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 독후감- 차 례 -1. 들어가며2. 시대적 배경1) 1815년 워털루 전쟁 중심으로2) 1832년 6월 반란을 중심으로3. 인물 분석1) 장 발장의 고뇌2) 비참한 사람들에 관하여4. 마치면서1. 들어가며본 빅토르 위고의 에 대한 독후감은 총 여섯 권으로 구성된 동서문화사 완역판을 토대로 한다.1802년에 태어나 83년을 살면서 빅토르 위고는 시, 소설, 희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양의 문학 작품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정치 활동과 사회 활동을 하면서 명망가가 되었고 민중에 대한 애정과 반정부인사로서 19년 간 망명객으로서의 삶은 그를 위인으로 만들어 주었다.위고가 쓴 소설 은 소설 뿐만 아니라 영화나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공연되고 있을 정도로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다.많은 자료를 토대로 방대한 분량의 소설인 은 19세기 프랑스의 역사가 담겨 있는 역사소설이고 사회의 빈곤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비참하게 무너뜨리는지에 대한 사회소설이며 워털루 전쟁에 관한 고찰로 이루어진 전쟁소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낭만적인 문장들이 넘쳐나는 서사시적 특징까지 아우른다.2. 시대적 배경1) 1815년 워털루 전쟁 중심으로워털루 전쟁은 재집권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영국, 프로이센 연합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다. 위고는 2부에서 워털루 전쟁에 대해 86페이지에 걸쳐 묘사하고 분석하고 평가한다. 전투가 치러졌던 워털루 평원에 답사를 가서 1861년의 시점에서 46년 전의 전쟁터 모습을 묘사한다.성채였으나 농원이 되어 있는 우고몽, 백병전이 치러져 무너져 내린 성당, 총탄 자국이 남아있는 벽, 산탄 맞은 나무들의 모습을 보며 300여 명의 시체가 던져진 우물이 더 이상 우물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우고몽의 쓰러져 가는 집에서 3천 명의 병사가 베이고 학살되고 총살되었던 역사를 되짚어준다.워털루 전쟁에 관한 전황보고서와 전쟁회상록을 살펴본 위고는 워털루 전쟁에 대해 하나의 수수께끼라고 말한다. 또는 신성한 우이 일어났다. 이 전투로 말미암아 프랑스군은 56%, 연합군은 31%의 사상자를 냈는데 양 군 전투원 14만 4천 명 중에 6만 명이 죽었다.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패배로 프랑스는 루이 18세의 왕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대혁명을 거쳐 자유와 평등,?공화정을?경험하고 나폴레옹의 제정 시대를 살다가 또다시 왕정으로 돌아간 프랑스는 온갖 주의자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전쟁과 함께 그가 전 유럽에 퍼뜨렸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숨죽이게 되었고 불안과 불면의 밤을 보냈던 유럽의 왕들은 워털루 이후 구체제로 복귀했다. 그것이 워털루 전쟁이 일어났던 1815년 전후의 풍경이다.위고는 워털루 전쟁의 역사적 사실들을 서술하면서 전쟁의 피비린내가 휩쓸고 지나간 6월 18일, 보름달이 환하게 뜬 밤의 워털루 평원을 보여준다. 그리고 처참한 역사의 한 장면에서 두 명의 인물을 창조한다.그중에 한 명,?전쟁의 도가니 속에서조차 천한 짓을 하는 도둑 떼나르디에를 만들어낸다. 그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냇물을 이루는?워털루 밤의 평원에서 시체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기어 다닌다. 종군 상인으로 왔지만 도둑질이 주업인 이 인물은 시체를 뒤져 가져갈 만한 물건을 훔치는 중이다.그런데 방금 금반지를 빼낸 손 하나가 그의 옷자락을 움켜 잡는다. 떼나르디에는?그를 시체더미 속에서 꺼낸다. 얼굴은 칼로 베어졌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그에게서 도둑은 훈장을 떼내고 시계와 지갑을 훔친다. 그러는 동안 정신이 든 나폴레옹의 흉갑기병 장교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이의 이름을 묻는다. 자신의 몸을 뒤져 훈장과 물건을 훔쳐간 건 모르고 자신을 구해준 은인으로만 안 그는 떼나르디에에게 자신의 이름이 뽕메르씨임을 알려준다.프랑스군 56%가 전사한 그 전쟁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뽕메르씨는 남작 칭호를?하사 받는다. 그러나 황제는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되고 루이 18세 왕정은 그의 공로와 남작 칭호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마리우스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지만?그는?죽은 아내의 아버지인 질노르망 대한 공포와 경의를 경험했다. 그리고 혁명이 낳은 반전으로 왕권을 거머쥐었다.역사 속에서 인류는 지배자에 의해 권리를 침해당하거나 민중의 고통이 배가되면 폭동 혹은 반란으로 항거했다. 그러면 무엇이 폭동이고 무엇이 반란인가, 위고는 책 속에서 폭동과 반란을 고찰하고?구분한다.폭동은 전체에 대한 한 당파의 공격이고 대개의 경우 물질적인 문제에서 일어나는데 더없이 잔인한 폭력행위가 될 수 있다. 반란은 집단의 주권과 관계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한 당파에 대한 전체의 투쟁으로 언제나 정신적인 현상이다. 파리가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한 것, 그것을 위고는 반란으로 본다. 반란이 성공하면 혁명이 되는데 1789년 대혁명과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이 그 예이다.하지만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맛본 프랑스 민중에게 1830년의 7월 혁명은 미완의 혁명이었다. 민중들에게는 왕정이 아니라 공화정에 대한 신념과 대혁명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1831년과?32년의 프랑스는?반쪽의 성공이었던 7월 혁명의 여파로 반란이 자주 일어났다.그중에서 위고는 1832년 6월 5일과 6일 사이에 있었던 반란을 살펴본다. 알아야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묻히고 사라진 사건들을 촘촘히 묘사하고 꼼꼼히 불러온다.프랑스인들이 애통해한 장군 라마르크의 장례식날인 1832년 6월 5일, 파리의 공기는 불안했고 거리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라마르크의 장례 행렬은 군대에 둘러 싸여 파리 시내를 통과했다. 장례 행렬 뒤에는 라마르크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많은 군중이 뒤따르고 그들의 손에는?'공화제냐, 죽음이냐’라고 쓴 깃발이 들려있었다. 총으로 무장한 군중도 있었고 완전 무장한 군인들도 거리 곳곳에 배치되었다.어느 사이엔가 누군가의 돌팔매로 시작된 싸움은 총격전으로 이어져 저녁 6시쯤 거리 곳곳은 전쟁터가 되었다. 성난 군중들은 도로와 관청, 광장과 문을 점령하고 무수한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졌다. 길에 깔린 돌을 깨서 쌓아 올리고 술통과 벽돌과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을 쌓아 올려 3m, 혹이들은 혁명의 영웅으로 대접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반란은 혁명도 무엇도 아니어서 죽은 이들과 사건은 쉽게 잊힌다. 그런 사건을 위고는 기억하고 스러져간 이들을 불러와 실패한 사건의 위대한 점을 서술한다.바리케이드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싸우다 생을 마감했는지, 그들이 죽음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영혼의 눈으로 묘사한다. 춥고 배고프고 어두운 시대에 모두를 위한 진보와 모두를 위한 빛을 꿈꾸었던 정의로운 영혼들을 기린다. 비극적인 죽음이어서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래서 그들을 상기시킨다.3. 인물 분석1) 장 발장의 고뇌가지치기 인부였던 장 발장은 1796년 굶주리는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다가 주택침입절도죄로 5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하지만 네 차례의 탈옥 시도로 형이 추가돼 ?총 19년을 감옥에서 보낸다. 발에는 족쇄를 차고 새벽부터 밤중까지 고된 노역에 시달리며 욕을 먹고 매를 맞고 널빤지를 침대 삼아 잠을 자고 추위에 노출된 죄수의 삶을 산다.빵 하나를 훔친 죄로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장 발장은 자신이 왜 이렇게 됐는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진 형벌이 너무나 가혹하며 불공평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이 들끓게 된다.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위험인물로 분류된 그는 가는 곳마다 관공서에 들러 통행증을 제시해야 했고 사람들은 그를 회피하거나 내쫓았다.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인 먹을 것도 잠자리도 얻기 힘들었다.그때 장 발장에게 문을 열어 주고 식탁에 앉아 함께 저녁을 먹고 따뜻한 잠자리를 주었던 인물이 미리엘 주교이다. 그러나 장 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집에서 은그릇 6개를 훔쳐 달아난다. 얼마 후 헌병에게 붙잡힌 그는 주교님이 준 거라고 거짓말을 한다. 끌려온 장 발장을 보고 미리엘 주교는 도둑질을 꾸짖는 대신 은촛대 2개를 더 건네준다. 그리고 이 은으로 해서 들어오는 돈은 정직한 인간이 되기 위한 일에 쓰도록 하라는 말을 하며 장 발장을 보낸다.장장 발장인 마들렌느 씨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자기 대신 감옥에 가게 될 ?가짜 장 발장을 떠올린다. 샹마띠외라는 가짜 장 발장이 자기 대신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종신형에 처해질 것이다.마들렌느 씨는 깊은 고뇌에 휩싸인다. 샹마띠외는 얼마 살지 못할 늙은 노인이고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으니 감옥에 가는 것은 그의 일이라는 생각. 자신이 여태까지 지역사회에 기여해 온 것들 즉, 자신이 일궈 놓은 윤택한 경제가 빈곤과 도둑질과 살인을 사라지게 만들었는데 내가 없으면 지역 경제가 다시 침체될 것이고 빈곤은 악덕을 불러올 것인데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은 누가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들. 버림받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팡띤느와 비참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어린 딸 코제트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들.마들렌느 씨가 장 발장이 아닌 마들렌느 씨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았고 마들렌느 씨는 지역 사회에서 아주 필요하고 중요한 사람이었다. 자기 보호 본능과 자기 합리화가 그를 감싸고?돌았다. 그러나 마들렌느 씨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울려오는 양심의 목소리는 자기 대신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게 될 샹마띠외에게로 향한다. 무지하고 가난하고 늙은?샹마띠외가 자기 대신 장 발장이라는 이름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자수를 하고 자백을 하면 그는 존경하는 시장님에서 가장 위험한 죄수라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고 그가 여태 누렸던 존경은 비난으로, 자유는 속박으로, 명예는 혐오로 바뀔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생각하기도 끔찍한 공포였다. 결코 다시는 돌아가면 안 되는 지옥이었다.하룻밤 동안 일어난 마들렌느 씨의 깊은 고뇌는 그의 내부를 흔들어 놓았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누명 쓴 한 사람을 위하여 지역 사람들을 활기차고 윤택하게 해 주었던 마들렌느의 삶을 ?버려야 할 것인가, 자수를 하면 가엾고 불쌍한 코제트를 구할 수 없게 될 터인데 그건 또 어찌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들이 밤새도록 그를 휘감았다.위고는 장 발장의 고민을 이렇게점이다.
몽테뉴의 에 관한 에세이 (민음사 판, 전 3권)< 서론 >- 시대적 배경과 저자 소개< 본론 >- 책 소개 및 감상1) 1권2) 2권3) 3권< 결론 >- 맺는 말- 시대적 배경과 저자 소개16세기의 프랑스는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르네상스가 프랑스로 넘어와 개화하던 시기이다. 또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변혁의 시기이기도 하다. 이 당시는 왕권이 강화되어 권력이 중앙집권화 된 시기이고 인문주의가 확산되고 종교개혁이 이루어지던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이 당시 프랑스에서는 1562년부터 1598년까지 30여 년에 걸쳐 8차례의 내전이 발생했다. 위그노 전쟁이라 불리는 이 내전은 종교개혁 이후 구교도와 신교도 간의 전쟁으로 몽테뉴가 극도로 잔인한 시대라고 평가한 전쟁이기도 하다.이러한 시대적 배경 안에서 철학자이자 법관이며 작가로 평가받는 미셸 드 몽테뉴는 1533년에 태어나 1592년에 사망했다. 영지를 가지고 있고 보르도시의 시장직을 역임했던 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에 몽테뉴는 어릴 때 모국어인 프랑스어보다 라틴어를 먼저 배우고 익혔다.몽테뉴가 에서도 언급하는 바이지만 그의 아버지는 몽테뉴에게 라틴어를 가르치기 위해 집안에 라틴어 가정교사를 두고 어린 몽테뉴를 돌보는 하인들조차 라틴어를 배워 라틴어만 말하도록 교육시켰다. 몽테뉴가 전반에 걸쳐 인용하는 고대 로마의 철학자나 현자, 카이사르와 같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어린 시절에 배운 라틴어가 모국어와 같은 역할을 해서 그럴 것이다.몽테뉴는 1571년 38살의 나이에 법관직에서 은퇴하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신의 영지인 몽테뉴 성에 은거하며 를 쓰기 시작했다. 1580년에 10여 년 동안 쓴 ‘에세1’권을 발간하고 1582년에는 1권과 2권을 아우른 2판을, 1588년에는 3권을 추가한 최종판을 발간했다. 그리고 1588년 판 여백에 써 넣은 원고가 나중에 확인되어 새로운 판본이 20세기에 발간되었는데, 민음사 판 는 나중에 나온 판본(보르도 판)을 심민화, 최권행 교수가 완역한 것이다.- 책 소개 및 감상1) 1권책의 서문에서 몽테뉴는 이 책에 무엇이 쓰였는가를 밝힌다. 그는 “나 자신이 내 책의 재료”라고 말한다. “세상의 호의를 얻기 위한 것”이거나 “나를 더 잘 장식하고 공들여”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꾸밈없이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보통 때의 모습”을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그의 표현대로 를 읽다 보면 몽테뉴는 자신의 결점이나 약점도 스스럼없이 내보인다.종교가 개인의 의식과 행동을 제약했던 시대에 자신을 소재로 택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 보이는 글쓰기를 시도했다는 것은 몽테뉴의 생각과 의식이 르네상스적이면서 시대를 앞서 가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에세’는 시도하고 처음 해 본다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인데 오늘날 그를 번역한 영어 ‘에세이’가 탄생되어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에세이라는 장르가 탄생된 것이다. 1권은 57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슬픔이나 의연함, 공포와 같은 감정적인 주제가 있는가 하면, 잠이나 이름, 냄새나 옷, 나이와 같은 일상적인 주제가 있으며 협상이나 왕과 대신들에 대한 정치적인 주제, 죽음이나 행복과 같은 철학적인 문제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3장 ‘우리 마음은 늘 우리 저 너머로 쓸려 간다’라는 주제에서 몽테뉴는 내일을 걱정하는 영혼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 걱정과 근심이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게 만들며 심지어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그는 플라톤의 위대한 가르침을 이야기한다. “네 일을 하고 너를 알라”라고 말한다.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살라는 말로 해석되는데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몽테뉴는 조금 더 자세히 덧붙인다. “자기 일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이 자기가 누구이고 자기에게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다.”31장의 ‘식인종에 관하여’라는 주제는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흥미롭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대항해 시대를 산 몽테뉴는 신대륙을 다녀 온 선원이나 상인 심지어 신대륙에서 건너 온 원주민을 직접 만난 경험과 생각을 글에 담았다.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으로 모든 것을 나누고 따라서 부의 독점이 없고 원초적인 천진성을 가지고 사는 신대륙인들의 일상을 그는 흥미롭게 서술한다.신대륙인들의 식인 풍습에 대해서 어떤 목적이나 굶주림으로 인해 유럽인들에게도 식인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옛 글을 인용해 그들의 야만성이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몽테뉴는 “자기 관심이 아닌 것을 야만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면 이 신세계에는 아무것도 야만적이거나 원시적인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유를 한 것을 보면 몽테뉴는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의 관점에서 다른 세계의 문화를 바라보는 균형적인 시각을 가진 지성인이라 할 수 있다.몽테뉴는 공적인 일을 하면서 자신의 손과 어깨는 빌려줄 수 있어도 그 일을 자신의 간과 폐에 담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사회적인 삶을 간과하지 않되 자기 정신과 영혼의 강건함을 지키겠다는 소신을 가지고 몽테뉴는 자신의 삶을 살았던 셈이다.2) 2권몽테뉴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극도로 잔인한 시대라고 평가한다. 그가 한창 활동하던 시기인 1562년부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프랑스에서는 내전이 지속되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는 위그노 전쟁이다. 그들은 구교도와 신교도로 나누어져 서로가 서로를 해쳤는데 고대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극도의 잔혹성을 날마다 겪고 있다고 몽테뉴는 쓰고 있다. 그들은 단지 죽이는 재미로 살인을 행하고 전에 없던 고문과 새로운 살인법을 만들어 내는 괴물 같은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고 몽테뉴는 말한다.시대가 참혹해서 누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니 그 당시 가진 게 많은 귀족들은 자신의 저택이나 성을 무장한 병사들로 지키도록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 시대에 몽테뉴는 무장한 집들 사이에서 내 집의 보호를 하늘에 맡겼다고 쓴다. 몽테뉴는 운명을 하늘에 맡김으로써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삶의 끝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어 어떠한 죽음의 형태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몽테뉴는 책을 통해 구하는 것은 자신을 알게 해 주는 지식과 잘 죽고 잘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고 아는 체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잘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먼저 살다 간 역사적 인물들의 삶과 생각과 글을 되집어 보면서 자아를 알고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지혜롭게 사는 법을 배운다는 뜻이라 해석된다.몽테뉴는 2권의 12장 ‘레몽 스봉을 위한 변호’에서 자신이 살아오면서 읽고 배우고 사색했던 철학의 다양한 모습을 펼쳐 놓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인간과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영혼의 움직임이 어떠한 지, 이성의 작용은 어떠한 지, 감각이 앎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 나열하고 비교하고 평가한다.그의 철학수업은 지난 시대 철학의 역사와 다양한 의견들에 대한 앎을 제공한다. 앎에 대한 정의와 관점에 대해 많은 철학자들을 인용하고 나서 몽테뉴가 내린 결론은 앎에 대한 우리의 오만과 자만에 대한 경계이다.몽테뉴는 황제의 영혼이나 구두 수선공의 영혼이나 같은 틀에 부어 만들어졌다고 본다. 배운 거 없고 아는 게 없어도 현명하거나 행복하게 사는 장인이나 농부들이 많고 무식하지만 행동과 처신이 탁월한 사람들이 많다는 예를 들기도 한다. 그래서 지식이나 앎이 선량하거나 행복하거나 현명한 삶을 살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그래서 지고의 행복은 영혼과 육체의 평안이라고 몽테뉴는 말한다. 물질과 자본이 어느 시대보다도 인간의 행복에 크나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 몽테뉴의 행복에 대한 잠언은 두고두고 생각할 가치가 있는 결론이다.3) 3권‘에세 3’권 역시 1,2권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탐구하면서 13가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썼다. 실리와 도리에 관하여, 후회에 관하여, 세 가지 사귐에 관하여, 기분 전환에 관하여, 수레에 관하여, 권세의 불편함에 관하여, 대화의 기술에 관하여, 외모에 관하여 등이 그것이다.5장의 ‘베르길리우스의 시 몇 구절에 관하여’라는 제목에는 몽테뉴의 결혼관이 나타난다. 그에게 결혼이란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후대를 위해서 그리고 집 안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에는 혼맥과 재산이 고려된다. 그는 결혼에 사랑은 관계가 없다고 본다. 그에게 좋은 결혼이란 아늑한 삶의 공동체로서 한결같음과 신뢰와 봉사와 보살핌이다.사랑을 집 밖에서 찾았다는 몽테뉴는 지혜롭게 자유를 관리했다고 쓴다. 결혼은 풍속에 따라 한 것이므로 결혼의 법칙은 준수하면서 살았으되 젊은 시절 자신이 방탕과 난봉에 이르렀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사랑 없는 결혼은 16세기 가진 것이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은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일반적이었으니 몽테뉴도 예외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