많은 토양이어서 면화 재배에 적당하였다. 명대 중기 이후 이 지역은 쌀 생산 대신 뽕나무를 생산하며 전국 제일의 견직물 생산 지역으로 성장하였다.한편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농업에 기초한 경제 작물의 생산은 일부 공장제 형급성장한 점 등을 들 수 있다.강남지구를 비롯한 광동지구 및 복건 지구의 상업 발전이 전체 중국의 상업번영과 상업경영술의 진보를 몰고 왔다. 예를 들면 농산품의 상품화를 비롯한 상업경영술이 발전하였고 상업 도시화가 진행되었으며 대외무역 또한 확대되었다.이러한 구조 속에서 명·청 양대의 500여 년 동안에 중국은 봉건적 상업경제사회로부터 초기 상업 자본주의적 경제사회단계로 발전하였다. 동시에 상품 생산과 상품유통의 발달로 말미암아 상품유통의 거점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시진(市鎭)과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Ⅱ. 농업명·청 시대에는 송대까지의 변화 양상을 계승하면서도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장강 하류, 즉 강남 삼각주 지역의 개발이 고도화되고 상업화와 수공업화가 진척되는 한편, 장강 중류 지역이 개발되면서 농업 중심지역이 다원화되었다. 이에 따라 이전보다 경지면적이 4배 정도 증가하고 식량 생산이 증대되면서 인구도 급증하였다. 둘째, 일정한 토지에 노동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집약농업(集約農業)이 한층 심화되었다. 셋째, 신대륙작물 등 새로운 작물이 전래되어 전통적인 ‘화북의 밀, 강남의 벼’라는 작물생산의 공간적 구조가 변화하고 경작공간도 크게 확대되었다. 넷째, 강남 삼각주 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환금작물의 생산이 확산되었다.명·청 시대에는 신대륙과 다른 지역에서 옥수수, 고구마, 감자, 사탕수수, 담배, 땅콩 등 다양한 작물이 전래되어 중국농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를 통해 원래는 경작에 적합하지 않은 변방 지역의 토지를 개발할 수 있었고, 또 인력자원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옥수수는 명말 청초까지 각광받지 못하다가 중국 중·남부에서 인구압이 거세지던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전반기에 각 지역으로 인구가 이동하면서 섬서·사천·호북·호남·운남·귀주 등 전국에 보급되었다. 고구마는 건조한 지역에서도 재배할 수 있으며, 재배가 쉽고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많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에 고구마는 18세기 년 3모작이 이루어졌다.명·청 시대 강남지역에서 우량한 벼 품종이 늘어난 것은 쌀의 상품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상품화하기 좋은 찰벼는 대부분 술과 떡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명·청 시대 강남의 인구 증가와 도시, 시장의 발달 등은 술과 떡 소비를 크게 늘렸다.16세기 이후 다모작과 다양한 경영방식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농업 생산의 집약화가 크게 강화되었고, 분뇨, 녹색비료, 상업용 비료의 사용도 현저히 증가하였다. 명대에는 농업의 집약화를 이용한 ‘친전법(親田法)’이 실시되었다. 이런 농법은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기근에 대비한 것이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명·청 시대의 집약농법은 강남의 벼농사에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늘려 송대보다 생산성과 생산량이 높았다. 명·청 시대에 인구는 5~6배 증가했지만, 경지면적은 4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이런 명·청 시대 농업 생산력의 발달은 19세기 중엽 4억의 인구를 부양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서민의 생활과 지위, 서민 의식을 향상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였다.청의 황제들은 세입을 확보하기 위하여 농업 진흥 정책을 실시하였다. 요역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정책을 채택함과 동시에 황무지 개간을 장려하여 경작자에게 그 소유권을 인정해주었으며, 지속적인 치수 사업을 실시하여 재해를 방지하였다.청조는 농민들에게는 황무지에 정착할 수 있도록 경우(耕牛), 종자, 농기구, 지원금을 제공하고 관원들에게도 황무지 개간을 적극 권장 하기 위하여 그 결과에 따라 승진시키거나 면직시키기도 했다.또한 지방관리가 백성들을 착취하던 오랜 관습을 엄금하였다. 청초에는 요역을 기피하는 농민들이 지방 신사의 명의로 황무지를 개간함으로써 스스로 전호가 되어 신사에게 지조(地租)를 납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신사의 자손들이 약속을 어기고 소작권을 탈취하거나 매매하여 전호에게 타격을 주었다. 그리하여 청조는 전화의 자손에게 계속 경작할 권리를 주었고, 지주는 함부로 개간지를 매매할 수 없도록 했으며, 만일 지주가 스스로 경작하선대제적(先貸制的) 형태도 존재하였다. 특히 선대제적 형태의 경우는 상인 곧 상업자본가가 생산과정과 운송 판매 과정을 장악하는 것으로서 산업자본가로의 이행단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것이다. 요컨대 수공업의 발달은 상품생산의 증가와 지역적 분업을 수반하여 상품유통, 곧 상업의 번성을 가져오는 기반이 된다.명 대 중기에 면화를 재배한 부(府)의 수는 전체 부주의 반 정도가 된다고 하였다. 면화를 재배한 현(縣)의 수는 전국 전체 현 수의 30% 정도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중 강남지역에 있는 송강부와 태창주(太倉州)를 중심으로 상주부(尙州府), 소주부, 가흥부(嘉興府)는 면화 재배의 중심지역이었다. 이 지역들은 명·청 시기에 전국에서 가장 최대의 면방직업을 장악하고 있던 지역이기도 하였다.면화의 교역중심지는 대부분 하천을 이용한 대수로 주변에 시장을 형성하여 자리잡고 있었다. 강남지역은 대부분 수로를 이용하여 면화 시장을 개설하고 시진을 형성하여 유통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수로망은 강남지역 내부의 무역 유통망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전국을 잇는 면화 시장의 유통망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강남지역의 면화 무역은 지역적인 무역 유통망을 뛰어넘어 전국적인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명·청 시기 강남지역의 면방 지역은 전국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명·청 시기를 통하여 강남지역에서 뽕나무 재배와 상엽(桑葉)과 잠사(?絲)를 중심으로 했던 지역은 절강의 호주부(湖州府)와 가흥부, 그리고 항주부(杭州府)였다. 강남지역에서 잠상업이 대규모로 발전한 시기는 청대 시기부터였다. 강희, 건륭 연간에 태호(太湖)의 남쪽 지역인 소주부, 가흥부, 호주부, 항주부 등에서 대단위로 뽕나무를 재배하였다.소주와 항주는 상유천당 하유항주(上有天堂 下有蘇杭)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제적인 면에서 수도인 북경과 남경을 능가하였다. 당시 면화 재배가 이미 보편화되고 면으로 만든 의복이 일반화되자 농가에서는 앞다투어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쳐 수공업으로 베를 짜 시장에 짐작할 수 있다.견직물의 생산과 유통구조는 역시 면방직업의 구조와 똑같이 농촌의 가내수공업 구조 속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사직품의 생산이 공장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농촌의 농가에서 생산되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청대의 사직품 생산기술이나 생산량은 명대보다 훨씬 증가하고 있었고 강남시장의 사직품 시장은 전국을 무대로 무역을 운영하고 있었다. 고급제품인 사직품이 활발히 판매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 중국의 생활 능력이 높았다는 점도 알 수 있다.Ⅳ. 상업송대 이후 도시화, 전국적 시장의 형성, 농산물의 상품화, 인구의 대량 이동 등으로 경제 전반에 커다란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당시 쌀, 소금, 견직물 등 뚜렷한 지역 특색을 가진 생산품들이 전국 각자의 시장에서 활발하게 유통되었다.송대부터 계속된 교통망의 정비는 명대에서도 새로운 도로 건설로 이어졌다. 특히 북경 천도 이후 경사와 북변에서 필요한 수백만 석의 식량을 남방에서 운반하기 위해 영락 9년(1408) 회통하(會通河)를 개통하여 남북물류의 중요 통로가 되었다.송대 이래 강남에서 이모작이 보편화되자 국가 재정의 주요 부분을 동남지역에 의존하고, 대도시 역시 이곳에 집중되었다. 경제 작물 재배와 수공업이 결합된 시스템으로 강남 시진에는 전국 각지에서 대상인들이 베를 사기 위해 몰려들어 커다란 시장이 형성되었다. 경제 작물 재배로 인한 심각한 식량부족과 농촌 인구 이탈은 명 중엽 이후 강남이 맞닥뜨린 새로운 문제였다. 부족한 식량은 광동·호북·복건 등 인근 내륙 지역에서 들어와 호광숙(湖廣熟) 천하족(天下足)이라는 말이 회자되었다. 그러나 호광은 다시 사천에 의지하고 면방직업이 발달한 전업시진과 장강 연안의 양식 시진이 더욱 밀접한 관계를 형성함은 물론 동북, 화북의 잡량과 함께 지역 특성을 가진 농업생산품들이 전국 각지의 시장으로 퍼져나감으로써 점차 전국적 시장이 형성되어 갔다.명초 북방경계선의 강화와 동남 연해안의 해금 정책이 실시되었다. 이를 위해 홍무 3년(1370) 개중법(開中法).
    인문/어학| 2023.11.18| 8페이지| 2,000원| 조회(136)
    미리보기
  • 판매자 표지 프랑스 혁명에 대한 학자들의 찬반 의견 및 본인 의견
    프랑스 혁명에 대한 학자들의 찬반 의견 및 본인 의견
    ***** 레포트프랑스 혁명에 대한 학자들의 찬반 의견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하고본인의 찬반 의견 제시 후 그에 대한 합당한 이유 제시******** ***프랑스혁명은 1789년 바스티유 감옥 함락과 함께 ‘자유’의 혁명이라는 위상을 얻게 되었다. 프랑스혁명이 없었다면 계몽사상의 자유주의적 이념과 급진적 사상은 단지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하나의 사상에 머물고 현실 생활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혁명은 천 년을 이어 온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면서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를 구축하였다. 또한, 신분제를 폐지하고 법 앞에 평등한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인간의 권리를 선언함으로써 새로운 정치 체제를 떠받칠 시민 사회의 기틀을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봉건제와 중상주의의 속박과 규제로부터 농업과 상업을 해방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가 확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하지만 모든 학자가 프랑스혁명을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정치가 겸 문필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는 프랑스혁명을 비판하였다. 버크는 1790년 11월에 프랑스 형명에 관한 성찰 을 출간하였는데, 이는 그가 1년 만에 혁명 원리의 파괴적 측면을 꿰뚫어 본 것이다. 버크가 “이 모험적이고 희비극적인 사건”으로 칭한 프랑스혁명에 대해 그가 무엇보다도 거부한 주된 지점은 혁명의 토대를 이룬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우위이다. 당장에는 프랑스 및 독일의 이상주의적 지식인들에게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을 테지만, 버크에게는 오히려 “철학적 혁명”을 정치 현실에 글자 그대로 대입시켰다는 점이 비판의 소지가 된다.버크에 의하면 첫 번째 책임은 국민의회 의원에게 있다. 상위 두 신분의 대표자 수와 같은 수의 제3신분 대표를 가진 국민의회는 대부분이 법률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버크에 의하면 “국가라는 것을 묘사된 것조차도 살펴본 적이 없는 자들을, 후미진 마을의 경계선을 넘어선 세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을, 절망적으로 가난한 탓에 세속 재산이든 교회 재산이든 모든 재산을 시기심 가득한 눈으로만 보는” 시골 보좌 신부들이 대표자로 뽑히도록 선거가 고안되었다. 그들은 덕과 지혜를 지니지 못했고, 한 국가의 재산과 능력을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치 계급이 될 자격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이다.두 번째 책임은 국민의회 대표들이 신봉한 계몽사상과 자연권 이론에 있다. 버크는 정부는 자연권에 기반하여 형성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목적이 복잡하기에 권력을 단순하게 관리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버크는 정치적 열광과 촉발 위에 세운 정부는 광신주의로 돌아선 군중과 더불어 신속하게 “법, 예절, 도덕이 없는 부도덕하고 흉포하고 야만적인 다수의 독재”가 될 것이고, “인류라는 보편적인 의식과 동떨어져 지금껏 세상을 인도하고 자제시켜왔던 모든 원칙과 의견을 바꾸고, 그것을 자신들의 관점과 행동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시도한다.”라고 하였다. 그는 이런 힘들을 해방시키는 것은 사회의 안정을 허물뿐 아니라 국민과 국가가 충돌하는 상황을 초래한다고 주장하였다. 대중은 새 정권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규제에 싫증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이러한 다양한 이유 때문에 버크는 프랑스혁명의 확산과 성장을 반대하였다. 또한 영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며, 혁명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버크는 인간의 도덕적 본성이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점을 들어 추상적 이론에 근거를 둔 급진적 개혁이 무수한 보이지 않는 위험을 동반한다고 역설하였다. 프랑스혁명을 뒷받침했던 사상들을 ‘사변적인 이론’이라고 비판한 버크와 달리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은 상속의 권리 주장이 폐습으로 굳어진 ‘원리’에서 발원하며 이 같은 기존의 ‘원리’와 ‘인간의 권리’는 양립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프랑스혁명이 온화하고 합법적인 군주에 대항한 반란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버크의 주장에 맞서 페인은 프랑스혁명이 군주라고 하는 ‘사람’에 대한 반란이 아니라 군주정이라고 하는 ‘원리’에 대한 반란이었음을 강조한다.페인은 부당한 정부가 권력을 잡기 위한 노력으로 국민을 학대하며 늘어놓는 변명에 혐오감을 표출한다. 페인은 “프랑스처럼 수 세기 동안 한 나라에 전제 정치가 자리 잡으면, 왕이라는 인물로 상주하는 원초적 세습 전제 정치는 마침내 그 전체를 대표단이 장악할 때까지 수천의 모양과 형태로 나뉘고 세분화한다.”라고 하였다.버크는 전면적 혁명에 대해 반대하면서 수 세기 동안 점진적인 개혁과 발전을 통해 얻은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반면 페인은 느긋한 개혁에 반대하며 그것이 전제 정치에 신빙성을 부여하고, 부정행위를 고심해서 다루기보다 죄악을 유지하려는 욕망에 더 많이 좌우된다고 하였다. 버크는 인간 본성과 자연의 나머지 부분은 오랜 경험을 통해 정치 안에서 서로를 알게 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는 정치 발전이 점증적인 개혁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반면 페인은 인간에겐 그들의 정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자격이 있고, 정부는 결국 그들의 다른 선택 가능성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는 정치 발전이 전면적인 혁명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프랑스혁명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많은 발전과 성과를 낳았다. 혁명을 통하여 봉건제가 폐지되었고 농민들이 본인 토지의 배타적인 소유자가 되었다. 또한 신분으로서 귀족과 성직자는 사라졌고 공직(公職)이 신분 구별 없이 자격을 갖춘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마지막으로 자코뱅 독재 아래서 일시적으로 침해되기는 했지만 경제적 자유가 새로운 사회의 작동 원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그 결과 자본주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혁명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와 원칙을 선포하고, 선거 제도를 확립했다는 것이다.페인이 주장했듯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뜻대로 자유롭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유로운 인간이라면 현재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하는데, 전임자들의 칙령을 준수할 수밖에 없다면 그렇게 자유롭게 살 수 없다. 페인은 정치 생활에서 수용해야 하는 것은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산 자들이기 때문에 축적된 관습의 권위를 부정한다.과거의 관습을 따라서 간다면 더 나은 이해를 지향하는 정치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랑스혁명은 세습 정부가 아니라 자유와 현재의 정치를 추구하는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는 과거나 미래의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세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세습 정부는 강요받는 것이기 때문에 지배자를 선택할 자유가 없다. 인간은 타인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선택과 자유에 의한 통치를 받아야 한다.공화국은 모든 인간에게 공정하고 보편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능력 있는 인물은 사회에 진출하여 가치를 입증하고 권력을 얻을 수 있다. 공화국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짓밟거나 부담을 안기지 않도록 할 수 있다. 페인은 “다음 시대는 우리가 그래왔듯 똑같은 권리 원칙에 따라 자기 스스로 생각할 것이며, 떠맡은 우리의 권위가 자기 시대의 시스템을 침해하는 걸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영원히는 그들의 영원히가 시작되는 곳에서 끝난다.”라고 말하였다.
    인문/어학| 2023.11.18| 3페이지| 1,000원| 조회(355)
    미리보기
  • 판매자 표지 파란 하늘 빨간 지구 독후감
    파란 하늘 빨간 지구 독후감
    독후감_조천호1. 기후, 생명의 탄생에서 인류세까지1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뽑으라고 하면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계는 우연히 은하수와 알맞은 곳에 위치하였다. 태양계가 은하수와 가까웠다면 블랙홀의 에너지 때문에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지구는 태양에서 알맞은 위치에 떨어져 존재한다. 만약 태양에서 조금만 더 가까웠더라면 금성과 같이 표면을 뒤덮고 있는 황산 구름 때문에 햇빛을 거의 받지 못하고 대기의 대부분이 이산화탄소로 되어 있어 태양열이 빠져나가지 못해 기온이 높을 것이다. 태양에서 지금보다 더 멀었다면 화성과 같이 중력이 약해 기체의 대부분이 날아갈 것이다. 태양과의 거리가 1.2배 이상 멀면 물은 더 이상 액체 형태가 아니라 얼음이 될 것이다. 지구는 우연히 알맞은 곳에 자리해 물이 액체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었으며 황산 구름 때문에 온도가 높아지지도 않았다.바다는 높은 온도로 증발할 위험이 있었지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가 모든 이산화탄소를 수용할 수는 없다. 이 위기는 지구의 판 구조로 벗어날 수 있었다. 판 사이에서 나오는 맨틀의 칼슘과 마그네슘이 탄소와 결합하여 탄산칼슘과 탄산마그네슘이 된 것이다. 탄산칼슘과 탄산마그네슘은 대륙의 재료로 쓰였고 이 과정에서 탄소의 농도가 낮아져 바다가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었다.우리는 흔히 생물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후 생명체가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세균과 같이 생명체 스스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쓸모 없어 보이는 생명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빙하기와 간빙기는 주기적으로 변화하여 교대로 찾아온다. 빙하기에는 빙하가 형성되는 시간이 수만 년으로 길기에 간빙기 때 비교적으로 기온 변화가 더 심하다. 그렇다면 언제쯤 빙하기가 다시 찾아올까? 다음 빙하기는 인류의 생활로 인한 이산화탄소가 기온을 상승시켜 오지 못할 수도 있다.호모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 지구상에 있었지만, 기후가 안정적으로 바뀐 덕에 강력한 왕국이 번성할 수도 있었다.홀로세를 지켜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지구의 환경을 보존해야 한다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우리가 살아가기에 지구의 환경과 위치는 우연이었지만 이 지구를 아끼고 지켜야 하는 것은 인류이다. 인류는 지구의 환경이 조금만이라도 바뀐다면 큰 영향을 받는다. 인류는 기후에 큰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이 우연을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서 인류가 더 지속될지 사라질지 판가름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2. 변화, 미래의 유일한 상수는 기후변화‘기후 변동’은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특징적인 변화로 기존의 평균값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기후변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지구의 평균 기온이 평균값을 벗어나는 현상이다. 지구의 기후는 꾸준히 변해왔다. 그러나 지금 지구의 기후가 바뀌는 이유는 인간 때문이고 이것이 인간에게 좋지 않은 위기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사실이다.온실가스가 증가하면서 지구온난화는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 대표적인 온실가스가 바로 이산화탄소이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기후 강제력’인 이산화탄소는 해마다 누적되어 높아져 갔다. 기후계의 반응 시간은 바로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폭풍으로 인해 열기가 깊은 바다까지 뒤섞이려면 약 20~30년이 걸린다. 즉 이 반응 시간 때문에 지금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나타나는 지구온난화는 수십 년 전 온실가스 농도에 대한 반응이다.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막는다고 해도 지구온난화는 계속될 것이다. 온실가스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나타난다. 지금 드러나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닥칠 위기는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 의한 온실효과는 인류에게 필요하지만, 인간에 의한 온실효과는 경계해야 한다.해수가 냉각되어 언 것을 해빙이라고 한다. 해빙은 계절에 따라 크기가 변하는데 겨울에는 커지고 봄부터는 녹아 둘레가 줄어든다. 남극의 해빙은 북극보다 작아 그 영향이 북극기후변화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인식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IPCC의 기후변화 전망은 우리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가 기후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지금처럼 생활한다면 미래에 우리에게 어떠한 위협이 닥칠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예측된 위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예측된 위험은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의 선택에도 영향을 준다. 우리는 이러한 예측을 바탕으로 미래를 올바르게 이루어나가야 한다.3. 위기, 파국은 한순간에 찾아온다.지구가 자극을 받으면 ‘불확실 영역’에 들어선다. 이 단계에서는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힘이 작동한다. 마치 스프링을 양쪽으로 당겼다가 놓으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다. 불확실 영역을 넘어서면 ‘고위험 영역’에 들어선다. 이 단계에서는 작은 충격만으로도 전체가 흔들려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원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스프링을 과하게 잡아당기면 더 이상 원래 형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성층권 오존층은 태양으로부터 온 인간과 생물에게 해로운 강력한 자외선을 막아낸다. 오존층이 파괴된다면 과도한 자외선이 침투하여 피부암이나 백내장을 일으킬 수 있다. 현재는 1987년에 체결한 몬트리올의정서에 따라 오존층이 점차 회복되고 있다.지구 위험한계는 지구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생물체에 영향을 끼친다. 수온 상승, 산성화된 바닷물 때문에 물고기가 영향을 받고, 물의 이용이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생물의 다양성이 감소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구 위험한계를 관리해야 한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현재의 안락에만 집중하여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끝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 이는 우리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이산화탄소는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지구가 스스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왔다. 그중 바다가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이렇게 지구는 충격을 받았을 때 스스로 않아 1.5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바뀌었다. 현재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올라갔지만 모든 지역에서 똑같이 1도가 올라간 것이 아니다. 극지방은 4도나 올랐다. 만약 평균 기온이 1.5도 올라간다면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른다. 많은 식물이 살 환경을 잃어 사라질 것이다.기후변화의 영향은 모든 곳에 공평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선진국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한 개발도상국 같은 경우 그 영향을 크게 받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문명은 해안가를 따라 건설된다. 세계 4대 문명의 공통점이 큰 강 유역에서 발생하였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빙하가 녹으면 어떻게 될까. 해수면의 상승은 육안으로 알아차리기 어렵고 빙하는 단순히 위아래로 깨지지 않는다. 도미노처럼 한 번 녹기 시작한 빙하는 멈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는 결국 인류에게 영향을 줄 것이고 삶의 터전을 잃게 할 것이다.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구도 우리를 기다려주지 못한다. 인류는 자연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통제할 수는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닥치기 전에 우리는 생태계를 보호하고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4. 먼지, 있어야 할 먼지, 골칫거리 먼지우리는 먼지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먼지가 보이면 모조리 닦아버리고 없어지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 먼지도 있다.먼지의 대부분은 사막과 건조지역에서 발생한다. 흙먼지는 가볍기 때문에 한곳에서 머무르지 않고 대기를 타고 퍼져나가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준다.인간의 몸은 이러한 먼지를 걸러낼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 코털은 먼지를 잡아 코딱지가 되고 목에 들어가도 침 덕분에 위로 쓸려 내려간다.먼지 입자는 작고 가벼워 대기에서 머무를 수 있다. 대부분의 먼지는 햇빛을 반사하여 우주로 돌려보내 지구를 식힐 수 있는데 이를 지구 차광효과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인식하고 있다.먼지는 눈에도 잘 안 보일 정도로 작지만 없다면 기후변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오염 먼지는 인류의 실패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성공에서 발생하였다. 담배는 스스로 끊을 수 있지만, 대기오염은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현재 우리는 인공강우로 미세먼지를 줄이기 등을 노력하고 있지만, 이것은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편리를 위하기 전에 지구의 건강을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5. 대응, 기후변화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온실가스는 없어지지 않고 수백 년에 걸쳐서 축적된다. 미래 세대는 온실가스로 인한 위험을 모조리 떠안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의리’가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계속 우리의 성공과 편익을 위해서 위험과 피해를 미루기만 한다면 인류는 끝내 멸망할 것이다.우리는 지금까지 인류의 성공을 위하여 문명을 구축해왔으나 이의 동의어는 지구를 파탄 내는 길이다. 미래 세대에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기후환경의 가치가 높아져야 한다. 물, 공기 등과 같이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것도 미래에서는 중요하고 희귀해질 수 있다. 익숙하다고 하찮게 여기지 말고 익숙하기 때문에 귀중히 여겨야 한다.기후변화는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의 문제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과 누가 언제 어디서 그 피해를 받는지는 상관도 없고 예상할 수도 없다.대부분 기후변화의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저위도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들은 소득 수준이 낮거나 거주 환경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태풍 등의 재해가 닥쳤을 때 가장 피해를 많이 받는 사람들이 저소득층의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역시 기후변화의 피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무임승차 국가에 속한다.기후변화는 우리 세대와 미래 세대 간의 정의를 위해서 저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와 생명체가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부터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한다.
    독후감/창작| 2023.11.18| 7페이지| 1,000원| 조회(573)
    미리보기
  • 판매자 표지 청조의 한인 통치방법
    청조의 한인 통치방법
    2022년도 2학기*****레포트 과제청조의 한인 통치방법Ⅰ. 서론Ⅱ. 유화책과 강압책Ⅲ. 사상의 통제Ⅳ. 옹정제의 한인 통치 정책Ⅴ. 결론참고문헌사학과***********Ⅰ. 서론누르하치가 만주족을 통일하고 홍타이지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을 당시 명조는 부패하고 있었다. 환관이 관계(官界)를 장악하였고 관료 사이의 파벌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숭정(崇禎) 17년(1644), 이자성(李自成, 1606~1645)에 의해 북경(北京)이 함락되면서 중원은 무정부상태로 변모하였고, 오삼계(吳三桂, 1612~1678)가 이자성을 토벌하기 위해 산해관(山海關)을 열어 청군을 맞아들이면서 명 왕조가 이룩했던 제국은 청이 이어받게 되었다. 당시 청은 선대 황제인 홍타이지(皇太極, 1592~1643)가 돌연사하여 도르곤(多爾袞, 1612~1650)이 어린 순치제(順治帝, 1638~1661)를 대신해 섭정하고 있었다. 도르곤은 선대의 숙원을 이어받아 중원을 장악하겠다는 야욕을 품고 있었고, 오삼계의 항복을 기회 삼아 산해관으로 진격하여 대순군을 격파시킨 후 북경으로 진격하였다. 손쉽게 북경을 점령한 그는 한인들을 안정화하고 남중국에 존재하는 잔여 세력을 소탕하고자 하였다.남중국에는 대순군의 잔당 외에도 사천지역에 자리 잡은 장헌충(張?忠, 1606~1646)과 명의 유민, 유신들이 남아있었다. 이들이 남경(南京)을 중심으로 건국한 것이 남명정권이다. 즉 남경 일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명 왕조의 후예를 명 황제로 옹립한 정권인 것이다. 남명정권은 1644년부터 1662년까지 지속되었다. 1662년 계왕(桂王) 주유랑(朱由?, 1646~1662)이 오삼계에게 살해당한 후 육지에서의 청 왕조에 대한 저항은 사라졌다.당시 청조가 장악한 북중국의 영토는 중원지역의 1/3에 불과했으며 사회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질서 확립을 위해 팔기군을 주둔시켜야 하였다. 그러나 북중국의 치안을 유지하면서 남중국을 정벌하기에는 팔기의 병력이 충분하지 않았다.청조는 중원의 2/3에 달하는 남중국 정벌의 였는지 확인해보고자 한다.Ⅱ. 유화책과 강압책청이 명을 대신해 중원을 지배하게 되면서 청은 한인들을 다스릴 방책이 필요하였고, 그 과정에서 여러 유화책과 강압책을 단행하였다. 청은 한족을 회유하기 위해 유화책을 통해 한인 통치에 대한 반발을 줄이도록 노력하였고, 때론 무자비한 강압책을 통해 한인들이 청조에 대항할 생각을 단념하도록 하였다.우선 유화책으로는 정치적 지도이념으로 유교를 채택하였다. 청조의 유학 수용은 청 태종이 입관하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청 태종은 처음에 사서(四書) , 시경(詩經) , 춘추(春秋) , 주역(周易) , 예기(禮記) , 통감(通鑑) , 사략(史略) , 삼국지(三國志) 등의 서적을 구하여 번역 소개하다가, 나중에는 귀순한 한족 문인들을 초빙하여 효경(孝經) , 대학(大學) , 중용(中庸) , 논어(論語) , 맹자(孟子) 등의 유가 학설을 만주 귀족 대신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였다. 중국의 전통적 사회질서는 유교 가치관에 근거하여 발전해왔기 때문에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 영향권 내에서 왕조를 수립한 청조 역시 유교를 정학(正學)으로 받아들이고 유교 가치관을 선양한 것이다. 또한 천명을 얻기 위하여 황제는 덕치를 행하고 백성들을 재난으로부터 자식처럼 보호하여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회통합을 위해 국책으로 유교의 사상, 용어, 양식을 채택하였다. 사서오경 등 유가 경전을 연구하고, 조상숭배를 권장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명대의 제도를 계승하여, 유교 교육기관으로는 국자감과 관학을 재건하고 유학경서와 주자서의 해석을 시험하던 과거제도 부활시켰다.뿐만 아니라 민중에게 유교사상을 주입하였다. 순치제는 어주효경(御註孝經) , 강희제는 효경연의(孝經衍義) , 옹정제는 효경집주(孝經集註) 를 편찬하여 효를 인륜의 으뜸으로 삼았다. 특히 순치제는 1652년 을 선포하여 유교 윤리를 강조하였다. 강희제는 1670년 백성을 교화시키고 풍속을 바르게 하여 통치 질서를 바로잡고자 를 반포하였다. 이는 선포된 후 의역, 해석, 주석 등이 출판되고 일반 백성) 진회(秦檜)의 죄를 성토한 것이다. 또한, 주자는 많은 서적에 대한 여러 사람의 주석을 한데 모아 주석을 달았다. 그러한 즉 황제들(강희?옹정?건륭)이 국내의 도서를 거둬들여, 도서집성 과 사고전서 를 만들어, 온 천하에 외치기를 “이는 자양(紫陽: 주자의 호)이 남긴 말씀이고, 고정(考亭: 주자의 별호)의 남긴 뜻이다”라고 하였다. 황제들이 걸핏하면 주자를 내세우는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천하의 사대부의 목에 걸터앉아 목을 누르고, 뒤에서는 등을 쓰다듬으려는 의도이다. 천하의 사대부들은 대부분 그(황제의 책략)에 의해 어리석게 되거나 위축되어, 떳떳하지 못하고 구차하게 스스로 예의 형식과 자잘한 조목의 한가운데 빠져들어 이를 깨달을 수 없다.”박지원의 지적대로 대형 도서 편찬 사업은 한족 문인들을 도서 편찬과 고증학에 몰두하게 하여 반청 사상을 약화하려는 회유정책이라 할 수 있다.강희제의 문화정책은 옹정제에 의해 지속되었고 이어서 건륭제 통치 시기가 되면 전통 학술문화가 종합적으로 정리되고 발달하여 도서 편찬 사업이 크게 활발해졌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120여 종으로 7천여 권의 도서가 이 시기에 편찬되었고, 후세에 큰 영향을 미친 3천 4백여 종의 7만 9천 3백여 권을 수록한 사고전서 가 편찬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대규모의 편찬사업이 이루어지자 객관적인 증거와 사실에 입각하여 전적(典籍)을 정리 고증하는 고증학(考證學)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한족을 유인하고 회유하기 위한 도서 편찬 사업은 한족 문인의 반만 의식과 반만 항쟁 운동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사고전서 편찬 사업에 참여한 한족 문인이 4천여 명에 이른 것도 청조의 회유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마지막으로 농민에 대한 구휼 정책을 내세웠다. 청초의 황제들에게는 전쟁과 재해로부터 벗어나 경제를 회복하기 위하여 농민들이 농업에 전력할 수 있도록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순치제와 강희제는 부역경감, 조세감면, 고아와 노인구제, 빈민과 실업자를 몰수하였기 때문에 이를 ‘권지’라 불렀다.1644년 이후 여러 차례 실시된 에 의하여 한족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청조의 여러 왕·공신·팔기관병에게 기지(旗地)로 분배하였다. 이렇게 권지가 거듭 실시되면서 주인없는 토지나 황무지뿐만 아니라 주인이 있는 민전(民田)까지도 그 대상이 되곤 하였다. 그 결과 일부 지주들은 토지를 권지 당해 먼 곳으로 강제 추방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소유지를 가지고 팔기인에게 투항하기도 하였다. 이들을 ‘투충인(投充人)’이라 칭하였는데 그중에는 남의 토지를 자기 것인양 위장하거나 납세를 면하기 위하여 빈 몸으로 투충한 자도 있었다.투충인을 포함한 팔기노복 가운데 도망하는 자들이 속출하였다. 이들을 도인(逃人)이라고 하는데 기지의 경작이 어려워 다른 지역으로 생계수단을 찾아 도망을 간 것이다. 도인의 발생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생계가 어려워지자 청조는 도인을 강력하게 처벌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엄벌에도 불구하고 도인이 속출하자 1654년 병부에 독포아문(督捕衙門)을 설치하여 도인의 체포를 전담하도록 하였다. 이후 권지가 금지되고 기지가 점차 소작인에 의하여 경작되면서 도인의 수도 줄어들게 되었다.마지막으로 팔기의 기인과 한족을 분리하는 기민분리(旗民分離) 정책을 시행하였다. 팔기의 기인이 거주하는 곳을 만성(滿城)이라 하고 한족 백성들이 거주하는 곳을 한성(漢城)이라 하였다. 이렇게 기인과 한족을 분리해서 거주하게 한 이유는 두 집단 간의 모순과 갈등을 차단하고, 팔기 만주인들의 한화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팔기군에 편입한 한군팔기는 복식, 언어 등을 만주인과 같게 해야 했다. 또한, 청조는 만주어와 말타기, 활쏘기를 기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 항목으로 지정하였다. 따라서 한군팔기 10세 이상의 자제들도 만주팔기와 같이 만주어를 배우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배우게 하였다. 또한 성씨를 만주식의 성씨로 바꾸고 부녀자는 전족을 하지 않았으며 제사 방식도 만주 풍습의 영향을 받았다.Ⅲ. 사상의 통제청초의 여러 황제는 한인 신사층을 적극 회유하이후 강희 원년(1662)에도 통해안과 관련된 자들을 처단하였다.문자옥은 기존에 있었지만, 청이 들어서며 그 수가 증가했고 처벌은 가혹해졌다. 청의 고압적인 문화정책은 중앙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신민의 문화 활동 범위를 제한한 것이다. 즉 문자옥이라는 정책은 청나라가 한족을 억압하고 탄압하기 위해 사용한 일종의 수단이었다.청조는 북경으로 천도한 직후 만주족의 통치를 위협하는 모든 서적을 금지하고 소각하였으며 일부 서적에는 첨삭을 하였다. 가혹한 문자옥과 금서 조치로 철저히 사상을 통제함으로써 민중을 지배한 것이다. 특히 중국을 침략했던 여러 이민족을 비난하는 사이고(四夷考) 와 같은 역사와 문화관계 서적을 불태워 버렸다. 또한 서적뿐만이 아니라 인쇄물에서 간접적으로 반청의 표현이 보여도 저자를 조사하였다. 사실상 새 왕조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은 없었음에도 금지된 글자체나 이단적인 표현을 사용한 경우에 모두 모반죄로 처벌하였다.건륭제가 실시한 문화정책 가운데 각종 대형 유서의 편찬은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예를 들어 사고전서 를 편찬한 수단은 ‘우금우징(寓禁于徵)’이었다. 즉 서적 수집이라는 명목으로 청조에 유해한 서적을 선별하여 깨끗이 제거하려고 하였다. 또한 건륭제는 책판을 파기하고 책을 태우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이 소장하거나 널리 유통되는 통로도 금지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문자옥은 후대로 갈수록 규모가 확대되었다. 역사학자 등지성(鄧之誠, 1887~1960)이 작성한 청대문자옥간표(淸代文字獄簡表) 의 통계에 따르면, 건륭 연간에 일어난 문자옥은 무려 130여 건이나 되었다고 한다. 청나라 때 일어난 문자옥이 160여 건임을 감안하면 80%에 해당한다.윤가전(尹嘉銓, 1711~?)은 대리시경(大理寺卿)을 맡은 청 학자이다. 그는 『대청회전』을 편찬할 때 한림 편수관(翰林編修官)을 역임했고, 만수절(萬壽節)에 구여송(九如頌) 을 지어 건륭제에게 바치었다. 그러므로 그는 청나라 통치에 지극히 순응적이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다.
    인문/어학| 2023.11.18| 10페이지| 2,000원| 조회(161)
    미리보기
  • 판매자 표지 영화 감상문_도가니
    영화 감상문_도가니
    영화 감상문영화 영화 는 2000년부터 5년간 벌어진 광주 인화 학교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한 공지영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주인공 강인호는 김교수의 추천을 받아 무진에 있는 자애학원(청각장애인학교)에서 미술 선생님으로 근무하게 된다. 강인호는 어두운 학교 분위기와 학생들의 분위기에 학교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강인호는 자신이 느낀 이 감정을 동료 선생인 박보현 선생에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박보현 선생은 몸의 장애는 마음의 장애로 이어진다며 아이들이 마음을 열지 않고 어두운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강인호는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게 되는데 여자 화장실에서 이상한 비명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나 수위 아저씨는 학생들이 원래 그러고 논다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강인호를 내보낸다. 하지만 강인호는 연두와 유리의 고발로 선생들이 아이들에게 폭력과 성폭행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강인호는 성폭행 사실을 밝혀야 할지, 자신의 딸을 생각해서 모르는 척 넘어갈지 고민을 하게 된다. 결국 강인호는 인권운동을 하는 서유진에게 연락을 하여 증거를 수집하고 교육청에 고발하려고 하였지만 교육청과 시청은 서로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며 모르는 체를 하고 경찰서도 조사를 하지 않는다. 그 이후 방송사와 연락이 닿아 이 사실을 방송하게 되고 교장과 행정실장, 박보현 선생은 연행된다. 이들은 연행되는 순간에도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며 죄를 부인한다. 게다가 교장과 행정실장이 기독교 장로님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무죄라고 주장하는 기독교 단체들은 오히려 잘못을 아이들에게 돌리며 2차 가해를 하게 된다. 교장과 행정실장도 ‘아이들이 미쳤다. 아이들이 하는 말은 거짓말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합의를 진행한다. 그러던 중 피해자의 증언으로 그들의 성폭행 장면이 찍힌 영상을 확보하게 되는데 검사까지도 가해자에게 넘어가 증거를 없애버린다. 결국 가해자들은 짧은 징역을 살고 나오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여자들찻길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강인호와 서유진은 경찰청 앞에서 민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집회를 하지만 경찰 측은 불법집회라며 오히려 그들을 무력으로 진압한다. 시간이 지나고 강인호는 서울로 향하게 되고 연두와 유리를 비롯한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지원을 받으며 지내는 장면을 끝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영화 속 윤리적 문제를 분석하자면 첫 번째, 아이들을 교육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 선생이 학생에게 폭력과 성폭행을 자행하였다는 것이다. 박보현 선생은 민수가 말을 잘 듣지 않고 자신을 걱정시켰다는 이유로 교무실에서 폭력을 휘두른다. 하지만 교무실에 있는 그 누구도 박보현 선생을 막거나 민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또, 박보현 선생은 민수와 민수의 동생을 집으로 데려가 성추행을 한다. 민수의 동생은 너무 어려서 그러한 끔찍한 일이 있고 나면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한다. 결국 민수의 동생은 기찻길에서 기차에 치여 죽게 된다. 교장과 행정실장도 마찬가지이다. 어린 여자아이들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하고 아이들에게 물고문을 하는 것도 모자라 아픈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자 아이를 빼돌리기 위해 병원을 찾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교장과 행정실장이 쌍둥이라는 점을 이용해 죄를 한쪽에 몰려고 하는 시도를 하고 오히려 이 모든 일을 피해 아이들의 탓으로 돌리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인다.두 번째는 잘못된 기독교인들의 행동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가슴 아프고 답답한 부분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화나는 부분이 바로 기독교인들의 행동일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교장과 행정실장이 기독교 장로님들이고 사회에 공헌한 점이 많으니 무죄라고 주장을 한다. 교장도 자신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죄를 받지 않을 것이라며 이 모든 일을 재수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이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 때문에 피해자들이 법정에 들어갈 때의 풍경은 가관이다. 한쪽에서는 성폭행범들을 벌해야 한다는 집회가 벌어지고, 한쪽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이 모든 일이 아이들의 잘못이며사람들의 생각과 시선이다. 서유진은 아이들의 진술을 모아 교육청을 방문한다. 하지만 교육청은 방과후에 일어난 일은 교육청의 소관이 아닌 시청의 소관이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청 또한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며 방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경찰마저도 교장과의 친분 때문에 조사를 시작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은 기독교의 장로님들이며 그들의 인권은 생각하지 않느냐는 망언을 내뱉기도 한다. 또, 처음에는 법정에 수화 통역인이 없었다. 청각 장애인들과 관련된 재판을 하는 법정인데 그들을 배려하지 않는 법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수위 아저씨, 산부인과 의사, 김정우 교수, 변호사, 검사, 판사까지 모두 학연과 지연으로 묶여 가해자의 죄를 심판하기보다는 피해자의 합의를 원하고 가해자의 인권과 편리를 위한 일들을 서슴없이 진행한다.그렇다면 영화 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서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의도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 번째로 우리는 그동안의 우리의 행동들을 뒤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껏 의 바탕이 된 광주인화학교 성폭행 사건 외에도 수많은 사건을 접하였다. 힘이 없는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 여자들이 납치되어 강간을 당하고 살해당한 사건, 집단 성폭행 사건, 몰래카메라, 온라인 불법 다운로드, 스토킹 사건 등등. 지금까지도 이러한 끔찍한 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계속 벌어지고 있다. 그럼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우리는 피해자의 탓을 하지는 않았는가?가해자를 옹호하지는 않았는가?모르는 척 방관하지는 않았는가?이러한 끔찍한 사건들의 피해자는 대부분 힘이 없고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과 여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약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몇십, 몇백 년 동안 수도 없이 벌어진 사건들에 ‘또?’라는 생각을 가지며 방관하였다. 그리고 ‘저 사람이 그럴만한 일을 했겠지.’라는 생각으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 같다.두 번째로 영화가 흥행하면서 광주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은 재조명을 받게 된다. 2011년 9월에 이 사건을 다시 재조사하기로 결정하였으며 결국 광주인화학교는 2012년 2월에 폐교가 되었다. 한편 아동ㆍ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011년 11월 17일부터 ‘도가니법’이 시행되었다. 개정 법률에 따르면 장애인과 13세 미만의 아동을 성폭행했을 경우 7년, 10년으로 형량을 대폭 늘렸으며, 무기징역까지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장애인 여성ㆍ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행범죄의 공소시효도 폐지됐다. 아울러 장애인 보호ㆍ교육 시설의 장(長)이나 직원이 장애인을 성폭행하면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형이 가중된다. 그리고 장애인 성범죄와 관련해 솜방망이 처벌의 근거가 돼 왔다고 비판받았던, 피해자가 '항거불능'일 경우에만 성폭행으로 인정하는 조항도 삭제했다. 또한, 2012년 8월부터는 교장, 교사 등 업무상 지위를 이용해 미성년자를 성추행 한 경우 피해자에 대한 처벌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된다.마지막으로 영화 속에서 아이들을 위해 모든 사실을 밝힌 강인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사람으로서 이러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경찰이나 방송에 알리는 것이 당연하고 옳은 일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강인호도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려야 할지, 아픈 자신의 딸을 생각하여 모르는 척할지 고민하게 된다. 강인호는 아이들의 편에 서서 가해자들과 함께 싸우기를 선택한다. 하지만 강인호에게는 끊임없이 유혹이 다가온다. 재판 진행 중간에 김정우 교수에게서 연락을 받은 강인호는 약속 자리에 변호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정우 교수는 강인호에게 재판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너에게 득이 될 것이 없으며, 내 입장이 곤란하다고 말을 하며 돈을 건넨다. 연두랑 합의를 보는데 도와달라고 하며 그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서울을 가게 해주겠다의 손을 망가뜨리며 마음속의 갈등을 물리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영화를 보면서 답답하고 화나는 감정을 참아낼 수 없었다. 더 화가 나는 일은 영화 속 일들이 결코 픽션이 아닌 지금까지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범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화되고 복잡한 형태로 벌어진다. 피해자들은 몸과 마음 어느 하나 성한 곳 없이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감당하고 이겨나가야 한다. 반면, 법은 가해자편이라도 되는 듯이 약한 솜방망이 처벌을 가한다.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사람들은 가해자의 인권만을 생각하여 그들을 보호해주지만, 피해자는 보호해주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2008년 벌어진 조두순 사건도 가해자는 12년이라는 짧은 형벌을 받고 석방한 후로도 경찰의 보호 아래 편히 살고 있다는 것이다.에서도 사람들은 이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이유가 모조리 아이들 때문이며 가해자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특히 교회를 다니는 크리스천들이 그런 말과 행동을 많이 보이는데, 과연 기독교를 믿는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모두가 깨끗하고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또한, 법정에서 변호사가 ‘9살과 성인 남성과의 성관계가 가능한 일이냐. 가능하더라도 여자아이의 동의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망언을 한다. 그만큼 성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피해자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과 가해자를 위한 법률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돈에 매수된 권력자들에 대한 해결책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애 학원의 아이들은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고 부모님도 장애를 가지고 계시거나 돌아가신 경우가 많다. 이렇게 힘 없고 기댈 곳 하나 없는 아이들이 용기를 내서 열린 재판에서 누구보다도 공정해야 할 검사, 판사, 변호사가 가해자의 돈에 매수되어 피해자들을 외면하였다. 자신들의 앞날을 위해서 정의를 져버린 이들에 대한 처벌도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가해자들은 고작 몇 다.
    독후감/창작| 2023.11.18| 6페이지| 1,000원| 조회(264)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
1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05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58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