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깨진 유리창 이론ⅰ. 정의깨진 유리창을 내버려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퍼지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Broken Window theory라고도 하며 가벼운 무질서를 방치하게 되면 나중엔 지역 전체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거리에 묵혀두면 “버려진 차의 부속품은 훔쳐도 돼”라는 사회의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전달되서 더 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즉,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거리에 방치하면 사회의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로 읽혀서 더 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다. 일상생활에서 경범죄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제때 처벌하지 않으면 결국 강력범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익명적 상황은 반사회적이고 공리적인 행위를 부추길 수 있다.ⅱ. 최초 명명미국의 범죄학자 조지 켈링과 정치학자 제임스 윌슨이 깨진 유리창 이론을 최초로 일컬었다. 1969년 필립 짐바르도는 유리창이 깨지고 번호판도 없는 자동차를 브롱크스 거리에 방치하고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사람들은 차의 배터리와 부품을 훔쳐가고, 또 거의 폐차 상태까지 자동차를 마구 부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자 그 지점을 중심으로 점차 범죄가 확산되어 간 것이다. 1982년 켈링과 윌슨은 이 실험에 착상하여, 미국의 월간지에 기서한 글에서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이름을 붙여 소개함으로써 이 현상을 개념화하게 된다.ⅲ. 적용 사례① 깨진 유리창의 이론을 응용해서 반영한 사례로는, 1980년대 뉴욕시에서 있었던 일이 대표 사례이다. 그 당시 뉴욕에서는 여행객들 사이에서 뉴욕 지하철은 절대 타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지하철의 치안은 말 그대로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깨진 유리창의 이론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하철 내의 낙서를 모두 지우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수행하여 실제로 지하철에서의 사건 사고가 갑작스럽게 줄어들었다. 이런 뉴욕 지하철의 높은 범죄율을 감소하기 위해서 뉴욕시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반영했다. 지하철 내 범죄율을 줄이기 위해 순찰을 강화하는 것보단 지하철 청소와 관리에 더욱더 중점을 둔 것이다. 그동안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뉴욕 지하철 낙서를 모두 지우는데도 꼬박 5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지하철 관리는 곧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2년 후부터 지하철 내 중범죄가 감소되기 시작했고, 94년도에는 절반 가까이 감소하는 결과를 토해냈다. 결국 본격적으로 지하철 환경 개선이 범죄 도시의 오명을 불식시키는데 성공했다.② 맥도날드는 어린이 세트에 더하여 공급되는 장난감의 재고 부족으로 어린이 세트에서 장난감을 뺐다. 그러자 어린이 세트에 대한 민원이 뒤따랐고, 그것을 처리하느라 다른 주문까지 밀리게 되었다. 그 결과, 어린이 세트와 상관없는 주문을 한 고객들의 불만이 폭발하게 되었다. 서투른 고객 대응, 느린 서비스와 같은 이미지는 맥도날드에 큰 손해를 주었고, 그 이후 격렬한 매각 하락을 겪게 되었다. 즉, 전체적 위기는 가벼운 위기관리의 부재에서 올 수 있기에 깨진 유리창은 바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 ‘깨진 유리창 이론’이 주는 가르침이다.③ 이재찬은 “물은 99도에서 끓지 않는다. 아무리 고생해도 1도가 모자라면 절대 물을 끓일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내세웠다.“ 회사 업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일에 있어서 100% 완벽을 추구해야 하며, 세세한 실수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미숙한 일 처리가 10번 반복하면 결국 30%대의 효과밖에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즉, 완성도가 100% 미만인 일은 아무리 열심히 되풀이해봐야 별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얘기이다. 특히 서비스업은 한 번의 실수가 제로의 결실을 가져올 수 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해놓고 회사의 변화와 창조를 아무리 외쳐봐야 그것은 빈말에 그칠 것이다.④ 또한, 해병대 캠프 사건을 사례로 볼 수 있다. 결국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안전기준을 맞추지 않으면 고위험 활동을 관리할 수 없게 된 사례가 가장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속담에서 근사하게 느껴볼 수 있는 뜻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말이 있다. 작은 일일 때 미리 처리하지 않다가 나중에 더 큰 일이 발생하여 큰 힘이 들이게 된다는 말이 있다.Ⅱ. 무관용 경찰의 활동ⅰ. 정의깨진 유리창 이론에 착안하여 미국의 뉴욕경찰청에서 시행하여 전파된 정책으로 사소한 일탈도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철저히 단속되어야만 더 큰 범죄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대수롭지 않은 일탈행위까지도 엄격히 단속하도록 한 경찰 정책이다. 무관용 경찰 활동은 사소한 무질서나 경미한 범죄 등에 대하여 경찰이 훈계방면이나, 범칙금 등 미약한 법 집행보다는 강력하고 엄밀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범죄는 지역사회 전체로 퍼지고 범죄의 경중에 있어서도 살인, 강도 등 중대범죄의 발생 건수도 증가하게 된다.ⅱ. 적용 사례①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격리장소를 벗어나면 경찰에 구속될 수 있는데 경찰이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위반하는 경우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선언한 사례가 있다. 경찰청은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위반하는 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같은 행위는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중대한 불법행위로 본다고 공포했다.② 경찰청은 최근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해 무고한 시민이 피해받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자, 무관용 원칙에 따라 음주운전에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경찰청은 무관용 원칙에 따라 ‘음주운전은 반드시 단속된다’라는 인식이 퍼질 수 있도록 엄정 대응할 예정이다.ⅲ. 깨진 유리창 이론과의 관계깨어진 유리창 이론과 무관용 경찰 활동의 관계는 무관용 경찰 활동을 실행함에 있어서 이론적인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사소한 범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사소한 범죄가 큰 범죄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사소한 범죄조차도 명확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관용 경찰 활동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이론적으로 보충해 줄 수 있는 이론이 바로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ⅳ. 무관용 경찰 활동에 대한 비판① 경찰의 재량행위가 개입되지 않는 비재량적 법집행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시민들과의 충돌이 증가함으로 인해 기존의 서비스 지향적 미국 경찰의 모습과 충돌이 되었고, 시민들과의 실제 충돌로 인해 경찰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 줄을 잇게 되었다.② 뉴욕시 경찰의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범죄통계의 허구성이 있다는 점→ 가식적인 결과에 비해 실제 체감하는 범죄예방효과는 크지 않았다. 통계 결과 상 범죄가 감소한 것으로 느끼게 되었으나, 실제 일반 시민들이 체감하는 범죄에 대한 두려움의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오히려 경찰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범죄예방활동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③ 혐의자의 불심검문이나 체포 등의 법집행과정에서 시민과의 갈등상황을 야기하여 경찰과 지역사회관계가 악화되어 지역사회경찰활동이 소극적으로 운영된다는 점→ 지역사회경찰활동과 정면의 배치되는 것으로서, 미국경찰상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④ 공격적, 비재량적 법집행이 더 많은 범죄자를 체포하게 되고 유죄 선고를 받게 하여 교정시설의 수용연구를 증가시켜 형사사법기관의 업무량을 증대시킨다는 점→ 비재량적 법집행 활동의 증가로 인해 많은 범죄자를 양산하게 되어, 범죄자 교정에 문제를 끼쳤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범죄에 대해 반성하고 교정, 교화되기 위한 목푤 처벌을 가해져야 하지만, 비재량적 법집행 활동은 그러한 활동을 저해시키는 주범이 되었다. 교정 시설의 과밀화로 인한 교정시설의 효과를 감소시키고, 수많은 전과자를 양성하여 사회적 낙인효과가 발생하는 등 큰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우선, 주제에 대한 내 입장을 표명하기 전에 ‘한국인은 논리적인가 비논리적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국인 말고도 전 세계 지구촌에 존재하는 사람들, 그뿐만 아니라 생물계 등이 될 수도 있는데 왜 굳이 한국인일까라는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의식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예술 등이 달라서 우리나라의 사회 구성원을 알아보고자 위 주제를 정한 것일까.내가 생각하는 한국인은? 논리적인 사람보다 비논리적인 사람이 훨씬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인은 비논리적이다’로 결정했다. 결정하는 과정에서 또 논리적이다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찾아보기로는 논리는 말이나 글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치에 맞도록 이끌어 가는 과정이나 원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논리란, 상대측 입장에서 근간이 되는 논거가 무엇이고,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 감정과 논리는 분리해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논리적인 말은 납득을 위한 말 즉, 전제와 근거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예를 들어, 전에 내주신 과제 ‘김치볶음밥과 카르보나라 중 김치볶음밥을 먹을래. 난 한국인이니까’에서 한국인이기에(근거) 김치볶음밥을 선택한다(결론)는 요지를 전한 논리적인 말이다. 이 논증엔 결론과 근거 두 요소만 들어있음에도 우리는 대략적으로 화자의 의중을 읽고 납득할 수 있다. 한국인의 김치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논리를 한국이 어딨는지도 모르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이에게 들려준다고 가정해 보자. 아이는 이를 납득할 수 있을까? 김치볶음밥이 뭐냐고 물어보기 바쁠 것이며 비논리적이다고 생각할 것이다.전제의 필요 여부의 핵심은 전제를 유추할 수 있느냐이다. 청자다’의 근거1 - 문을 닫는 행위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에 방문을 열어 놓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 사람들은 “여보시오, 문 좀 닫고 들어오시오.”라고 표현한다. 문을 닫는 행위를 들어오는 행위보다 먼저 하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가만히 곱씹어 생각해 보면 논리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투명 인간이나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오는 신기한 기계 인간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문을 닫고 들어올 수가 있겠는가? 이런 말을 들은 서양인들은 한국인의 사고 구조에 대해 대단히 의심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이런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그 상황에서 ‘한 개인의 출입’보다 ‘문을 닫는 행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고, 중요한 것을 앞에 두어서 ‘강조하거나 초점을 맞추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고, 이것이 한국인의 언어 수행에 반영되어 언어 관습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한국인은 비논리적이다’의 근거2 상황과 문장 요소의 생략물론, 위 상황처럼 언제나 전제를 사용해야만 논리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청자가 이미 전제에 대해 인지하거나 유추 가능하다면 전제를 구태여 언급하는 것은 TMI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구 둘이서 중국 음식점에 갔다. 한 친구가 “난 자장면, 넌?” 하고 다른 친구에게 묻는다. 그러면 다른 한 친구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자장면이야.” 친구의 대답을 글자 그대로 영어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I am a jajangmyeon, too.”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번역을 해 놓고 보면 한국어의 “나도 자장면이야.”라는 표현은 대단히 비논리적인 표현이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자장면이라면, 사람이 먹는 음식에 불과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나도’는 ‘내가 먹고자 하는 것도’ 혹은 ‘내가 주문하고자 하는 것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문장의 일부분을 생략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누가’와 ‘무엇’이고적 판단이 필요하면, 내 감정이 ‘옳고/그름’이라는 가치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것을 분리시키더라도 같은 결론으로 이어지는지 돌이켜보는 것이 논리적 사고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양쪽 입장에 대해 균형 잡힌 상태로 내 감정을 빼놓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논리적 오류를 피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서 내 가치를 더욱 강조하면 논리적으로 주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한국인은 비논리적이다’의 근거4 한국인 연주자이뿐만이 아니다. 예술에서도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한국 출신의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으면 어느 연주자에게나 거의 똑같은 연주적인 특성이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대연주자 뿐만이 아니라 일반 연주자나 음악 애호가의 연주를 들어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 연주자들은 누구나 음악적인 감수성이 풍부하여 표정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인이 갖는 국민성적인 특성과도 일치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정이 많고, 섬세하고, 전체적인 것보다는 부분적인 것에 집중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국인의 연주를 들어도 감정이 대단히 풍부하고 연주가 매우 섬세하다.그러나 너무 부분적으로만 생각을 집중해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연주자는 곡을 충분히 분석해 보고 연주할 때에 최소한 하나의 프레이즈 범위를 보고 그 프레이즈 내에서 각 음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음들의 상관관계에서 결정해야 하는데 나의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프레이즈보다는 마디, 또 마디보다는 하나의 박이나 하나의 개개의 음을 표현하는 데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그러한 경우는 피아노의 경우에도 나타나지만 단선율 악기나 성악 같은 경우에 그러한 문제가 잘 나타나는 것 같다. 그것은 한국인이 감정이 풍부하고 섬세하지만 객관적인 논리성이 부족하다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 한국인이 천성적으로 비논리적이지는 않으리라 본다. 결국 우리의 사회가 논리나 정당성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연주에까지도 영향이 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요즘 뉴스나 인터넷 댓교했다. 하나는 2002년 6월 발생한 여중생 효순, 미선 양 사망사건이고, 다른 것은 목하 진행 중인 한, 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시위다. 사설에 따르면 여중생 사망사건이 터지자 좌파들은 미군의 부주의에 의한 교통사고를 고의적 살인 사건으로 몰아가는 기민성을 발휘했다. 또 좌파들은 한, 미에 담긴 투자자 국가소송제가 한국의 사법주권을 침해한다며 지금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설은 이렇게 난리를 친 좌파들이 해경 살해 사건에는 입도 벙긋 못하고 있다며 “한국 좌파의 국적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라고 결론짓고 있다. 우선 사실관계의 오류부터 지적할 수 있다. 사설은 ‘좌파’가 누굴 말하는 건지 적시하지 않았지만, 좌파로 찍었음직한 사람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통합진보당은 사건 발생 직후 중국이 공식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도 없다는 비판 논평을 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도 논평을 통해 중국 어선이 불법행위 단속에 흉기로 대항하는 것을 비판하고 중국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사실관계의 오류보다 더 큰 문제는 그 뒤편에 깔린 심리다. 이참에 좌파를 비판해야겠다는 의욕이 앞선 탓인지 글은 논리를 소홀히 했다.그 결과 여러 논리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첫째, 중국 어선과 정부를 향한 분노가 왜 밑도 끝도 없이 ‘한국 좌파’로 튀었는지 논리적 설명이 없다. 둘째, 해경 살해 사건과 여중생 사망사건, 반 FTA 시위는 별개의 사건이다. 상대 국가, 사건 내용, 정황이 다 다르다. ‘좌파’가 똑같은 반응을 보여야 할 논리적 이유를 알 수 없다. 조선은 여중생 사건으로 인한 분노와 반 FTA 시위에 반미란 혐의를 씌우고 싶은 눈치지만, 증거가 없다. 설사 반미의 표출이라 해도 오늘날 반미는 세계적, 보편적 현상이다. 셋째, 다짜고짜 단세포적 색깔론을 또 동원했다. 사설은 “중화 사대에 찌든 한국 좌파”의 국적을 묻는 방식으로 색깔론을 제기했다. 이런 비논리는 논점 이탈, 비약, 확대해석, 성급한 일반화, 단순 비교 등 논리학상 초보적인 오류다. 그러나 복잡한 이론을 꺼로야”라는 말로 비논리성을 지적한 게 있었는데, 정곡을 찔렀다.그 점에서 이른바 논리적 정합성은 진보, 보수 사이 논쟁 이전의 문제다. 보수든 진보든 논리가 안 닿는 일방적 강변을 넘어 제대로 된 토론이 가능하려면, 논리가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 그 전제 아래 보수와 진보는 색깔론 수준의 치졸한 인신공격을 벗어나 치열하고 건강한 논리싸움을 벌일 수 있다. 그건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아름다운 장면이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비판은 신문의 권리이며 본령이다. 신문은 좌든 우든 누구도 비판할 수 있다. 특정 신문이 논조에 따라 좌파를 비판한다고 해서 그것 자체를 뭐랄 수는 없다. 다만 문제되는 것은 비논리다.‘한국인은 비논리적이다’의 근거6 카드회사의 홍보 문구경제 시사에서 인간은 논리적 오류가 많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천만 명이 본 영화라면 ‘와 얼마나 재미있길래.’ 하는 생각 드시죠. 그럼 천만 명이 쓰는 카드라면 ‘와 얼마나 좋은 카드길래.’ 하는 생각 안 드세요? 천만인의 카드 XX카드.” 한 유명 카드회사의 홍보 문구다. 이런 마케팅 전략으로 카드회사는 큰돈을 벌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카드회사의 주장은 논리적 오류로 가득 차 있다. 특정 카드를 1000만 명이 넘게 사용하는 이유는 회사가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품질과 직접 관련이 없는 유통망이나 마케팅 효과 때문일 수도 있다. 또 1000만 명 넘는 사람이 이 회사 카드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 물건을 살 때는 다른 회사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다. ‘1000만 명 사용 = 좋은 카드’라는 것에는 사실상 인간관계가 없는 셈이다. 다수 대중이나 군중을 활용해 어떤 주장의 타당성을 펴는 것은 명백한 논리적 오류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말 가운데 상당수는 이처럼 논리적 오류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이런 논리적 오류를 밥 먹듯 활용하면서 혹세무민하는 정치인도 있다.‘한국인은 비논리적이다’의 근거7 논리적 오류또한, 학교 교육에서 말하기와 글쓰기
6년 동안 끈질기게 쫓아온 테러범을 잡기 위해 오랫동안 추적해왔고 많은 희생과 괴로움을 참는다. 영국 정보부 대령은 겨우 힘들게 테러범이 한 집에 모여있는 것을 알게 되지만 지역이 관할지역이 아니라서 케냐의 군대를 투입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영국, 미국, 캐냐 이 3개국은 합동 작전을 펼쳐 딱정벌레 형태의 소형 드론을 통해 거처 안을 봤더니 자신들이 쫓던 모든 테러범들이 안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벌어질 게 분명해 보이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들이 흩어져 테러를 저지르기 전에 더 큰 피해를 막고자, 헬파이어 미사일로 타격하여 사살하려는 계획으로 전환하려 한다. 미사일로 폭격 명령을 내리지만 드론의 조종사는 폭발 반경 안에 빵을 파는 어린 소녀를 발견하고 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어 부수적인 피해를 재산정하기 전까지는 버튼을 누를 수 없다고 확고한 명령 불복종 의사를 밝힌다. 폭격에 의한 부수적인 피해, 즉 소녀의 목숨이 위험에 노출되자 각 수뇌들이 논쟁을 하는 중에도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결국 의견이 반으로 나뉘게 되자 이젠 그 자리에 없는 외무부 장관까지 수배해서 논쟁에 참여하게 된다. 한 명의 무고한 아이를 구할 것인가, 당장 몇 시간 내에 80여명의 사람들이 죽을 대형 범죄를 저지할 것인가를 서로에게 묻는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희생해야 되는게 사람의 목숨이라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부분에 대해 영국 수뇌부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맡겨 가며 떠들썩 하지만 연락이 닿은 미국 수뇌부들은 아주 단호하다. 결국 폭격 승인이 떨어지고 다시 전달된 미사일 발사 명령에 결국 버튼을 눌러 테러범들에게 헬파이어가 떨어지고 어린 소녀에게도 폭발 충격에 휘말리게 된다.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가지 계속해서 몰입감과 긴장감이 배가되는데 정말 흥미로웠고 리얼리티하게 보여줬다고 느꼈다. 굉장히 의미있고 깊게 생각해봐야 할 만한 내용들도 꽤 있었다. 여태 그동안 봐왔던 전쟁 영화와는 다르게 전투보단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초점을 두었기에 전쟁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보기에 추천할 만한 영화였던 것 같았다. 총성이 빗발치는 격렬한 전쟁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보다도 훨씬 절박한 느낌이 흐르는 영화였던 것 같다. 영화는 다양한 가치들이 충돌하고 또 그 안에서의 군사적, 법적, 외교적, 정치적인 책임 문제들이 뒤섞여 관객들을 끌어들여 몰입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국의 안전한 상황실 속에 몰아치는 명분과 가치의 싸움 그리고 다가오는 위험 안에 평온하게 있는 소녀의 대비되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많은 전쟁 영화들은 전쟁터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상황 속에서 많은 딜레마들과 윤리적인 문제를 다뤄왔는데 그에 비해 이 영화는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주는 딜레마들과 윤리적인 문제들을 더 집중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현대전에서 원격 드론 공격의 윤리적 이슈를 적절한 상황 설정으로 재구성해 우리에게 고민할 주제를 던져주었다. 영화 속엔 그 누구도 악은 없으며, 눈 앞의 소녀 그리고 테러범으로 인해 예상되는 희생자 등 각자의 윤리적, 도덕적 관점에 따라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관객은 이들 중 한 명에 동화되어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버튼 하나로 지구 반대편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현대 문명에서 우리가 택하는 선택들이 지구 공동체에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명작이었다. 진지한 주제 의식과 무거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등장 인물들의 갈등 속에 충분한 몰입감, 속도감, 긴장감을 제시해주는 전쟁 영화였다고 생각한다.6년 동안 끈질기게 쫓아온 테러범을 잡기 위해 오랫동안 추적해왔고 많은 희생과 괴로움을 참는다. 영국 정보부 대령은 겨우 힘들게 테러범이 한 집에 모여있는 것을 알게 되지만 지역이 관할지역이 아니라서 케냐의 군대를 투입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영국, 미국, 캐냐 이 3개국은 합동 작전을 펼쳐 딱정벌레 형태의 소형 드론을 통해 거처 안을 봤더니 자신들이 쫓던 모든 테러범들이 안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벌어질 게 분명해 보이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들이 흩어져 테러를 저지르기 전에 더 큰 피해를 막고자, 헬파이어 미사일로 타격하여 사살하려는 계획으로 전환하려 한다. 미사일로 폭격 명령을 내리지만 드론의 조종사는 폭발 반경 안에 빵을 파는 어린 소녀를 발견하고 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어 부수적인 피해를 재산정하기 전까지는 버튼을 누를 수 없다고 확고한 명령 불복종 의사를 밝힌다. 폭격에 의한 부수적인 피해, 즉 소녀의 목숨이 위험에 노출되자 각 수뇌들이 논쟁을 하는 중에도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결국 의견이 반으로 나뉘게 되자 이젠 그 자리에 없는 외무부 장관까지 수배해서 논쟁에 참여하게 된다. 한 명의 무고한 아이를 구할 것인가, 당장 몇 시간 내에 80여명의 사람들이 죽을 대형 범죄를 저지할 것인가를 서로에게 묻는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희생해야 되는게 사람의 목숨이라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부분에 대해 영국 수뇌부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맡겨 가며 떠들썩 하지만 연락이 닿은 미국 수뇌부들은 아주 단호하다. 결국 폭격 승인이 떨어지고 다시 전달된 미사일 발사 명령에 결국 버튼을 눌러 테러범들에게 헬파이어가 떨어지고 어린 소녀에게도 폭발 충격에 휘말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