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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크리스 나이바우어의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
    크리스 나이바우어의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
    크리스 나이바우어의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1. 책 및 지은이 소개? 지은이 크리스 나이바우어?옮긴이 김윤종?출판사 클랩북스?크리스 나이바우어-미국 톨레도대학교 인지신경심리학 박사-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슬리퍼리록 탬퍼스에서 교수 역임-좌뇌와 우뇌의 차이, 의식, 마음챙김, 인공지능 강의2. 독후감가. ‘나’를 통해 동서양이 만나다크리스 나이바우어의 는 이제까지 보아온 뇌과학 서적과는 확연히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기존의 뇌과학 책들이 뇌의 구조와 기능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 질문에서 시작한다.이 책은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밝혀진 결과를 토대로 자아 개념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는 전혀 다르게 좌뇌가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실체가 없는 자아, 즉 나에 대한 집착이 고통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사실 2500년을 이어져 내려온 동양철학에 그대로 녹아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서양 뇌과학 발전이 결국은 동양 사상과 종교의 가르침에 수렴하고 있다는 강력한 시사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통섭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그 동안 서양 과학은 동양 사상과 불교 등 종교의 가르침에 대해 비과학적이라 폄하해왔다는 점에서 보면 서양 과학이 이 책을 계기로 동양 사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이 책은 이론들만 나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장에 마련된 부록을 통해서 우리가 직접 체험을 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체험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 충분히 참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나’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보다 큰 즐거움은 없을 것이다.이 책을 통해 우리는 좌뇌가 만들어 놓은 허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좌뇌가 만들어낸 언어를 통해 불안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한다. 이미 불교에서는 그것은 모두 쓸데없는 번뇌라고 말하고 있다.그런데 우뇌가 이런 번뇌, 집착을 다스려준다. 다만 우리는 좌뇌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우뇌의 침착함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따라서 나를 찾는다는 것은 결국 우뇌의 일깨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일 것이다.책을 읽는 내내 그 동안의 나의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던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고, 그때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곰곰 되짚어 보기도 했다. 결국 이 책의 설명처럼 좌뇌의 농간에 놀아난 것임을 알았다.나. 나는 누구인가?서양 철학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생각할 줄 아는 존재’라며 인간의 특성을 정의했다. 데카르트는 이를 함축적으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러나 동양 철학은 생각하는 마음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생각이 없으면 어떤 문제도 없다.’ 는 것이다. 두뇌를 장착한 개인, 이른바 자아, 에고, 마음, 또는 단순히 ‘나’라고 하는 이것은 서구 세계의 중심 사고다. 서양의 세계관에선 위대한 사상가가 곧 세계를 변혁하는 자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자의 정체가 궁금하다.우선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자문할 때 마음속에 팍 하고 떠오르는 바로 그 심상이다. 그것이 각각이 가지고 있는 자아이며, 그를 통해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간다. 우리는 이 자아를 진정한 나라고 생각한다. 이 개별적 자아는 생각, 감정, 행위를 경험하면서 통제한다.이 자아는 자신이 인생이라는 쇼를 주도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의 육체를 통제하며 ‘이것이 내 몸’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동양의 불교, 도교, 힌두교에서는 입장이 다르다. 자아, 에고, 또는 ‘나’ 그것이 어떻게 불리든 이 ‘나’라는 개념을 허상으로 본다.이 책은 자아라는 개념이 그저 ‘마음의 구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머릿속 어딘가에 위치한 물질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달리 말해, 생각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자아라는 것이 있어 생각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자아라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그래서 자아는 명사보다 동사에 가깝다. 결국 생각이 없다면 자아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교, 도교, 힌두교에서 2500여 년 전부터 계속 강조해온 이 명제를 이제야 신경과학과 심리학이 따라잡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실재가 아니라 생각의 흐름 혹은 단순히 개념에 불과하다.신경과학 덕분에 우리는 뇌 지도를 갖게 되었지만 자아의 위치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것은 자아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로 자아 같은 건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여전히 일상에서 ‘나’를 강하게 느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이 책은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이른바 ‘자아’ 또는 ‘나’라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했던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뇌를 사용하는 법을 익혀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길 기대한다.다. 좌뇌와 우뇌뇌가 작동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뇌는 대칭인 좌우 반구로 나누어져 있고 중간에 뇌량이라는 큼지막한 신경섬유 다발로 연결되어 있다. 두 번째, 좌우 반구는 몸을 교차로 지배한다. 몸의 오른쪽은 좌뇌, 몸의 왼쪽은 우뇌와 연결된다.좌뇌는 언어, 범주화, 믿음, 판단이라는 도구를 매우 능숙하게 사용한다. 언어와 범주화의 공통점은 패턴을 찾아내고 판단하는 것이다. 언어는 주어-서술어의 순서나 동사의 활용형처럼 각종 문접적 패턴을 파악하고 있어야 제대로 사용될 수 있다.범주화는 사물이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 혹은 속하지 않는지를 판단하는 패턴이다. 좌뇌가 언어와 범주화 양쪽에 뛰어나다는 것은 좌뇌가 곧 패턴 인지에 능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패턴은 역시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패턴은 좌뇌가 알아차리고 일을 처리한다. 내가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것도 패턴을 발견하는 능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자아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자아 또는 재해석된 버전의 자아를 지지한다.이처럼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자아는 단지 환영일 뿐이고 추론일 뿐이다. 좌뇌는 나와 남들이 범주적으로 다르다는 패턴을 감지하고, 그렇게 관찰한 것을 기억, 선호도, 그리고 몸과 마음을 운전하는 ‘조종사’의 관점과 합쳐 자아라고 인식한다.각자의 자아에 대한 정의는 나와 타인의 차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아닌 것’ 없이 ‘나’는 있을 수 없다. 즉, 나의 자아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나는 아버지, 교사 등으로 나를 정의하며 타인과 구별한다.한편, 우뇌는 태극에서 음이고 좌뇌는 양이다. 즉, 지각된 어떤 것을 좌뇌는 범주적으로 접근하는 반면, 우뇌는 좀 더 전체적으로 넓은 시야로 다가간다. 좌뇌는 대상에 대해 정밀하게 초점을 맞추는 반면, 우뇌는 넓게 빠짐없이 큰 그림에 주의를 둔다.좌뇌가 국소적 요소에 집중한다면 우뇌는 그 요소들이 창조되는 전체를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좌뇌는 시간을 ‘이전’과 ‘이후’로 나누지만 우뇌는 오로지 당면한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한다. 좌측은 언어 중추이고 우측은 공간 중추이다.언어는 범주적이다. 읽을 때나 말할 때나 당신은 한 번에 한 단어씩 좁은 초점으로 본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싼 공간은 단번에 전체를 처리하며 개별적 부분이 아닌 그 모든 것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 있는 그대로 감지한다.에고는 좌뇌가 만들어낸 구성물이기 때문에 우뇌 의식을 경험할 수 없다. 우뇌 의식은 좌뇌를 통해서가 아니라 요가, 마음챙김 수행, 무아지경, 몰입 등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뇌 의식의 핵심은 쓸데없는 생각 말고 그냥 하기로 표현된다.예를 들어,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우뇌의 현실에선 승자도 패자도 없고 팀도 대회도 없다. 운동장에 보이는 것은 오직 존재함 그리고 행함뿐이다. 존재함과 행함,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 그 외 다른 건 전부 이야기와 해석일 뿐이다.
    독후감/창작| 2026.02.15| 5페이지| 2,500원| 조회(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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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로라 후앙의 <직감의 힘>, 직감이 곧 자신이다.
    로라 후앙의 <직감의 힘>, 직감이 곧 자신이다.
    로라 후앙의 『직감의 힘』, 직감이 곧 자신이다.1. 책 및 지은이 소개?지은이 로라 후앙?옮긴이 김미정?출판사 21세기북스?로라 후앙-인간의의사결정과 직감의 작동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온 세계적 권위자-하버드 경영대학원과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강의-현재 노스이스턴대학교 경영대학 석좌교수로 재직 중-직감과 인간의 의사결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연구 선도2. 독후감가. 직감우리는 생활을 하면서 늘 크고 작은 선택에 직면한다. 선택을 할 때는 나름대로 자신만의 데이터를 사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데이터를 보고도 선택이 쉽지 않을 경우 우리는 대체로 그때그때의 감각에 의존한다. 이를 테면 자신만의 직감을 믿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직감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도 하고, 제자리에서 주춤하게도 한다. 결국 시간이 그것을 해결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기업 경영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CEO라면 이야기를 달라진다.기업은 한 순간도 의사결정을 지체할 수 없다. 그것은 곧 기업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떻든 의사결정은 이루어질 것이고, 그 방법은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천차만별이며 개별적이다.그런데 로라 후앙은 이 경우 직관을 바탕으로 한 직감에 의존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직감은 자기만의 확신을 배경으로 하며, 누구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직감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할 수도 없다고 한다.그것은 오로지 자신만의 비밀 병기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직감은 매우 비과학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로라 후앙은 이런 견해에 반박하며, 직감은 추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직감은 새로운 자극에 대한 순간적 판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감에 이르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극에 관한 사전 지식을 활용할 직관이 있게 된다. 따라서 직감은 우리가 개발하여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저자는 이 책을 “사람들이 직관을 마스터하고 의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실천 가능한 모델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고,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즉, 직감은 의도적인 연습을 통해 점점 더 신뢰할 수 있는 신호를 만들어내도록 발달시킬 수 있고, 이러한 신호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서 직관적인 결정에 따라 자신감 있게 행동하며 정말로 중요한 일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이 책은 먼저, 직관과 직감이 무엇인지,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 직감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한다. 그런 다음 직감의 작동 방식, 행동의 영역과 그 이후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그저 일상으로 겪는 직감이라는 용어에 대해 이처럼 깊이 있는 분석이 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책의 내용을 충분히 습득하고 의도적인 연습으로 사람들이 직관을 마스터하고 의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삶은 보다 활기차게 변할 것임을 믿어도 좋을 것 같다.나. 직관과 직감이 책은 직관과 직감을 구분한다. 직관은 비순차적인 정보 처리 과정으로, 정보를 접하고, 외부 데이터와 개인의 지식 및 경험의 상호작용을 통해 어떤 것에 대해 판단하거나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짧은 혹은 긴 처리 과정이다.반면, 직감은 불현 듯 느끼는 명료함이다. 직감은 내면 깊은 곳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적인 통찰로 대개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강한 확신과 믿음,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 직관은 과정이고, 그 결과로써 우리가 직감으로 인식하는 한순간의 명료함이 나타난다.즉, 직관은 과정이고, 직감은 결과다. 우리는 직감을 순간적인 느낌으로 경험한다. 하지만 직감은 숙성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며, 명료하게 인식되는 순간으로 이어지기까지 직관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직감은 우리의 지식과 관찰 내용, 배경, 기억, 진실, 관계, 감정, 정서지능, 실망, 상실, 트라우마 등 살아온 모든 경험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직감하는 돌파구는 우리만의 고유한 것이며, 개인적이며, 독특하기 때문에, 설명할 수도 없고 전달할 수도 없다.다. 직감의 형태살면서 우리가 결정하고 행동할 때, 가장 풍부한 자원이 되는 직감은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아하!’의 순간(유레카), ‘어허’의 순간(스파이디 센스), ‘와!’의 순간(졸트)이 그것이다. 각각은 특정 감각을 동반하며, 연결(유레카), 충돌(스파이디 센스), 대체(졸트) 신호를 보낸다.유레카의 순간은 확인의 순간으로, 뇌가 이전까지는 무관해 보였던 사전 지식을 자극과 연결시켜 갑자기 통찰이나 깨달음을 얻을 때 찾아온다. 마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진 듯 새로운 아이디어나 해결책이 떠오른다.뇌가 패턴을 인식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갑자기 명료해지고, 이해가 되고, 흥분과 만족감이 느껴진다면 이는 유레카의 순간을 경함하고 있다는 확실한 징후다. 아르키메데스는 ‘유레카!’를 외치며 벌거벗은 채로 달려갔다.스파이디 센스의 순간은 자극이 사전 지식과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뇌는 과거의 경험이나 단서, 무의식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자극의 잠재적 위험과 부정적 결과를 인식한다. 스파이디 센서를 촉발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불편함, 불안, 경계심을 경험한다.졸트는 자극이 사전 지식을 뒤엎을 때 일어난다. 지금껏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뇌가 기존 지식을 와해시키는 새로운 정보에 대응해 인지 틀을 변화시키고 적응시킬 때 나온다.과감한 조치는 이러한 세 가지 형태 중 어느 하나의 직감에서 나온다. 직감은 직관 과정의 최종 결론인 만큼, 직감 이후에 이어져야 할 과정도 있다. 즉, 과감한 조치와 함께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밀고 나가는 행동이 이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집중 추상화이다.집중 추상화는 정보를 가장 관련성 높은 특정 부분에만 집중함으로써 복잡성이나 불확실성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집중 추상화는 직감이 알려준 돌파구(생각)와 과감한 조치(행동)을 연결시키는 메커니즘이다.집중 추상화는 정신 에너지와 역량을 특정 문제나 목표에 집중시켜서 주변적이고 무관한 정보 및 방해 요소들을 걸러낼 수 있게 하고, 심성모형, 스키마, 기억, 경험을 가져와 행동할 수 있게 한다. 말하자면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라. 직감 단련하기직감은 나침반과 같아서, 우리가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계속 향상시키고, 조정하고 조절하기만 하면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수동적인 직감을 능동적인 직감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때, 우리의 직감은 초능력이 된다.능동적 직감은 의사결정이나 행동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직관을 활용하고 성찰하는 것을 뜻한다. 자기 인식을 넘어서서 의도적으로 사전 지식에 귀를 기울여 그것이 휴면 상태로 묻혀 있지 않고 특정 자극에 반응하여 활성화되도록 할 수 있다.자신이 성향이 수동성과 능동성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알면, 직관과 직감을 사용할 때 더 의도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낯선 도시에서 지리적 특성을 눈여겨보며 길을 찾듯이, 직감의 개인적,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측면을 활용해 직감을 활성화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그리고 자신의 기본적인 기질과 특성을 자각할 때 개인화된 직감이 연마된다. 자신이 주로 내보이는 특징과 특성을 이해했다면, 이제 스스로를 어떻게 묘사할지 결정할 차례이다. 이른바 직관을 마스터하게 된다.
    독후감/창작| 2026.02.12| 5페이지| 2,500원| 조회(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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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이남훈의 <글쓰기를 철학하다>, 글쓰기에 철학을 담으려면
    이남훈의 <글쓰기를 철학하다>, 글쓰기에 철학을 담으려면
    이남훈의 『글쓰기를 철학하다』, 글쓰기에 철학을 담으려면1. 책 및 지은이 소개?지은이 이남훈?출판사 지음미디어?이남훈-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졸업-전업 작가-대표적 저서 : 좋은 사람 되려다 쉬운 사람 되지 마라(러시아, 베트남, 태국, 대만 출판)2. 독후감가. 깡다구 있게 쓰기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조금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그건 언제나 욕심뿐이었다. 써놓고 보면 늘 글은 옹졸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기도 하고, 형편없는 단어의 나열 같기도 해서 민항하기 이를 데 없다.사실 전문 작가나 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시작은 되었더라도 그 다음 이어지는 글이 하나의 맥락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어렵게 쓴 글이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면 그것은 글을 읽는 사람에 대한 심한 결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몇 번을 고쳐 써도 못난 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책은 그 이유로 ‘기준’이 없기 때문이며, 그것은 자기만의 철학의 부재 때문이라고 한다.글쓰기에 철학이라는 말이 불쑥 끼어드는 것이 조금 생소하기도 하지만 이 책 의 저자는 글쓰기 철학이라는 것을 어렵게 여길 필요는 없다고 다독인다. 글쓰기 자체에 대해 생각하고, 정의하고, 의미를 따지고, 실천의 방법을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 책은 전문 작가의 자기 고백 같은 글이다. 그가 지금까지 글쓰기와 관련하여 받은 영감, 글쓰기에 대한 소회, 글쓰기를 위한 치열한 자기 검열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진술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글쓰기 방법이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마음가짐을 일깨우고 있다.이 책은 작가를 희망하는 예비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전업 작가의 글쓰기 강의다. 그는 시종일관 글쓰기는 수미일관해야 하며, 그러자면 글 속에 자기만의 철학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작가뿐만 아니라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책을 읽다보니 나의 허술할 글쓰기가 속속 들어난다. 우선은 생각이 너무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깊이가 없고, 깊이가 없으니 내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 책의 논리에 따르면 나름의 철학이 부재했다는 말이 된다.그러다보니 갑자기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멍한데, 저자가 ‘깡다구’ 있게 쓰라고 일갈한다. 자기 주관, 즉 철학을 뚜렷이 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잡문 같은 글이기는 하지만 그 모든 글들이 하나같이 깡다구 있게 쓴 글이 아니던가 말이다.그래서 일단은 깡다구 있게 쓰기를 나름의 ‘기준’으로 일관성 있게 쓰기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전들의 글들 중 상당수의 글들이 갈지자 행보를 한 것 같기도 하다. 그것들을 바로 잡는 것이 바로 글쓰기를 철학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나. 글쓰기요즈음은 인공지능이 단연 대세다. 글쓰기에서도 이는 예외일 수 없다. 최근에는 전문 번역가와 인공지능의 번역 대결이 있었다. 평가자들 대부분이 인공지능의 번역이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이미 인공지능은 우리의 궁금한 점에 대해 탁월한 글 솜씨를 동원해 답변을 한다.인공지능으로 쓴 소설이나 저서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공지능이 인간의 글쓰기를 위협하는 것을 넘어 인간을 소외시킬 것이란 우려도 낳게 한다. 저자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위기를 느끼기보다 인공지능을 충분히 활용하자는 데 방점을 둔다.말하자면 인공지능 덕분에 글쓰기는 더욱 자유롭고 수준 높은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저자는 인공지능의 글쓰기가 발전을 하더라도 인간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어디까지나 창작이기 때문이다.창작은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고, 창조는 기존의 것에 대한 파괴를 전제로 한다. 파괴는 그 동안의 나의 생각과 사고방식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 동안은 그런 생각조차 없었으므로, 매일의 글들이 그저 고만고만하고, 밋밋한 것이었을 것이다.그렇게 보면 글쓰기가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행위’가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러한 글쓰기는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행위이다. 그것도 읽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의미 있는 해석을 취사선택하는 일이다.그리고 그 해석은 단일해야 하며, 완벽한 진리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일한 해석은 글을 일목요연하게 하고 완벽한 진리는 거짓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공고해지면 자칫 타성에 빠지고 그것이 또 다른 부셔버려야 할 틀이 될 수 있을 것임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그런 점에서 저자는 글은 가슴으로 쓰는 것임을 강조한다. 글에는 나의 내면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내면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고 그런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성숙한 인격을 이미 갖춘 후 글을 쓴다기보다 글을 쓰면서 끊임없이 성숙한 인격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글쓰기는 자신을 훈련하는 과정이며, 그 훈련의 결과가 글에 고스란히 투영되는 것이다.다. 작가관저자의 작가관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자”라는 것으로 명료하다. 무엇을 묻는가에 따라 그 대답이 다양해질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 점에서 글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글은 누군가에게는 친절한 안내자이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그런가 하면 또 누군가에게는 조선 시대의 상소문처럼 가장 강력한 폭로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는 늘 세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주도면밀하게 살핀다. 그렇기에 작가가 가는 길은 우리가 보기에 늘 낯설지만 흥미로운 법이다.결국 그 낯섦은 마주하는 상황이나 타인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성장의 철학”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들의 글에 대한 평가는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독후감/창작| 2026.02.08| 4페이지| 2,500원| 조회(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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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류윈하오의 <AI 다음 물결>, 인공지능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류윈하오의 <AI 다음 물결>, 인공지능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류윈하오의 『AI 다음 물결』, 인공지능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1. 책 및 지은이 소개?지은이 류윈하오?옮긴이 홍민경?감 수 박종성?출판사 알토북스?류윈하오-치오하대학교 자동화학과에서 공학 학사-칭화대학교 소프트웨어대학 학장 역임-미시간주립대학교 특임 교수로 재직-칭화대학교 글로벌혁신대학 학장2. 독후감가. 인공지능인공지능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적 바둑 대결 덕분이었다. 그 후로 챗GPT가 출현하면서 마침내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상어가 되었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고 있다.정보의 시대에서 벗어나 인공지능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인공지능이 장착되지 않은 전자제품이 없을 정도로 우리 삶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과 흡사한 몸을 가진 휴머노이드까지 발전하고 있다.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보니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우리 모두가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발전 속도로 보면 가까운 미래 예측마저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인공지능의 출현은 튜링이라는 걸출한 과학자에 의해 일어난 사고의 전환이 발판이 되었다. 그 중 하나가 “기계가 사고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대한 자문자답했다. 즉, 모방 게임을 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튜링 테스트’다.튜링은 만약 질문자가 기계에 속아서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지 못하면, 이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가진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인공지능 용어는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이다.오늘날 인공지능의 발전 경로는 기호주의, 행동주의, 연결주의의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기호주의는 컴퓨터가 기호 연산을 통해 인간의 ‘지능’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도록 하는 논리적 추론에 기반한 방법으로 초기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행동주의는 진화주의 혹은 사이버네틱스 학파라고도 불리는데, 주로 사이버네틱스 및 감지-행동 제어 시스템에 주목한다. 연결주의는 신경망과 뉴런 간의 연결 메커니즘 및 학습 알고리즘에 의존한다. 오늘날 각광을 받고 있는 딥러닝이 바로 연결주의의 산물이다.이 책은 먼저 인공지능 사조의 흐름을 따라가며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에 관한 연구와 고찰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인공지능이 체화되지 않은 지능에서 출발해 어떻게 딥러닝, 대규모 언어 모델, 그리고 최종적으로 체화된 지능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설명한다.그런 다음, 기술의 관점에서 출발해 기계가 어떻게 모방 게임을 통해 체화된 지능을 실현하는지 살피고 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이 어떤 형태로 변화해 것인지 인공지능의 미래는 어떻게 변해갈지를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이 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는 인공지능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보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을 넘어서 빠르게 변호하는 그런 시대 흐름을 적절히 활용하여 스스로가 낙오되지 않도록 하는 발판으로도 삼을 수 있을 듯싶다.나. 인공지능의 발달기호주의 학파는 논리적 추론과 알고리즘 작업을 기반으로 하고, 물리적 기호 체계 가설과 직관적 추론 탐색 원칙에 근거해 지능을 분석한다. 이 학파는 지능의 심리와 논리적 구조 즉 사고 능력이 추상 및 계산적 영역에 관심이 있다.연결주의 학파는 생체 모방학의 방법을 채택해 생물체 대뇌의 구조를 통해 지능의 비밀을 탐색하는 데 주력한다. 행동주의 학파는 ‘감지-행동‘ 모델을 통해 환경 피드백과 지능적 행동 사이의 직접적 인과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지능의 본질을 밝힌다.이 학파는 지능의 생리 혹은 논리적 구조에 관심을 두기보다 지능의 행동적 표현에 주목한다. 이 학파는 지능과 인지가 대뇌의 기능과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신체 구조와 환경의 상호작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따라서 지능을 구체적이고 체화된 존재로 보고, 그것이 환경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확립되고, 추상적 사고 속에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체화된 지능‘의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인공지능의 발전은 급격해졌다.컴퓨터의 체스 프로그램은 검색 알고리즘에 의존했다. 그러나 바둑은 이러한 검색 알고리즘으로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러나 곧 알파고가 그러한 통념을 깨버리고 바둑 최고수를 이겼다. 그 비밀은 ’이미지 분류‘에 있었다.이미지 분류란 하나의 이미지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초등학교 1학년의 물체의 분류와 같은 방식이다. 유사한 것끼리 분류를 짓다보면 결국 최적의 것 하나가 남게 되는 방식이다. 이미지 분류 덕분에 인공지능은 본격적인 딥러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딥러닝으로 인해 마침내 ’지각형 지능‘이 등장하게 되었다. 최근에 오픈 AI는 딥러닝을 이용한 대형 언어 모델인 ’GPT-3‘를 공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GPT-3는 놀라운 대화능력과 함께 언어 이해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세계적인 인공지능열풍을 불러일으켰다.이어서 동영상 생성 모델도 개발되었으며, 마침내 인공지능은 자신의 몸을 갖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현재까지는 인공지능은 동물 모양의 몸에 탑재되었지만 최근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몸에 탑재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휴머노이드이다.다. 인지하고 행동하기우리는 세상을 오감을 통해 감지한 것을 통해 세상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를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한 걸음씩 진화해간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따라 인공지능의 발전 과정을 추적하고 더러는 그 연장선에서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인간이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감지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을 통해 기계도 오감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이러한 연구는 사물인터넷을 통해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지고 실용화되고 있으며, 현재는 자율주행차가 시범 운행을 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이처럼 점차 인간의 손을 배제한 채 인공지능만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움직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한편, 우리는 마주하는 세상에 대해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방식을 취한다. 인공지능도 발전하면서 인간과 비슷한 인지적 유연성을 보게 되었다. 이처럼 기계가 외부 세계를 인지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은 현대 인공지능 연구의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체화된 지능의 발전으로 기계 사이의 상호작용은 갈수록 더 긴밀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혁신적인 과학 지식을 창출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과 기계가 협력해 만물의 이치를 통찰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나아가 기계도 사람처럼 유연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아직은 컴퓨터와 인간 두뇌는 기반 구조부터 다르다는 점에서 기계가 결정을 내릴 때 ’의사결정모델‘의 지원이 필요하다. 모방 학습, 강화 학습은 의사결정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방법들이다.자율주행 자동차는 모방 학습과 반복학습을 통해 길을 찾아가는 기능을 향상시켜간다. 즉 돌발 상황에서는 운전자가 운전을 하는데 이 경우 인공지능은 이를 모방 학습을 통해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유사한 상황이 나타날 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여 운전하는 것이다.강화학습의 경우 알파고에서 잘 나타난다. 마치 학생이 시험공부 하듯이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한다. 바둑을 스스로 학습하여 기량을 향상시켜가고 있다. 챗GPT는 인간의 질문에 수많은 데이터를 활용하여 답을 찾아간다.이처럼 강화학습은 이처럼 인간의 탐구 정신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구현된 것이다. 경우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학습함으로써 체화하고 점차적으로 대답이 정교해지는 것이다. 체화는 반복 훈련과 경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감지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것 외에 기계의 ’지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다른 길 중 하나가 ’연결‘이다. 인터넷과 사물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연결은 이미 사람들의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었고, 이제 네트워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연결은 인지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로운 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울러 연결은 지능 분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지능의 집중은 인간에게 독보적인 지위를 부여했다. 이러한 현상이 인공지능에서도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정보 기술의 혁명이 일어나고, 특히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지능형 로봇이 탄생하고 인간을 돕기 시작했다. 이로 미루어 지능형 로봇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때가 머지않아 올 것이다. 아마도 그 다음은 도로가 운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예측한다.라. 인공지능의 진화기술 발전으로 체화된 에이전트는 ’실습 작업‘을 통해 학습과 진화를 지속하면서 현실 세계에서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점차 습득해왔다. 현재 체화된 에이전트는 마침내 물리적 세계에서 더 지능적이고, 유연한 행위를 보여주며 본격적인 ’노동자‘ 대열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독후감/창작| 2026.02.01| 5페이지| 2,500원| 조회(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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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당신의 말이 곧 당신의 수준이다>, 같은 말을 하는데도 서로 말이 엇갈린다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당신의 말이 곧 당신의 수준이다>, 같은 말을 하는데도 서로 말이 엇갈린다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당신의 말이 곧 당신의 수준이다』, 같은 말을 하는데도 서로 말이 엇갈린다면1. 책 및 지은이 소개?지은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엮은이 이근오?출판사 모티브?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20세기 철학의 방향을 바꾼 인물-언어와 세계, 사고의 관계를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사유한 철학자-대표 저작 : 논리철학논고, 철학적 탐구-부유한 가문 출신이었지만, 재산을 기부하고 교사와 노동자로 검소한 삶을 삶2. 독후감가. 명확한 언어“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때의 아는 것의 의미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모르는 것이고, 그 모르는 것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의 언어는 곧 나의 세계인 셈이다.그것을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리면,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는 것이다.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우리의 일상이 비추어 설명하고 있다. 철학서라고 하면 일단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지향하는 바가 아닌 모양이다.이 책은 나름 술술 읽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것은 순전히 역자의 역량 덕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철학을 언어를 대상으로 풀어냈다. 즉, 명확한 언어 사용이 세계를 보다 명료하게 한다고 보았다. 결국 세계는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한발 더 나아가 대화가 겉돌거나 이해 충돌이 생기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따르면 동일한 사실에 대해 서로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공통의 이해가 없다는 것이다.언어 속에는 상대방에 대한 따뜻한 배려도 있고, 명징한 논리도 있다. 세상이 하나의 언어에 동일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서로 다툴 일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요즈음 TV의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 상대방의 말에 대해서는 아예 귀를 닫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든 상대방을 꺾고 말겠다는 결기로 무장한 앵무새들 같다. 말은 스스로의 말을 돌아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말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것처럼 나의 언어를 바꾸면 세상이 그에 따라 달라진다.생각이 달라지면 새로운 것이 보이고, 말이 달라지면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다시 말해 언어가 우리를 틀에 가두기도 하고 시야를 넓히기도 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철학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나. 언어의 한계나아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 이상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경험하는 하나의 틀이다. 이 틀이 좁다면 삶은 한정적이고 답답할 것이다. 즉, 아는 단어가 적을수록 생각은 제한되고, 표현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그러므로 언어의 폭을 넓히는 일은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독서가 필요한 것이다. 말하자면 ‘배려’라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는 순간 타인을 다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반면, 욕설과 비난의 언어만 익숙해지면 분노와 적대감이 일상이 된다.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다. 이것이 언어가 지닌 힘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보는 “언어의 한계”는 단순한 어휘 부족만이 아니라, 생각의 틀, 인식의 폭, 상상력의 경계를 함께 포함한다.언어는 세계를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작으면 담을 수 있는 것이 제한되고, 그릇을 넓히면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도 넓어진다. 큰 뜻을 품고 있다면 그 꿈을 담아낼 만큼의 언어를 먼저 준비해야 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 깊이를 지탱해 줄 언어를 배워야 한다.언어가 세계를 담는 그릇이라면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물이 아니라 사실을 보라고 한다. 사과가 그저 있다는 자체로는 어떤 의미도 만들지 못한다.사과가 빨갛다는 사실, 사과가 맛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마찬가지고 멋진 차가 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차를 타고 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총체가 된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는 사태들로 분해된다”고 말한다. 사태는 일어나고 있는 개별적인 일들이다. 하나의 사건, 하나의 상황, 하나의 관계 이런 것들이 모여 세계를 구성한다는 뜻이다.지금 내가 책을 읽고 있다는 사태, 의자에 앉아 있다는 사태,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태 이 모든 사태들이 합쳐져서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도중에 책을 덮으면, 일어선다면, 커튼을 친다면 나의 세계 전체가 바뀌는 것이다.말하자면 이러한 사태들이 모여 나의 하루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사태들은 사소한 듯 작은 것 같아 보여도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불행하다면 그건 막연히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떤 사태인지 봐야 한다.행복도 마찬가지다. 그저 막연히 행복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사태,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사태, 건강하다는 사태 등 이런 구체적인 사태들이모여 행복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따라서 자신의 세계를 바꾸고 싶다면, 전체를 한 번에 바꾸려 하지 말고 하나하나의 사태를 돌아보고 바꾸도록 한다. 그것들을 조금씩 들여다보고 방향을 바꿔 가면 하루가 바뀌고, 하루가 모여 일 년이 바뀌고, 그 일 년이 미래를 만들게 된다.언어는 하나의 단문이 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말하자면 원자적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가 타인의 언어와 사슬을 이루면서 사회적 관계를 만든다. 이때 사슬이 어떤 형태를 띠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사실을 만들어낸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다.아무리 좋은 의미라 하더라도 서로 잘 맞물려 있지 않다면 삶은 어지럽게 된다. 그러나 적은 것이라도 제대로 맞물리면 그것은 견고한 사슬이 되어 우리를 지탱할 것이다. 그러니 명심할 것은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들을 제대로 연결하는 것이다.다. 그림 이론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며, 그 사실들은 대상들이 결합한 사태들로 이루어졌으며, 그것들을 내가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따 내용을 말이나 기호로 표현한 것이다. 즉, 우리의 생각과 말은 명제로써 세상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어떤 명제로 내 세계에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이처럼 비트겐슈타인의 핵심 아이디어는 ‘그림 이론’이다. 언어는 세계의 그림이다. ”고양이가 매트 위에 있다“는 문장이 의미를 가지려면, 실제 세계에 고양이가 있고, 매트가 있고, 그 둘 사이에 ‘위에 있음’이라는 관계가 성립해야 한다.언어의 논리적 구조는 세계의 구조를 반영한다. 즉 언어의 구조는 마치 지도가 실제 지형과 대응하듯이 세계의 구조와 대응한다. 그렇다면 ‘신은 존재한다’, ‘선은 악보다 우월하다’ 같은 문장들은 세계의 어떤 사실과 대응하는지 말할 수 없으며, 다만 보여질 수만 있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윤리, 미학, 형이상학에 관한 명제들은 어떤 사실도 그려내지 않는다. 따라서 ’신은 존재 한다‘ ’선은 악보다 우월하다‘ 같은 문장들은 엄밀히 말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다.이 말은 경멸적인 의미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몰을 보면 누구나 그 장엄함에 탄성을 지른다. 그것이 구름 때문인지, 색깔 때문인지, 빛 때문인지 말할수록 오히려 아름다움에서 멀어질 뿐이다. 차라리 침묵하고 함께 보는 것이 낫다.한편, 나는 ‘운동을 할 수 있어’와 ‘나는 운동을 못해’라는 말은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린다. 이처럼 내가 뱉는 말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그리고 그 그림은 내 기억 속에 저장된다. 그 마이 더 구체적이고 확실할수록 그것에 가까운 행동과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즉, 긍정적인 말은 희망찬 미래를 그릴 것이고, 부정적인 말은 어두운 미래를 그릴 것이다. 그러니 늘 부정적이고, 어두운 그림만 그렸다면 오늘부터라도 아름답고 멋진 그림을 보도록 한다. 오늘 내가 그리는 그림이 바로 나의 미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명제가 현실의 그림이라면, 그림이 현실을 묘사할 수 있같은 형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문장 속 단어들의 배열과 세계 속 대상들의 관계 구조와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문장이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표현이 힘을 가지려면 표현과 현실 사이에 반드시 공유된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비트겐슈타인 주장의 핵심이다.라. 언어 게임비트겐슈타인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이 ’언어게임‘이다. 이 개념을 통해 우리는 생활 속에서 흔히 나타나는 오해의 단면들을 볼 수 있다. 대화하면서 오해가 생겼다면 두 사람은 같은 단어, 다른 게임을 했기 때문이다.즉, 같은 말이라도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 이래로 철학자들은 ’단어의 의미는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으로 보았다. ’고양이‘의 의미는 실제 고양이다. ’선‘의 의미는 선의 이데아다.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그게 아니라, 의미는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물 좀 주세요‘라는 문장을 예로 들면, 같은 말이지만 하는 일은 다음과 같이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로 사용이 가능하다.-식당에서는 손님이 웨이터에게 물을 가져달라는 요청이다.-사막에서는 탈수 상태의 사람이 구급대원에게 생존의 절박함을 호소하는 것이다.-수업 중에는 학생이 선생님에게 목마름을 알리는 신호다.-연극 무대에서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하는 연기의 일부이다.-한국어 수업 중에는 외국인 학생의 발음 연습 중이다.그러므로 한 문장으로는 알기 어려우므로 전체 문맥을 봐야 한다. 그런데도 이를 상대방을 공격을 위한 무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흔한 일이다. 자기들 유리한 부분만 편집을 하는 것이다. 언어게임은 무한히 많다. 그리고 새로운 게임이 계속 생겨난다.오늘날은 이메일 쓰기 게임, SNS 게시하기 게임, 이모티콘 사용하기 게임을 발명했다. 중요한 것은 게임마다 규칙이 다르다는 것이다. 법정에서 쓰는 언어와 친구와 수다에서 쓰는 언어는 같은 단어를 써도 규칙이 다르다. 언어의 유희는 이를 패러디한 것이라 할 수 있다.비트겐슈타인은 대부분의 철학적 문
    독후감/창작| 2026.01.31| 6페이지| 2,500원| 조회(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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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6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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