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서 「시계가 걸렸던 자리」우주적 시간 속의 삶과 죽음- 구효서『시계가 걸렸던 자리』들어가는 말소설 담론에서 시간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때문에 세계를 인식하는 범주로서의 시간뿐만 아니라 문학과 관련하여 서사 구조의 진행 과정 속에서 기법으로서의 시간, 그리고 작품 창작과 작품과 독자와의 소통까지 포함한 시간 등 다양한 시간의 개념과 분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구효서의 는 주인공인 ‘나’가 홀로 빈집이 되어버린 고향집을 찾아가서 겪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진행되는 소설이다. 하지만 ‘나’의 의식이 현재에 고정되는 경우는 작품 분량 상으로 따져볼 때 극히 적으며, 주인공의 의식은 과거의 체험에 대한 여러 가지 회상을 다양하게 넘나든다. 이 작품은 이처럼 다양한 시간의 흐름이 등장하는 역순행적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또한 시간의 새로운 범주에 대한 깨달음이 작품 전반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즉, 시간이 형식의 측면에서만 활용될 뿐만 아니라 소재 더 나아가 주제로서 활용되고 있다.본 발표에서는 를 시간을 중심으로 삼아 분석하고자 한다. 먼저 작가에 대해 소개한 뒤 작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시간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고, 작품 내의 시간 구조, 소설 속 상징, 시간에 따른 인물의 인식 변화에 대해 살펴보면서 크게 형식으로서의 시간과 주제와 관련하여 세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범주로서의 시간에 대해 알아보겠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함께 변화하는 공간과 공간성의 차이를 살펴봄으로써 시간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는 공간에 대해서도 알아보겠다.본 론1. 작가 소개작가 구효서는 1958년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태어났다. 1987년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의 주제 의식은 매우 다양한데 크게 토속적 정서, 현대적 도회적 정서, 해독 불가능한 관념의 세계로 나눠볼 수 있다. 는 그의 마지막 계열에 속하는 작품으로 일상을 지배하는 근대적 시간을 초월하는 우주적 시간에 대한 깨달음을 다룬 소설이다.작품으로는 단편소설 (2000)이 있으깨달음과 맞물려 이루어진다.2) 제라르 주네뜨 - 서술시간론제라르 주네뜨는 소설 속에서 서술이 이루어진 시간과 실제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에서 언급된 사건들은 실제 일어났던 순서와 다르다. 대표적인 예로 주인공은 자신이 태어난 시각을 알기 위해 찾아갔던 고향집에서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어린 시절이 시간 상 먼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의도적으로 사건의 배치를 다르게 한다. 이처럼 주네뜨의 이론과 부합하는 점이 이 작품에서는 어린 시절의 회상과 즉 과거 회상, 요약, 생략 등으로 나타난다. 특히 이 작품은 서술 시간과 스토리 시간과의 차이가 회상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3) 베르자예프 - 시간범주베르자예프는 시간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그 첫 번째가 우주적 시간이다. 우주적 시간은 무한한 반복성을 가지고 순환하는 시간 구조를 뜻한다. 우주적 시간은 대자연과 깊은 관련이 있다. 두 번째 범주인 역사적 시간은 우주적 시간과 달리 직선적 구조를 가진다. 역사를 구성하는 것은 인물들 간의 상호 관계이며 역사적 시간은 이를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마지막으로 실존적 시간은 시간의 흐름과 역사의 흐름이 가진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을 말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느냐하는 객관적인 관점보다는 같은 시간이라도 각각의 개인들이 다르게 느끼는 시간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작품 내에선 몇 시 몇 분 몇 초로 시간을 쪼개고 쪼개는 시계가 대표적인 예인 직선적인 시간이 등장한다. 또한 단순한 직선적 구조를 벗어나서 순환성을 지닌 초월적 시간 또한 나타나는데 이것은 베르자예프의 이론에서 우주적 시간과 매우 가깝다.3. 소설과 시간3-1. 줄거리주인공은 앞으로 살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의사의 말을 듣고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문득 자신의 태어난 시각이 궁금해진다. 그는 “널 낳고 나니깐 아침 햇살이 막 뒤꼍 창호지문 문턱에 떨어지고있더라,”고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고는 정확한-3. 소설 속 시간에 따른 인물의 의식 변화1) 현재시한부 판정을 받은 '나'는 자신이 태어난 정확한 시간을 알기 위해서 고향집으로 찾아간다. 어머니에게 자신이 태어났을 때의 시간을 물었을 때 '널 낳고 나니깐 아침햇살이 막 뒤꼍 창포지문 문턱에 떨어지고 있더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 '나'는 고향집에 찾아가 당시 상황이 반복될 때의 정확한 시간을 잼으로써 자신이 태어난 정확한 시간을 알고자 한다.▷ '나'의 시간에 대한 인식: '나'는 자신이 태어난 시간을 시계가 나타내는 분, 초단위의 정확한 시간으로 인식하고자 한다. 시계는 근대적, 인위적, 일회적, 직선적인시간을 상징한다. 이러한 나의 모습은 시계를 통해 시간을 인식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죽음에 대한 인식: ‘나’가 자신이 태어난 정확한 시각을 알고자 하는 것은삶을 존재의 시작점, 죽음을 존재의 끝점으로 보고 끝자락에서 선 시점에서 시작을알고자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주인공은 끝이라는 생각에 서글퍼한다.2) 어린 시절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고향집에 들어온 '나'는 안방에 쪼그리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며 누나들이 가꾸던 꽃밭,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었던 위질환 등을 떠올리는 등,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3) 나의 탄생햇살이 방안을 비추기 시작할 때,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나'가 본 여러 가지 꽃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났을 때의 환상을 본다. 시계가 대변하는 일회적이고 직선적인 시간을 벗어나 우주적 시간을 체험한 후, '오전 열시 육분 사십오초'라는, 자신이 태어난 정확한 시간을 알았지만 그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는다.4) 어린 시절'나'가 태어나는 순간의 환상을 본 후, '나'는 시계와 관련된 추억을 회상한다. 또한 '나'는 안마당, 사랑방, 돼지우리, 소나무 아래 변소, 추녀밑 등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각각의 공간과 관련된 추억들을 떠올린다.5) 나의 죽음, 먼 미래, 먼 과거다시 안방으로 돌아온 '나'는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 있'4. 소설 속 소재의 상징1) 시계시계는 추상적인 시간 개념을 쪼개어 숫자를 통해 구체화한다. 시계가 상징하는 시간은 근대적, 인위적, 직선적, 일회적, 일상적인 특징을 지닌다. 한편, 시계가 주인공의 옛집에서 신주단지를 모셨던 자리에 걸림으로써 전근대적 상황의 소멸을 암시하기도 한다.'시계는 무섭게도 마을사람들을 하루아침에 일사불란하게 만들었다. 두레 회원은 조반 식전에 잠깐 만나 얘기합시다,라는 말이 오전 다섯시 반에 봅시다,라고 바뀌었다. 어둑한 새벽인데도 귀신같이 때를 맞춰 모여들었다. 시계 덕분이었다. 옛날과 달리 조금만 늦어도 늦었다고 타박이었다. 마을사람들이 시계를 장만한 게 거의 같은 시기였듯이, 시계를 건 위치도 거의 같았다. 신주를 모셨던 곳이었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시계를 올려다봤다. 굳이 시간이 궁금하지 않아도 시계를 봐야 마음이 흐뭇해졌다. 논밭에 나갔다 들어와도 시계부터 봤고, 어이쿠 벌써 시간이 저렇게 되었남, 하며 바쁜 척 발을 닦았다. 다들 그렇게 나날이 신식으로 세련되어가는데 시계를 못 읽는 나만 바보가 되었다.'2) 빛(햇빛, 햇살)화자의 어머니는 화자가 태어난 시간을 빛을 통해 인식하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빛은 시계가 등장하기 전 전근대적 시대의 시간을 인식하는 도구이다. 또한 화자가 자신의 정확한 탄생시각을 알기 위해 고향의 집에 찾아오게 하는 동기 중 하나이며, 햇빛의 순환성으로 인해 우주적 시간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그러다 며칠 전, 어머니가 흘리듯 말해버렸던 음성이 떠올랐다. 아, 글쎄 시계가 없었다니깐 그러네. 그땐 해뜨는 걸루다 하루를 가늠한 거야. 널 낳고 나니깐 아침햇살이 막 뒤꼍창호지문 문턱에 떨어지고 있더라. 생각나는 건 그게 전부다.''햇살이 추녀를 미끄러져내려와 방안을 비추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던 그해 그달 그시각의 햇살이 천천히 방문턱으로접근해 내려왔다…(중략)…나는 햇빛 속에 있었다. 눈은 뜰 수 없었고 속눈썹이 젖었다…(중략)…노랗고 따뜻한 아침볕이, 마침내 문턱에 막 기억의 꽃들이 조용히 아우성치며 피어나기 시작했다.'4) 뼈(유골)뼈는 삶을 육체와 정신의 조합으로 보는 관점에서 완전한 삶이 아닌 동시에 죽음을 육체의 소멸로 보는 관점에선 완전한 죽음이 아니다. 풍화되어 먼지가 되는 뼈가 자연의 순환 고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통해 ‘나’는 자신의 존재가 우주의 일부분이며 하나의 소멸이 새로운 생성의 기점이 되는 것을 깨닫는다.'시신은 곧 핥아놓은 듯이 깨끗한 뼈로 변했다. 눈이 부셨다. 수의도 머리카락도 흔적없이사라져버렸다. 나는 복잡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한 그 새하얀 석회질의 구조물을 오래오래, 하나하나, 구석구석 바라보았다. 애당초 내가 아니었다. 나는 차라리 저 문밖의 대추나무거나 보리똥나무거나 뻐꾹채거나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햇살이거나 보리똥나무 사이로보이는 하늘이라면 하늘이었다. 설령 나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나의 극히 작은 일부분일 뿐이었다…(중략)…고작 그런 뼈라니.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 끝나기도 전에 뼈는 산화를 시작해 어느새 먼지로 변했다. 방의 네 벽도 따라 무너지고 풍화됐다.'5) 고향존재의 기원이자 생의 시작점을 알기 위해 화자가 찾는 공간이다.'두 달 전만 하더라도 아침 아홉시에 고향집을 찾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명절 때 성묘다녀가던 길에 한두 번 들렀던 게 고작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생의 끝싯점이 언제일지를 구체적으로 계산하게 되면서 생의 처음시점이 궁금해졌던 것이다. 불현듯 닥쳐온 죽음앞에서 탄생을 생각하는 건 아이러니가 아니라 어쩌면 자연스런 일일지도 몰랐다. 생의 끝점은 시시각각 구체화되고 있는데 생의 시작점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게 이른 새벽 나를 고향으로 내몰았다.'6) 병(암)병으로 인해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화자는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느낌 때문에 탄생시각을 알고자 한다. 또한 태어날 때부터 가진 위질환이 주인공의 죽음을 내재하고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우주적 시간에 대해 암시하기도 한다.'사주풀이 점을 치거나, 재혼을 하려는데 출생일시를 까맣게 까먹은 경우가 아
영화 비평문감히 말하다,우리가 몬스터라고영화 를 보고◁ 몬스터(2004)감독 ; 팻티 젠킨스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가 무려 일곱 명을 살해하고 체포되어 결국 사형에 처해진 어느 창녀의 충격적인 실화를 그린, 대단히 무겁고 어두운 사회 드라마.- 홍성진의 영화 해설 중메인 카피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 살인범사랑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멈출 수 없었다!에일린(번역판: 리)역 샤를리즈 테론 ▷‘스스로 그 자리에 서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어’‘나한테 상처를 준 건 항상 선량한 존재들이었지. 상상도 하지 못할끔찍한 것들은 오히려 대하기 쉬웠어.‘◁ (왼쪽) 셀비 역 크리스티나 리치경찰에게 붙잡힐까봐셀비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장면1. 리의 목소리가 살아있는 영화, - 줄거리영화 는 미국의 여성 최초의 여성 연쇄 살인범, 에일린 워너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그러나다른 범죄 영화와 달리 범죄를 하나의 사회 문제로 보기보다는 에일린이라는 개인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었다.주인공 ‘에일린’(이하 리)은 여덟 살 때부터 아버지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하지만, 아버지는 그녀를 오히려 때린다. 아버지에게 말하면 상황이 나아질 줄 알았던 어린 그녀는 아버지의 예상치 못한 태도에 당황하며 가족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신뢰’를 받지도, 가지지도 못한다. 열세 살 때에는 두 동생과 함께 친척집에 맡겨지지만, 친척들의 암묵적인 강요로 돈을 벌어오기 위해 성 매매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사실이 들켜서 친척들에게 쫓겨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성 매매를 계속 하게 된다. 자신의 암울한 삶에 절망한 그녀는 자살하기 전, 목이 말라서 마지막으로 술집에 들어갔는데 그 곳에서 레즈비언인 셀비를 만나게 된다. 그 술집이 동성애자들만 이용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무척 불쾌해 하지만, 셀비가 ‘그냥 너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 그 뿐이야. 다른 마음은 없어.’라고 말하자 오해를 풀고 가깝게 지내게 된다. 거리의 여자인 리와 레즈비언인 셀비. 이 둘은 사회 속에서 인정받지도,작했다. 그러던 중 살해 당한 여섯 명의 남자 중에서 퇴역 경찰까지 포함되어 결국에는 그녀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재판 과정에서 첫 번째 살인은 고의가 아닌 자기 방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셀비는 그녀가 살인범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만 할 뿐이다.‘스스로 그 자리에 서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어.’라고 말하는 리의 모습은 성 매매 여성을 보고 몸을 파는 천박한 여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 짓을 하기 전에 내가 얼마나 독한 마음을 품는지 …….’라는 리의 말 속에서 그녀가 성 매매를 하면서 얼마나 지쳐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이 영화는 연쇄 살인 그 자체보다는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한 개인의 삶을 보여준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녀의 비극적인 삶을 가슴으로 이해하기도 전에,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판결일까?2. 비극적인 순수함의 리, 그리고 이기적이고 의존적인 셀비와의 사랑- 개인적 측면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가족, 친구, 연인 …….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하지만, 리는 그 모든 관계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지만 오히려 그 말을 했다고 학대를 했던 아버지,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리로 나섰지만 천하다는 이유로 린을 쫓아낸 가족들, 다른 성 매매 여성들과 달리 외모가 못생겼다고 차별했던 남자들, 끝까지 지켜주겠다며 그녀에게 순결을 바치라고 요구하지만 나중에는 배신하고 떠나버렸던 남자들까지. 그녀는 그 어떤 관계에서도 믿음을 가질 수 없었으며 사랑을 받는 일도 없었다.그랬던 그녀에게 갑자기 나타난 셀비. 리는 셀비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녀에게 마구 욕을 하면서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한다. 그렇지만, 셀비의 진실된 태도에 감명을 받고 그녀 또한 자신처럼 상처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히려 선택을 잘못함으로서 나중에 사형 선고까지 받게 된 것이다. 리는 왜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거기에는 어렸을 때 사회화가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고 리 자신의 통제력이 부족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녀의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불우한 가정 환경, 어렸을 때부터 성폭행을 당해왔던 경험, 성 매매를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했던 처지. 그 모든 것이 맞물려 그녀를 한 구석으로 몰아간 것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리는 너무나도 순수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토록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것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는 너무나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녀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으리라 …….한편, 리가 자신을 바치면서까지 사랑했던 셀비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귀하게 자라온 사람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기업 사장이었고 셀비가 그 곳에서 일하기를 바라지만 셀비는 레즈비언인 자신을 이해 못할 거라는 생각에 가족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한다. 셀비는 리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지만, 타인에게서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답답해하고 고독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셀비는 자유분방하고 강인한 린을 만나면서 의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셀비가 너무 의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리는 알게 모르게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오른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지만, 그녀 역시 간단한 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올 수 있었는데도 단 한 번도 노력해보지도 않고 리가 성 매매를 해서 돈을 벌어오기만을 바랐기 때문이다. 또한, 셀비는 무척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리가 재판을 받을 때에도 린이 왜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증언해 줄 수 있었지만, 셀비는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까봐 린을 외면하고 만다. 이는 무슨 일이든 자신의 이익을 먼저 계산하고 절대로 손해보지 않으려는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3. 가족의 무관심은 ‘리’를 성 매매 현장으로 끌고 갔다- 가족적 측면리는 아서 받은 상처, 성인이 되어 자신을 쾌락의 도구로 여기는 남성에 대한 증오가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녀가 성(性)을 팔 때에 ‘먼저 계산부터 하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전에는 돈을 내지도 않고 그녀를 한껏 취하기만 했던 남성들이 여럿 있었다는 증거이다.한편, 성폭행을 했던 아버지의 친구, 그 사실을 모른 척했던 아버지를 비롯해서 그녀 삶의 모든 남성은 그녀를 존엄성을 지닌 인간보다는 자신에게 쾌락을 안겨 줄 대상으로만 본다. 리는 레즈비언이 아니지만, 여성인 셀비를 사랑하게 되었던 것도 그 밑바탕에는 그동안의 삶에서 모든 남성들이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만 취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녀가 성을 파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남성들이 그녀를 그렇게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에는 친척들의 암묵적인 강요로 할 수 없이 성 매매를 하게 된 것이며 나중에는 새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배운 것도 없고, 설사 어떠한 특출난 능력이 있더라도 그들의 말대로 ‘창녀’라는 이유 때문에 모든 곳에서 거절당했다. 그래서 리는 셀비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또다시 성을 팔 수 밖에 없었다.만약, 리의 아버지 친구가 성폭행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막아줬다면, 최소한 리의 아버지가 리의 이야기를 들어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리가 친척들에게 맡겨졌을 때 그녀가 성 매매를 하는 대신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친척들이 조금만 신경을 써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리는 마지막 부분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선택을 한 적이 없어요. 그저 강요받았을 뿐, 그냥 상황에 내맡겨졌을 뿐 …….’ 여덟 살 때의 성폭행, 열세 살부터 친척들의 암묵적인 강요로 시작된 성 매매, 셀비와의 만남 이후로도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계속해야 했던 성 매매 ……. 리의 삶에서 항상 성(性)은 상대방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 돈벌이 수단으로서만 존재한다. 또한 리는 끊임없이 성 매매를 강요받고, 성 매매 이외의 것은 할 수가 없는 환경에서 살아온다. 리의 삶은, 어떤 사회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어쩌면 셀비라면 성을 파는 자신의 모습을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셀비가 그녀를 소중하게 대해주자, 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는 사랑에 감격하고 그것을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셀비와 함께 살기 위해 성 매매를 다시 한 것이고 뜻하지 않게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한 남자를 죽이게 된다. 그 이후로 리는 다시는 성 매매를 안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사회의 편견과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왜 다시 성 매매를 하지 않는 거야? 우리 아빠 재산을 노린 거지?’ 라고 말하는 셀비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성 매매를 다시 하게 된다. 나중에 그녀가 경찰에게 잡혀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차갑게 변한 셀비의 모습에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고,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준 셀비를 원망하지 않는다. 이처럼, 리는 어렸을 때 그 어떤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셀비의 존재가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 가족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셀비에게서 받으려던 것이 연쇄 살인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4. 안경을 쓴 사회가 그녀에게 해준 것- 사회적 측면리는 셀비를 만난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돈을 벌기 위해 성 매매를 하는 도중, 리의 몸을 산 남자가 린의 머리를 둔기로 쳐서 기절시킨 후 몸을 차 의자에 묶어 두고 죽이려고 했다. 가까스로 줄에서 풀려나왔지만 그 남자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총으로 그 남자를 죽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리는 다시는 성 매매를 하기 싫어하지만 돈이 없을 때마다 성 매매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서 경찰에 붙잡힐까봐 성(性)을 사는 남자들을 죽이게 된다. 더는 살인을 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만 창녀라는 낙인이 찍혔기 때문에 그 어느 곳에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낙인이 찍힌 상태에서는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성을
한국현대소설읽기02반체온이 담긴 거짓말- 윤성희 「고독의 의무」를 읽고비극적이고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간결한 문체 속에 담겨 있는 작품이다.혼자서 동생들을 키워야 했던 할머니, 암을 판정받고 시골로 내려가던 일, 트럭 사고로 휠체어를 타야만 했던 아내 등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을 수 있는 부분에서조차 그녀는 꼭 관찰일기를 쓰는 것처럼 담담하고 짧은 문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해 보이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을 만들어 내고 그 숨이 모여 하나의 깊은 감정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났던 친구들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결혼식이나 돌잔치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없으면 ‘행복하게 살아라’는 말조차 건네고 싶지 않은 ‘친구’라는 이름은 점점 무거워지고 나를 외롭게 만든다. 화자 기분 상태에 따라 축복을 비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은 가벼운 진심, 혹은 진심을 가장한 거짓이고 화자를 외롭게 만드는 근원이다. 반면, 그런 곳에 가지 않아도 ‘생일이 만우절’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동호회 회원들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표방하면서도 그 속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동호회 회원, 꽃잎을 맛있게 먹던 아버지, 아버지를 속이기 좋아했던 할머니, 호랑이를 만나서 늦게 왔다는 화자, 이들 모두는 거짓말을 하고 그 속에서 웃음을 찾는다. 그러나 이들의 거짓말은 폭력적이거나 파괴적이기보다는 체온이 담겨 있다. 그리고 타인에게서 온 그 살가운 체온 속에서 주름살이 보이는 발자국을 밟는 행위에서 볼 수 있듯이 타인을 이해하고 나 또한 타인에게 이해받는다. 비록 힘들지언정 그들은 삶을 ‘누리는’ 것이다.
한국현대소설읽기 02반살아가기- 박민규 ‘아치’를 읽고아기가 ‘응애’하고 태어나는 그 순간 삶이 시작되는 동시에 죽음도 같이 시작된다는 것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은 마침내 주체가 생을 다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끝이 난다고 한다. 이렇듯 죽음이란 갑자기 불현듯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가지고 태어난 누구라면 반드시 맞이하게 되는 필연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어떤 이유로 삶과 죽음의 끝맺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일이 종종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자살'이라고 부른다. 지고 있는 짐의 무게를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을 만큼 지쳐 있을 때, 혹은 더 오래 그 짐을 지고 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을 때가 그 이유 중 하나다.비니루 점퍼를 입은 남자는 비정규직이지만 열심히 일했다. '사람답게' 살아보겠다고 이를 악물며 하루하루를 땀으로 채운다. 하지만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어려운 현실이 반복될 거라는 불길한 느낌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아치에 오르고 만다. 남자의 마음을 돌려 삶으로 끌어내려고 한 장의 사진을 들고 아치로 올라갔던 화자는 자신도 남자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아치 위에서 그들은 옷만 벗으면 쉽게 몇 억을 버는 K를 애써 덤덤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들의 변화 없는 삶을 희망 없이, 그러나 반항도 없이 받아들인다. 화자는 문득 아치 아래를 내려다본다. 복잡하게 얽힌 차들이 꼭 6.25 전쟁 당시 그래도 살아보겠다며 아치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 같다. 삶과 죽음의 경계인 아치에서 다시 삶으로 그들을 끌어들인 것은 희망이 담긴 선택도 아니요, 잘 살아보겠다는 깡도 아니다. 그들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것, 바로 따뜻한 국물이다. 세상살이에 지쳐 딱딱하게 굳어진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주는 국물을 향해 한발 한발 내려가는 도중 무심코 돌아본 곳에는 커다란 눈사람이 녹아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살아야지'라는 말 밖에는 살아야 할 이유를 딱히 찾지 못한 화자는 다시 숨막히는 삶의 공간으로 남자를 끌어들인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낀다.
한국현대소설읽기김영하의 「아랑은 왜」민담 혹은 전설처럼 내려오던 한 처녀의 한 맺힌 이야기는 김영하의 손길을 타고 현대적인 시공간 속에서 변형되며 새로운 모습을 띤다. 그리고 김영하는 그 변형된 이야기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라고 말한다.김영하는 여러 판본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는 아랑의 이야기를 그 당시 기록과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한다. 그래서 새로운 인물, 그들 간의 또 다른 관계, 다른 시각 등을 통해 기존 이야기가 갖고 있던 틈을 새롭게 메운다. 이 때 민담과 김영하가 만들어낸 또 다른 이야기는 '아랑'이라는 인물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다. 아랑은 민담 속의 주인공이자, 창작된 이야기 속에서는 그녀가 놓고 간 토끼를 '박'이 키우기 때문이다. 또한 원한을 가졌지만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아랑과, '박'과 대화를 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던 '영주'는 소통의 부재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한편, 아랑이 나비가 된 것은 아랑 이야기가 세상을 떠도는 것과 먼 곳까지 날아다니는 큰줄흰나비는 무척 닮았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또한, 나비는 민담 속에서는 사또가 범인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것으로 보아 이 작품의 제목을 '아랑은 왜 나비가 되었는가'로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