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학회 신입생 면접 질문지 이름 : 000 연락처 : 010-0000-0000 1. 자신에 대한 간단한 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동양사를 사랑하는 00과 00학번 000이라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역사교육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 주는 역사교사가 되고 싶어 동양사학회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동아시아사, 세계사 과목의 멘토로서 활동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간단한 요약과 퀴즈를 담은 학습지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부하고, 점심시간에는 사진, 동영상 자료가 담긴 ppt를 만들어 멘티 친구와 역사 속 논쟁과 사회적 이슈를 연관시켜 쉽게 설명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시험기간이 임박할 때면 급하게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오늘의 선생님으로서 요약 수업을 진행한 경험도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역사를 시대적 상황과 연관시켜 역사적 판단을 스스로 내리는 친구들을 보며 역사교육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귀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역사의 진정한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올바른 역사적 지식을 쌓고 적극적으로 학회에 참여하는 부원이 되겠습니다. 2. 학회에 지원한 이유 (학회에서 바라는 것, 얻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각오 등) 제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선택과목으로 동아시아사를 배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동아시아사 수업 중 교과서 한편에 있는 요약된 사료들을 보면서 원문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쉬는 시간마다 인터넷에 스스로 찾아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자로 빼곡한 사료들을 보며 원문 그대로 읽어낼 능력이 없다는 생각에 막막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학회 설명회 중 동양사학회의 커리큘럼에서 제가 좋아하는 중국사를 주로 다룬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한자와 관련된 활동 또한 이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양사학회의 한자시험을 통해 한자를 사료를 막힘없이 해석해 내고 싶은 목표가 생겼습니다. 또한 역사교사는 학생들에게 역사를 재밌고 쉽게 설명해 주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에는 없는 역사 속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교재를 통해 배우고 흥미 있게 설명해 주는 능력을 키우고 싶습니다. 3. 알고 싶거나 흥미가 있는 중국사가 있다면?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영국의 홍콩 반환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으며 더욱 알고 싶은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요즘 중국이 한국 문화를 자국의 문화로 편입하는 것이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실패 후 추진한 문화대혁명의 결과인 전통문화 파괴가 한국의 문화 가로채기 문제와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또한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된 홍콩이 덩샤오핑의 일국 양제를 약속으로 다시 반환되어 독립을 외치고 있는 과정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알아보고 싶습니다. 이처럼 현재 논란이 되거나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중국과의 문제를 역사 속에서 들여다보며 사건의 시작을 알아보고 과거의 역사는 어떻게 해결해 나갔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4.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지금까지 역사교육과에 입학하기 위해 멘토링 활동, 역사 알리미 활동 등을 통해 역사를 재밌고 흥미롭게 알리는 것에만 중점을 두며 성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고등학교에서의 성장을 이어 동양사학회에서 발표수업, 한자시험 등에 성실하게 참여하여 역사를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역사교사로서의 길을 닦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연옥 개념의 변화와 망탈티테가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 -‘연옥의 탄생’을 읽고 - Ⅰ. 머리말 Ⅱ. 이론적 배경 III. 연옥 개념의 역사적 변천 IV. 연옥 개념의 변화가 중세인의 망탈리테에 미친 영향 V. 중세사와 현대와의 연계 Ⅶ. 맺음말 참고문헌 I. 머리말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은 연옥 개념의 사회적, 경제적 측면을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신학적 깊이와 지역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옥은 중세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요소로서 중세인의 정신세계와 사회적 태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을 통해서 중세 사회의 구조, 물질생활 그리고 정신적, 생물학적 특징과 그 사회가 안고 있는 한계들을 알아보고,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지는 특징과 한계들을 알아볼 것이다. 연옥 개념이 중세 사회에서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했는가를 통해 중세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미친 영향을 탐구하고, 연옥 개념의 변천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알아볼 것이다. 또한 연옥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도 살펴볼 것이다. 이에 중세 사회의 종교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중세인이 죄와 구원, 도덕적 행동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II. 이론적 배경 연옥은 천국과 지옥 사이 정화의 장소로, 죽은 자의 영혼이 죄를 정화하고 구원을 준비하는 곳이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명확한 연옥 개념이 없었으나, 아우구스티누스와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의 신학적 논의가 연옥 개념의 기초를 마련했다. 남종국 교수는 망탈리테를 특정 시대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공유했던 공통의 생각과 사고체계, 행동방식이라 정의하었다. 아날학파는 역사 연구에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요소를 중시하는 접근 방식을 취한다. 자크는 아날학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중세 유럽의 연옥 개념을 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했다. 망탈리테(Mentalite) 개념은 이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중세인의 정신세계와 사회적 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식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단테는 연옥을 천국과 지옥 사이의 중간 영역으로 묘사하며, 영혼이 죄를 정화하고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상세히 그렸다. 이는 연옥 개념이 중세 유럽 전역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게 하였고, 대중의 상상력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단테의 작품은 연옥 개념을 신학적 교리에서 벗어나, 문학과 예술을 통해 중세인의 정신세계에 깊이 스며들게 했다. IV. 연옥 개념의 변화가 중세인의 망탈리테에 미친 영향 6장과 7장에서는 연옥 개념의 발전은 중세인의 죄와 회개, 구원의 과정을 재해석하게 했다고 밝혔다. 연옥은 죄를 정화하는 중간 단계로 인식되었고, 이는 개인의 도덕적 행동과 회개를 강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세인은 연옥에서의 고통을 피하고자 생전의 행동을 더욱 신중하게 고려하게 되었으며, 이는 개인의 도덕적 행동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7장에서는 연옥 개념은 교회의 권위와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는 데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기술했다. 교회는 연옥에서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기도와 기부를 장려하며,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했다. 이러한 관행은 교회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연옥 개념은 중세 사회의 종교적, 경제적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연옥 개념은 중세인의 일상생활과 종교적 실천에도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중세인은 연옥에서의 고통을 피하고자 기도, 기부, 고해 성사 등 다양한 종교적 실천을 통해 자신의 죄를 정화하고 구원을 준비했다. 이는 중세인의 종교적 생활과 도덕적 행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연옥 개념은 중세 사회에서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했고, 중세인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연옥의 변천 과정을 과 정리해 보았다 시기 연옥의 개념 망탈리테 초기 교회 초기 기독교 사후 세계: 천국과 지옥으로 단순하게 나뉨. 연옥의 필요성 제기: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은 영혼들의 정화 필요성. 아우구스티누스: 연옥을 죄를 정화하는 과정으로 설명.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예술에서의 연옥: 연옥이 대중의 상상력 속에서 구체화됨. 연옥 개념의 대중적 확산: 단테의 작품이 연옥 개념의 대중적 인식에 큰 영향 연옥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실질적으로 느껴지는 현실이 됨. 중세인들은 죄를 정화하고 구원을 얻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됨. 문학과 예술을 통해 연옥 개념이 대중적 상상력 속에 깊이 자리 잡음. 14C 이후 중세 말기: 연옥 개념이 더욱 체계화되고 교리적으로 확립됨. 종교 개혁: 연옥 개념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발생. 가톨릭 교회의 대응: 연옥 교리를 공식화하고, 성례전과 기부의 중요성을 강조. 프로테스탄트 반대: 연옥 개념을 부정하고, 구원과 정화 과정을 성경적 근거에 맞추려는 시도. 종교 개혁을 통해 연옥 개념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확산됨. 개인의 신앙과 구원에 대한 자율성과 책임이 강조됨. 가톨릭 교회는 연옥 교리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재확립하려고 노력함. 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연옥 교리가 재해석되고 현대 신학적 관점에서 접근. 현대 가톨릭 교리: 연옥을 정화의 과정으로 인정하지만, 그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설명은 다양함. 문화적, 학술적 연구: 연옥 개념이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계속 연구되고 재평가됨. 현대 신학에서는 연옥을 보다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개념으로 이해함. 개인의 내면적 정화와 윤리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음. 연옥 개념은 여전히 도덕적, 윤리적 성찰의 중요한 주제로 남아 있음. 연옥의 개념과 망탈리테의 변천 과정 연옥 개념은 중세 유럽에서 중요한 신학적, 사회적 요소로 자리 잡았으며, 그 변천 과정은 중세인의 망탈리테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에서 단순한 사후 세계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출발하여, 12세기와 13세기를 거치며 연옥 개념은 더욱 구체화되고 제도화되었다. 이는 중세인의 신앙생활과 도덕적 행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단테의 「신곡」을 통해 연옥 개념은 대중적 상상력 속에 깊이 자리 잡았으며, 중세인의 일상과 신앙생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어준다. 한국 사회에서도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용서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이는 개인 간의 관계 회복과 사회적 화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셋째,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 의식이다. 중세 유럽에서 연옥 개념은 개인의 도덕적 행동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개인의 행동이 공동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는 보다 조화롭고 협력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넷째,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성찰이다. 연옥 개념은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성찰을 촉진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삶의 의미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는 현재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섯째, 종교적 관용과 다양성 존중이다. 연옥 개념의 발전 과정은 다양한 신학적 논쟁과 해석을 포함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종교적 관용과 다양한 신앙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간의 이해와 협력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섯째, 역사적 이해와 교훈이다. 연옥 개념의 변천 과정을 통해 역사적 이해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역사적 사건과 개념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는 데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일곱째, 문학과 예술을 통한 사회적 메시지 전달이다. 단테의 「신곡」이 연옥 개념을 대중화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 것처럼, 문학과 예술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문학과 예술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도덕적, 윤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덟째, 제도와 관행의 재평가이다. 중세 교회가 연옥에서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기도와 기부를 장려한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도 기존의 제도와 관행을 재평가하고, 필요에 따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사회적 신뢰를 증진하신의 행동을 성찰하고 도덕적 성장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회개와 용서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다. 학생들이 인간관계에서 더 성숙한 태도를 가지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다섯째, 연옥 개념의 변천 과정을 주제로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와 분석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크의 연구 방법론과 사료 분석 방식을 통해 학생들이 역사 연구의 기초를 배우고, 학문적 접근 방식을 익히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섯째, 단테의 「신곡」과 같은 문학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학생들이 문학 작품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더 풍부한 해석을 할 수 있다. 일곱째, 연옥 개념으로 학생들은 현재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사회적 책임, 공동체 의식을 배우고, 이를 현대 사회에서 실천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덟째, 연옥 개념과 그 변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문화적 상상력을 기르고,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다. 그리고 문학과 역사, 신학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 학생들이 다양한 학문 분야에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데 도움을 준다. Ⅶ. 맺음말 연옥 개념의 변천 과정을 통해 중세인의 정신세계와 사회적 태도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 연옥 개념이 중세 유럽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초기 기독교에서 비교적 모호했던 연옥 개념은 중세를 거치며 구체화되고 제도화되었으며, 이는 중세인의 신앙생활과 도덕적 행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연옥 개념은 중세 사회의 종교적, 경제적, 문화적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연옥 개념은 한국 사회에 다방면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한국교회에는 신앙생활, 학생들에게는 서양중세사 연구방법론, 학생들에게는 역사, 문학, 정서적 측면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은 중세 사회의 종교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중세인이 죄와 구원, 도덕적 행동을 어떻게렀다.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0000과 학번: 00 이름: 00 Ⅰ. 서론 5월 5일(목요일). 나는 주말에 예천 집에 내려 올 때마다 고려 시대에 세워진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탑 주변은 사월초파일을 맞아 예천불교총연합회에서 1011주년 기념연등회 준비로 분주했다. 무려 1011주년이라니! 평소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문화재를 깊게 바라보게 되었다. 종교로서의 석탑, 건축물로서의 석탑 그리고 탑에 담긴 역사적, 미술사적 가치와 이곳이 예전에는 절터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나는 ‘석탑’에 대해 조사하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5월 6일(금요일).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면 역사의 길이라 불리는 긴 중앙홀 안쪽 가장 끝에 우뚝 서서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문화재가 있다. 바로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지(敬天寺址) 십층석탑이다.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높이 4.33m)과 무려 220Km 떨어진 곳의 동시대의 석탑 사진을 찍으며, 탑 전체에 빈틈없이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들과 어마어마한 높이에 큰 충격을 받았다. 대동여지도를 교과서의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물 지도를 처음 봤을 때의 그것에 버금갔다. 늘 보았던 예천 개심사 오층석탑은 고려 전기의 석탑이므로 두 탑의 형식은 당연히 차이가 있을 것이고, 무려 338년 차이가 난다는 계산까지 하면서 역사교육과 학생으로 대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경천사 터 십층석탑이 왜 박물관 건물 안에 있는 걸까? 탑은 원래 사찰의 법당 앞에 있어야 하는데……. 경천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예쁜 탑을 만드는 데 참여한 석공(石工)들과 예천 개심사의 모습도 궁금해지긴 했지만, 답사가 우선이라 뒤로 미뤄두기로 한다. 이 보고서는 석탑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으로 사전 조사하고, 국립중앙박물관 답사를 통해 궁금한 점을 확인하고 자료 수집을 하였다. 석탑은 한국 미술사에서 불교 조형예술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경천사 석탑의 미술사적 의의, 가치, 우수성뿐만 아니라 석십층석탑의 역사적 의의 가. 고려의 석탑의 특징 고려시대는 신라시대의 불교문화를 계승하여 더욱 발전시켜 여러 불교 유물들을 제작해 나갔으며 또한 불교가 국교로 자리 잡고 교세도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석탑의 건립 또한 전국적으로 확산됨으로 고려시대에는 매우 많은 석탑의 건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지방의 여러 호족, 백성들도 자신들의 간절함을 담은석탑들을 세우면서 다양한 양식의 석탑이 나타났다. 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석탑에는 개심사지 오층석탑, 남계원 칠층석탑, 춘궁리 오층석탑 등이 있다. 나. 경천사 십층석탑의 건립 경천사 십층석탑은 고려의 29대 충목왕 4년에 세워졌다. 당시 충선왕의 측근으로 진령부원군에 봉해진 강융과 원나라에 환관으로 가서 황제의 총애를 받은 후 자정원사가 된 고용봉의 시주와 발원으로 건립되었다. 여기서 고용봉은 순제의 황후이자 원나라의 세력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른 기황후와 관련이 있고, 강융은 자신의 딸이 원나라 재상까지 오른 탈탈의 애첩이 된 것을 계기로 고려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대표적인 친원 세력이었다. 이러한 배경들로 우리나라 석탑의 전형에서는 보기 드문 ‘아(亞)자형’ 또는 ‘4면돌출형’ 평면구조를 한 탑이 생겨났으며 원나라의 번영 그리고 원나라 황제인 순제의 천수만세를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진 것이다. 다. 일제강점기 시대와 경천사지 십층석탑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문화재 수탈과 훼손을 겪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야키가 경천사 석탑을 일본으로 가져가게 된 후 우리나라에서 탑을 되돌려 받기까지 수많은 고난이 있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인 헐버트, 영국인 베델은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일본의 만행들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고 헐버트는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해 그 만행을 전 세계에 퍼뜨리려는 노력이 있었다. 이러한 관심과 노력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고려의 탑을 보기 위해 일본을 방문해야 할 수도 있었다. 이 탑이 [도2]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전체 모습(복원 후)수리와 복원은 1959년에 시작해 1960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경천사 십층석탑은 경복궁 전통공예관 앞에 위치하게 되었으며 1962년 12월 20일이 되어서 국보 86호로 지정된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일제강점기 동안 겪은 상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깊어지게 되었다. 수리 복원한 시멘트가 풍화를 겪으며 부재 탈락이 심하게 일어나게 되었고 탑이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환경오염에 노출되었다. 또한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들어지는 우리나라 석탑과는 다르게 경천사 석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대리석으로 만든 건축물들이 많은 서양의 사례에서도 대리석 건축물들이 환경오염으로 인해 부식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경천사 석탑 또한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부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5년 4월 20일~ 6월 24일, 석탑을 해체하여 정밀 보존을 시행했으며 약 9년 동안 보존처리를 했다. 2005년 8월 9일 오후 2시 경천사 십층석탑의 이전, 복원 낙성식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거행되었다. 4) 석탑의 제원 경천사 십층석탑의 명칭은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이고 영어로 표기하면 ‘Ten-story Stone Pagoda from Gyeongcheonsa Temple Site, Gaeseong’이다. 경천사의 한자 표기는 慶天寺로도 사용했으며 기단을 포함해 13층 탑이었던 과거와 비교해 지금은 10층 탑이다.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객관적 정보 명칭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2.12.20. 소재지 서울 용상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용산동6가) 시대 고려 충목왕 1년(1345)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국립중앙박물관 3단으로 구성된 기단은 위에서 바라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基壇) 역시 3층에서부터 사자, 용, 연꽃, 소설 『서유기』의 장면, 그리고 나한들이 새겨져 있다. 탑신부의 1층부터 4층까지는 총 16장의 불회장면이 새겨져 있고, 그 사이에는 불교 존상들이 새겨져 있다. 5층부터 10층까지의 탑신부에는 선정인 또는 합장을 한 불좌상이 새겨져 있다. 이렇게 탑신부마다 무언가를 새긴 것은 불교적 위계에 따라 불상들을 각각 표현한 것이다. 기단부에 새겨져 있는 서유기는 승려 현장이 인도로의 구법행이 명대에 소설로 만들어진 것이다. 서유기 장면을 새긴 것은 불자들에게 현장의 구법행을 통해 공덕과 깨달음에 대한 불교적 교훈을 전하고 서유기의 등장인물들이 탑 내부에 안치된 사리를 수호한다는 뜻에서 새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천사 석탑의 정교한 조각 표현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이유는 석탑의 재료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왔던 화강암이 아닌 대리석이었기 때문이다. 경천사 석탑 건립된 뒤 120여 년이 흐른 후, 경천사 석탑의 형태, 도상이 그대로 재현된 탑이 만들어졌는데 조선 왕실 발원으로 만들어지게 된 원각사지 십층석탑이다. 이처럼 대리석으로 축조된 탑은 드물게 발견된다. 또한, 경천사 십층석탑은 고려 목조건축의 구조를 적용해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들이 매우 아름다워 미술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게다가 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으며 조선시대의 원각사 십층석탑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의 또한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석탑유형에서 벗어나 독특한 구조인 이형석탑으로 미술사에서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3·5·7·9 등 홀수로 구성된 일반적인 탑과 다르게 10층으로 조성된 것은 화엄사상에서 완전, 완성을 의미한다. 현장법사의 취경과 관련된 설화, 나한상, 불교 관련 서수들이 부조되어 있는 기반부를 비롯해 여러 법회 내용이 1층에서 4층의 탑신부에 조각되어 있어 조각수법과 당시 불교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4. 큐레이터에게 경천사와 원각사 십층석탑의 전시 유물로서의 의미 가. 경천사 십층석탑이 대영박물관에 간 사연 약탈과 만, 경천사 석탑과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탑골공원에 위치한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부식 문제로 인해 큰 조형물 안에서 보호 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경천사 십층석탑도 같은 문제를 겪어 국립중앙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것이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조선전기에 만들어진 것인데 경천사십층석탑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는 두 탑을 역사의 길에 마주 보게 전시해 둔다면 문화재 복원과 그 수난 과정 그리고 보존(대리석 문화재가 겪는 아픔)에 대한 교육적 의미까지 덧붙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가 된다. “원각사 십층석탑을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의 길로 옮기면 어떨가?” Ⅲ. 결론 고려말 승상 탈탈의 후원을 받아 제작된 경천사 십층석탑은 구조적 아름다움으로 오랜 기간동안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그 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반출되고 약 50년 동안 우리나라로 돌아오지 못했으며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제 모습을 잃어버릴 뻔 하기도 한 커다란 풍파를 견뎌내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의 길 끝에 서 있는 이 탑은 역사적 아픔을 이겨내고 지금 우리 앞에 다시 서 있는 것이다. 이런 아픔을 겪은 경천사 십층석탑을 보며 아직도 해외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오지 못해 상처받고 있는 다른 문화재에 대입하여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경천사 십층석탑은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이다. 문화재는 그 나라의 역사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맞다. 그러나 경천사 십층석탑의 경우 남북이 분단 되었기에 원래 있던 개성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문화재가 경천사 십층석탑 하나만이 아니기에 문화재를 반환하는 교육과 역사적 사명감을 심어주는데,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경천사 석탑은 복원 기간만해도 10년 정도가 걸렸다. 따라서 원각사탑을 동시에 옮겨 특별전을 개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큐레이터로 탑을 전시하게
헌 법 소 원 심 판 청 구청구인 000 (000000-*******)경상북도 00시 00읍 00로 00-0, ???아파트전화번호: 010-0000-0000청구인 대리인 변호사 ???피청구인: 대한민국 정부(교육부)청 구 취 지“정부가 승인한 역사 교과서에서 현대사 사건을 왜곡하여 서술함으로써 청구인의 교육의 자유,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및 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위헌임을 확인한다.”라는 결정을 구합니다.청 구 이 유1. 사건 개요1) 2024년 5월 1일, 청구인은 학교 교육과정에서 사용되는 정부가 승인한 역사 교과서에서 현대사 사건이 왜곡되어 서술된 내용을 접하게 되었습니다.2) 해당 교과서의 왜곡된 서술로 인해 청구인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았습니다.2. 침해된 권리1) 교육의 자유: 헌법 제31조에 따르면, 청구인은 올바른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왜곡된 역사 서술은 청구인의 교육의 질을 저하시키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질 권리를 침해하였습니다.2) 표현의 자유: 헌법 제21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왜곡된 역사 서술은 청구인의 자유로운 의견 형성과 표현을 저해하며, 다양한 역사적 관점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였습니다.3) 학문의 자유: 헌법 제22조는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왜곡된 역사 서술은 학문적 진리 탐구와 다양한 연구를 방해하며, 청구인의 학문적 자유를 침해하였습니다.4) 인권 침해: 왜곡된 역사 서술은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조장하여, 청구인의 인권을 침해하였습니다.3. 법률의 위헌성1) 정부가 승인한 역사 교과서의 왜곡된 서술은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제21조(표현의 자유), 제22조(학문의 자유), 제31조(교육을 받을 권리)에 위배됩니다.2) 따라서, 해당 교과서 내용의 왜곡된 서술이 헌법에 위배됨을 주장합니다.4. 재판의 전제성1) 현재 청구인은 해당 교과서로 인해 발생한 교육적 손해 및 기본권 침해와 관련된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이 재판에서 정부가 승인한 교과서의 내용이 위헌임을 확인받는 것이 재판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2) 만약 해당 교과서의 내용이 위헌으로 판결될 경우, 청구인은 교육적 권리 회복 및 적절한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영화로 고전 읽기- 매트릭스-인상 깊었던영화 속 철학 이야기플라톤의 동굴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는 동굴에서 결박당한 채 동굴 벽에 비치는 횃불의 그림자만 보고 자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태어날 때부터 오직 벽에 비치는 그림자만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그림자만이 진실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중 어떤 사람이 동굴 밖을 나왔을 때 그림자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사실을 동굴 속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동굴로 돌아와 말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도 네오가 모피어스를 만나기 전까지 매트릭스라는 가상세계에 갇혀 진실을 알지 못했고 자신이 있는 곳이 진실이라고 믿어왔다. 또한 진실을 알리려고 하는 존재인 모피어스를 처음에 꺼려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있는 모피어스의 도움으로 꿈에서 깨어나 매트릭스가 가상세계라는 것을 알아냈고 매트릭스에 침투해서 요원들과 맞서 싸우게 된다. 3학년 1학기가 끝나갈 때쯤 세계사 과목에서 그리스 세계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알려진 소크라테스를 배우며 그의 제자인 플라톤도 함께 배운 기억이 있다. 플라톤이 동굴 이야기를 빗대어 이데아를 설명하려고 했다는 단순 사실만을 배우고 동굴 이야기가 어떤 내용이며 이데아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시간에 영화를 보면서 철학을 함께 배워서 그런지 철학이 더 이상 고리타분한 학문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번에는 프랑스 철학자인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에 대해 더 깊게 배워 보고 싶다.인상 깊은 장면 및 대사 /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모피어스가 네오에게 운명을 믿냐고 묻고는 빨간색 알약과 파란색 알약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네오가 살던 가상세계에서 무엇이든 당연한 것이라고 마치 운명처럼 믿어왔기에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한 네오가 처음에 이상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네오처럼 행동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경시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부유한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가는 이상한 사회적 구조를 당연한 것이라고 믿고, 이러한 것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니 바꾸어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네오를 진실을 가리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표현한 것 같았다. “난 미래를 모른다. 이것이 어떻게 끝날지 말하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 시작할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 대사도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다. 결국 진실을 깨닫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라는 가상세계에서 프로그래밍된 채로 기계처럼 살아가지 말고 진실을 깨닫고 진짜 세계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의지대로 살아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처럼 나도 부모님이 정해준 대로 기계처럼 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내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다.영화 내용과 자신의 삶 관련짓기매트릭스에서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기계처럼 사는 사람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매일 정해진 공부를 하고 성적이 인생에 전부라고 생각하며 고학력자가 되기 위해 또는 저학력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의 모습이 진짜 세계를 깨닫기 전 네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또한 명성이 높고 넘치는 부를 가진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고학력자가 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진실을 깨닫기를 거부하는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네오는 주위의 도움으로 진실을 깨닫는 데 성공했지만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나는 언제쯤 진실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 나가고 싶다.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영화를 보기 전에 네오가 총알을 피하는 장면만 알고 있어서 단순히 쫓고 쫓기는 액션 영화인지 알았다. 그러나 곳곳에 숨어있는 철학적 요소들을 발견하면서 정말 심오한 영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적힌 간판, 선글라스에 비치는 모습, 건물의 유리가 깨지는 장면들이 인상 깊었다. 영화 곳곳에 거울의 모습을 가진 물체를 등장시켜 왜곡된 세계를 알려준 것이 특히 놀라웠다. 영화를 한 번 다 보고 다시 거울이 등장하는 장면을 찾아봤을 때 모피어스와 네오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려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렇게 영화의 한 부분씩 집중적으로 보면서 철학과 관련된 것도 알게 되고 사회현상을 고발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지식이 한 층 넓어진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