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사랑 이야기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 문학동네 출판 제주 사람들에게 “제주 4·3 사건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몰랑, 조타”라고 답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모르는 것이 낫다’는 의미로, 그만큼 이 사건이 제주도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한강은 이러한 아픈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한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잊혀진 비극과 그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한강 작가는 『채식주의자』로 2016년 아시아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이후, 5년 만에 이 작품을 발표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출간 전부터 높은 관심을 받으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40대 독자층에서 고르게 읽히며, 젊은 세대에게도 역사적 기억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이 소설은 제주 4·3 사건 당시 희생된 사람들과, 그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경하는 어느 날, 눈이 내리는 벌판에 검은 나무들과 그 뒤를 엎드린 봉분들 사이로 걷는 꿈을 꾼다. 벌판 끝은 바다였다. 밀물이 들어오는데 순식간에 물이 들어와서 경하는 자기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가르며 달렸다. 경하는 ‘왜 이런 데다 무덤을 쓴 거야’ 무덤에 있는 뼈들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면 꿈에 깬다. 그 이후 친구 인선과 이 꿈을 토대로 프로젝트를 같이 하기로 한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다. 인선은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하다가 아픈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제주도를 내려가게 된다. 인선은 모든 걸 내려놓고 목수가 되었는데 목공 작업 중 손가락이 절단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경하에게 집에 혼자 있는 앵무새는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을 거라고 앵무새를 구해 달라고 부탁한다. 경하는 마지못해 제주도로 향하고 끔찍한 상황 속에서 생과 사를 넘나들며 인선의 집에 간다. 1부에서는 경하가 제주로 향하는 여정이 중심이 되며,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어둡고 비극적인 정서가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한강은 『소년이 온다』 집필 이후 겪었던 악몽과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내면을 작품에 투영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단순히 사건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비극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제주로 향하는 경하의 여정을 통해 자신이 이 작품을 쓰며 느꼈을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실제로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이후 악몽에 시달렸다는 작가의 고백은, 이 작품 역시 얼마나 깊은 고통 속에서 쓰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제주 4·3 사건은 6·25전쟁 다음으로 큰 인명 피해를 낳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잊힌 역사를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도시학살에 대한 책을 낸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을 때였다”라는 구절에서는 이전 작품 이후 작가가 겪은 심리적 고통이 드러나며, “파도가 휩쓸어가 버린 저 아래의 뼈들을 등지고 가야 한다”라는 표현에서는 묻혀 있던 진실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그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동시에 느껴진다. 이러한 표현들은 결국 작가가 이 비극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말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한강은 잔혹한 역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아픈 현실을 그대로 마주하기 어려운 대신, 사랑의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독자가 자연스럽게 그 비극에 다가가도록 만드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서술 방식에서 아쉬움도 남긴다. 시점이 자주 전환되고 시간의 흐름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 독자가 현재와 과거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은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을 수 있으나, 이야기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강의 작품이 입문자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서술 방식에 있다. 끝까지 작별할 수 없는 사랑 2부에서는 경하와 인선을 중심으로 제주 4·3 사건의 진실과 그 기억을 본격적으로 파헤치는 과정이 전개된다. 인선은 어머니가 남긴 기록을 이어받아 사건을 추적하고, 경하는 그 곁에서 함께한다. 한편 경하는 인선에게 앵무새의 죽음을 말하지 못한 채,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대답을 회피한다. 이러한 모습은 작품 전반에 흐르는 ‘작별하지 못하는 감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인선의 어머니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끝까지 가족을 잊지 못하는 모습은, ‘작별하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작품의 핵심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인선은 이러한 어머니의 뜻을 이어 사건을 계속해서 조사하고, 과거에 경하와 함께 구상했던 프로젝트를 이어 나간다. 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라진 이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랑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인선이 절단된 손가락을 봉합한 이후, 신경을 살리기 위해 3분마다 바늘로 찌르는 고통을 견디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을 넘어, 아무리 아픈 역사라도 외면하지 않고 끊임없이 마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복되는 고통을 견뎌야만 회복에 이를 수 있듯, 역사 또한 지속적으로 기억되고 되새겨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결국 이 작품은 ‘사랑은 끝내 작별할 수 없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비극 속에서도 사람은 서로를 통해 기억하고, 그 기억은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진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러한 기억과 사랑의 연결을 통해,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아픈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그 속에서도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랑과 희망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인선의 어머니와 인선, 그리고 경하처럼 끝내 작별하지 못하는 사랑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