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이 책을 몇 년 전에 읽었는데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나서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의사 리외의 진료실에서 발견된 죽은 쥐로부터 시작된다. 리외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날 저녁 죽은 쥐를 발견하게 되고 도시 외곽의 빈민가에는 피를 토한 쥐들의 시체 무더기를 보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피부에 멍울이나 붉은 반점이 생기게 되면서 죽어 나가게 된다. 리외는 페스트임을 알게 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원봉사대로써 발벗고 나서게 된다. 소설 말미에는 오랑시의 페스트가 잠잠해지고 오랑시는 다시 활기를 찾게 된다. 이 책을 보면서 코로나 펜데믹 사태와 아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몸에 이상증세를 보이거나 쓰러지고, 심지어는 죽기까지는 증세도 그렇고, 확산을 멈추기 위해 도시를 봉쇄하기도 확진자는 격리되는 모습은 현재와 같았다. 또한 소설에서 시청의 담당과장이나 의사협회장 같은 사람들이 결정을 회피하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코로나가 처음 발발했을 때 초기대응을 머뭇거린 모습과도 비슷했다. 심지어 사람들이 알코올을 마시면 페스트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진 것도 비슷했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주인공들의 캐릭터였다. 리외는 의사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며 원칙을 준수하는 인물이다. 외지기자 랑베르는 자신의 소신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사랑을 중시하면서 오랑시 밖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오랑시를 나가려 한다. 타루 또한 외지인이기는 하지만 랑베르와 다르게 먼저 봉사대를 만들자고 제안할 정도로 추진력 있는 사람이다. 이 세 사람이 지금 코로나에 대응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각자의 상황과 소명이 있었지만 결국 랑베르를 포함한 자원봉사대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그에 대응하듯 페스트 또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렇듯,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연대를 할 때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독후감자율 시간에 탈진실 시대를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다가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 책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10가지 본능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함 본능) 과 그 예시를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고정관념과 오래된 생각을 깬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공포 본능’이었다. 공포 본능에서 제시한 예가 인상 깊었는데, 한 스웨덴 의사가 피를 흘리며 병원에 실려오는 조종사를 보고 상처를 보기 위해 옷을 찢으려하자 그 환자가 러시아말을 하며 놀라자 그는 순간 3차대전이 발발된 줄 알았다고 한다. 사실, 스웨덴 조종사가 저체온증 때문에 입이 얼어서 말을 잘 못하던 것이었고, 피는 구명조끼에서 나온 잉크였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은 별 것 아닌 상황에서도 극한의 공포를 느낄 수 있게 되고, 그 상황에서는 공포가 뇌를 지배하기 때문에 진실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한다. 이 공포본능을 읽으면서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삽시간에 여론이 조장되는 현사회를 생각하게 되었다. 가십이거나 근거 없는 소문을 ‘~카더라’ 식으로 sns나 인터넷으로 올리고 가짜뉴스가 빠르게 전파되면서 공포를 퍼뜨리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나온 상황에서도 그랬다. 알코올이 몸에 들어가면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거짓 정보가 퍼지면서, 실제로 한 나라에서는 실험용 에탄올을 그대로 마신 사례가 빈번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아직 정확한 정보가 밝혀지지 않은 공포 상황을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거짓정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탈진실 시대가 극에 다다른 현시대에서 언론의 역할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언론은 사람들의 공포본능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크고 잔인한 사건을 뉴스에 내보내고 그 뉴스는 다시 퍼지면서 새로운 공포를 만들게 된다. 혹여나 언론에서 거짓정보를 기삿거리로 삼거나 부풀려서 쓴다면 그 공포는 더욱 커지게 되고 사람들은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 거짓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오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독후감책을 넘기기 전, ‘신세계’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4차, 5차, 6차 산업혁명을 거친 기존의 상식을 벗어난 새로운 세계일 것이다. 사람은 더 편리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발전해왔지만 아직까지도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사회에서 버림받거나 뒤처지는 이들이 존재한다. 신세계는 이러한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잘 사는 ‘유토피아’가 아닐까는 생각을 가지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인간을 인공 부화하는 이 신세계의 가장 높은 계급인 알파 플러스이지만 유리병에 있을 때 알코올이 잘못 주사된 이유로 다른 알파들과는 달리 키가 작은 버나드와 다른 남성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레니나는 그들이 사는 문명사회와는 다른, 자연에 살고 신에게 기도하는 ‘야만인’이 사는 토인부락에 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원래 문명인이었지만 어떠한 사고로 토인부락에 살게 되고 연구소장의 아이를 가진 린다와 그 아이인 존을 만나게 된다. 버나드는 그 둘을 문명사회로 데리고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문명 사회에 생기는 균열과 혼란을 그려낸다.책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정말로 이때껏 어느 나라에서도, 어느 시간대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신세계’였다. 뱃속에서 아이가 자라고 인고의 시간을 버텨 세상의 빛을 보는 것이 아닌, 투명한 유리병에서 자라면서 이미 외부에서 아이의 직업과 계급을 정하고 태어나서는 교육을 주입시킴으로써 그들의 생각과 충성심을 다지는 모습은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였다. 과학적으로는 발전했지만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는 퇴보하는, 아니 어쩌면 도덕과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역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우리에게 인간성과 윤리에 대한 고찰을 요구하는 듯했다.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계급이 신세계에 존재하고 높은 계급이 낮은 계급의 사람을 하대하는 모습은 인권과 평등이 없는 모순적인 신세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성’에 대해 생각하였다. 이 책에서의 문명인이라 여겨지는 이들은 인간이 아니라 그저 사회의 안정을 위한 생산품이었다. 어디까지나 교육받은 대로 행동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수 없으며 ‘소마’라는 약품을 통해 그저 행복하게 낙원에 사는 그들은 지각하지 못한 채 그들만의 세상을 산다. 이 사회는 그들은 유토피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 사라진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도 그들이 사는 문명사회를 따라가는 위험한 갈림길에 서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도 인간의 편리함만을 위해 인간만이 가지는 윤리적, 도덕적인 인간성을 버리고 발전과 안정만을 추구하는 모습은 책의 문명사회와 다르지 않았다, 작가가 존과 무스타파 몬드 총통의 대화를 통해 전달하듯이, 인간의 불편함은 단면적으로 생각하면 불행이지만 깊게 생각하면 인간의 불편함이 존재하기에 인간성이 있는 것이고 앞으로의 발전된 사회에서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계속해서 과학적 발전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을 비판하기도 하면서 인간성과 인간의 도덕과 윤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함으로써 가치를 지닌다고 말하고 싶다.
독후감생활과 윤리 수업시간에 니부어의 를 배우며 홀로코스트의 집행자로서 나치를 위해 일하던 아이히만의 재판 영상을 보았다. 영상을 보기 전에 나는 그가 ‘대학살’을 집행했다는 명성에 걸맞게 난폭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상 속 그는 누구보다도 평범했고, 심리학자나 전문의들도 그는 평범하다고 인정했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점이 생겼다.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잔혹한 행위를 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 한나 아렌트는 나와 같은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보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던 그가 어떻게 대학살에 가담하게 되었는지를 깊게 탐구한다. 저자가 책에서 강조하는 단어는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악은 특정인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니부어의 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극히 도덕적인 개인으로 구성된 집단이라도 ‘집단’에 속한 개인은 이기적으로 행동하여 소위 말하는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수차례 언급했듯이, 아이히만 개인만큼은 결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그는 나치당이라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그들과 같은 신념을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신념과 행위가 옳다고 생각하여 대학살을 집행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아이히만의 법정 모습을 보면서 어딘가 기시감이 들었다. 나 또한 사회, 대한민국, 학교 등등의 집단에 소속되어 있고 분명히 그 집단 내에서 공유하는 정서와 신념이 있다. 하지만 이 당연시 되어 오던 신념이 옳은 행위를 이끌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나 또한 아이히만같이 공유된 신념과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드린 것과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집단적인 행위나 신념에 대해 항상 의문을 던지고 비판적으로 사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후감조지오웰의 다른 소설인 를 읽고 또 다른 소설인 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은 영국의 한 농장의 배경으로 시작한다. 농장주인 존즈는 게으르고 술을 좋아하여 농장일을 성실히 하지 않는다. 존즈의 농장의 동물들은 돼지 메이저를 중심으로 회의를 열게 되고, 메이저는 동물들의 이상사회에 대한 자신의 포부와 꿈을 밝힌다. 하지만 몇일 후에 메이저는 죽게 되고, 메이저를 이어 ‘동물주의’라는 사상을 가지고 비밀활동을 펼친다. 그러던 어느날, 동물들은 존즈가 먹이를 주지 않자 존즈를 농장에서 내쫓고 농장을 치지 한다. 그들은 다른 동물보다 똑똑한 돼지를 주축으로 운영하게 되는데 돼지 나폴레옹과 스노볼이 처음에 리더를 맡다가 나폴레옹이 스노볼을 쫓아내고 권력을 차지한다. 그들은 동물들의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한 규칙을 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돼지만을 위해 규칙을 바꾸기도 하고 다른 동물을 자신들의 아래에 둠으로써 인간과 별반 달라지지 않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우유사건과 사과사건이었다. 인간 대신 동물들이 암소의 젖을 짜내 얻은 우유와 사과를 먹으려 하자 돼지들이 먹지 말라 했는데 돼지들이 자기들끼리만 우유와 사과를 먹었다. 동물들이 안 좋은 시선으로 보자 돼지 스퀼러는 우유와 사과를 먹고 건강해야 농장이 돌아간다고 말하면서 사건이 무마되게 된다. 이 사건을 보면서 국회의원 비리가 생각났다. 국민 앞에선 청렴한 모습을 보이지만 뒤에선 국민들의 혈세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득을 취득하는 모습이 아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당시의 사회주의를 풍자한 우화소설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읽고나니 현대 정치와도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법을 통해 사회의 규칙을 만들었지만 공무원들이나 지도자들은 그 법을 위반하거나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어 변형하기도 한다. 소설에서 돼지들이 다른 동물들을 하등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속이는 모습은 현대사회의 언론조작을 통해 국민들의 속이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 중 하나인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권력과 독재에 대해 생각하였다. 소수의 지도자나 브루주아 계층이 권력을 쥐게 되고 점점 부패해지고 타락해지면서 독재로 변하는 과정이 순식간이어서 어이없기도 하고 현대 사회도 별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했다. 이 소설 은 시대를 관통하여 부패한 정치세력을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