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의 이해프랑스 : 영화를 탄생시킨 나라. 영화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주도했던 나라.1 영화의 탄생ⓛ 100년 전 (117년 전) : 1895년 12월 28일 파리의 중심가 카퓌신 거리의 ‘그랑 까페’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영화를 최초 상영함. . 현실 그대로를 영화에 담았다. 뉴스나 르포처럼 사건 그 자체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영화의식을 발명했다. 1893년 에디슨이 발명한 키네토스코프는 영화 필름 영사기의 전신이다. 문화예술인 33명을 초대해 1프랑을 받고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상영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최초의 유료 상영이다. 뤼미에르 형제는 스크린을 통한 영사의 기능을 부여했다. “수십, 수백 명이 공유할 수 있는 대중예술문화”. 영화의 발명뿐만 아니라 최초로 스크린을 통해 유료로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했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② 100년 후 : 흑백영화(프랑스 고전) 영화배우 장 가방, 이브 몽땅, 아랑 드롱, 장 르노, 브리짓 바르도, 까트린 드느브, 이자벨 아자니, 줄리엣 비노슈 등③ 음악 : 프란시스 레이(악단) 에릭 세라2 프랑스 영화의 변천사(연대기)① 무성영화 시기 : 프랑스 인상주의 그룹과 아방가르드(전위)영화들이 세계 영화문화를 주도함.② 1930년대 : 흑백영화의 황금기. 시적 리얼리즘(현실의 아픔을 시처럼 표현)이라 불리는 황금기. 매너리즘(실험정신이 없이 다 비슷비슷해지는 것)에 빠지게 되었다. 타 예술 장르와 차별화되지 않음.③ 1960년대 : 누벨바그 영화④ 1980년대 : 누벨 이마쥬 영화⑤ 1990년대 : 신진 감독들의 등장* 프랑스는 예술(문학, 회화)로 시작했다. 미국은 영화를 오락 장르 중 하나로 인식했음. 여러 영상언어가 많고 타 장르와 구분된다. 영화로서의 장르를 굳힐 수 있었다.⑥ 영화의 두 아버지 : 뤼미에르 형제, 멜리에스(눈속임, 기교 등 상영의 정신을 알려 줌.) , 영화에서 최초로 극 영화 네러티브(이야기 요소를 집어넣음)를 이용한 사람이다. 500여 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다양한 기술을 개발했다. . 찰리 채플린이 ‘빛의 연금술사’라 극찬했다. 그리피스는 ‘나는 모든 것을 그에게 빚졌다.’ 라고 말했다.⑦ 미국의 유명한 감독 : 그리피스 (D.W.Griffith). , . 영화 언어의 기초 확립. 초기 무성영화 시대의 금자탑을 쌓았다. 영화의 예술로서의 싹을 틔운 사람이다. 토마스 인스는 서부영화의 아버지로, 찰리 채플린과 스타 시스템을 확립했다.3 누벨바그 (새로운 물결)① 1960~70년대를 이끌어 갔다. 40년대 말부터 프랑스 영화를 위협하는 미국 영화의 범람에 대응하기 위해서 나타났다. 다양성이 가장 중요하다. 특색은 그 당시 활약하던 사상가 까뮈,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음. 우연적인 등장인물, 극적 동기가 없는 사건 등을 취급한다. 기존의 틀을 파괴했다.*프랑스의 성 : 1968 (68혁명) 사르트르, 시몬느 보봐르② 형식 : 당시 문학 형식이던 신소설(누보 로망)과 마찬가지로 예전의 잘 짜여진 극 구조가 아니라 열려진, 느슨한 구조를 가짐. 생략과 파격의 스타일. 전통적인 기승전결 식 영화의 틀을 부쉈다.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푸르스트 등의 현대 심리학적 소설과도 흡사한 구조를 보인다. 자의식적, 자발성이 있다. 또는 감정에 의한 시간과 공간의 비약을 표현했다.③ 대표적인 감독 : 장 뤽 고다르(네 멋대로 해라 1959), 프랑수와 트뤼포(400번의 구타 1959), 끌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비 누벨바그 감독들 - 알렝 레네(히로시마 내 사랑 1959), 자크 드미(쉘부르의 우산), 루이 말(연인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누벨바그 감독들은 감독 간 상호 연대적인 작가주의 정신에 의해 탄생하는 새로운 영상미학을 중시했다.*작가주의 정신 : 프랑수와 트뤼포가 라는 잡지에 파격적인 ‘비평적 테러’를 함. 기존 프랑스 영화가 문학적인 기질을 지닌 시나리오 작가들의 취향에 휘둘리고 있으며 누가 감독하던 그건 그저 시나리오 작가의 영화지 감독의 영화가 아니다. 자기 영화의 진정한 창조자인 감독을 작가라고 부를 만 하다고 평가했다.④ 누벨바그에 와서야 형식적인 현대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1959년 장 뤽 고다르의 , 알렝 레네의 이 두 편을 기점으로 고전과 현대 영화가 나뉜다.⑤ 작가주의 정신의 의의 : 감독을 영화예술의 주도적 존재로 확립시킨 것, 영화 제작에 있어 무엇(주제)보다 어떻게(제작 과정)의 중요성을 부각함, 대중 영화와 지적 영화의 융합 가능성을 보여줌.4 누벨 이마쥬 : 뤽 베송과 함께 1980년대에 출현한 감독들의 영화 스타일을 묶어서 이르는 말. 누벨 ‘누벨 바그’(새로운 누벨 바그)를 외치면서 나옴. 명칭을 누벨 이마쥬라고 바꿈. 1982년 장 자크 베넥스의 , 1983년 루기 베송의 , 레오카락스의 가 유명함.① 누벨 이마쥬의 특색 : 감독의 직관과 개성에 의존하는 개인주의적 작업을 중요시함. 비 전통적인 이야기를 전개하고 부수적인 에피소드를 삽입, 음악과 분장 그리고 세트에 대중문화가 영향을 끼침, 정치에 대한 표면적 무관심, 다양한 이미지를 혼합함. 현란한 조명과 인공적인 이미지를 사용해 기존 영화스타일과 다른 독특한 화면으로 세계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② 뤽 베송 : 헐리웃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 특히 젊은 관객들의 호응 속에 경쾌한 리듬과 감각적 영상으로 작품성이 있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레옹은 헐리우드식 스피드와 프랑스식 감각적 영상이 혼합된 영화이다.③ 레오 카락스 : 누벨 이마쥬의 천재. 1983년 데뷔함. 가장 독특한 감독임. 특히 나쁜 피로 앙팡 테리블, 고다르의 아이 등 찬사를 받았음. 대화의 단절을 가져온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그려낸 작품임. (나쁜 피) 도쿄는 레오카락스, 미셸 공드리, 봉준호 감독의 합작품.
마르셀의 추억그림 1 출처 다음 영화‘조용히 흐르는 시냇물과 같은 영화다.’ 마르셀의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있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난 후 생각난 문장이다. 여름날 창문을 때리는 폭풍우와 같이 자극적인 요소가 잔뜩 뭉쳐진 요즘 영화와는 다르게 아기자기한 그림책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작은 물줄기가 모여 큰 강을 이루듯 내게는 아주 큰 의미로 다가왔다. 전반적으로 크나큰 갈등도 없고 액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극적인 서스펜스도 찾아볼 수 없다. 화면 역시 눈높이에서 고정된 아이 레벨 앵글만을 써 보다 객관적으로 마르셀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평범한 소년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마르셀은 똑똑한 아이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으로 평판도 좋다. 어머니는 자애롭고 동생은 귀엽다. 나무랄 데 없이 행복해 보이는 4인 가족이다. 시간이 나면 음식을 싸들고 산으로 들로 여행을 간다. 마르셀은 이자벨이라는 ‘여왕님’을 만나고부터 첫 좌절을 맛본다. 이는 학교에서 유급을 당했다거나 아버지가 직장을 잃었다던가 하는 게 아니라, 마음 속 어딘가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환상이 깨짐을 말한다. 흑인 분장을 하고 개 흉내를 내며 지켜온 ‘여왕님’은 그런 생리적 현상을 기사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누구나 첫사랑에 대한 기대가 깨져 스스로 그 마음을 접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매주 주말을 벨롬에서 보내는 마르셀 가족은 아버지의 제자 운하 관리원 부지그의 도움으로 지름길을 알아냈다. 빙 돌아가면 2시간 45분이 걸리는 거리를 남의 사유지 운하를 따라가면 25분 만에 벨롬까지 갈 수 있었다. 우직한 교사로 살아온 아버지는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남의 땅에 들어가는 걸 반대했지만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보고 마음을 돌렸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마르셀 가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주인에게 들키고 만다.얼굴에 흉터가 있는 주인 할아버지는 험상궂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따뜻한 사람이었다. 동생이 놀랄까봐 얼굴에 있는 상처를 고양이가 할퀸 것이라 설명하도록 했다. 조용한 휴식을 방해했다는 점이 신경에 거슬렸을 법도 한데 흉터 할아버지는 마르셀 가족을 기쁘게 맞아준다. 경비원 역시 마르셀 가족을 퍽 마음에 들어 했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그 커다란 성에서 사는 게 적적하고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주인공은 마르셀인데 그 할아버지에게 더 눈이 갔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내 멋대로 상상해보았다.얼굴의 상처는 훈장과 같은 것이었다. 전쟁에 나가 무훈을 세우고 그 상으로 대저택(Chateau)을 수여받았다. 주름살이 늘어가면서 자식들은 대도시로 나갔고 저택은 텅 비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와 정원을 거닐다 대문 근처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짐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기에는 눈이 너무 침침해 잘 보이지 않았다. 다음번에는 더 가까이서 관찰해 보기로 했다. 사람이었다. 한 가족이 살금살금 우리 집 마당을 지나갔다. 경비원 외에 다른 사람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내 집에 몰래 들어온 것에 대해 화가 나는 것보다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주말이 되면 이쪽 길로 지나다니는 것 같았다. 알은체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까봐 며칠 더 두고 보기로 했다.그들이 오는 시간에 맞춰 차를 마시는 게 버릇이 되었다. 언젠가 다 같이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에는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경비원을 먼저 보냈다. 얼굴에 있는 흉터 때문에 놀라지 않았으면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가족은 내가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놀란 눈치였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마르셀 가족은 벨롬까지 가는데 집 앞 운하를 따라서 걷는 게 지름길이라 했다. 나는 우리집 마당을 거쳐도 좋으니 가끔 같이 차를 마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가장은 교사에 아내는 아름답고 아이들은 귀엽다. 잊고 있었던 내 가족을 보는 듯 했다. 그들을 보면서 그 때의 내 모습을 추억해 본다.영화는 주인공 마르셀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시간이 되면 그 할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지만 이 영화의 원제는 , 내 어머니의 성이다. 여기서 Le Chateau는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요새가 아니라 영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커다란 저택을 의미한다. 번역자는 왜 원제 그대로 이라고 이름붙이지 않고 이라고 했는지, 그리고 어머니와 그 대저택이 무슨 관계가 있어서 영화 제목이 내 어머니의 성인지 궁금했다.어머니는 마지막 저택에서 키우는 커다란 개를 무서워했다. 종내에는 쓰러지기까지 했다. 두 번째 집까지는 아무렇지 않아 하다가 마지막 집에 다다르면 걸음을 멈추고 혹여 무서운 개가 튀어나오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 모습이 마르셀에게 오래도록 기억되었나보다. 그래서 어른이 된 후 그 마지막 저택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어른이 된 마르셀은 마지막 저택으로 돌아와 지름길로 지나가지 못하게 한 마지막 돌문을 부숴버렸다. 아버지가 죽고, 친구가 죽고 동생이 죽고 어머니도 곁을 떠났다. 꿈같은 어린 시절은 그렇게 지나버렸고 곁에는 그 시절을 공유했던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르셀은 가족을 추억하려 그 저택에 들렀을 것이다. 어릴 때 올려다보았던 그 커다란 돌문은 어른이 된 후에는 그저 작은 쪽문일 뿐이었다. 이제는 무서웠던 큰 개도, 벨롬까지 가는 지름길을 막은 돌문도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도 없다.
세상을 여행하는 두 명의 방랑자들그림 1 출처: 다음 영화Breakfast at Tiffany's (Truman Capote, 1958)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1961년 작 의 원작소설이다. 이 책을 쓴 트루먼 커포티는 1924년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이 된 후 자퇴하고 에 복사하는 말단 사환으로 취직한다. 수많은 글을 써냈지만 열 번도 넘게 거절당하자, 더 이상 에 매달리지 않기로 한다. 1944년,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카포티는 를 관두게 되는데 이 일은 그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 후에 쓴 단편들은 여러 잡지에 게재됐고, 오 헨리 단편 상을 세 번이나 수상하면서 문학계에 알려졌다.1945년, 에 발표한 단편 은 트루먼 카포티라는 작가를 알리는 동시에 그에게 첫 번째 오 헨리 상을 받게 했다. 1958년에 발표해 카포티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굳히게 한 인기작 은 사실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마릴린 몬로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쓴 책이다. 실제로 마릴린은 이 영화의 주연을 맡고 싶어서 직접 짧은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제작사 파라마운트는 오드리 헵번에게 할리 역할을 주고 결말도 해피엔딩으로 바꿔버린다. 영화와는 달리 책은 폴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그의 추억 속 할리 고라이틀리는 영화와 거의 다른 인물일 뿐 아니라 이야기의 결말도 서로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그걸 증명하듯이 이 책은 아직도 매년 3만부 정도 팔리고 있다.Breakfast at Tiffany's (Blake Edwards, 1961)트루먼 커포티의 원작소설 을 영화로 만든 블레이크 에드워즈는 1922년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났다. 또 (1965)과 (1964)로 유명한 배우 줄리 앤드루스의 남편이자 존경받는 영화감독이다.그의 비평적, 흥행적 명성은 (1959) (1961) (1962) (1964) 같은 영화들로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1965) (1967) (1968) 그리고 수백만 달러의 실패를 가져왔던 뮤지컬 (1970)는 고6회 아카데미 평생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됨으로써 그의 노력이 인정받게 되었다.줄거리한산한 뉴욕 새벽거리를 노란 택시가 가로지른다. 검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한 여자가 차에서 내려 어느 건물 앞에 선다. 보석으로 유명한 TIFFANY&CO. 쇼윈도 안 보석들을 구경하면서 여자는 토스트와 커피를 꺼내든다. 초록색 선글라스와 진주목걸이,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검정 장갑을 걸친 여자는 여느 귀부인들처럼 기품 있고 아름다워 보인다. 할리 고라이틀리라고 불리는 그녀는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고양이 캣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위층에 폴 발잭이라는 소설가가 이사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우아한 외모와는 다르게 할리는 “신사는 숙녀가 화장을 고치는 데 50달러는 준다”며 남자를 돈으로 판단하고 술과 사치를 좋아해 통장에는 항상 몇 백 달러밖에 남아있지 않는다. 폴도 별다를 게 없다. 돈 많은 실내 디자이너 팔렌슨 부인의 정부로 살아가면서 1956년도 이후로는 변변찮은 책도 내지 못했다. 50살 이하 가장 잘나가는 부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줄줄 꿰고 있는 할리는 집에서 파티를 열고 모델 친구 메기 와일드우즈와 함께 온 두 명 중 러스티 트롤러를 신랑감으로 찍는다.그녀는 매주 목요일 씽씽 교도소에 샐리 토마토라는 수감자를 보러 가는데 할리에게 면회를 오는 대신 주당 100달러를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숙녀라면 그만한 돈은 다른 남자들에게서 충분히 받아낼 수 있다고 말했지만 엘머에서 처음 그녀를 보고 반해서 그런 제의를 했다는 말을 듣고 거칠고도 낭만적이라며 흔쾌히 수락한다. 그녀는 변호사에게 면회를 갔었다는 증명으로 매주 이상한 일기예보를 전하게 된다.폴의 아파트에 찾아온 팔렌슨 부인은 요즘 어떤 사람이 미행하는 것 같다며 남편이 눈치 챈 것은 아닐까 불안해한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놀랍게도 할리가 14살 때 결혼한 남편으로 그녀의 동생 프레드가 4달 후 제대하니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함께 살아야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할리는 남편에게 더 이상 길들일 수 없는 구도 자신을 소유할 순 없다며 뿌리친다. 그러던 중 할리는 동생이 군대에서 사고로 죽었다는 전보를 받고 크게 슬퍼한다.브라질로 출발하기 하루 전 할리는 폴을 집으로 초대한다. 준비한 요리를 실패하고 밖에 나가서 먹기로 한 그들은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마약 단속반에게 붙잡힌다. 씽씽 교도소에서 매주 샐리의 이상한 일기예보를 전하던 게 사실 암호화된 메시지였던 것이다. 기소된 할리는 폴이 준비한 만 달러의 보석금을 받고 풀려난다.브라질로 가 호세와 결혼하려는 꿈에 부푼 그녀는 택시 안에서 바로 공항으로 가 달라고 말한다. 후에 브라질의 대통령이 될 호세와 결혼하면 면책 특권을 받아 괜찮다고 명랑하게 말하는 할리에게 폴은 호세의 사촌이 가져온 편지를 건넨다.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는 그는 대대적으로 망신이 난 그녀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사랑고백을 또다시 거절하는 그녀에게 폴은 구속되는 걸 싫어하지만 결국은 자신 스스로 우리에 가뒀지 않느냐고 말하고 택시에서 내려버린다. 계속 부정했지만 결국 폴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할리는 폴을 뒤따라가고 빗속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느낀 점개인적으로 오드리 헵번이라는 영화배우를 매우 좋아한다. ‘현대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는 한때 동시대 모든 여성들이 그녀의 패션을 따라할 만큼 영향력이 컸고 무엇보다 연기할 때 보여주는 특유의 그 깜찍한 표정 때문이다. 1953년 그레고리 펙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덕분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뒤이어 나온 영화 (1954), (1964) 등을 모두 히트시켰다. 사실 연예인들이나 여러 대중매체에서 그녀를 따라해 옷을 입거나 머리카락을 자른 모습을 보고 ‘오드리 헵번’이라는 이미지만 두루뭉술하게 가지고 있었을 뿐 영화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몇 년 전 처음으로 그 유명한 을 보았고 곧 앤 공주에게 빠져들었다. 가상의 한 군주국가가 유럽 순방길에 오른다. 왕실의 딱딱한 규율과 통제에 피곤해지고 싫증이 난 공주는게 ‘헵번스타일’이라고 불렸다.나는 오드리 헵번의 화려하고 귀여운 외모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던 만큼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녀의 마음 또한 외모에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 그간 화려했던 영화배우의 생활을 접은 후 남은 생을 국제연합아동기구(UNICEF)의 친선대사로서 활동하기로 결정한다. 그녀는 빈민 구제 사업과 기아 퇴치운동 분야에서 활발하게 행동하다 1993년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유니세프에서는 ‘오드리 헵번 평화상’을 제정해 자선 사업가로 인류에 크게 공헌한 그녀를 추모하고 있다.평생을 170cm 키와 49kg의 마른 몸매를 유지한 그녀는 크리스마스 날 아들에게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의 한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자신이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해서 걸어라’라는 명언을 남겼다.영화 은 당시 전 세계인들을 비롯해 지금까지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많은 연예인들이 화보 촬영을 할 때 할리 고라이틀리를 따라해 검은 드레스와 검정 장갑, 진주목걸이와 올림머리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바로 오드리 헵번이 선글라스를 쓰고 보석상점 쇼윈도 앞에 서있는 장면일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여러 사람들이 패러디하는 등 아주 유명한 장면이다. 그 때 입었던 지방시의 까만 이브닝드레스는 경매에서 백만 달러에 가까운 46만 7200파운드에 낙찰되었다.키가 큰 오드리 헵번이 많이 신고 나온 3cm 혹은 4cm짜리 키튼 힐(Kitten Hill, 굽이 낮은 구두)라던가 얼굴의 반을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 등 영화 속 할리의 전형적인 패션도 큰 화제가 되었다. 또한 극중 할리가 떠나온 고향을 생각할 때 창문에 페파드보다 먼저 눈에 확 들어온다. 에 이어서 여러 패션들을 유행시켰고 통통 튀는 그녀의 매력을 잘 나타내는 명장면들을 탄생시킨 영화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까지도 꽤 큰 인기를 끈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몇몇 사람들은 오드리 헵번이 메인 모델로 등장하는 패션광고 한 편을 본 것 같다고 말한다.트루먼 커티스의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난 후 영화를 본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 말하는데 작가의 모습이 반영된 주인공들 중 소설가 폴 발잭의 눈에서 바라본 일들은 전반적으로 무미건조했기 때문이다. 가슴 떨리는 로맨스 장면도 없고 갈등이 한 번에 풀리는 전형적인 해피엔딩도 없었다. 대신 영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할리의 고독함이 소설에 잘 나타나 있었다. 작가 트루먼도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상류층을 동경했다. 그런 모습이 담긴 할리는 배경이 되는 회색도시 맨해튼과 비슷하게 겉으로는 화려하고 빛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누구보다도 쓸쓸하고 외로웠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외롭게 되지 않기를 원했다.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폴에게 사람은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며 아무도 자신을 우리에 가둘 순 없다고, 자신은 할리도 룰라메이도 그 누구도 아니며 이 노란 고양이처럼 이름도 없이 누구만의 소유물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할리는 정말로 고양이 같다. 특유의 도도함과 당당함으로 구속되기를 싫어해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가두려고 하면 금세 도망가 버린다. 하지만 또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금방 토라지고 자기를 봐달라고 한다.영화 속 주인공 할리가 키우는 노란 고양이는 강가에서 주워 온 이후로 아직까지 별다른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 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캣(고양이)’으로 부른다. 이미 같은 집에 살고 밤낮으로 보살피면서도 자신의 고양이가 아니라고 한다. 전부터 원하던 안식처를, 갑자기 기분이 우울할 때면 종종 찾아가기도 하는 조용하고 고고한 보석 상점 티파니와 같은 집을 갖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운다.
그림 출처: 다음 검색 “이제부터는 네가 자인이 애비다. 동생을 끝까지 돌봐야 한다.” 집은 불타고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몰살당할 위기였다. 겁에 질린 남이는 동생 자인의 손을 잡은 채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남이를 일으켜 세운 건 동생을 부탁한다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 대사를 통해 앞으로 어떤 내용이 펼쳐질 지 예상할 수 있었다. 남매는 곧 어떠한 문제에 말려들 것이고 남이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동생을 지켜야만 할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서는 매캐한 연기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고정되지 않고 흔들리는 앵글은 급박한 상황을 보여주며 보는 이가 그 상황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끔 했다.화면이 바뀌고 버즈아이 뷰(Bird's eye view)앵글을 통해 어느 마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될 장소가 바뀌었음을 알려줬다. 남이와 자인은 난리를 틈타 개성의 김무선에게 찾아갔다. 13년이라는 세월을 무선의 슬하에서 보냈고 무선의 아들 서군과 자인은 혼인하기로 약속했다. 혼례식 당일, 남이는 자인을 위해 예쁜 꽃신을 한 켤레 선물해주고는 활 쏘는 연습을 하러 산으로 갔다. 역적의 자식이 글은 읽어서 뭐하고 무예는 갈고 닦아 무엇 하냐는 말을 하기는 했으나 숲 속 깊은 곳 숨겨둔 과녁에 꽂힌 수많은 화살은 남이가 남몰래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의미했다.꽃 같은 신부와 훤칠한 신랑을 보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때 언덕 저 너머에서부터 푸른 바탕에 황금색 용이 수놓아진 깃발을 든 군대가 쏟아져 나왔다. 전쟁 씬에서 자주 쓰이는 익스트림 롱 샷을 통해 수많은 만주군의 모습을 표현했다. 마을에 쳐들어올 때는 아이 레벨 앵글을 이용해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느낌을 주었고 백성들의 목에 밧줄을 감아 끌고 갈 때에는 백성의 시점 샷을 통해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를 잘 나타내었다. 남이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청나라 정예부대가 휩쓸고 간 뒤였고 자인에게 선물했던 꽃신 한 짝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을 이용해서 무섭고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남이의 클로즈업 샷에서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못한 절망감과 당혹감을 찾아볼 수 있었다.압록강 어귀에 포로로 잡힌 백성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로우 앵글을 통해 보는 청나라 장수는 보다 권위적이고 무자비해 보였다. 도망갈 수 있는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고 하면서 도망가는 백성들을 하나하나 잡아 죽이는 장면에서는 버즈 아이 뷰와 아이 레벨을 적절히 섞어 현장감과 청나라의 잔인함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샌님이라고 놀림 받던 서군이 칼을 들고 맞서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선비의 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투가 적장의 화살에 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군은 뒤따라온 남이와 함께 청나라 장수들을 모두 없애버렸다. 적군에 의해 위상이 떨어졌어도 끝까지 항거해 승리를 이루어냈다. 여기서 서군은 당시 백성들, 나아가 우리나라 민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남이는 서군과 하인 두 명을 데리고 자인을 되찾으러 길을 떠났다. 그 모습을 버즈 아이 뷰를 통해 그려냈다. 황량한 벌판을 통해 남이와 서군의 남겨진 운명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압록강 너머에 위치한 만주군 주둔지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젊은 왕자 도르곤은 푹신한 의자 위에 거만하게 누워 있었다. 삼촌 쥬신타가 잡아 준 호랑이로 만든 가죽은 불에도 타지 않는다며 우쭐댔다. 도르곤을 비추는 로우 앵글은 자인이 왕자를 바라보는 시선임과 동시에 나아가 조선과 청국이 수평적 관계가 아닌 상하관계에 있음을 알려준다. 왕자의 침소로 붙들려 간 자인은 무사의 딸임을 잊지 않고 끝까지 대항했다. 자인과 도르곤이 서로 대치한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게 남이와 서군이 들이닥쳤다. 남이는 도르곤을 인질로 삼아 서군과 자인을 무사히 도망치게끔 했다. 결국 도르곤은 불이 붙지 않는다던 호랑이 가죽을 입은 채로 불타 죽었다. 이 장면은 하이앵글을 통해서 긍지 높은 청국의 왕자도 죽음 앞에서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했다. 도르곤의 죽음으로 모든 갈등이 해소된 게 아니었다. 또 다른 갈등이 생겨났다. 도르곤의 삼촌 쥬신타가 불에 타 죽은 왕자의 시신을 보고 앙갚음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기동력 있는 청군에게서 도망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화살도 조선보다 배는 크고 좋은 것을 썼다. 남이는 아버지가 물려준 작은 활에 의지해 목숨을 이어나갔다. 쫓고 쫓기는 상황에서 풀 샷과 클로즈업을 넘나들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쫓아가, 빠른 화살에 비해 느린 호흡으로 다이내믹한 느낌을 주었다. 이제 압록강이 지척이었다. 하지만 앞에 보이는 것은 낭떠러지뿐이었다. 남이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훌쩍 뛰어넘었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청군도 뒤따라왔다.오른팔에 청군 화살을 맞은 남이는 새로운 꾀를 생각해냈다. 우연히 들어선 곳 가까이에 호랑이 굴이 있었던 것이다. 청군 장수들을 호랑이 영역 안까지 데려온 남이는 괴성을 질러 호랑이를 불렀다. 절벽 위에 나타난 호랑이는 로우 앵글과 위에서 내리쬐는 조명을 적절히 섞어 영험하고 신묘한 느낌을 주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청군 장수들 중 둘을 무섭게 잡아채는 것도 잠시, 호랑이를 잡는다는 쥬신타의 화살에 곧 목숨을 잃고 말았다. 남은 장수들 중 하나가 ‘산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며 동요했다. 앞으로 청군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살짝 알려주는 복선과 같다.우거진 나무와 지리를 잘 이용해서 차츰 적군의 수를 줄여나가니 이제는 장수 둘만이 남았다. 로우 앵글로 찍히던 피사체는 청나라 군대에서 이제 남이로 바뀌었다. 남이는 바위 뒤에 숨어 쥬신타를 내려다보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단 한 발 남은 화살로 쥬신타와 다른 장수의 가슴을 꿰뚫었다. 이 때 남이의 모습은 로우 앵글과 역광으로 나타내 이제는 거의 신격화 되었다. 호랑이가 등장했을 때 썼던 기법과도 같았다. 승리를 만끽하는 것도 잠시, 가슴께에 붙은 금속 장식 덕분에 목숨을 건진 쥬신타는 끈질기게도 남이를 따라붙었다. 자인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가까워가는데 어느새 쫓아온 쥬신타가 활로 남이를 겨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서군이 활을 쏘려하지만 다친 팔 때문에 쉽지 않았다. 자인이 활을 받아들고 적장을 쏘려 했으나 이미 쥬신타의 화살은 그 활시위를 떠난 뒤였다. 대신 그 목표를 바꿔 남이가 탄 말을 쏴 아래로 고꾸라뜨렸다. 아슬아슬하게 화살이 피해갔다. 영문을 모르고 넘어진 남이는 뒤늦게 쥬신타를 발견했다.영화의 절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부분은 슬로우 모션 기법을 사용해 긴박한 상황에 반대되는 느린 호흡으로 보는 사람이 더욱 긴장할 수 있게 완성되었다. 상황은 쥬신타-자인-남이가 일직선으로 배치된 쓰리 샷으로 바뀌었다. 서로 활을 겨누고 있는 쥬신타와 남이 사이에 자인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람조차 남이를 도와주지 않았다. 첫 번째 화살은 쥬신타의 목을 꿰뚫지 못했다. 대신 적군의 화살이 남이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양 화살이 교차되는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화살을 다 쓴 쥬신타는 자인을 사로잡아 또다시 남이와 대치했다. 이제 남이가 그 활시위조차 당기지 못할 거라고 간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생을 지키려는 화살은 둥글게 곡선을 그리며 적장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두려움은 마주보아야 이겨낼 수 있고,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었다.마지막 청군 정예부대 장수까지 처치하고 남이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자인과 남이 둘만을 하이 앵글로 담으며 남이가 곧 숨을 거둘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자인은 남이가 품고 있던 꽃신 한 짝을 발견하고 자기가 가진 것도 내밀었다. 그렇게 꽃신 한 짝은 완성이 됐고 남이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킬 수 있었다. 압록강을 건너는 배 위에 누운 남이는 자인과 서군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인과 서군이 마주잡은 두 손 가운데로 남이의 모습이 보였다. 서군과의 결혼을 반대했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자인은 대신 서군이 지켜 줄 것이다. 아마 남이 역시 그리 믿고 마지막 미소를 지었다.감독 김한민은 미장센,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등에서 상을 받았다. 2011년도에 개봉한 역시 국회대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으로도 유명한 김한민 감독의 은 멜 깁슨 감독의 영화 와 비슷하다는 의견이 많다. 인질로 사로잡힌 가족을 구한다는 플롯에서부터 포로를 풀어주는 척 하며 모두 죽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에 김한민 감독은 전쟁영화에서 관습적인 틀과 시퀀스, 아이콘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마피아 영화에서 검은 양복, 권총, 마약, 납치라는 설정이 자주 나오는 것처럼 장르 영화에는 그에 따른 아이콘이나 시퀀스가 공식처럼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말도 약간은 다르다. 에서는 남이가 자인과 서군의 행복을 지켜주어 갈등이 모두 해소되지만 에서는 다른 부족에게서 가족을 구해내어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 유럽인들의 배가 정박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갈등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