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바다를 통해 표현되는 인간의 삶노인과 바다의 줄거리인간의 삶을 축약한 이야기유한하기에 가치 있는 삶파멸하더라도 패배하지는 않는 것바다를 통해 표현되는 인간의 삶흔히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바다에서 항해하는 것으로 비유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삶의 고난을 겪을 때는 거친 풍파(바람과 파도)를 만났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 인간의 삶을 바다를 통해 비유하는 것일까? 그것은 곧 ‘바다’가 우리네 삶의 터전과 환경으로 묘사하기가 참 적절한 곳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다를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기가 참 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를 읽으면서, 멕시코 만의 바다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한 노년을 통한 ‘인간의 삶’을 잘 들여다볼 수가 있었다.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바로 그 노년의 소설 속 주인공, ‘산티아고’는 중앙아메리카 쿠바의 ‘아바나’라는 마을에서 멕시코 만을 따라 어업 일을 하는 늙은 어부이다. 그는 84일이라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수치스러울 만큼 긴 시간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하였지만, 85일째가 되던 때, 곧 희망을 놓지 않고 다시 한번 바다에 갔을 때, 드디어 소망하였던 큰 대어(청새치)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 대어와의 홀로 긴 사투를 끝에 결국 그 대어를 잡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작중의 말마따나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는 법’이어서 그런지, 산티아고는 대어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든 상어 떼들에게 잡은 대어를 빼앗기게 된다. 그래서 결국 뼈만 앙상하게 남은 물고기와 함께 항구로 돌아오게 되는 것을 끝으로, 소설의 이야기는 막을 내리고 있다. 생사를 건 노력 끝에 얻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결과로 말이다.인간의 삶을 축약한 이야기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 곧, ‘한 인간의 삶을 잘 축약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부모에 의해 태어나 이제 삶을 살아가기 시작 한 인간이 ‘바다’라는 자신의 삶을 항해해 나가면서, 여러 가지 개인적인 꿈과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사투를 벌이게 되지만, 결국 유한한 수명을 지닌 삶의 한계로 인하여 다시 항해를 시작하기 전의 뭍으로 되돌아갈 때, 즉 다시 말해 죽게 될 때에는, 이루었던 그 모든 것들을 전부 내려두고, 주인공 산티아고 그랬던 것처럼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유한하기에 가치 있는 삶그래서 나는 그런 연유로 인간의 삶이란 것은 결국 허무함과 동시에 무의미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내 곧, ‘그 끝은 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의 삶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끝이 있기에 지나가는 순간, 순간들이 소중한 것처럼 바로 그 유한성이 주는 귀중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티아고가 대어를 낚기 위해 노력하였던 그 모든 몸부림은 결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한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라는 소설이 평범한, 아니 굉장히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상류층의 삶을 사는 한 남자가 병을 얻어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세세하게 그리고 있는 바로 그 소설이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특별히 자신의 삶에 굉장히 집착이 강한, 곧 나름대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게 된다면,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동물농장 ? 조지 오웰자유국가에서 태어나 정말 다행이다동물농장, 풍자소설임과 동시에 우화소설 속에 드러난 정치적 행태들시대를 떠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잘못된 사회는 대중에게도 책임이 있다자유국가에서 태어나 정말 다행이다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참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사실 현재 나는 뭐 정부가 하는 일이라던가 들려오는 소식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요즘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자유가 완전히 억압받는 ‘북한’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바로 이 소설, 조지 오웰의 을 읽으면서 하게 된 생각이다.동물농장, 풍자소설임과 동시에 우화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정치적 및 역사적 풍자 소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이 지난 과거의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이 지배하였던 역사적, 그리고 정치적 상황들을 비판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또 당대에만 국한되어 있는 풍자소설이 아닌 우화라고도 할 수가 있겠는데, 그 이유는 이 이야기가 당대의 상황을 풍자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혁명’에 대한 실패와 권력의 타락, 그리고 독재 등에 대한 이야기들 또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가령 이것은 과거 러시아뿐만 아니라, 현재의 어딘가(북한 등)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며, 또 앞으로의 미래에서도 발견할 수도 있는 인류사의 모습이기도 하다).소설 속에 드러난 정치적 행태들또한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더러운 현실의 정치적 행태(?)들 또한 발견할 수가 있는데, 예를 들어 소개하자면, 소설의 이야기를 통해 지배세력(또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규칙 등을 바꾸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거나, 비난의 화살이 자신들에게 쏘아질 것 같으면 공공의 적을 만들어서 그 화살을 그 대상으로 향하게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뿐만이 아니라, 불안해하고 의심스러워하는 대중(국가의 국민들, 소설에서는 동물농장의 동물들)들을 달래기 위해서 뛰어난 언변 가를 차용하여 선전을 한다거나, 통계자료나 문서 같은 것들을 조작하는 모습 또한 볼 수도 있다.시대를 떠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그래서 마치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어떠한 특정 세력들의 모습이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내게 이러한 생각을 하게 만든 것으로 보아, 역시 이 소설은 단지 당대의 러시아 스탈린 사회만을 비판한 풍자소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내가 말한 것과 같이 시대를 떠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띤 ‘우화’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이 소설, 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읽히게 될 이야기라고 생각을 한다.잘못된 사회는 대중에게도 책임이 있다끝으로, 나는 작가 조지 오웰이 이 작품을 통해서, 러시아 사회주의와 타락한 지배세력 등을 단지 비판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독자들에게 어떤 귀중한 메시지 또한 남기고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억압받고 있는 이러한 지배세력을 만든 책임은 바로 우둔한 대중들에게도 있다’라는 메시지를 말이다. 소설을 보면, 지배세력인 돼지들의 부당한 처사들에도 불구하고, 옳고 그름을 구분할 생각도 없이 맹목적으로 그들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양들이나, 잘못된 것을 순간 자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내 더 알아볼 생각도 없이 바로 수동적으로 수긍해버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말들이나, 그리고 아예 이래나 저래 나 어떻게 하든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당나귀 등의 모습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통해 ‘이러한 부당한 권력의 독점과 자유가 억압된 사회는 단순히 한 지배세력의 잘못만이 아니라 그것이 그렇게까지 될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며 방관한 무지하고 게으른 대중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깊은 몰입감을 주는 소설, 오만과 편견다아시에게 감정이입평범한 소재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편견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 모습을 보여주자깊은 몰입감을 선사하는 소설, 오만과 편견소설을 오래간만에 참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은 단지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의 감상에 앞서, 서두의 ‘작품과 작가 소개’에서 옮긴이가 왜 이 작품에서 보이는 작가의 관찰력과, 평범한 일상이라는 가벼운 소재로 이렇게 흥미진진한 작품을 쓰는 것을 두고서 큰 칭찬을 하고 있는지를 보며, 나 역시 매우 공감을 할 수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게다가 이외에도 소설 속, 등장인물 중 하나인 ‘다아시’라는 인물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에게 깊은 이입을 하며, 좀 더 소설에 몰입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었기도 하였다.다아시에게 감정이입왜냐하면, 소설 속 다아시라는 인물은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의 ‘오만’한 모습이라던가 하는 겉모습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편견’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는 ‘귀족’이라는 신분에 의해, 그리고 또 어려서부터 자라난 환경에 의해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솔직한 태도를 보이며, 또 기질적으로 낯선 이들 앞에서는 무뚝뚝하며, 비사교적인 태도로 사람들로부터 쉽사리 다가가기 어려운 인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는 그를 잘 알지 못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러한 겉모습을 보고, 굉장히 오만하다며 나쁘게 평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삶에서 종종 겪는 일이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가 있게 되었다.평범한 소재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그리고 소설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이 아무리 19세기의 과거라고 할지라도, 일상에서 흔히 펼쳐지는 남녀 간의 연애라던가 결혼이라는 보편적인 흔한 주제이므로, 나는 쉽게 공감하며 편하게 읽을 수가 있었다. 또 여러 등장인물들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로 인하여서,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며 읽을 수 있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이야기에서 보이는 여러 인물들이 정말 ‘다양한 인간상’들을 각각 대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나처럼 이 소설을 읽는 다른 독자들 역시, 어떤 소설 속 특정 인물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 인물들 중 하나를 보고서, 실제 자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릴 수가 있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편견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 모습을 보여주자그럼 이제 끝으로 사랑에 서툰 내가, ‘연애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오만과 편견이라는 소설을 읽고서, 개인적으로 깊이 깨달은 점을 언급하면서 이 감상을 마치도록 하겠다. 소설은 주인 공격 커플이라고 할 수가 있는 ‘피츠 윌리엄 다아시’와 ‘엘리자베스 베넷’이 오만(다아시)과 편견(엘리자베스)이라는 그들 각자의 태도로 서로를 오해하면서, 그로 인한 어긋난 관계로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기가 매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야기의 끝에 가서는 진정한 커플로써 맺어지는 해피엔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그래서 연애에 서툰 나는 이를 보고 이제, 어떤 이성 간의 관계를 해나감에 있어서, 좀 더 용기를 가져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다아시 역시, 오만하고 비사교적인 모습으로 인하여, 엘리자베스에게 나쁜 편견을 받게 되어, 그녀의 사랑을 얻는데 실패할 뻔하였음에도, 결국 운명적으로(기령 우연히 자꾸 그녀와 만나게 된다거나) 그녀와 맺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이제는 관계가 잘못될까 우물쭈물 두려워하고 겁을 낸다기보다는, 만약 ‘될 인연이라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편히 갖고, 그 상황과 자리에서 내 모습 그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상대를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 편견이나 오해에 두려움으로 회피하거나, 과장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아시가 그랬던 것처럼, 내 모습 그대로의 나만의 강점인 솔직함과 진정성을 가지고, 문제를 정면 돌파하며 행동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왕자 ? 생텍쥐페리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왕자의 줄거리 인상 깊었던 부분 인생의 본질을 담고 있는 이야기 어른을 위한 동화 ‘어른을 위한 동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가 이에 걸맞은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동화를 읽는 소위 어른인 독자들에게, 이제는 과거 어린 시절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한 번쯤 반성해 보게끔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이 동화를 겉모습만 놓고 표현해 본다면, 비행기 조종사인 주인공이 과거에 만났던 한 친구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가 있겠는데, 그 친구란 바로 책의 제목인 ‘어린 왕자’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어린왕자의 줄거리 그리고 그 ‘어린 왕자’는 비행기 조종사인 ‘나’라는 주인공이 6년여 전 사고로 사하라 사막의 불시착 곳에서 만났던 외딴 별의 외계인(?)이라고 소개할 수가 있다. 이 둘이 처음 만났을 당시, 어린 왕자는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서 비행기를 고치던 주인공에게 다가와서 뜬금없이 양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이에 주인공은 과거 어린 시절, 주위 어른(?) 들에 의해 화가의 꿈을 접어서 그림 실력이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한 그림을 그려 주게 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주인공은 어린 왕자와 함께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점점 그의 ‘정체’와 그가 이 지구까지 오게 된 경위를 알게 된다. 그 이유는 어린 왕자가 주인공에게 자기가 살던 작은 별에서 이 지구에 오기 전까지 6개의 별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곧 각각의 별들에서 사업가, 허영심 많은 사람, 권위의식이 있는 왕, 고속 열차 안내원, 가로등을 켜는 사람, 지리학자가 있었는데, 가로등을 켜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뿐이었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어린왕자는 일곱 번째로 오게 된 것이 바로 이 지구라는 행성이라고 말하였다. 인상 깊었던 부분 그리고 이제 이 이야기에서 유명한 부분이자,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을 수 있었던 부분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어린 왕자가 이 지구에서 ‘여우’를 만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지구에 오자마자 귀여운 여우를 발견한 어린 왕자는 그 여우에게 “자신과 같이 놀아달라고, 친구가 되어달라"라고 말을 걸었지만, 여우는 그런 어린 왕자에게 “자신과 친구가 되고 싶다면, 우선 자신을 먼저 길들여야 한다."라는 말을 해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이 부분에서, ‘관계’에 대한 어떠한 본질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곧 ‘우리가 어떠한 타인과의 관계를 시작할 때, 다시 말해 진정한 인연을 만들어가고자 할 때는, 우선 일차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도록 길들여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특별히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돌직구로 행동하며 미숙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진부하지만 새로운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에 있는 꽃(장미)를 두고 이야기를 하는 부분도 상당히 인상이 깊었다. 어린 왕자는 주인공에게 그 꽃을 두고서 “꽃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말았어야 했다고, 사실은 그 꽃이 하는 말과는 달리 자신을 사랑한 것이었다."라고 이야기하는 이 부분에서 나는 ‘이성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어떠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성(특히 여성)이 하는 말은 겉으로 보더라면 가시가 있고 투정 어린 듯이 보일지더라도, 실은 그것이 남성과는 다른 기질을 갖고 있는 여성인 그녀 만의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근래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것이 떠올라서, 약간의 반성 아닌 반성(?)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생의 본질을 담고 있는 이야기 그래서 나는 이 동화를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동화는 겉으로 보면 그냥 천진난만한 ‘어린’ 왕자와 비행기 조종사인 주인공과의 대화에 불구하지만, 그 천진난만한 어린 왕자의 말 하나하나 속에는 인생의 어떠한 ‘본질’을 꿰뚫는 듯한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