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주장법허진희악의 주장법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추리 소설이다.죽음을 노래하는 시인 백오교와 그를 사랑하는 미유. 그리고 쥰이 있다. 오교는 항상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 간절한 목소리만큼이나 살고 싶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오교를 엄청나게 따르는 미유. 오교는 이런 미유의 관심을 받아들이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미유가 보이는 자신의 게으른 무지와 순진한 오만을 무심코 보일 때 마다 당창 펜을 들고 침을 뱉듯 시를 갈기고 싶어했다.하지만, 이런 백오교가 자살을 하는 일이 발생하고 그의 소설에 감화되었던 사람들이 백오교를 따라 자살을 하는 일련의 사건이 발생한다.독초를 연구하는 학자 희비가 이 사건의 조사를 맞게 된다.희비는 국권 피탈 이후 기록된 적도 본 적도 없는 독초들이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일명 ‘멍울독’이라고 불리는 독초를 연구하는 학자였다.희비의 부모 역시 독을 연구하던 학자였는데, 때문에 희비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독의 영향을 받곤 했다. 희비의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독초의 효과를 느끼기 위해 소량씩 섭취했기 때문이다. 희비의 몸은 유난희 약했는데, 이 때문에 희비의 어머니는 희비의 몸이 자신의 탓인 것 마냥 죄스러워 했다.그리고 등장하는 차돌. 차돌은 이름만 보면 사내아이 같지만, 실은 여자 아이이다. 차돌은 힘이 드세고 키가 큰 사람으로,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만세 운동 때, 희비를 구한 이력이 있다. 희비는 이런 차돌을 눈여겨 보았고 차돌의 나이가 차자 자신의 비서로 고용했다.희비와 차돌은 오교의 죽음과 관련되어 가장 먼저 죽은 사내인 경성 최고 미남 미카엘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희비는 미카엘이 죽은 모습을 보고 그가 ‘자비초’라고 불리는 독초를 먹고 죽었다는 증거를 찾아낸다. 희비는 미카엘이 죽은 형장에서 백오교가 쓴 [악의 주장법]이라는 시집을 발견한다.가장 처음에 의심받은 인물은 돈을 밝히는 기자 ‘지등조’였다. 지등조는 돈을 밝히는 기자로 돈을 받고 기사를 써주기도 하고 어떤 일들을 비밀로 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등조 역시 희비와 같이, 독립 투사들을 위한 수금책 중의 한 사람으로 범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등장하는 다른 용의자들이 있지만, 그들 역시 지등조와 마찬가지로 주검이 되어 발견된다.이후,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는 바로 백오교를 동경했던 소년 사토 쥰 이었다.미유의 오빠로 등장하며 피를 보면 졸도하는 마음이 약한 소년이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까.사토 쥰은 자신과 어미를 버린 친아버지를, 그리고 허약한 자신을 전쟁터로 보내 사내로 만들겠다는 양아버지를 미워했다. 백오교를 너무도 동경한 나머지, 미카엘이 말하는 백오교와 미카엘 사이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미카엘을 죽일 결심을 한다. 그리고 미카엘을 죽이는데 목격자인 지등조와 은실 역시 죽였고, 자신의 범죄 행각이 드러날까봐 희비 역시 죽이려하지만 실패하고 붙잡히게 된다.하지만 사토 쥰은 힘있는 일본 가문의 양아들이라 경찰서에서 그날 풀려나게 된다.집으로 돌아간 사토 쥰은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 앞에서 범죄 사실을 자백한다. 백오교를 사랑했던 미유는 살고 싶어 죽음을 노래한 백오교에게 죽음을 선물한 쥰을 칼로 베어 죽인다.한편, 범인을 잡고 차돌과 지내면서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된 희비는 감정에서 비롯되는 신체의 통증들이 사라진 것을 느낀다. 통증이 괜찮다고 말하는 희비에게 차돌은 내일은 더 괜찮을 것이라며 크게 소리친다.[세상의 모든 환멸을 깨부술 듯한 예언이 가을밤을 흔들었다. 희비는 오직 그 예언에 기대어 해사한 시대로 향하고 싶었다.]죽음을 노래하는 시인 백오교. 시대를 환멸한 시인 백오교의 시집 [악의 주장법]은 죽음과 도피를 노래한다. 하지만 정말로 겉으로 보이는 것 처럼 죽음을 노래한 시였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본문의 첫장에 등장하는 ‘멍울독’이라는 시에서도 백오교는 멍울독을 보면 도망치라고 말한다. 일제에 핍박받으며 살았던 조선인들 중에서는 글이나 그림 같은 재주로 유명해진 조선인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일제에 대한 환멸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재능 덕분에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해서 마음 속으로 까지 일제를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나보다. 그들이 느꼈던 환멸을 백오교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소설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당시 조선인들이 일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느낄 수 있어 재밌었다.희비의 경우도 조선인 이지만, 학자로써 대접을 받고 지낸다. 일제는 그녀가 만주의 독립군들에게 자금을 모아 보내는 자금책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 보였다.이런 조선인들의 한. 독초에 서린 기운을 망국의 한으로 여긴 조선인들이 비탄하는 심정으로 ‘멍울독’이라고 부른 듣도 보도 못한 독초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나라를 빼앗고 가족을 빼앗아간 일제에게, 들판에 난 식용 식물을 실수라도 먹게 만들어서 죽게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아니면 들판에 자라난 식물들 중에 독초가 된 이 ‘멍울독’이라고 불리는 독초들은 얌전히 지냈던 조선인들이 들고 일어나 독립 운동을 하게 되는, 독립 운동가들을 상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범인을 잡고 나서 내일을 더 나아질 것이라는 차돌의 힘찬 예언이 마음에 들었다.이 소설은 추리 소설이라 더 나은 내일, 해방된 조국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차돌의 예언을 통해 한국이 일제에서 독립하고 차돌의 말처럼 더 나아진 내일을 맞이했기 때문이다.우울한 배경의 소설에서, 자신의 잘못된 생각으로 수많은 이를 죽인 살인 범죄 소설의 마지막이 희망찬 메세지로 끝맺음을 한 것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나사의 회전헨리 제임스 지음 / 블루스토브+ 옮김나사의 회전은 한 가정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낸 글이었다.가정교사로 일하는 여자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만난다.두 아이의 이름은 마일스와 플로라이다.읽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이 책의 소개처럼, 누구의 시각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책을 이해하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 흥미로운 책이었다.내가 이 책을 이해한 대로라면,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겉모습과는 달리 악동들이었고 가정교사는 자신이 농락을 당한다고 생각한다.지금 말하는 이 가정교사가 이 책의 화자이다.그녀의 시각에서 이전에 가정교사로 일했던 여자 '제셀'과 하인이지만 멋대로 행동하던 양아치 같은 인물로 그려지던 '퀸트'가 유령으로 나타나 화자를 괴롭힌다.화자는 아이들이 이 유령들의 정체를 알고 있으며,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한다.하지만 글을 읽는 내 입장에서는 그저 화자가 미친 여자로 보일 뿐 이었다.화자는 계단에서 유령을 보고, 호숫가를 거닐던 유령을 본다.어느날 밤 늦게 일어나서 저택의 마당을 거닐던 마일스가 지붕을 보는 것을 화자가 발견한다. 화자는 지붕을 쳐다보던 마일스가 지붕 위에 있는 퀸트의 유령을 보았다고 생각하며, 자신과 똑같은 것을 본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책 속에서도 나오지만 이런 유령을 보는 것은 화자 뿐이다.책에 등장하는 하인들중의 대빵인 '부인'과 아이들은 유령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적어도 그들이 말하는 대로 보자면 그렇다.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심하게 화자를 의심해 본다면, 화자는 자신을 고용한 아이들의 큰아버지에게 편지 쓰는 것을 주저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이 부분이 어쩌면 이 저택에 가정교사로 고용되었다는 것 자체도 화자의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마지막에 마일스는 화자의 품안에서 숨을 거두는데, 이때도 화자는 창 밖의 퀸트의 유령을 보았다고 생각하며 마일스를 지키기 위해, 아이를 엄청나게 꽉 안는다. 그 때문에 아이가 질식해서 죽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화자의 착각인지 혹은 화자가 보는 것이 진실인데 주변 사람들이 화자를 골탕 먹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장희창 옮김차라투스트라는 은거하던 초인이다. 그는 바다를 초월한 지혜를 인간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동굴을 떠난다.동굴을 떠난 차라투스트라는 어떤 노인을 만난다.노인은 동굴을 떠나 세상을 향해 가는 차라투스트라에게 인간에 대해 경고한다.차라투스트라는 노인의 경고를 무시하고 인간에게로 향한다. 광장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인간들에게 초인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며,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말한다.차라투스트라는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심장을 가진 사람, 자신의 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신을 징벌하는 사람, 한 없이 베푸는 사람, 마음껏 경멸하는자, 자신의 영혼을 낭비해가며 남을 돕는사람 같은 파멸을 향해 가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차라투스트라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내가 이렇게 생각하듯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듣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는 군중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보며, 그들의 자부심에 대해 이야기한다.그는 가장 경멸스러운 것. 말종의 인간에 대해 말한다.차라투스트라는 동경하는 것 이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해 슬퍼한다. 이런 인간들은 별을 낳지 못한다.차라투스트라는 사랑, 창조, 동경, 별에 대해 묻는 인간들을 벼룩과 같다고 생각한다.하지만 군중은 차라투스트라에게 말한다.“우리는 행복을 찾았소. 우리를 그 말종의 인간으로 만들어주시오. 그렇다면 그대에게 초인을 선사하겠다.”군중은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초인보다는 말종의 인간으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말종의 인간이야말로 행복한 인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재주를 넘는 기인이 사고로 죽는데 사람들은 그 기인이 죽은 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차라투스트라는 기인의 시체를 짊어지고 길을 떠난다. 길을 가던 중 어떤 은둔자를 만나는데, 그 은둔자는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은둔자에게 자신의 동료는 죽어서 음식이 필요없다고 모임보다는 소박한 모임이 좋다. 같은 것들로 사람들을 억제하는 기제를 만들어내는 권력자들을 비판한다.또한 세계너머의 세계를 믿는자들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고통으로부터 눈길을 돌리고 자신을 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차라투스트라는 자아와 정신을 중요시하는 것 보다 몸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자아와 정신은 모두 몸에 깃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차라투스트라는 창백한 범죄자를 옹호한다. 그들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차라투스트라는 읽기와 쓰기에 대해 말하며,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그는 한때 정신은 신이었다가 인간이 되었고, 이제는 마침내 천민이 되었다고 말한다. 정신이 썩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차라투스트라는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에 대해 비판한다. 그들이 말하는 “삶은 고통일 뿐이다.”라는 말은 거짓이 아님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더 이상 살지 않도록 하라! 고통뿐인 삶을 사는 것을 그만두도록 하라!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삶을 믿으라고 말한다.살아있는 것을 믿는 것은 무엇일까?어째서 차라투스트라는 삶을 믿으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 문단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차라투스트라는 전쟁과 전사들에게 말한다. 직장과 노동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노동이 아닌 투쟁을, 평화가 아닌 승리를 권한다고 말한다. 노동이 투쟁이고 그대들의 평화가 승리이기를. 차라투스트라는 선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한다. 선은 용감한 것이다. 그러니 ”선이란 아름다운 동시에 감동적인 것이다.” 라는 말은 어린 소녀들의 입에서나 듣도록 하라라고 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증오하되 경멸할 적은 두지 말라고한다. 투쟁하면서도 순종하라고 한다. 적의 성공이 또한 그대들의 성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 대목은 3번을 다시 되 읽었다. 어려웠다. 증오하면서도 사랑하라. 투쟁하면서도 순종하라. 순종과 투쟁의 삶을 오래 살아라 같은 반대되는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 같은 선상에서 등장했기가진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자신과 ‘거지’ 둘에게 모두 파멸을 불러온다는 의미인 듯 하다.동굴에서 다시 나온 차라투스트라는 현실에 대한 비평을 이어간다. 진리를 말하는 현자들에게 색색의 옷을 입고 현실에 안주하는 현대인들에게 비판을 가한다. 그가 처음 동굴에서 나왔을 때 말했던 사자를 지닌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자신의 가르침을 왜곡해서 평등을 노래하는 복수주의자들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이런 차라투스트라의 태도는 다른 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던 듯하다. 그는 다른 학자들을 양에 비유하고 선량한 시민을 엉컹퀴나 다른 잡초에 비유한다. 그는 학자들이 자신을 더 이상 ‘학자’라고 할 수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달갑게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이 부른 배를 쥐고 입에 바른 말만 하는 학자로 불리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그는 학자들에게 악취가 풍긴다는 말을 한다.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에게 다시 자신의 가르침을 설파한다. 어떤것을 피해야하고 어떤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하는지 말한다.하지만, 아마도 잘 안됐었던 것 같아 보인다.왜냐하면, 차라투스트라는 인간들에 대한 혐오로 질식해버렸기 때문이다.지금 여기서 설명하는 부분은 우화처럼 나온다.차라투스트라는 동물들과 대화하거나 구름, 나무, 하늘 같은 무생물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자신 스스로와 대화하기도 한다.그리고 각 상징들은 차라투스트라에게 어떤 것을 상징한다. 가량 하늘은 맑고 깨끗한 것이며, 구름은 이런 하늘을 가리는 존재들로 거짓말쟁이나 사기꾼들, 협잡꾼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책을 쓰면서 니체는 있는 자신의 주변에서 떠들어 대는 사람들을 동물에 비유하여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니체가 인간 혐오에 질식했을 때는, 뱀이 그의 목구멍으로 들어가 그곳을 콱 물었고 질식했다가 죽은 것으로 나온다.이후 치유되는 자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살아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다. 그 인간들은 차라투스트라에게 바라는 것을 말했고,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을 위해 싸우며 병들었다. 하지만 그과 추악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넘치고 너무나 주제넘었던 신은 죽어야만 했다.모든 것을 본 신, 그러므로 인간도 본 신, 이 신은 죽어야만 했다! 인간은 그러한 목격자가 살아 있음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그러면서 인간이란 얼마나 가련한가 하며 불쌍히 여기기도 한다.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이 자신의 삶은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하기를 바라는 인물이므로,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깨달았다면 아마도 자신을 동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아니면, 그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신을 동정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그들을 죽였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어쩌면 차라투스트라도 여기에 속하는 인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그는 인간들이 지혜롭지 못함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차라투스트라는 이들은 ‘더 없이 추악한 자’라고 칭한다.도움을 구하면서도 도와주는 존재를 죽여버리는 자들.얼마나 추악한가.이 단어에서 도움을 구하면서도 직접 행동할 용기는 없는 자들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경멸을 느낄 수 있다.이후에도 제 발로 거지가 된자와 차라투스트라의 그림자가 동굴로 초대 되었다. 동굴에 초대된 사람들에게 차라투스트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하지만 예언자는 차라투스트라에게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차라투스트라가 비명소리를 듣고 사람들을 돕기 위해 동굴을 떠나기 전에, 인간 혐오에 질식해서 기절해 있었을 때, 동물들이 그를 위해 가져다 둔 식량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차라투스트라는 축제를 벌이자고 말한다. 왕이 포도주를 내놓고 차라투스트라는 독수리가 자신을 위해 잡아다 준 새끼 양 2마리를 내놓는다. 축제 준비를하면서 차라투스트라는 왕도 요리사가 되어야한다고 말한다.여기서 차라투스트라는 축제에 대해 말하는데, 자신의 사상은 자신과 같은 자들을 위한 율법이며, 만인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차라투스트라가 말하자, 왕은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옹호하며 신나게 축제를 즐긴다. 그리고 그런 왕의 옆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이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다리라고 말했다. 아마 짐승과 초인이라는 두 가지 존재를 두고 어느 쪽으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짐승처럼 배를 불리고 쾌락에 안주하는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윤회의 바퀴 속에서 자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도전하며 더 나아지는 초인이 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말하는 듯 했다.책에 초반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싸우라고 투쟁하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타인에 대한 스스로의 분노를 표출하라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책을 더 읽어갈수록 타인에 대한 투쟁이 어느 정도 맞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이러한 분노는 사회의 도덕, 규율 같은 것에서 탈피해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싸우라는 내면의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하는 말 이었다. 어쩌면 스스로를 찾는 과정에서 타인과의 마찰이 불가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수 많은 짐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낙타에서 사자로 그리고 다시 아이가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기 때문인 듯 하다.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쇼펜하우어의 사상보다는 조금 더 과감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쇼펜하우어의 경우도 물레바퀴 처럼 돌아가는 삶 속에서 사람은 고통을 겪고 익숙해지고 즐거움을 느끼고 권태를 느낀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라 라는 느낌의 조금 더 온화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같은 경우는 수레바퀴 속에서 돌고 도는 것은 같다고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간 느낌이라고 할까. 전투적인 느낌이었다.자신을 발견하라. 기존의 도덕과 규율에서 벗어나라라고 외치는 것 같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다. 나를 사랑하라. 나를 아껴라. 진정한 나를 발견하기 위해겠다.
말보다 정직한 7가지 몸의 단서FBI 행동의 심리학 조내버로외 지음, 박정길 옮김이 책에서는 대화를 주제로 하는 책이다.말로 써 하는 대화도 중요하지만, 몸짓을 통해 상대가 보내오는 신호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물론 제목에 FBI라는 글자가 있는 것 처럼 상대방의 거짓이나 진실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느 정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은,상대방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상대방이 불안해하며 자신을 진정시키는 행동을 한다면,대화를 위해 그를 편하게 해주는 말을 먼저 해야한다.그래야 이후에 진실된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한다.특히, 발에 대해서 말하는 점이 흥미로웠다.발이나 다리가 상대방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상대방이 나를 싫어한다고 밀어내고 있는가?상대방의 발을 봐라. 두발이 모두 나를 향하고 있다면 이 말은 거짓이다.사람은 대화를 하면서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계속해서 많은 비언어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들 중에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라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몸짓이 보내는 수천가지 신호들은 ‘몸의 언어’로 불리며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보내준다.하지만, 최근 컴퓨터, 문자, 이메일, 전화 같은 정보통신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대화에 대한 기술들을 잃어가고 있다. 그만큼 몸짓에 대한 필요성이 낮아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을 바란다. 왜 그럴까?그것은 몸짓이 보내는 신호를 통해 상대방이 하는 말이 더 진실되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접만나 몸짓을 보고 대화하는 것 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비언어는 3개의 뇌중 변뇌계에서 보내오는 가장할 수 없는 신호이기 때문이다.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이 대화가 불편하거나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면 3가지 반응을 한다고 한다.정지, 도망, 투쟁이다.정지는 움직임을 멈춤으로서 상대방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함이며 이러한 행동은 야생동물들에게서도 자주 볼 수 있다.따라서,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상대방의 몸짓이 사라지거나, 멈춘다면 상대방은 지금 대화에서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도망은 말 그대로 대화를 회피하거나, 침묵하는 것이다. 팔짱을 끼거나, 몸을 멀리하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것도 이것에 해당한다.투쟁은 반박하거나 격앙된 어조로 말하는 것을 말한다.상대가 이런 반응을 보이면 우리는 상대방이 왜 불편해 하는지를 찾아내야한다. 그래야만 다시 대화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상대방이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하는 것 중에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는 목이나 얼굴에 손을 갖다 대는 것, 옷을 펄럭거려서 바람이 통하게 하는 것, 다리를 문지르는 것 과 같은 행동이 있다고 한다.우리는 모두 무의식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돌이켜보라.상사와 대화할 때, 특히 불편한 주제로, 우리는 꼼짝하지 않고(정지) 눈을 깔아서 바닥을 보며(도망) 상사의 눈을 피한다. 그러다가 상사의 말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투쟁)이런 반응은 상대방을 잘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그리고 대화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행동들을 통해 자신의 기분을 나타내며 대화를 유리하게 끌어가기도 한다.하지만, 대화에 능숙한 사람이라도 조절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눈이다.우리의 뇌는 위협으로 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인 명령을 내린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상대의 동공이 수축되거나 눈을 가늘게 뜬다면, 이것은 대화가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다리, 발에 관한 것이다.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의 발이나 다리를 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보통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만, 빤히 쳐다보지는 않는다. 상대방을 빤히 쳐다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배우기 때문이다. 또, 불편한 상황에서 상대방의 눈을 빤히 바라보는 것은 반항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혹은, 그저 심리적인 이유로 상대방의 눈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알고 있다.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의 두 발이 모두 나를 향하는지, 아니면 한쪽 발이 다른 곳을 향하는지, 발은 전혀 내쪽으로 돌리지 않고 상체만 돌려서 나를 보는지 같은 것들이 모두 비언어적인 신체 언어로 파악될 수 있다는 점이 재밌었다.또, 발은 거리두기를 실행하는데 상대방이 심리적으로 불편해하는지 편안해하는지를 상대방과 나 사이의 거리를 통해 알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눈다. 일, 취미 같은 사소한 것들부터 가치관 같은 무거운 것들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이런 비언어적인 신체언어를 알아차리면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소수이다. 타고난 커뮤니케이터이거나 책을 통해 배웠거나 하는 것이다.이 책은 주로 범죄자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을 주제로 나타냈지만, 내 생각에는 일상적인 생활에서 적용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상대방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어떠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사람이 거짓을 말하는 것일까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보통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을 하는 사람이 팔짱을 끼고 있거나 다리를 의자에 감고 있다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한다.이런 점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하나의 행동만을 가지고 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순간 순간 관찰하고 포착해서 상대방의 진심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말이다.물론, 눈을 찡그리거나 코를 찡긋하는 것 같은 순간적인 반응들은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해도, 너무 순간적이거나 미묘해서 그것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한다.하지만, 이런 미묘한 신호들을 포착해서 대화하는 상대를 파악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일종의 게임같은 기분이 들어서 대화가 좀 더 흥미롭고 재밌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셔윈 B. 눌랜드‘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라는 어떤 시각에서 본다면 다소 섬뜩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책의 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달랐다. 흔히들 생각하는 ‘존엄성’을 유지한 채 죽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눌랜드는 오랜 시간 동안 병리학자, 혹은 의사로 일해온 사람이었다. 그는 의사로 일하면서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그들이 죽어가는 것을 봐온 사람이다.이 책에서는 대표적인 죽음의 원인 몇 가지를 소개해 준다. 심장질환, 암, 에이즈, 노화, 살인, 사고, 자살 같은 죽음의 원인이 되는 것들 말이다. 이런 몇 가지 원인을 소개하면서 눌랜드는 말한다. 인간이 죽는 이유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산소결핍이 그 원인이다 라고 말한다.눌랜드는 자신의 형이 죽었던 일, 엄마가 죽었던 일, 알고 지냈던 친구가 죽었던 일, 그리고 자신이 돌보았거나 돌보지 않았던 환자들의 죽음을 가지고 질병에 대해 설명한다. 그 질병이 생긴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질병이 어떤 식으로 몸으로 퍼져가는지를 말해준다. 눌랜드는 이런 설명들을 ‘간략하게 적었다’ 라고 했지만, 의학 쪽에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지겹고 어려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설명들을 읽고나면, 눌랜드가 말했던 ‘산소결핍’ 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된다.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눌랜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듯 하다.그리고 나 역시 죽음에 대해 관심이 있기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에이즈 같은 단락은 충격적이다 싶을 정도로 잔인한 병이었다. 에이즈는 인간의 항체를 속여가면서 온 몸으로 퍼지는데, 면역체계를 무력화 시켜버리는 이 바이러스는 숙주의 몸이 온 갖 질병에 시달리도록 만든다. 에너지를 소진한 피부는 탄력을 읽고 늘어지고 온몸에 염증반응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에이즈에 걸리면 다양한 질병들이 찾아오지만, 죽음의 원인은 ‘산소결핍’이 된다. 에이즈에 걸려서 폐결핵에 걸리거나 패혈증에 걸리면 장기들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죽게 되는 것이다. 패혈증의 경우는 영양분도 받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에이즈가 성교를 통해서만 전염되는 질병이라고 생각했는데, 성교를 통해서 전염되려면 많은 횟수를 거쳐야한다는 대목에서 조금 놀랐다. 예전에는 에이즈가 전염될 때, 수혈이나 모유수유, 주사를 통해 전염되는 사례가 더 많았다고 한다. 요즘에는 헌혈된 피들이 철저히 관리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주사를 통해 전염되는 사례도 많은데,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바늘을 돌려써서 에이즈가 퍼지는 일이 많다고 했다.나는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말을 들으면, 약을 하고 난교파티를 벌이는 영화의 장면들을 상상하곤 했는데, 물론 그럴 수 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아니라는 글을 보고는 내 편협한 시각에도 놀랐다.눌랜드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지금의 삶에서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고통, 이겨낼 수 없는 무거운 과업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죽음을 생각한다.편해지기 위해서.하지만 눌랜드의 설명에 따르면 죽음은 그다지 편안한 선택은 아닌 듯 보인다.자살한 사람들을 부검한 놀랜드는 그들이 죽기 전 까지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다는 흔적이 보였다고 한다.실제로 사고를 겪으면, 사람들은 처음에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가 상황이 정리되고 안정된 환경이 찾아오면 환자는 고통에 몸부림 치게 된다는 것이다.놀랜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도 이러한 일을 소개하고 있다.나도 그랬던 경험이 있는 것 같다. 어릴 때 축구를 하다가 손목이 골절된 적이 있다. 넘어지고 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골절된 손목을 들고 탁구를 치러갔다. 탁구를 치러 가면서 나는 점점 손목의 통증을 느꼈고 탁구를 치면서 내 손목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병원에 갔던 적이 있다. 이 일도 눌랜드가 말한 사고 당시에 뇌에서 분비되는 ‘엔도르핀’의 역할을 직접 체험한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사람들이 생각하는 존엄성 있는 죽음. 그리고 눌랜드가 말하는 진정한 존엄성있는 죽음.둘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했다.눌랜드가 말하는 그것은 자신이 죽을 때와 장소를 구분해서 죽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삶의 끝자락에 도달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외롭지 않은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 진정한 존엄성있는 죽음이라는 것이 눌랜드의 말이 었다. 그리고 자신도 늙어서 병에 걸리게 된다면, 일단 최대한 삶을 연장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최후에 어떤 치료를 통해서도 차도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병원을 벗어나거나, 호스피텔이라는 요양원 같은 곳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임종이 다가왔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쌓여서 마지막 여정을 떠나고 싶다는 것이 눌랜드의 생각이었다.그리고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눌랜드는 ‘자연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한다.’ 같은 말들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었다.죽음은 어쨌든 온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한때는 죽음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어보기도 했다. 그때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더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였는데, 집안에 문제가 생겨서 가족들이 내게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혼자 집에서 멀리 떨어지 고등학교를 다니며, 돈이 없는 현재에 대한 괴로움, 내가 나아갈 미래에 대한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 이성에 대한 고민, 친구에 대한 고민 같은 많은 고민들을 혼자 안고 있었다.나는 내성적인 아이였기 때문이 이런 고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친한 친구에게 말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만큼 친하다고 느끼는 친구가 없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온 학교였기 때문에, 같은 지역에서 초중고를 나온 아이들의 무리 틈에 끼어드는 것도 내겐 너무 힘든 일 이었다.결국 나는 답을 구하기 위해서 많은 책들, 특히 인생의 의미, 혹은 죽음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죽음에 대한 책을 읽은 것은, 결국 아무리 잘 살고 행복하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모든 것들이 소용없다고 느끼는 회의주의에 빠지기도 했다.그 회의주의는 오래갔다. 정말 오래 갔다.그리고 최근에 이런 회의주의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그 계기는 쇼펜하우어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를 읽고 나서였다.인생은 고통이다.고통이 없는 삶은 없다. 순간의 고통을 지나면 그 뒤에는 권태라는 새로운 고통이 찾아오고 결국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또 고통을 맞이하고 그 일에서 도망친다면 권태가 찾아온다. 챗바퀴 돌 듯이 돌아가는 인생에서 사람은 고통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길지 않은 경험에 비추어보더라도 쇼펜하우어의 말은 틀린게 없었다.인생은 고통이니 이제 그만 끝내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인생은 고통이니,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자 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고통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내 숨은 멎지만, 내 주변 사람들,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 사실 때문에 고통받게 된다. 그리고 남은 생을 죄책감 속에서 살게 된다.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어디선가 읽었던 책의 내용이다.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사람이 있다면, 죽을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용기로 새로운 일을, 그 용기로 주변사람을 사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그래도 당신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왜냐하면, 인간은 평생 고통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괴롭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첫번째이며, 그 다음 걸음은 그 용기로 뭐라도 해보는 것이다.사람은 어차피 죽는다.빨리 죽으나 늦게 죽으나 결말이 똑같다면,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죽는 게 맞지 않나 싶다.그게 그거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온 힘을 다해서 사랑을 전해주는 것이 후회없는 삶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