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를 앞서간 지도자였던 중국 최후의 황후, 서태후 ]누구나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이 있습니다. 현재의 저는 화학과를 진학하여 공학도가 된 삶을 살고 있지만, 십여 년 전에 인문학도를 꿈꾸며 여러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 정말 좋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클래식 문학 작품을 즐겨보았는데, 여러 군상의 등장인물들을 만나며 그 책의 저자인 ‘세기를 빛낸 거장들’의 생각을 엿보는 것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 거장들의 일대기를 보며 작품이 쓰여진 배경을 상상하는 것이 일종의 취미였던 것 같습니다. 중학생 즈음에 ‘대지’라는 두꺼운 책을 접하여 며칠에 걸쳐 푹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그 책을 읽으며 근대 중국의 역사와 사람들의 가치관이란 정말 신기하고 이해하기 어려운것이구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또한 작가가 중국인이 아니라 펄 벅이라는 미국인 여성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정말 이 책 안에서 서술된 중국의 모습들이 사실에 고증하여 정확하게 서술된 것일까 하는 의문도 생겼습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본 중국(동양)은 어떠한 환상과 편견이,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그러나 단순히 그렇게 보기에는 작품 속에는 중국의 생활양상 및 역사적 배경과 디테일한 요소들이 정말 섬세할 정도로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후에 알게 된 바로는 펄 벅은 ‘대지’라는 3부작 소설로 노벨 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받아 미국인들의 아시아에 대한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연인 서태후’라는 책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책의 저자가 펄 벅임을 알고 나서 큰 흥미가 생겼습니다. 10년 전에 읽었던 ‘대지’도 지금까지 저에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인 ‘연인 서태후’는 어떠한 느낌일지 궁금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연인 서태후’를 감상문을 위한 역사 단행본으로 선택한 이유입니다.책의 주인공인‘서태후’는 청나라 말기의 황태후로, 제 10대 황제 동치제의 어머니이며, 흔히 청나라 말기의 독재적 성향을 가진 여성 권력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태후를 비판적인 관점으로 악의적으로 표현하며, 청나라를 몰락으로 이끈 악녀로 증오의 대상임을 강력히 묘사하곤 했습니다. 그러나‘연인 서태후’에서 펄 벅은 서태후의 일생을 영웅적인 차원에서 인식하여, 그녀와 주변인물간의 상황을 섬세히 상상하고 마치 그녀의 입장을 대변하듯 이를 서술하여 독자에게 전달해줍니다.간단한 책의 줄거리 및 시대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난징조약으로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고, 몰수한 아편과 전쟁 배상금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게 된 19세기 말 청나라는 외세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시대였습니다. 큰 혼란에 빠진 청나라에서는 역대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란까지 일어나게 되는데, 농민 출신 홍수전이 이끄는 종교단체에서 비롯된 반란인‘태평천하’라는 농민 대봉기였습니다. 이렇게 위태로운 청나라 말기 1850년에 청나라 9대 황제인 함풍제가 즉위하게 됩니다. 함풍제는 책에서 천자 및 황제라는 이름으로 서술됩니다. 그는 황실의 혈통을 잇고 황실의 안정화를 위하여 수녀 선발 제도를 통해 후궁을 선발하게 되는데, 이때 황제의 눈에 띄어 궁에 들어오게 된 후궁 중 한명이 ‘서태후’였습니다. 소설 속 서태후는 ‘영록’이라는 허구의 약혼자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는데, 황제의 총애를 받아 권력이 막강해질수록 영록과의 이어질 수 없는 사랑은 더욱 뜨거워져만 가게 됩니다. 그녀는 황제와의 합방을 거쳐 입궁한 지 4년만에 첫 황자를 낳아 귀인에서 단번에 황귀비가 됩니다. 아들을 낳음으로써 황후의 다음 가는 지위와 함께 황자의 모후라는 영향력을 동시에 얻게 된 것입니다. 이듬해인 1857년에는 제2차 아편전쟁이 발발하게 되는데요, 맞서 싸울 힘이 없었던 청나라는 톈진 조약과 베이징 조약을 체결하여, 많은 항구를 개방하고 막대한 배상금까지 물게 되었습니다. 함풍제가 죽고 10대 황제인 동치제가 황제 즉위를 하게 된 후, 동태후인 사코타 및 공친왕과의 정치경쟁이 시작하게 됩니다.연인 서태후에는 이러한 대목이 있습니다.‘자희는 또다시 자신이 남자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그랬다면 그녀는 직접 관군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가 침략자들과 맞섰을 것이다. 대관절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강한 남자가 필요한 이 시대에 여자로 태어났단 말인가? 그녀는 그 궁극적인 의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고 얼마 안 가 그것이 자신의 참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본래 모습, 즉 여자의 몸으로 남아야 했다. 그리고 다만 그 안에 남자의 강인한 정신을 담아 일을 처리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170p]중국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초창기인 청나라 말기, 여성에 대한 억압 및 인식은 소설 속 다양한 부분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남아선호사상이 진하게 나타나는 부분인 후궁들의 태자 출산 부분과 중국의 역사적인 악습인 전족을 언급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근대 중국은 유교적 사상이 짙어 여성의 입지나 인권이 좁았던 탓에 늘 역사는 남성의 입장에서 쓰였으며, 세계사적인 부분에서조차 남성이 우세했음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편견 가운데에 늘 역사를 빛내며 활약했던 여성들을 정말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열정이 있었고, 남성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역사 속 그녀들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늘 여러 갈래로 갈리게 됩니다.서태후도 그러한 인물 중 하나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역사란 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악당을 필요로 하기에, 그녀는 ‘악인’으로만 평가되기 급급했었습니다. 이 책의 작가인 펄 벅은 중국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단순하게 나열하기보다는, 서태후라는 인물을 인간적이고 입체적인 새로운 인간상으로 탈바꿈시켜 서태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는 듯합니다. 그녀가 했던 행동들과 말을 포함한 그녀의 인생 전체에 부가적인 설명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을 덧붙여 주어, 서태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사의 정당성에 따라 그저 비방의 대상으로만 낙인찍힌 그녀를 좀 더 섬세한 관점으로 바라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