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헤르만 헤세이 책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싱클레어의 어린 시절에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었다. 깨끗하며 아름답고 절제가 있는 집 안의 밝은 세계와 끔찍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더럽고 무서운 집 밖의 어두운 세계. 두 세계는 작은 문 하나로 구분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얽혀있는 듯 했다. 집 안의 하녀는 집 안에서는 단정한 차림으로 질서와 평화를 지키지만, 광이나 푸줏간으로만 나가도 딴 사람이 된 것 마냥 싸움질을 했다. 싱클레어 또한 두 개의 세계를 넘나들며 생활했다. 미래에 자신이 도달해야 할 곳은 밝은 세계라고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철없는 어린 시절에는 어두운 세계를 동경했다. 싱클레어는 선의 세계에 존재하는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냈지만 집 밖의 세계가 주 무대인 아이들과도 가깝게 지냈다.그러던 어느 날, 어두운 세계와 아주 잘 어울리는 프란츠 크로머에게 약점을 잡히고 만다. 어두운 세계 일어날 법한 무용담을 떠들던 친구들을 보던 싱클레어는 자신도 무용담을 하나 꺼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과수원에서 사과를 한 부대 훔쳤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프란츠는 과수원의 주인이 도둑을 찾고 있고, 현상금까지 내걸었다며 잡혀가기 싫으면 돈을 달라고 협박한다. 둘이 이 대화를 나눈 장소는 바로 싱클레어의 집 앞이었다. 두 개의 세계를 분리 시켜주는 물리적인 장치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의미가 있어 보였다. 프란츠에게 협박을 당한 이후, 싱클레어에게 문은 아무 의미도 없어 보였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도 평화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개의 세계를 분리하는 장치가 사라진 것이다. 여러 페이지에 걸쳐 싱클레어의 괴로운 심정을 묘사하는 글이 이어진다. 사과를 훔치는 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그 이상의 엄청난 죄를 진 것 마냥 괴로워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며 ‘사실이 아님을 밝히는 편이 나을텐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비누방울을 만들었의 땀을 흘려 얻게 된 결실을 하나님에게 제물로 바쳤는데, 하나님은 아벨의 것만 받고 카인의 것은 받지 않았다. 열등감을 느낀 카인은 동생인 아벨을 살해하였고, 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라고 한다. 이후 카인은 하나님에 의해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된다. 카인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할까봐 겁이 난다고 이야기했고 하나님은 카인을 죽이는 자에겐 더 큰 벌을 내리겠다고 말하며 카인에게 표식을 붙여준다. 일반적으로는 이 표식을 지닌 카인은 사람들에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형벌을 내린 것이라고 해석하거나 그런 와중에도 카인을 지켜주기 위한 자비라고 해석하는 듯 하다. 하지만 데미안의 시선은 달랐다. 카인이 강자이고 늠름하고 비범한 젊은이이기 때문에 표식을 받았다고 해석한다. 싱클레어는 데미안과의 대화를 부인하며 그 날 밤 성경 책을 몇 번이나 뒤적였다.그 이후 데미안을 향한 호기심이 싹텄다. 프란츠가 자신을 괴롭히는 꿈을 꾸다가도 데미안의 꿈을 꾸었다. 데미안이 프란츠와 같이 자신을 괴롭히는 꿈을 꿔도 괴롭지 않았다. 현실에서의 프란츠는 꿈에서와 같이 싱클레어를 괴롭혔다. 어느 날, 프란츠는 싱클레어에게 누나를 소개시켜 달라고 말한다. 거절의 의사는 밝혔지만 프란츠의 압박감에 못 이겨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다시 만난다. 데미안은 근심이 가득한 싱클레어에게 자신이 독심술을 할 수 있다며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지, 조금 전에 만난 소년은 누구이고 왜 그를 무서워하는지 묻는다. 싱클레어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소년이 두려움의 상대임을 밝힌다. 이야기를 들은 데미안은 프란츠와의 관계를 끊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죽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돌아선다. 대화를 나눈 이후, 싱클레어는 일주일 가까이 프란츠를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골목에서 프란츠와 마주쳤는데, 프란츠가 싱클레어의 얼굴을 보고는 바로 뒤돌아서 사라져버린다. 싱클레어는 악마가한 어린이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금지된 유혹이라고 생각했다. 금지된 유혹이 들끓는 또 다른 어두운 세계를 접한 싱클레어는 꽤나 오랜 시간 데미안과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몇 해 뒤에 신앙 고백을 위한 수업을 같이 듣게 되면서 다시 데미안과 가까워진다.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의 행동을 예언하기도 하고, 어떠한 술법을 부려 상대방의 행동을 조종하는 모습을 보며 싱클레어는 그저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했다. 데미안은 누군가를 관찰하는 것을 굉장히 즐기는 사람인 듯 했다. 예언을 하거나 술법을 부리는 게 아니라 사람을 관찰하고, 그 사람의 버릇을 알아두었다가 다음 행동을 예측할 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싱클레어가 데미안과 어울려 노는 동안 신앙심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데미안은 이전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처럼 성서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유롭고 개성있게 해석했고, 싱클레어는 그것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고,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고 있다면 왜 세계를 지배하지 못해서 위선과 기만이 들끓는 악의 세계가 존재하는 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여호와를 믿는다면, 악마가 존재하는 세계에도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기독교가 아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데미안의 말에 동의했다. 정말 신을 믿고 그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생각한다면 그 세계가 선의 세계던, 악의 세계던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닐까? 내가 악의 세계에 위치해 있다면, 신이 나에게 어떠한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해 이 곳으로 나를 보낸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고 그 의미를 찾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데미안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던 부분은 신이 이 세계를 지배했다면 선의 세계만이 있었을 거라는 말이다. 신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을 창조함으로써 인간이 행복뿐만 아니라 절망감, 실패, 괴로움 등을 느끼고 더 성장하는 것을 원했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싱클레어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가족들의 품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다시 데미안과 멀어졌다 싱클레어에게는 훈계처럼 느껴졌다. 나는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동경하고 그리워하고 더 나아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베아트리체는 약간 사내아이 같은 모습이라고 했다. 그리고 베아트리체의 모습을 그리다가 그 그림은 데미안의 얼굴로 발전했는데, 이러한 점에서 보면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가 데미안과 닮았기 때문에 끌렸기 때문은 아닐까.이후 싱클레어는 과거 데미안과의 대화를 떠올리고, 자신의 집 대문의 아치형 장식에 그려져 있던 새를 그려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몇 일 간의 작업 끝에 싱클레어는 사나운 매를 닮은 한 마리의 새를 완성시킨다. 이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내야겠다고 마음 먹은 싱클레어는 그림을 과거 데미안의 집으로 보낸다. 그리고 어느 날, 반에서 친구들끼리 돌리던 종이 쪽지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버둥거린다. 그 알은 새의 세계다. 알에서 빠져 나오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 한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보낸 쪽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신의 세계인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며,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자신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부분에 공감했다. 나는 내향적인 편이어서 새로운 환경에 놓여지는 것이나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전을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원래의 성격과 충돌하며 갈팡질팡하면서 세월을 보내왔다. 내향적인 나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이 세계를 파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날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클레어는 아브락사스라는 신에게 몰입했다. 아브락사스는 일반적인 학자들 사이에서는 요마로 불리었는데, 한 측면에서는 신과 악마를 결합한 신으로 여겼다.아브락사스에게 빠져있던 싱클레어의 앞에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예배당 옆을 지나던 중 듣게 된 개성적인 연주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게 된 싱클레어는 몇 일을 예배당에 찾아관계는 유지하였으나 결코 예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다시 데미안을 떠올렸다.싱클레어와 데미안은 보이지 않는 실에 연결된 듯 다시 만났다. 데미안은 오랜만에 마주친 싱클레어를 보고는 얼굴은 많이 변했지만 이마에 붙은 표지가 있어서 알아볼 수 있었고, 그 표지가 이전보다 뚜렷해졌다는 기묘한 말을 한다. 그리고는 다음 번에는 자신의 집에 놀러와서 어머니와도 인사를 나누라고 제안한다. 싱클레어는 설레임에 두근거렸다. 이전부터 꿈에 나타나 자신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데미안과 묘하게 닮은 여성이 바로 데미안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부인과 처음 만난 싱클레어는 사랑에 빠진 어린 아이처럼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설레했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집을 드나들 듯 데미안의 집에 갔고, 때로는 에바부인의 아들처럼, 동생처럼, 그리고 연인처럼 지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싱클레어가 사랑한 것은 에바부인이 아니라 데미안이 아니었을까? 또 다른 하나는, 마치 사춘기 시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른에게 감정이 싹 트는 것처럼, 싱클레어 또한 제 2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싱클레어는 데미안 모자에게 이끌려 이마에 표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표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은 미래를 향한 자연의 의지를 구현시키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반면, 표지가 없는 사람들은 현상 유지의 의지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단정지었다. 싱클레어를 포함한, 표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은 인류가 미완성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렇게 생활하던 어느 날, 데미안은 밝은 세계가 붕괴되고 곧 새로운 세계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묘한 말을 한다. 데미안의 집에서 살다시피 지내던 어느 날, 싱클레어는 언젠가는 이 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에바 부인과의 이별을 생각했다.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을 떠올리고는 그녀를 안고 키스하는 상상을 했다. 그때 갑자기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찾았다. 다급해보이는 데미안의 모습에 싱클 싶다.
1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부의 진실지은이: 팀 샌더스출판사: 비전코리아저자인 팀 샌더스는 포춘 1,000대 기업들의 컨설턴트이자 강연자로, 다양한 비즈니스서들을 저서했다. 팀은 어린 시절을 할머니의 집에 머물면서 소중한 경험을 했다. 어느 날, 자신의 할머니가 돈이 없어 방황하던 한 남자를 돕고 나서는 “우리는 부자란다” 라고 말한 것에 팀은 의문을 품었다. 부자는 그저 돈이 많고 부유한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돈이 많아서 부자인 사람도 있지만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도 부자라고 말하며 뭔가를 나눠줄 만한 것이 있고 나눠줄 마음까지 있어서 나눠준다면 부자라고 답했다. 팀의 할머니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고, 본인은 잘못된 결혼을 하면서 두 번이나 인생의 고비를 겪었고 물질적인 부를 잃었다. 그러면서 물질적인 부는 자신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지만 마음의 자세는 조절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마음가짐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최근 물질적인 부를 언제 쌓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부족함에 쫓기며 살고 있었다. 나는 최근에 뭐든 부족하다는 생각뿐이었고,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 여력 따윈 없다고 되뇌이며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 그리고 인생의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던 차에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서를 시작했다.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목차를 훑어봤을 때 part 1부터도 자신감에 대한 내용으로 책이 시작되는 데다가 자신감이라는 단어가 눈에 많이 띄었는데. 팀이 할머니를 통해 자신감을 배우게 되었듯 나는 이 책을 통해 자신감이라는 것을 배우고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어린 시절의 팀은 부모님과는 함께 살지 않았지만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바르게 자란 듯 했다. 가끔씩 만나던 아버지와도 꽤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그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과 함께 삶에 대한 의욕을 잃게 된다. 대학교에서도, 회. 지금 생각나는 건 독서와 운동이다. 사실상 그다지 바쁘지도 않으면서 바쁘다, 피곤하다 미뤄왔던 일들. 팀은 이것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세상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신뢰 및 자신감을 되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감이 있다면 시험도 근심이나 걱정거리가 아닌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주변인들에게 자신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나같은 사람들은 자신감을 얻는 방법을, 기존에도 자신감이 있었던 사람들은 더욱 더 발전하는 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팀은 말했다.팀은 가장 먼저 마음에 좋은 양식을 공급할 것을 권장했다. 이 챕터의 제목을 보고는 ‘아 또 좋은 책을 읽으라고 하는거구나’ 하고 또 한 번 예단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곧바로 반성했다. 그의 직장 동료인 릭은 기상 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메일이나 블로그 글을 읽고, 출근 길에는 모닝 토크를 통해 잡담이나 정치 관련 이야기들을 접했다. 점심 시간에는 식사와 운동을 하며 뉴스를 보고, 퇴근 이후에는 식사를 하며 뉴스를 보고 남는 시간에 티비 프로그램 시청이나 웹 서핑을 즐기다가 잠드는 하루를 보냈다. 릭의 하루를 보며 많은 지식과 정보를 흡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다양한 지식을 쌓고자 하는 내 하루와 정말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팀은 잘못된 마음의 식사 습관이라고 꼬집었다. 하루에 접하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 생각할 겨를이 없어지고 주관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내 모습이 그러했다. 남들이 쓴 글이나 영상이 곧 나의 생각이 될 때가 많았다. 남들이 잘못했다고 하면 잘못된 거고,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찾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깨달았다. 내 생각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었다고. 팀은 많은 양의 정보를 쉴 틈 없이 스스로에게 공급하는 것이 문제임을 지적하면서, 최대한 긍정적인 정보를 많이 접해야 함을 권장했다. 좋은 생각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생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 이런 긍정적인 부분을 나누고 대화하는 것이다. 겉과 밖이 다르면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다보면 그 기운이 자연스럽게 외부로 표출될 것이다.자신감을 얻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것, 두 번째는 대화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책에서도 말하고 있고,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 아무래도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사람들 곁에는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매일 같이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주변 동료의 단점 만을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이 사람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우습게도 최근에 나도 그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해왔던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내 주변에도 사람들이 모이고 있지 않았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조금 더 긍정적인 대화를 하려고 해야 한다. 어느 날, 팀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젊은 직원들과 회의를 하게 되었다. 팀은 어떤 전략을 세울 수 있을 지에 대해 대화를 시작하며,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 대신에 우리에게 있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대화의 초점을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데에 맞춘 것이다. 평소 문제 상황에 닥치면 최고의 시나리오 보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더 많이 생각하는 나를 반성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이런 긍정적인 대화법을 사용한다면 주변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힘을 얻을 수 있을 듯 하다. 팀은 긍정적인 사고와 함께 자신감을 나타내는 어휘를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 나는 그럴 수도 있지, 뭐 한 것 같아,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그리고 조금 더 명확한 표현을 해야 함을 인지하고 있다. 쉽게 고치지 못 할 뿐. 팀은 이런 나약한 표현은 패배를 암시하기 때문에 확신과 자신감이 있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나를 꼬집었다.세 번째 원칙은 감사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이다. 현재 놓인 상황에 불평, 불만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하는했다. 내게는 학자금이나 주택비용에 대한 대출금이 있지만 일상생활을 살아감에 있어서 큰 부족함은 없다. 나의 끝없는 욕심을 통제한다면 작은 나눔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조금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돈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돈을 나눠주고, 시간이 부족하면 시간을, 나를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면 내가 누군가를 존경하는 행동을 하는 등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을 누군가에게 나눈다면 여유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나눔이라도 괜찮은걸까, 라고 생각을 하며 책의 뒷 장을 넘기자 팀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어떻게 나눔을 하면 좋을 지를 준비해두었다. 먼저, 자신의 가치를 반영해서 나눔을 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배구 선수인 김연경 선수의 경우 배구의 대중화에 많은 가치를 두고 있다. 오랜 기간 해외 리그에서 활약하던 그가 국내 리그에 복귀하면서 FA가 되었을 때 유소년 육성에 힘 쓰는 팀으로 이적을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후 많은 팀에서 유소년 육성을 위한 배구 교실을 열었다. 또, 비시즌에는 유소년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곤 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가치를 반영한 나눔이 아닐까 싶다.나눔은 단순히 물질적인 나눔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책에서는 무형의 나눔은 불이 밝혀진 양초처럼 작용하여 주변에 꺼져 있는 양초에 불을 켠다고 한다. 다만, 나눔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보답을 기대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남들에게 인색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시점이 내가 나눠준 만큼 돌려받지 못 한다는 생각을 할 때부터 였다. 사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고,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잘 눈치채는 편이다. 그리고 오지랖이 넓은 편이어서 무언가가 눈에 띄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처음에는 호의로 그 사람을 도와주고, 내 것을 나누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받는 것이 별로 없다고 깨달았다. 그 이후로 나는 내 행동이 부질없구나, 남들은 나게 되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할 수 없을 거야 라는 생각을 되뇌이며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 한다. 자아를 발전시키고 나 자신을 믿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만으로 자신감을 가득 채우는 것은 좋지 않다. 세상에는 혼자의 힘으로만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나를 평가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관대하고, 남을 평가할 때는 박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믿기 위해서는 타인이 나를 평가해주길 바라는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해야 한다.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평가를 하는 노력을 한다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커질 것이다.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내가 믿는 사람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힘이 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기에 타인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팀 내에서는 팀원들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타인의 기대와 관심에 의해 능률이 오르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기대하자. 팀원들을 믿고, 기대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들도 그 기대에 부응할 것이다. 반대로 반신반의한다면 팀원들도 그 정도의 결과만 보여줄 것이다. 팀이 생각하는 자신의 절대자는 주님이었다. 인간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믿음으로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 무교론자이기에 절대자는 없지만, 통제가 불가능한 일이 발생했을 때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나쁜 일이 생기면 그 뒤에 언제든 좋은 일이 따라온다.’라고 생각을 한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은 없지만 인생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신을 나의 절대자로 만들기 보다는 마음 속에 저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팀은 자신감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삶의 목적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목적이 뚜렷하면 흔들림 없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그렇다면 나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며,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나의 직업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우선 현재 내 삶의 목적은 돈 걱정 없이 친구들을 만나고, 가족
요 근래 2개월 간, 집에 있을 때는 누워만 있었던 것 같다.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틀어 두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수 일을 보낸 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회사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번아웃이 온 내 몸을 움직이기란 쉽지 않았다. 운동을 하면 우울감이 좀 나아진다고 해서 실내 스피닝 바이크까지 마련했는데 몸이 쇼파와 침대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완벽한 물아일체. 그렇다면 누워서 책이라도 읽자고 생각했고, e-book 어플을 켰다. 뭘 읽을까, 생각하며 한참 동안 스크롤을 내리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순식간에 홀려 대여 버튼을 눌렀다. 평소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며, 자신을 압박하고 못 살게 굴어왔던 나 자신에게 꼭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그는 누구일까? 우주 지구과학 전공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출판사를 다니다가 프리랜서 작가까지 한 일본인 30대 남성. 그는 일을 하며 보수를 받았고, 그 보수의 양만큼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며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2018년에 트위터(SNS)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자신)’을 대여하겠다는 피드를 올렸다. 그저 사람 한 명 분의 존재 자체가 필요할 때 자신을 이용해달라고. 일본에는 이전부터 ‘렌털 아저씨’라는 서비스가 존재했는데 이 ‘렌털 아저씨’는 시간 당 천 엔 정도의 돈을 지불하고 의뢰자의 일을 대행해주거나 고민 상담을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교통비와 식음료 비용만을 받는다는 점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렌털 아저씨’와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존재해주는 것 자체가 그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질리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쌓이지 않았다고 한다. 새내기 사회인을 마음으로 응원해달라, 아래층 집에 사과를 하러 가야하는데 같이 가달라, 자신이 집 청소하는 것을 지켜봐달라, 같이 맥주를 마셔 달라는 등 매번 다른 사람이 다른 상황에서 다양한 의뢰를 할 수 있었기에 질리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의뢰인의 기대에 부흥할 필요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의뢰인도 기대하는 바가 없었을 것이고.‘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들어오는 의뢰는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주변에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한 의뢰인. 그 의뢰인은 여성이었다고 한다. 커밍아웃을 할 수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의뢰를 한 것이었다. 이 외에도 일본의 유명한 사이비에 몸을 담았던 사실을 어렵게 고백한 의뢰인도, 자신이 과거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을 말한 의뢰인도 있다. 주변 사람이 아니라 생판 모르는 남인 자신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약점 잡혀 살기 싫어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나 또한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말 못 할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기존에 알던 사람들에게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털어놓지 못 할, 약점과 비밀들이 있다.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말 못 할 비밀을 몇 가지 털어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십 년 지기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 설교를 바라지 않는 이야기는 부담없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대나무 숲, 해우소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나는 책을 읽는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지에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어디로든 이동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셔주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회성이라고 해도 DM 한 통을 받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용기도, 그 사람과 몇 시간 동안 함께 하는 것도, 그 사람의 대화를 들어주는 경청의 자세도, 상대방의 감정에 동조 되지 않는 건조한 성격도 능력이고, 행동이다. 그리고 따로 의뢰비를 받지 않아도 생활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도 큰 능력이라고 생각한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굉장히 내향적인 사람이 되었는데, SNS를 통해 사람을 거리낌 없이 만나는 것도, 학교나 사회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는 것도 어려울 때가 많다. 또, 주변 사람의 답답한 이야기를 들을 때 잔소리를 참을 수 없는 나는, 오랜 시간 대화를 경청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내가 가지지 못한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과거 직장 생활을 할 때 저자는 상사로부터 ‘회사에 있으나 없으나 다를 게 없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다’, ‘부서가 상시 결원 상태이다’라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듯하다. 책을 읽다 보면 정말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었다기 보다는 작가의 어떤 능력이 보이는 부분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느니, 본인의 스펙은 제로라느니 말하는 것이 조금 안타까웠다. 그런 말을 들으며 저자는 자신의 적성에 무엇이 맞을 지에 대해 생각하고, 가능성을 점점 좁혀가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밖에 할 줄 아는게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위에도 적었듯 저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정말 많은 것을 하고 있고, 이러한 능력을 찾아내는 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저자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아마 현대 사회에는 저자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내가 잘 하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고, 나의 적성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결말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밖에 못 한다’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컨셉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잡는 것은 좋지만 스스로에게는 나는 낯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잘 만나고, 이야기에 대한 수용성이 높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내 시간을 사용하는 등 할 줄 아는 것이 많다고 이야기해줬으면 한다.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가정이 있는 30대 남성인데, 어떻게 이런 서비스를 무료로 해줄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 이야기가 책의 4장에서 나오는데 이전에 저금했던 것을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처음에는 서비스 비용을 받을까 했지만, 돈을 받게 되면 그 금액만큼의 무언가를 해줘야 하는 부채감에 휩싸이게 되고 의뢰자 입장에서는 돈을 준 만큼 무언가를 바라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서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 것에 만족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4장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아직 젊은 편이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나의 노후 생활에 대한 걱정은 커지고, 사회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빠른 은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많아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빨리 모아야 했고, 나는 무언가를 할 때마다 돈을 생각하며 저울질을 해댔다. 이 저울질은 나의 인간관계에까지 해를 입혔다. 나는 원래는 남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행위를 즐기던 사람인데, 돈에 얽매이자 그런 행동이 어려워졌다. 책에서는 인간관계는 증여가 순환되면서 형성이 되는데, 그 증여가 같은 값일 경우 제로 값이 되면서 관계 형성이 어려워진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더 받았다는 건전한 부채감이 있을수록 관계는 오래 간다는 말이 나에게 크게 와 닿았다. 남을 위한 무분별한 소비는 좋지 않지만, 내가 정말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은 나에 대한 적당한 부채감을 느끼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SNS에서 본 글 중 하나가 ‘이유 없이 나에게 돈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 그 사람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였다. 픽 웃고 넘길 만한 글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 잃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쨌든 투자를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책의 마무리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씁쓸하게 맺어졌다. 한 가정의 일원으로써 언제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활동을 지속해갈 수 있을지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스펙 제로의 갓난 아기처럼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아기처럼 행동해도 살아갈 수 있다면 좋을텐데’라는 마음을 내비치며 책은 마무리되었다. 나도 때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고, 누워서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이 책을 만나 책을 읽고, 내 생각을 적는 행위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작가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을 만나 무언가를 하고 책까지 펼쳐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어떻게, 왜,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몰라서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의 말을 보자마자 이 책은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인문학도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집콕을 하며 독서를 하는 행위는 지식의 향연을 즐기는 행위다, 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어떤 말을 하면서 인용을 하는 게 아니라 정의를 하는 것은 참으로 멋있는 행위라고 하며 정의를 하기 위해서 화자는 부단히 많은 노력을 했을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말이 나에게 너무 와 닿았다. 수 십, 수 백 편의 논문을 읽으면서도 무언가 명확히 정의를 내리지 못 하고, 인용을 할 때가 많은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언제 명쾌한 답을 내리고, 정의를 할 수 있을까. 더 많은 논문과 책을 읽고 다양한 생각을 해야겠다고 잠시 나마 반성을 하게 되었다. 아무튼 이러한 내용들이 담긴 저자의 말로 책은 시작한다.과거에는 책이 어떻게 전파되었을까? 교황이 지배하던 신의 시대에 우주는 신이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미신이다, 라는 내용이 적힌 책들은 매우 불온한 것이었기에 퍼지기가 쉽지 않았다. 수도원이나 도서관에 보관된 책을 훔치거나 필사를 하면서 책이 퍼졌다고 한다. 하지만 가수와 마차 등의 볼거리가 등장하면서 독서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다. 마치 티비나 유튜브 등의 미디어에 노출이 되면서 독서 행위를 하지 않는 현대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역시나 과거는 반복된다.책은 지식을 담고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저자는 말한다. 책은 많은 사람에게 처음 만나는 장난감이자, 인류에게 가장 오래 된 장난감이라고. 책은 종이의 형태로 가장 오래 존재했다. 그 전에는 점토, 양피지, 대나무 등의 형태로 존재하였다. 점토는 화재와 같은 사고에는 강했지만 그 부피가 너무나도 컸고, 양피지는 재질은 좋았으나 동물을 도살해야 하고 제작에 있어서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종이의 가공과 인쇄술의 발달은 책을 모두의 문화로 만들었다. 이후 전자책이 등장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몰락을 예상했다. 나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된다.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대여를 해서 보자니 남들이 어떻게 관리하며 보았는지도 모르는 책을 함께 보는 것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이런 별난 성격 때문에 나는 전자책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디지털 전자기기로 정보를 접하는 것 보다는 종이책의 촉감을 느끼며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것을 원한다고 한다. 전자기기를 일찍이 손에 쥐어주면 책을 읽기 보다는 영상을 보거나 SNS에 노출이 되게 되고, 이는 아이의 정서 발달, 눈 건강 등에 에 좋지 않기 때문 일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른들에게도 그다지 좋지 만은 않다.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대량 생산이 된 물품 중 하나가 부적이다. 부적 또한 종이나 인쇄술이 등장하기 전에는 책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있는 물품, 동물의 뼈, 돌, 조개 등에 새겨졌다고 한다. 부적은 불교와 가까운 것으로 과거에는 스님들이 하나하나 수제로 그려주었으나 부적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인쇄술이라는 것이 발달하면서 대량으로 찍어내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부적을 원했을까? 부적은 위험과 액운을 피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때문에 현대에 들어서도 인기가 많다. 부적은 부와 건강을 기원하는 길상부적과 교통사고 또는 흉사를 막아주는 벽상부적으로 나눠진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라이벌의 음해 등이 들끓었던 그 시절에는 아무래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벽상부적을 원하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입시에 도움을 주는 부적이 인기라고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단순히 종이에 인쇄된 부적 뿐만 아니라 작은 천에 부적을 새겨 넣어 키링으로 만든다거나 예쁜 모양에 기원의 의미를 담아 판매하기도 한다. 그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니즈에 맞게 모양이 변해가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에는 연애를 기원하는 부적을 가지고 다니는 이들도 꽤 있다. 이처럼 부적은 시대와 세태를 반영하는 물품이다.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요즈음을 보면, 조만간 다시 벽상부적의 유행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슬픈 예감이 든다.부적 이외에리고 각 용도에 맞는 보자기를 손수 제작할 때마다 정성을 들이고 복을 기원했다고 한다. 보자기는 이 외에도 깔거나 뒤집어쓰거나 닦는 등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다용성 물품인 보자기는 다들 알다시피 물건을 싸서 들고 다니는 용으로, 가방과 같은 용도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 용도로 보자기를 주로 사용하는 직군은 판사이다. 판사들이 보는 그 많은 서류를 넣기에 가방은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신임 판사들은 법원 마크가 새겨진 보자기를 지급받는다고 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판사들이 사용하는 보자기를 제작할 때에는 보다 정의로운 판단을 해달라는 기원이 추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보자기의 유연함을 이야기하며, 우리나라는 과거에 아이들을 포대기에 감싸 등에 업어서 재운 반면 서양은 요람에 아이를 넣어 재운 사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어부바 문화가 어머니와 아이를 정서적으로 연결한다고 했다. 사실 정서적인 안정감이 어린 시절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이 안정감이 때로는 독립성을 잃게 하고 있지는 않을 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의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서양의 어린 아이들은 우리나라 아이들보다 자기 목소리를 더 많이 내고, 조금 더 빠른 독립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교육 과정에 차이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요람에서 지냈는지, 보자기에서 지냈는지도 영향을 조금이라도 미치지 않았을까? 다만, 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보자기를 사용하는 것은 참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어휘력과 억양은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인 위치, 성품을 알 수 있다. 독서의 가장 큰 장애이자 이득은 어휘력이다. 어휘력을 가장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책은 사전이지만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인 유희가 집필한 ‘물망고’라는 사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순우리말에 대한 지식 뿐만 아니라, 한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오늘이 센 녀석들, 태어난 지 넉 달 된 녀석들 등으로 구분해서 불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어휘는 그 시대를 반영하곤 한다. 나는 요즘 청소년들의 어휘력이나 언어 습관을 종종 심각하게 여길 때가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언어가 표준어가 되고, 역사가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다지 반가운 미래처럼 여겨지지는 않지만 말이다.책의 후반부에는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는가’라는 책을 소개한다. 과거에는 돼지나 닭을 다양하게 분류했는데 지금은 그저 식재료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 돼지,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식재료로 쓰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인생을 함께 하는 반려동물로 여겨지면서 각자의 이름까지 있는 개. 돼지, 소, 닭과 같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식재료라고 생각되는 이 동물들도 과거에는 사람들의 주변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식재료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사육장, 도축장이라는 공간에서만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런 곳의 환경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육식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외면한다. 비윤리적으로 좁은 사육장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는 사실, 마취나 기절이 되지 않아 맨정신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도축장에서 하나의 생명은 식재료로 가공이 된다. 사실을 매체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눈으로 직접 마주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폴 매카트니는 도축장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면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다. 실제로 친구 중 하나가 성인이 된 이후 계란은 섭취하는 세미 베지테리언이 되었는데, 그 이유가 육류의 도축 및 가공 과정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동물복지축산’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인도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농장을 국가가 인증해주는 제도이다. 나는 티비에서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치킨 광고를 보며, 과연 저 사육장에서 자란 닭들이 저렇게 생각해줄까? 동물을 식재료로 밖에 생각하지 않으면서 복지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일까? 그저 사람들이면 쇠비름의 뿌리를 따라서 감자나 옥수수의 뿌리가 땅 속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고 더 많은 양분을 흡수하게 된다고 한다. 잡초는 땅 속 깊숙한 곳에 있는 영양분을 끌어올리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는 이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뿌리고, 무기질 비료를 뿌려 땅 속에 영양분을 다시 공급한다. 한 마디로 바보 같은 짓이다. 잡초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자연스럽게 유기질과 무기질을 끌고 올라와 주변 생물들에게 나눠주는, 낙수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나 또한 잡초가 많으면 재배하려는 식물의 영양분을 잡초들이 빼앗아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잡초는 재배식물과 상호보완의 관계를 맺고 있어서 적당한 양 만큼 함께 키우면 좋다. 과거에는 그저 잡초로만 여겨졌던 것들이 최근에는 일반 식품이나 건강 식품으로 각광 받는 경우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땅 속 깊은 곳이 뿌리를 내리고 영양분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식물이라면 그만큼 영양분이 많을 것이다. 과거에는 악마의 식물이라고 불리웠던 감자가 현대에 들어서는 좋은 탄수화물 급원이 되듯, 지금 잡초로 여겨지는 녀석들이 언젠 가는 영양분이 풍부한 식품이 되어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지 않을까? 그리고 식량난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지금은 질기고 맛이 없다고 거들떠도 보지 않는 잡초들이 많은 동물들과 인간의 생명 연장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조만간 잡초가 각광 받는 시대가 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이 외에도 제사상에 맛밤을 올리면 안 되는 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알아본 제사의 기원, 빵의 역사, 셜록 홈즈로 알아보는 빅토리아 시대 등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짧막하게 소개되고 있다. 각 파트마다 다소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나름 흥미로운 주제들로, 너무 길지 않게 소개되어 있어서 가볍게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조금 불편했던 점은, 예의가 있는 옆 집 이웃 아저씨를 보며 좋은 아내가 있었을 거라고 상상했던 저자의 모습, 책에서 종종 등장하는 저자의 아내와 딸에 대한 이야기들, 종조모에 대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