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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소크라테스 - 다이몬, 너 자신을 알라, 지행합일의 내용과 관계를 중심으로 (철학과목 A+ 레포트)
    소크라테스 - 다이몬, 너 자신을 알라, 지행합일의 내용과 관계를 중심으로 (철학과목 A+ 레포트)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 다이몬, 너 자신을 알라, 지행합일의 내용과 관계를 중심으로소크라테스, 고등학교 재학 시절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윤리였던 나는 그를 잘 안다고 착각했다.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이 무지에 대한 자각이라는 의미를 알고 있고, 그저 그는 보편주의이며 지행합일, 주지주의, 지덕복합일과 같은 키워드에 대해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철학이란 무엇인가? 3주차 강의를 듣고 내가 알지 못했던 그의 ‘다이몬’과 관련한 철학과 그의 철학에 대한 의미와 깊이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강의를 통해 나는 그에 대해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여태 몰랐었던 ‘다이몬’과 그의 가장 유명한 말인 ‘너 자신을 알라’와 핵심사상인 지행합일을 통해 그가 서양 철학의 중요 인물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의 스승이었고 4대 성인으로 불리는 엄청난 명성을 가진 철학의 아버지인 이유에 대해 탐구해 보려고 한다.‘너 자신을 알라’의 의미에 대해_무지의 자각소크라테스가 했다고 알려진 그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는 사실 그리스인들이 국가적 성지로 삼았던 델포이 신전에 쓰여 있던 대목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네 분수를 알라”, “자만하거나 과욕을 부리지 말라” 하는 뜻으로 이해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여 어릴 적 친구들과 장난으로 티격태격 하는 순간들에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하며 키득거려본 적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를 자주 사용했고 또한 그의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그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자신에 안주하지 마라”,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라”로 풀이했다. 또 다르게 말하면 “너 자신을 알라”는 “네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가 아니라, 그 일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 “네 영혼의 주인이 되어라”, “역경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가 될 수 있다.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 카이레폰이 등장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카각여부였다. 앞서 말한 사람들과 다르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점때문에 내가 이 사람보다 더 지혜가 있는 것 같다. 이 차이 때문에 그 자신이 지혜롭다는 것이다. 이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그들이 ‘이중의 무지’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그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믿었다.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반면에 무지보다 더 나쁜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게 소크라테스의 생각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모른다는 점을 확실히 알았다. 바로 이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지혜로웠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적인 지혜에 속하는 지혜로움이었다. 인간적인 지혜란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다.소크라테스가 선언한 ‘무지의 지’는 결코 모든 것을 모른다는 게 아니다. 그가 무지하다고 말한 중요한 주제는 ‘덕’에 관한 것들이다. 이것을 어떤 종류의 탁월성 혹은 도덕적 미덕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아레테(arete)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모든 사물에는 그 나름의 ‘훌륭한 상태’나 ‘좋은 상태’가 있다. 가령 눈이 그 기능을 최고로 발휘하거나 말이 최고의 상태를 발휘해 가장 잘 달릴 때, 그것이 눈의 아레테나 말의 아레테이다. 이렇듯 아레테는 ‘자신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 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무지는 바로, 사람으로서 자신의 기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지식에 대한 무지를 뜻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소중한 가치인 덕과 자기 영혼에 대한 무지를 깨닫는 일이야말로 참된 앎의 시작이라고 소크라테스는 확신했다.다이몬_무지를 알기 위한 필수 개념무지에 대한 여부를 더 깊이 알기 위해서는 ‘다이몬’이라는 개념을 알 필요가 있다.다이몬, 그것은 무엇일까? 그리스어에서 ‘다이몬’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신은 아니지만, 신과 인간의 중간에서 둘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나중에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다이몬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서만 진실로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논리는 소크라테스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였다. 이런 믿음과 깨달음을 기반으로 그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다이몬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매우 광범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자연신의 의미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어떤 것에 가까운 듯하고, 내면적인 "양심의 목소리"로 해석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중 에 보면 다이몬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은 에로스에 대한 찬양으로 이루어진 대화를 싣고 있는데, 그중에서 중심으로 이루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인데, 이는 소크라테스가 들은 디오티마의 이야기를 말한다.“그러면 대체 에로스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는 것입니까?”“그것은 죽는 것과 죽지 않는 것의 중간에 있는 것이지요.”“디오티마, 대체 그것이 무엇입니까?”“그것은 위대한 정령(다이몬)입니다. 다이몬은 모든 신과 죽는 것과의 중간에 있기 때문이지요.”“다이몬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요?”“다이몬은 신들에게는 인간들이 전하는 기도와 번제물들을, 그리고 인간들에게는 신들이 전하는 그들의 뜻과 번제에 대한 답례의 선물들을 해석해주고 전달해줌으로써, 신과 인간의 중간에 존재하면서 그 빈틈을 채워주고 이 우주 전체를 그 자체에 결합시켜주는 능력을 지닌 존재라 할 수 있지요. 다이몬들의 그러한 역할 때문에, 모든 예언술과 번제, 입문식, 주문 그리고 모든 예언과 마술에 관한 사제들의 기술이 번창할 수 있었지요. 사실 신은 인간들과 섞이지 않는 법인데, 이 다이몬들 덕분에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교제와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일들에 능통한 사람을 신통(神通)한 사람이라 부르는 반면, 그 외 다른 일들에 능통한 사람, 즉 보통의 기술들이나 특정한 손재주를 지닌 사람을 장인이라 부른답니다.”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런 경험들을 한 것이오. 즉, 신의 명령에 따라 이름이 가장 잘 알려진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오히려 가장 많이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몬이 데몬(악마, 악령)으로 들렸다. 때문에 이 발언은 아테네 시민들의 가치체계를 뒤흔들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기소와 죽음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사람은 모두 다이몬을 내면에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이몬의 음성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데서 차이가 발생한다.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은 다이몬의 음성을 듣지 못하거나, 그 음성을 듣지만, 그것을 따르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상태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다이몬의 음성을 듣고 그것에 따라 행동해야 하지만 항상 따르지 못하는 자신을 인정하는 것, 즉 자신이 자신을 지배하는 데 항상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다이몬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거나 그것을 듣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를 전혀 문제 삼지 않는 것과 같이 다이몬과 관련해서 자신의 무지를 아는가에 대한 여부를 판가름 할 수 있다.소크라테스도 다이몬의 음성에 따르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잘 알았다. 즉 처음에는 그것을 따르기 주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음성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앎과 행은 필연적인 일치, 영혼의 수련소크라테스에게 지와 덕은 일치하는 것이다. 만일 덕이 "가능한 한 영혼을 선하게 만드는"데 관련된다면 영혼을 선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선과 지는 밀접히 관련된다. 그러나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이 둘을 동일시했다. 그러므로 지는 덕이다. 지와 덕을 동일시한 소크라테스는 더 나아가 악덕이나 죄를 지의 부재라고 주장했다. 지가 덕인 것처럼 악덕은 무지다. 이러한 추론의 결과로, 소크라테스는 어느 누구도 알면서 악덕에 빠지거나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에 의하면 그릇된 행동은 항상 무의식적이며, 무지의 산물이다.우리의 상식에서 볼 때 우리는 종종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경우가 있고, 따라서 우리의 악행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일 경우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누군하면 소크라테스가 말한 무지는 행동 자체가 아니라 행복을 낳는 그 행동의 능력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행동'이 갖는 필연적인 '기능'이나 '목적'을 그 행동의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행동 본연의 '목적'을 모르거나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무지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악행은 행동 양식에 대한 그릇된 평가의 결과로 발생한다. 악행은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에서 이루어진 무지의 산물이다. 무지는 어떠한 행위가 행복을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나타난다.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참된 지식을 통해 그것이 요구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악덕이 무지이며 무의식적이라는 주장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손상시키고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악행을 선택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인간은 고통을 선택할 때도 이 고통이 자신을 덕으로, 인간 본성의 완전한 실현으로,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에서 선택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자신이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 실제로 옳은가는 과연 그 행동이 참된 인간의 본성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에 달려 있으며, 따라서 그 문제는 참된 지식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소피스트의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그의 승리에 기초를 이루며, 서구 문명의 전 역사를 통해 도덕 철학이 지향해 온 방향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결정되었다.소크라테스가 주장한 지행합일이란, 인간이 의도적으로 지식과 행위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도덕적.윤리적 요구가 아니라, 지식과 행위는 필연적으로 일치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깔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되면 그렇게 행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여기서 앎이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영혼의 수련을 통해서 얻어진 깨달음이다.이것은 제대로 알면 반드시 행할 수밖에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지행합일'과 관련된 대목이다. 그런데 여기서 과연 '영혼의 수련'이란 .
    인문/어학| 2023.04.27| 8페이지| 2,000원| 조회(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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