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앗수르 제국의 시작노아의 세 아들 중 셈의 후예로 티그리스 강 상류에 거주하다가 후에 소아시아로 퍼져 나간 아시리아 족속이다.앗수르는 B.C 2000년경부터 이미 독립 왕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였고, 기원전 9세기에 오자 앗시리아는 점점 커가고 있었다.기원전 745년에 일개 병사였던 디글랏-빌레셀 3세가 정권을 찬탈하여 왕좌에 오르면서 앗시리아는 제국주의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는 시리아와 이스라엘, 최종 목표로는 애굽 점령을 꿈꾸었고 애굽을 기반으로 지중해 연안국을 손에 넣고 싶어 했다.앗수르는 처음에 너비 160km, 길이 640km 크기의 땅을 소유한 작은 나라로 출발했다.그런데 그들이 제국주의를 펼치며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서쪽으로는 애굽까지, 북으로는 러시아까지, 남으로는 아라비아 펠릭스까지 뻗어나가 3,200km에 걸친 소아시아와 초원과 사막을 장악하고 다스렸다고 한다.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아시리아 왕국은 인류 역사상 어느 왕국보다도 오래 지속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세기까지도 앗수르의 유적은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앗수르의 존재 여부는 영국의 고고학자 레이어드의 1846년부터 약 7여년에 걸친 니느웨에 대한 발굴로 모든 의심이 사라지게 된다.▶ 요나 선지자와 앗수르 (B.C. 8세기)앗수르는 제국주의를 펼쳐가면서 주변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요나를 불러 북이스라엘의 적국 앗수르로 가서 그들의 수도 니느웨 백성에게 심판을 선고함으로써 그들을 구원할 계획을 전하라고 말씀하신다.요나의 말을 전해 듣고 니느웨의 왕과 대신들과 백성이 모두 금식하고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요나의 전도를 통해 구원 받은 앗수르는 이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어야 했다.그러나 앗수르는 제국주의의 야망을 저버리지 못하고 질주를 계속하다가 150년 후 나훔 선지자에 의해 결국 ‘앗수르의 멸망’ 선포를 듣게 된다.▶ 북이스라엘과 앗수르제국주의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의 16번째 왕인 므나헴이 왕위에 오르자 드디어 북이스라엘을 침략해 온다.므나헴의 아들이었던 브가히야를 죽이고 쿠데타로 왕이 된 18번째 왕 베가 때에 앗수르는 더욱 노골적으로 제국주의를 드러내고 북이스라엘을 점령해 가며 백성을 앗수르로 잡아가기 시작했다.▶ 앗수르의 식민지 정책과 사마리아인북이스라엘 19번째이자 마지막 왕이었던 호세아 왕 때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공격해 오자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친다. 그러다 호세아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도움을 청하면서 조공을 보내지 않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곳을 3년간 에워싼다. 호세아가 왕이 된 지 9년째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한다.앗수르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다가 앗수르 제국의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살게 했다.그리고 북이스라엘에도 마찬가지로 다른 침략당한 나라의 사람들을 들여와 살게 한다. 이것이 앗수르 제국의 식민지 정책이다. 민족들을 섞어 인구 혼혈 정책을 실행함으로 한 단일 민족이 민족정신을 형성하여 반란을 도모하지 못하도록 아예 민족 근원의 싹을 제거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북이스라엘의 혈통이 섞이게 되고 그 새로운 혼혈족이 바로 사마리아인이다.▶ 남유다의 외교 정책과 앗수르의 제국주의북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군의 공격에서 피하기 위해 ‘친앗수르 정책’을 폈던 아하스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끊임없이 하나님께로 외교 노선을 바꿀 것을 요청한다.형제국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하는 데 어떤 빌미를 제공하지 말라는 것이며, 앗수르의 종교적 영향을 받을 것이 문제될 것이며, 앗수르는 반드시 침략적 속성을 드러내는 제국주의의 본질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아하스 왕은 이사야 말을 듣지 않고 앗수르를 동원해 북이스라엘이 망하는데 결국 돕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그리고 이미 바알과 아세라 우상들이 가득한 남유다에 앗수르의 신들까지 수입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한 몸 가득 받으며 그의 아들 히스기야에게 왕위와 나라의 위기를 함께 물려주고 죽는다.히스기야가 왕이 된지 14년째 앗수르 왕 산헤립이 다시 남유다의 예루살렘을 제외한 모든 성읍들을 빼앗아 점령한다.히스기야가 그의 대신들을 통해 랍사게가 한 말을 전해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출발했으나, 예루살렘에는 도착하지 못할 것이며, 화살 한 발 쏘지 못하고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오던 길로 돌아갈 것이라고 응답해 주신다. 그리고 그날 밤 앗수르의 18만 5천 명은 모두 죽고 만다.그리고 150년 전 요나 선지자를 통해 은혜와 긍휼을 베푸셨던 하나님은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는 니느웨에 대한 완전한 멸망을 가차 없이 말씀하신다.
요한복음을 읽으며 예수님이야말로 장차 오실 구원자에 대한 성경적 소망을 성취시키신 분임과 동시에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완벽하게 계시하는 분임을 고백하게 된다.책은 3가지로 나눠 요한복음의 신학적 주제를 말하고 있다.예수님의 정체성,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최종적 계시라는 믿음과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들 사이의 관계성, 현세에서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종말론적 삶, 즉 영생에 관하여 이다.● 예수님의 정체성이스라엘 유대민족들은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통적 대망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이 모세와 같은 선지자 및 메시아의 역할을 충족하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전통적 대망사상에 그치지 않는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또한 하나님이라는 주장으로 복음서를 시작한다. 또한 예수님이 영원부터 하나님과 하나라는 사실을 복음서 내내 강조하고 있다.이러한 요한의 재정의 중 주목 되어져 보아진 것은 14절이다.요한복음 1:14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요한은 예수님을 “말씀”과 동일시하며, 그 말씀을 영원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것과 “하나님” 자신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존재 및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자간으로 묘사한다. 그 분의 아들 됨은 우리가 개역성경을 통해 “독생자”로 되어 있으며, 부자로 기억하지만 잘못 끄집어낸 번역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종류”라는 의미이며, 그분의 아들 됨은 “종류에 있어서 유일하다” 결국, 이 표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이라는 의미이다.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선지자 또는 고난 받는 종 또는 메시아의 특성을 지닌 이스라엘의 임금이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분은 모든 특성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통해 하늘이 열리게 하시는 분이며,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그 하늘 아래 있는 존재들에게 계시하는 분인 것이다.● 표적과 신앙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표적을 언급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예수님을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며 생명을 갖게 하려 한다고 말하고 있다.예수님이 사역을 하시는 동안 사람들을 위해 표적을 행하실 때, 그들이 그 표적들을 보고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에 관한 주장을 참된 것으로 믿도록 하신다. 요한 또한 그 표적들을 보고 믿기를 희망한다.하지만 표적을 통해 온전한 신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요한은 말해주고 있다. 니고데모가 표적을 통해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심을 알지만, 예수님이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과 성령으로 나는 출생에 대해 말씀하시기도 한다. 또한 표적에 대한 집착은 예수님에 대한 적대감을 가리킬 수도 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요구에 대답하기를 거부하면 그들은 적대감으로 돌아서기도 한다.오늘날 현대 기독교인에게도 많이 적용되어지는 것 같다. 예수님을 성공주의와 번영주의로 희생양을 삼아 예수 믿고 잘되는 사람들, 흔히 부자고 유명인들에게서 보여 지는 그들의 업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예수 믿고 잘된 부자들을 보고 수많은 성도들은 그것을 표적이라 여기고 주일성수를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이 땅에서의 번영과 명예를 쫓는 것이 곧 표적이라 여기고 사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지 않나 되돌아보게 되고 회개되어 진다. 잘못된 표적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닌 살아도 죽어있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가 종종 잊게 된다.표적의 중요성은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서, 자신과 아버지는 하나라는 사실과 그래서 아버지처럼 자신도 역시 합법적으로 안식일을 위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실 수 있으며(5:16),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이고(6:32-33, 35, 50-51), 세상의 빛이며(9:4-5),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사실(11:25)을 설명 하실 수 있다.● 영생요한복음의 궁극적 목적은 독자들이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출현 및 가르침을 통해 영생과 부활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 마지막 날로부터 떨어져 나와 현재 속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한다.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통해, 현재의 죽음의 상태로부터 나와 생명의 상태로 들어오는 것이다.요한은 복음서 전체를 통해 독자들에게, 누가 어떤 진영에 속하는지 현세에서는 다소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예수님이 죽은 자들을 살리시고 자신의 백성을 위해 재림하시는 마지막 날이 될 때까지, 반드시 예수님 안에 거해야만 한다. 고난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의 신앙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가름되는 현재가 아직 남아 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자들은 육체적 죽음을 경험할 것이지만, 결코 죽음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며 하나님 및 그의 아들과 함께 영원한 교제를 누릴 것이다.
기독교와 이단 서감문 “이단논쟁” 2110061 안지영이 책은 본문에 들어가기 전 성경 읽기를 위한 중요 지침에 대해 이야기 한다.이것은 본문 못지않은 중요한 내용으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듯하다.기독교와 이단 서감문 “이단논쟁” 2110061 안지영기독교와 이단 서감문 “이단논쟁” 2110061 안지영▶ 구약 성경 39권, 사복음서를 시간 순서대로 다시 분류하다.문학적 유형에 의해 분류되어 있던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를 역사적인 순서에 의해, 예수님의 생애 기록인 사복음서 내용을 시간과 공간개념으로 새로 배열함으로 복잡하고 헷갈리게 느껴졌던 부분들이 정리되어 간결해 짐으로 조금 더 쉽고 재밌게 성경이 읽혀질 것 같다. 그동안 그냥 목록 순서에 의해서만 읽은 걸까? 이런 순서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진작 해보지 못한 걸까? 이렇게 정리되어 나와 있는 책들이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이런 후회스러움과 함께 빨리 성경을 읽고 싶어졌다.기독교와 이단 서감문 “이단논쟁” 2110061 안지영▶ 성경을 꿰뚫는 안경성경 전체의 큰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부활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영원히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세우셨다는 것이다.성경이 결국 말하려고 하는 ‘중심 주제’를 통해 전체적인 맥락을 봐야한다. 그래야 전체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힘이 생겨 더 깊이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내 삶을 경륜해 가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방향성을 알게 된다.문학적 틀 속에서 무슨 뜻을 가진 것인가 고찰해야 한다. 그래야 문자적으로만 읽지 않을 수 있고, 새로운 교리를 만드는 이단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신. 구약 성경 읽기태초에 만드신 하나님 나라 ‘에덴’을 회복하기 위해 열심을 내시는 하나님 앞에 저절로 겸손해지게 된다.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전적인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 자녀로 삼아주신 것도 감사한 일인데 인간은 그의 통치를 거부하며 사단의 통치를 따르려 한다. 그렇게 타락하고 몰락의 길을 가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 나라 ‘왕’이 직접 인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구원해 주신다 말씀하신다.그 구원은 죄 사함을 받음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이 되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의 통치 아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그렇게 하나님의 열심으로 오늘 우리까지 하나님 나라 백성 되게 하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하나님 나라의 존재의의는 열방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일이며, 하나님 나라 백성의 존재 의의는 세상나라 정복이다. 선교인 것이다.성경 전체의 핵심사상 중 하나가 바로 이 선교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가 지금도 역사 안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역사 속에서 연속적으로 성취되는 하나님의 목적과 남은 과업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구원 얻은 자로서 그 얻은 구원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과 사명을 자각하게 된다.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며, 존재 의의를 잃어버리고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에는 심판을 받게 된다.● 나가는 글성경은 오늘 나로 하여금 깨달음을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기록으로 남기신 것이다.역사적인 배경과 연결해서 읽지 않으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중간시대를 알아야 신약이 열리고 신약의 배경이 되는 정치, 사회, 문화를 알아야 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됨을 알았다.
‘이단 논쟁’ (목창균 저)을 선정하게 된 동기는 책이 좀 두껍기는 하지만 학기 초 강의를 신청하며 강의의 목차와 내용이 비슷한 것으로 학습에 도움이 될 만한걸 찾다가 읽게 되었습니다. 워낙 강의를 꼼꼼하게 해주셔서 겹치는 내용들이 많았고, 다루지 않았던 이단들에 대해서만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단의 정의이 책에서도 이단의 정의를 어학원적, 신학 및 종교적, 교회사적으로 나누었다.1신학 및 종교적인 면에서 이단은 정통의 정반대 개념으로 양자의 대비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정통이 교회가 공인한 신앙의 진술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단은 교회가 거부한 신앙의 진술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교리는 시초부터 규범적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찰과 논의 과정을 거쳐 정립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교회가 공인한 것이 정통이 되고, 거부한 것이 이단이 된 것이다. 둘째, 이단은 정통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고의적으로 일탈한 것이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출현하여 상당 부분 정통적인 것을 공유하지만, 결정적인 것에서 갈라지는 것이다. 셋째, 정통은 초대 교회의 가르침과 동일한 것이라면, 이단은 그것과 전혀 다른 주장이다.교회 안에서 출현하여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며, 정통 신앙으로부터 고의적으로 일탈하는 자와 그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으로, 겉모습은 기독교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기독교와 상충하는 것이다.▶ 이단의 가장 큰 문제기독교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며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단은 교회에 대해 긍정적인 기능도 없지 않다.1. 정통 교리 형성에 촉매 역할을 한다. 정통 신앙의 수호자들에게 그 오류를 고발하고 진리를 밝히게 하는 자극제가 되고 정통교리 정립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2. 교리에 대한 신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킨다.3. 화석화된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부패한 교회를 개혁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단의 발생원인 여러 견해가 있지만 종합하면,1. 성경과 교리에 대한 해석 문제다.2. 교회의 문제점이나 취약점에 대한 반작용이다.3. 개인적 불안과 사회적 위기 상황이다.▶ 이단 판별 (한국 교회의 보수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5가지 기준으로)1. 성경의 가감이다. 교회는 성경 66권을 기독교 유일의 경전으로 믿고 신앙과 생활의 규범으로 삼는다.2.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제한하거나 부인하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믿는다.3. 새 계시와 영감이다. 교회는 정경의 완성과 더불어 성서적 계시, 규범적 계시는 종료되었으며, 성령의 조명은 계속된다고 믿는다.4. 비윤리적이며 반사회적 집단이다. 5. 혹세무민이다.▶ 이단의 대처 방법첫째, 말씀의 회복이다. 최선의 길은 체계적 성경공부와 말씀에 대한 묵상이다.둘째, 교리적 신앙의 강화다. 성경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올바른 신앙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셋째, 교회는 영성 회복과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넷째, 균형 잡힌 신앙이다. 어느 한 면이나 어느 한 교리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편향적인 신앙을 지양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온건한 신앙 태도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고대 교회와 이단 논쟁 중에서도마복음이 정경에서 제외되고 이단적인 문서로 밀려나게 된 근본적 이유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고 믿는 것과 전혀 다르고, 사도적인 교회와 신학적인 연속성도 없으며, 그 기원과 출처도 의심스러운 내용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적어도 초보적인 형태의 영지주의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이단 논쟁 중에서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종교운동 가운데 하나가 흔히 몰몬교라고 부르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다. 몰몬교는 여러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다신론, 인간도 신으로 승화할 수 있다고 보는 인간 이해, 인간 영혼의 선재,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미완성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반면, 인간의 업적을 강조하는 구원론, 지옥 존재 부정, 천국을 세 종류로 나누고 모든 사람이 그중 하나에 간다는 종말론, 죽은 자의 세례를 통해 변경 가능한 것으로 보는 사후 기회설, 일부다처제, 천상에서의 결혼 등을 주장한다.▶ 한국 교회와 이단 논쟁 중에서김기동과 베뢰아 계열은 귀신 쫓는 것을 그리스도의 근본적인 사명으로 보았다. 한국 무속신앙의 귀신론과 성경의 귀신론을 혼합, 독자적인 해석을 하며 자신의 견해가 성서적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전통적인 귀신관과 조화되기 때문에 그의 추종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장림은 규범적인 계시의 종국성을 부정하고 계속성을 주장하며, 예수의 재림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윤호의 가계저주론은 조상의 죄와 벌이 후손에게 전해질 수 있다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죄의 연대성이나 사회성보다는 원죄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사역 이후에도 원죄와 그 결과적 저주가 신자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복음을 구약 율법의 조명 아래 재해석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초석(예수중심교회)의 귀신론은 김기동의 주장과 거의 동일하다. 신비주의적 열광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며 귀신 축출, 긍정적인 사고, 기복주의적 축복관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이명범의 레마선교회(트레스디아스)는 인위적 방법을 통해 감성을 자극하여 영적 각성과 변화를 유도하는데 신학이나 교리가 아니라 신앙훈련이다. 트레스디아스는 그 인가가 취소되었다. 이재록(만민중앙교회)은 극단적 신비주의에 속하는 직통 계시파로 분류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직통 계시와 대언을 강조하는 극단적 신비주의와 그에 대한 신격화, 우상화 현상이다. 그가 본래 속했던 교단으로부터 1990년에 이미 파직되었다.● 나가는 글이번 강의와 책을 통해 이단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전염병 같은 자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