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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독서보고서 ~ 1-4장 요약 및 비평
    [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독서보고서 ~ 1-4장 요약 및 비평
    『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독서 보고서1. 1-5장까지의 내용 요약리차드 보컴은 그의 저서 『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서 초기 기독교의 고기독론이 점진적인 발전 과정을 통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 초창기부터 최고기독론이 존재했음을 주장한다. 그는 그의 논증을 통해 예수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신적 정체성 안에 포함시킴으로써 유대교의 유일신론 안에서 기독론을 해석한다. 이를 보컴은 “신적 정체성 기독론”이라고 칭한다.제1장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는 그의 주장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비교적 간결하게 담음으로써 포괄적 이해를 돕는다. 그는 유대교 유일신론과 신약의 기독론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데, 유대인들의 유일신 사상을 들며 어떻게 이스라엘이 하나님 한 분 외에 예수를 “경배”할 수 있었는지 의문을 던진다. 그는 오직 야웨만을 섬기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음과 경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예수가 하나님의 신적 정체성 안에 포함됨에 대한 강력한 근거가 된다고 말한다. 학계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인데, 제2성전기 유대교 유일신론에 관한 다양한 견해는 예수가 어떻게 신으로 여겨지게 되었는지, 또는 그 의미는 무엇인지와 밀접하게 닿아있다. 보컴은 그가 이 문제를 접근하는 방법은 기존의 견해와 상당히 다른 것임을 밝힌다. 그는 제2성전기 유대교 유일신론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엄격했다”고 말하며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유일성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고 다른 모든 실재와 하나님을 구분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제2이사야 및 신약의 세 본문을 주석하며 이로써 유대교에서 하나님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신약에서 예수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입증된다고 밝힌다. 또한 그는 이러한 주석적 작업과 함께 여러 유대교 문헌을 면밀히 살핀 결과, 유대교(성서가 쓰여진 시기까지의 모든 유대교)에서 하나님의 독특한 정체성 안에 예수를 포함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1장 이후로 전개되는 각 장의 논의들은 그의 견해에 근거를 제공한다. 먼저 제2장 “성서신학과 유일신론의 문제들”에서 보컴은 유일신론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 및 구약과 신약을 다루며 그가 유일신론에 접근하는 방식을 분명히 한다. 여기서 보컴은 “동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성서 텍스트 안에서 “유일신론을 추구하는 동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비록 히브리 정경 전체가 완전히 유일신론적인 문헌은 아닐지라도 유일신론을 강하게 지지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는 샌더스의 글로부터 확장된 주장을 펼치는데, “유일신론을 추구하는” 것은 성서가 쓰인 각 시기마다 “동력”으로 작용하여 당시에 존재했던 다신론으로부터 파생된 표현 양식이 유일신론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컴은 첫째 일부 학자들이 비유일신론적 근거로 삼는 구약의 자료와 신약의 기독론적을 연결 짓는 것과 둘째 진화론적, 발전적 과정으로 처리되는 기독론적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노력한다.제3장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초기 유대교 유일신론의 본질”에서 다루고 있는 ‘지극히 높으신’이라는 칭호는 보컴의 주장에 따르면 초기 유대교 유일신론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칭호이다. 그는 이 칭호를 상세하게 분석한다. 성서(특히 신명기 32:8-9)로부터 유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헌을 살피고 학자들의 주장을 다룬 보컴은 결론적으로 “배타적” 유일신론과 “이분법적” 관점을 지지하며 하나님을 다른 실재들과 절대적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접근이 유대교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던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칭호로써 나타나는 하나님은 홀로 역사와 민족들에게 주권을 행사하시는 만물의 주권자이자 유일하신 한 분이며 보컴은 이런 인식 속에서 결코 반신적 중간적 존재들로부터 기독론이 발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제4장 “초기 기독교에 나타난 예수경배”에서는 승귀하신 예수에 대한 제의적 경배가 기독교 발전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났는지를 다룬다. 보컴은 예수경배를 연구하는 것은 기독론의 발전을 살피는 데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경배가 분명히 유대교적 배경 하에서 진행되었다 믿고, 헬레니즘적 배경에서 기독론이 발전할 수 없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비록 예수경배의 기원을 밝히는 시도는 현재 주어진 자료 내에서만 가능하지만 보컴은 그 한계 안에서 예수경배를 면밀히 살핀다. 그는 당시에 예수에게 드려진 기도에서 예수가 종교적 헌신의 대상이 되었음을 확인하고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표현이 예수에게 돌려지는 것을 신약 성서에서 찾아낸다. 이 밖에도 ‘찬송’과 ‘송영’의 두 유형의 예수경배를 살피는데, 이로써 예수경배가 초기 기독교 내에서 상당히 중심을 이루고 있었으며, 정규적이었음을 확증한다.제5장 “하나님의 보좌와 예수경배”에서 보컴은 먼저 하나님의 유일성과 하나님에 대한 배타적 경배 간의 상호연관성을 다루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의 독특한 정체성에 대한 그의 의견을 개진한다. 그는 유대교 전통의 맥락에서 야웨의 독특한 정체서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묻는 데에 그 해답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질문으로부터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기에 홀로 경배 받아야하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졌다 답을 내린다. 보컴은 유대교 문헌을 통해 유일신론을 확증하는 작업을 마치고 예수를 하나님의 신적 정체성 안에 포함시켜야하는 근거를 다시 한 번 마련한다.2. 비 평보컴이 그의 책에서 진행하고 있는, 예수를 하나님의 신적 정체성 안에 포함시키는 작업은 많은 부분을 전제로 시작하고 있으나 성공적으로, 설득력 있게 진행되는 듯 보인다. 예수가 하나님의 신적 정체성 안에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설명하는 필요충분적 조건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보컴은 예수의 정체를 밝히는 데에 집중한 것은 아니고 단지 기독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견해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보컴의 주장에서 기독론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다는 것이다.유대교 유일신론과 예수경배를 유기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최고 기독론이 처음부터 존재했다는 주장은 논리적인 허점이 있는 것 같다. 보컴이 예수를 하나님의 신성 안에 포함시킴으로써 연결을 꾀하기 때문이다(그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정체성에 예수를 포함시켰다 또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그의 신성 안에 포함시키셨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를 하나님의 신성 안에 포함시킬 때에 공들여 논리를 쌓아야 하는 부분은 예수의 인성이 어떻게 포함될 수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여기에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고 본다. 나는 보컴이 예수의 성육신을 예수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자기 자신을 “비하”함으로써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을 보여주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그가 예수의 성육신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예수의 성육신과 예수의 인성이 희생적 사랑의 측면만으로 충분히 다루어질 수 있는 개념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보컴이 다루지 않는 예수의 인성에 관한 많은 부분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쉐마와 십계명을 근거로 제의적 경배가 예수께 드려진 것으로 인해 예수를 하나님의 신성 안에 포함시키고 기독론이 처음부터 “최고 기독론”으로 존재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독후감/창작| 2023.03.23| 3페이지| 1,000원| 조회(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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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누가복음의 선지자 기독론 ~ 한스 콘첼만의 주장에 반하여
    누가복음의 선지자 기독론 ~ 한스 콘첼만의 주장에 반하여
    누가의 선지자 기독론에 대한 연구김 **< 목 차 >Ⅰ. 서론Ⅱ. 세례 요한과 예수 비교1. 유아기 내러티브2. 율법과 선지자의 때의 마침Ⅲ. 예수에게 적용된 선지자 칭호1. 고향에서 배척받는 선지자2. 예루살렘에서 배척받는 선지자Ⅳ. 결론참고 문헌Ⅰ. 서론본 소론의 목적은 한스 콘첼만(H. Conzelmann)의 영향 아래서 벗어나 누가의 기독론적 칭호 사용 방법을 살핌으로써 본래 누가가 그의 복음서에서 의도했던 선지자로서 예수가 지녔던 기독론적 정체를 규명하는 데 있다.콘첼만의 누가-행전에 관한 연구는 발표된 이후로 누가신학 연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콘첼만은 예수의 지상 사역을 중간으로하여 역사를 세 부분으로 나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지나치게 ‘재림 지연’의 관점에 치우친 것으로, 편집비평적인 그의 접근은 누가복음의 내러티브를 단일한 이야기 구조로 이해하지 않는 약점을 보인다. 특히나 그는 누가복음 1, 2장을 연구에서 제외하였다. 누가 내러티브에서 누가만의 독특한 편집 방식이 사용되나 그것을 구원사의 3단계라는 틀에 맞춰 다시 편집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어지는 글에서 콘첼만이 구분점으로 삼고 있는 요한과 예수를 비교하고 예수의 지상 사역에서 나타난 선지자적 역할을 조사하고자 한다.Ⅱ. 세례 요한과 예수 비교1. 유아기 내러티브요한과 예수 비교를 위해 반드시 다루어야하는 본문은 유아기 내러티브(1:5-2:52)이다. 사실상 서론을 제외하면 누가복음의 첫 시작 부분으로 다른 복음서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누가만의 독특한 본문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본문에서 평행되는 구조를 통해 요한과 예수가 비교되고 있다. 누가는 복음서의 가장 첫머리에서 평행 구절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요한과 예수를 비교하여 이해하도록 의도하고 있다.1장 5절에서 2장 52절의 문학적 분위기에서 주된 특징은 요한과 예수의 이야기가 하나씩 차례를 바꾸며 등장하는 것이다,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평행은 탄생 예고 이야기(1:5-23, 26-38)와 탄생-할례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또한 유아기 내러티브에 앞선 서언과 유아기 내러티브를 살펴보면 양식이나 문법, 어휘에서 고전 헬라어의 문체를 띄고 있고 이는 탄생 예고와 예수의 유아 시절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가 칠십인역에 쓰여진 일종의 셈적 헬라어를 보여 주는 것과 비교된다.누가는 유대 지역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더 넓은 헬라 세계의 독자들에게 그의 글이 읽히길 원하였고, 그 중에는 세례 요한의 영향력 아래에 머물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누가가 그의 문헌을 집필할 당시, 세례 요한의 운동은 많은 지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행 13:24-25, 18:25, 19:1-4). 그 영향은 요단강 지역을 넘어 소아시아와 아가야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때문에 누가에게 있어서 세례 요한과 예수를 비교하여 예수의 정체를 분명히 보이는 것은 중요했다. 여러 학자들은 두 인물을 비교하여 신학적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 누가문헌의 목적 가운데 하나임을 분명히 인식한다.유아기 내러티브에서 예수에 관해 특기할만한 부분은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는 왕적 정체성을 입고 태어났지만 막상 지상 사역을 시작하고서 그 왕적 정체성이 감춰진다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받았으며(1:32),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린다. 또한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내 주의 어머니”라 칭하며 예수를 주라 간접적으로 부르고, 아기 예수와 시므온에 관한 기사에서 누가는 예수를 “주의 그리스도”라 말한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이야기에서 사라진 후에 예수를 묘사하는 방식은 이전과 차이가 있다. 누가의 이러한 접근이 콘첼만으로 하여 그의 누가복음 연구에서 1-2장을 제외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식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이는 첫째 앞서 밝혔던 바와 같이 누가의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다. 둘째 예수 당시에 유대 전역에 퍼져 있던 왕과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기대 때문일 것이다. 누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하에 참된 예수 사역이 무엇인지,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어떠한지 그의 복음서에과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등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요한은 하나님 나라에서 작은 자보다 작다(16:16). 누가복음 16장 16절의 평행 구절인 마태복음 11장 13절과 그 이어지는 구절에서 마태는 요한을 엘리야라고 언급한다(14절). 반면 누가복음에서는 이 구절이 빠져있다. 이는 누가가 엘리야의 이미지를 세례 요한과 예수 모두에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둘을 비교하는 누가의 의도 아래에서 예수는 요한과는 달리 죽은 자를 살리는 신적 권능을 행한다. 또한 변화산 기사에서 예수는 모세와 엘리야보다 더 큰 자로 그려진다.누가복음 전체에서 유대교 전승은 긍정적으로 차용되고 많은 기사들이 구약의 원형을 두고 있다. 누가복음에서 선지자의 역할 또한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누가는 선지자적 권능을 행하는 이들을 등장시키고 세례 요한과 예수 또한 선지자적 존재이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 이후로 율법과 선지자의 때를 마치고 더 이상 그 영향력 아래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당시에 널리 퍼져 있는 세례 요한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예수에게 편입하려는 의도가 읽힌다.무엇보다도 예수는 유아기 내러티브에서 보았듯이 성령을 부여하는 자로서,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준다.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정체를 인식하는 데에 성령은 매우 중요하다. 제자들은 세례 요한보다 더욱 큰 자로 나타나는데, 그들은 예수와 같이 성령의 권능으로 마귀를 물리친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다. 누가는 분명히 누가복음 안에서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왔음을 인식하였고 에드워즈에 따르면 누가는 누가복음을 쓸 때에 예수가 재림할 것임을 확신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일견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쓰이는 도구처럼 보인다. 앞서 말하였듯 예수의 왕적 정체성은 감춰진다. 예수의 지상 사역이 끝난 이후인 사도행전을 연구할 때 콘첼만과 그의 주장을 따르는 학자들은 성령이 임한 후 사도와 교회의 역할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티브에서 시므온의 신탁을 통해 예언되었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이어질 사역의 예언으로 작용하고 있다. 피츠마이어는 이 사건에 대해 나사렛에서의 사역 이전에 가버나움에서 사역이 있었으나(4:23) 의도적으로 전진 배치되고 있다고 본다. 그린(Green)은 이 사건에 대해 누가복음 내에서 등장하는 회당에서 선포된 말씀의 유일한 실례라는 의의를 부여하고 이 말씀을 회당에서 선포된 메시지의 전형으로 이해한다.예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찾아 읽고(17-19절) 회중들을 향해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선포한다(20-21절). 23-24절은 두 개의 격언을 포함하고 있는 예수의 설교 내용이다. 24절은 다음과 같다.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여기서 누가는 예수가 예수 자신을 선지자로 지칭하도록 한다. 그 후 누가는 24절을 이어받아 두 명의 선지자 이야기를 통해 예수의 예언자적 정체성을 거론한다. 앞 장에서 말하였던, 엘리야의 이미지가 예수에게 적용된 예이다. 엘리야(25-26절)에 이어 엘리사(27절), 두 명의 선지자가 지상 사역의 예로 등장한다. 놀랜드(Nolland)는 25-27절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규명한다.“(1) 선지자들이 배척당한 예들을 보여주는 것, (2) 선지자를 배척하면 그 결과로 다른 이들이 선지자의 사역의 유익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예수는 한 측면, 즉 배척이라는 측면에서 선지자와 같이 취급되었으니 또 다른 측면, 즉 그의 사역을 통하여 외인들에게 유익을 준다는 측면에서도 선지자와 같이 행할 것임을 보여 주는 것.”2장 30-34절에 나타난 예언의 내용과 같이 예수는 만민의 구원이며, 이방을 비추는 빛이다. 또한 많은 사람을 흥하게 하고 비방을 받는다. 나사렛 회당 사역을 통해 시므온의 예언이 장차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 증거된다. 역설적이게도 유대인들의 배척으로 인해 외인들에게 기회가 생긴다. 만민 곧, 공동체의 약자인 과부와 약속의 수혜자가 아닌 이방인 상반된 방식으로 연결되고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 성취라는 선한 의도가, 헤롯은 생명을 해하려는 악한 의도가 있다. 예수는 그 선한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죽임을 당하지만 헤롯은 그의 악한 의도를 위해 살인을 꾀한다. 그린은 이 단락에서 네 차례 반복되는 동사 “원하다”(텔로)에 집중한다. 먼저 헤롯은 예수를 죽이기를 원한다. 반면 예수는 예루살렘의 백성을 회복하고 보호하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길 원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예수가 그렇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반복되는 진술은 각자의 목표를 뜻하고 서로 충돌을 이루며, 전체 복음서에서 이 짧은 장면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상기 시킨다.여기서 암시되는 사건이 무엇이든(대속적 죽음이든 아니든) 누가복음의 예수는 본문 속에서 선지자, 즉 예루살렘에서 죽게 될 자로 지칭된다. 예루살렘에서 행해야할 예수의 사명은 죽으리라고 예언된 선지자에 대한 강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비록 헤롯의 방해가 이야기 속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그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 성취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은 예루살렘에서 맞이할 죽음의 순간만 뜻하지 않으며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은 순간을 내포한다. 예수는 이스라엘에게 배척당하나 이로써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는, 더 넓은 영역과 더 많은 민족을 포함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룬다.Ⅳ. 결론이상에서는 특별히 선지자라는 칭호가 예수에게 두드러지게 사용된 본문을 다루었고 누가만의 구성이 나타난 본문을 확인하였다. 그 과정은 누가의 내러티브를 해치지 않고 내러티브 안에서 의미를 보다 분명히 밝히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누가복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사도행전에서 연속성을 갖고 계속되며 두 개의 누가문헌은 독특한 그의 신학과 예수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누가-행전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구원사의 단계를 구분한 시도는 누가가 자료를 사용하는 방식을 오해하고 과도한 종말 지연을 주장하게 만들었다. .
    인문/어학| 2023.03.23| 9페이지| 3,000원| 조회(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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