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뚝거리는 개의 초상- 개의 삶도 아름다운가?Ⅰ. 서론은 달려 나가는 열차, 그리고 그 열차의 탑승객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열차와 탑승객의 연대기를 역순행으로 조명하며 시대와 그 속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한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격동하며 돌진하는 폭주기관차였다. 그 안에 몸을 실은 한국인들은 기차에 몸을 싣고 선로를 따라 달려 나갔다. 영호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영호의 삶과 함께한다. 1979년 가을에서 시작해 1999년 봄까지의 여정, 혹은 1999년부터 1979년까지의 여정이다. 영호의 삶은 역순행적으로 사업이 망한 뒤의 1999년, 잘나가던 사업가 시절의 1994년, 베테랑 형사 시절의 1987년, 신참 형사 시절의 1984 가을, 군인 시절의 1980년, 공단 노동자 시절의 1979년으로 소개된다. 영호의 삶의 일대기적 구분은 곧 영화의 시퀀스가 된다. 모든 삶이 그렇듯 영호의 개인사는 곧 시대의 역사를 담는다. 영화는 시대 속의 개인의 삶을 보여줌을 통해 상술한?‘개인사는 곧 시대의 역사를 담는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이창동 감독은 영호를 80-90년대 한국인의 표준으로 삼고자한다. 그러나 영호는 절대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일 수 없다. 그의 서사와 그 서사에 대한 감독의 연민 어린 시선은 시대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영호들에 대한 위로이자 자기 고백이다. 감독의 전형적인 시인식 자기변론과 소시민과 약자를 앞세운 타자화를 통한 엘리트주의적 위선이다. 기차는 정해진 방향으로 달려 나간다. 그 안에 탄 승객은 마음대로 기차의 방향을 바꾸거나 중간에 내릴 수 없다. 그러나 서울행 기차를 탈지 군산행 기차를 탈지는 결정할 수 있다. 기차를 잘못 탔다면 바꿔 탈수도 있다. 영호는 그러지 않았고 영호로 뭉뚱그려진 다른 모든 이들 중에는 영호와 다른 선택을 한 이들도 있었다.영호라는 인물을 심층적으로 분석함을 통해, 시대적 역사와 개인사, 그리고 그 안의 개인의 삶, 궁극적으로 감독이 전달하고자 한 개인의 삶의 가치- ‘삶은 아름다운가‘에 대해 논결말(혹은 시작)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물이 된다.역순행적 구성 역시 단순한 극의 전개 방식 이상으로 해석이 큰 영향을 주며 내용적인 부분과 밀접하게 관계한다.영화의 각 챕터이자 시퀀스가 넘어가는 연출 방식 역시 매우 독특한데 각 챕터의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동작을 멈추고 화면이 멈춘 뒤 페이드아웃, 그리고 선로를 달리는 기차 장면으로 넘어간다. 다소 유치해보일 수 있는 이 연출은 꿈의 전개 방식과 유사하다. 각 핵심 서사가 존재하지만 그 넘어가는 연결이 매끄럽지 않고 전체적인 서사만이 기억나는 꿈의 특성을 재현한다. 인물의 삶이라면 응당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넘어가야할 터인데 마치 연극처럼 중간에 막을 내리고 준비가 끝난 뒤 다시 막을 올리는 것처럼 기차 장면이 인터미션처럼 삽입된다.2. 꿈과 상징으로서의 영호의 삶극은 현대 시점인 1999년 영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사업이 망해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망가진 영호는 1979년 함께 일하던 가리봉동 공단의 옛 동료들이 모인 야유회에 난입해 난동을 부린다. 결국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 위까지 올라간 영호는 다가오는 기차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영호가 치이기 직전 “나 돌아갈래!”라는 대사를 외치며 정말 그의 삶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처럼 99년인 지금 시점에서 조금 더 과거인 94년의 영호의 모습이 송출되며 본격적으로 극이 전개된다.영호의 삶을 쭉 살펴보기 위해 영호의 삶의 한 표현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나약성’이다.김영호는 극의 초반부 자살을 앞두기 직전 총을 구매해 자신의 삶을 망친 대상을 죽이고 자살하고자 한다. 이 때 김영호는 자신을 찾아온 모르는 남자(첫사랑 순임의 남편)에게 강한 적대심을 발휘하고 경찰을 밀치고 도망가는 등 과격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호의 이런 조급하고 악에 받힌 모습은 이전의 영호의 모습과 매우 대비된다. 99년과 94년 사이의 영호에는 큰 간극이 있다. 아마 97년도의 IMF의 영향일 그의 경제적 몰락이 이유일 것이다.94년 사업이 성공가도를 달리에 대한 비호감도 또한 배가 된다. 역시 회식 자리나 식사 자리에서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이 신에서 김영호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부분이 또 있는데 바로 술집에서 미성년자 학생에게 훈계하는 장면이다. 여성에 대한 존중이나 어른으로서의 양심 따위로 인한 것이 아닌,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자신보다 더 약한 상대 인물에게 수치를 주고 자신의 권력과 힘에 도취하는 모습이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 훈계 이후 영호는 거울의 자신을 바라보는데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장난스러운 손가락 욕을 한다. 다시 취조실로 돌아간 영호는 결국 고문 끝에 원식의 행방을 불어버리고 그 죄책감과 모진 고문으로 인해 울고 있는 명식을 달래준다. 휴지를 건내며 위로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실 된 공감이 결여된 권력자의 위선이 느껴진다. 그러던 중 영호의 ‘너는 정말 일기장에 적은 듯이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통해 94년도에 재회한 명식에게 건냈던 그 말의 기원을 알 수 있다. 또한 ‘삶이 아름답느냐’라는 질문은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 메시지이기도 하다.다음 챕터인 84년도 역시 영호의 경찰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영호가 87년도의 베테랑 형사가 아닌 신참 형사로 이 시점을 기준으로 그 스스로의 나약성에 대한 방어기제 형성을 관찰할 수 있다. 막 형사가 된 영호는 다른 형사들과 다르게 아직 취조(고문)을 행해보지 않았다. 다른 형사들의 고문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움츠러든채 말없이 모습에서 아직 무감각으로 그 나약성을 포장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어지는 형사들과의 대화 장면을 통해 영호가 입대 전 가리봉동 공단에서 일하던 시절 노조 활동을 했었으며 지금 영호 앞에 주어진 고문의 대상 역시 노조원임이 밝혀진다. 영호는 그 노조원을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처음에는 슬픈 얼굴로 제발 불으라고 애원하지만 결국 그에게 주어진 폭력이라는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첫 고문을 자행하고 화장실의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그 스스로를 바라보는 표정은 앞전의 태도와는 다 더 이상 폭력을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그렇다면 다시 인물의 삶을 순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약하고 여린 영호는 폭력적이며 마초적인 인물이 되었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영호는 변화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난을 겪고 성장하는 서사는 보이지 않는다. 영호의 삶에 영향을 끼친 트라우마적 사건들은 성장의 밑거름이 아닌 인물을 좀먹고 병들게 만들었을 뿐이다. 김영호는 자신의 본질인 나약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폭력을 통해 나약함이라는 자신의 콤플렉스에 방어막을 씌워보려고 하지만 결국 이러한 표면적인 방어기제들은 본질을 바꿀 수도 없으며 오히려 그의 냐약성을 더 부각하게 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무의식에 담긴 인물의 억눌린 욕망이나 트라우마적 사건 등을 상징물을 이용해 일종의 우화로 나타내 보여준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본 영화가 영호의 꿈이라고 한다면 죽은 여학생과 피가 가득 찬 워커로 표상되는 영호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내적 트라우마가 영호의 자의가 아닌 채 자행한 폭력이며 동시에 외부로부터 그에게 가해진 폭력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인식하지 않기 위해 평상시에는 트라우마를 무의식에 집어넣은 채 외면한다, 그러나 무의식에 보관되어 당장 의식할 수 없을 뿐 그 고통스러운 경험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행동의 동기가 되어버린다. 영호가 스스로의 나약성과 트라우마를 외면했지만 그것들은 영호의 내면에 깊게 내재된 채로 영호가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더 나아가 그 폭력의 대상자에서 주체가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영호를 이해하는데 개라는 상징을 주요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극 중 영호는 개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이유는 그냥 개니까. 식당에서 만난 아이에게 개 흉내를 내는 장면, 형사 시절 별명 등을 통해 영호는 곧 자신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대상인 개와 동일성을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표출한다. '개'라는 동물을 통해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은 복종과 충성이다. 영호는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요소의 영향을 내재화해 이에 대해 전 꿈을 꾸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영호를 이해하기 위한 우화로서의 꿈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영호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 중요한 것은 그는 인생이 고통스러워 삶을 마감하고자 기차 앞에 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호의 삶은 분명 고통스러웠지만 영호는 삶을 끝내고 싶지 않아했다. 극 중에서 영호는 뜬금없는 맥락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 인생은 아름다운가?' 영호는 인생을 아름답다고 믿는다. 설령 삶이 자신에게 고통만 선사할 지라도 인생이 아름답다는 명제를 부정하지 못하기에 타자에게서 해답을 찾아보고자 하기도 한다.? 만약 영호가 정말 삶이 아름답지 않다고 믿었더라면 마지막 그가 남긴 말은 '나 돌아갈래'가 아니었을 것이다. '자살은 삶의 의지에 대한 가장 강한 긍정이다'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떠오른다.다시 돌아간 야유회 장면에서 영호는 처음 와본 그 기찻길에 익숙함을 느낀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순임의 말. ' 만약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면 그 꿈이 아름답기를 바라요.' 만약 정말로 돌아간 것이라면 혹은 꿈일지라도 영호는 다시 시작점에 선 순간에서 자신이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바로 그 순간에 서서 간절했던 바람이 무색하게 똑같은 삶을 재생산하지는 않았을지 생각하게 된다. 철교 밑에 누워 기차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비치는 영호의 모습에서 아마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일종의 루프 구조 속에서 영호가 계속해서 끊임없이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은 죽기 전 간절한 소망으로 인한 환각과 플레시백이라고 해석도 가능하다. 영화의 구조적 부분과 이에서 파생된 다양한 서사적 해석의 가능성 등이 매우 인상적이다.4. 감독의 시선 ? 비판본론에서의 영호라는 인물에 대한 비판과 다르게 감독은 영호를 희생자로 조명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는 영호가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보는 반면 감독은 영호의 삶이 격동하는 시대의 역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영호에게 주어진 것처럼 보여준다. 사회의 약자 계급에 속하던 영호가 시대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
벨라 발라즈의 저서는 이라는 제목에서 직관적으로 다가오듯이 영화의 가시성과 그 가시성 속에서만 표현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가치를 역설한다. 벨라 발라즈가 미학자로 활동하던 시기는 1920년대로 할리우드에서 영화 산업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무성 영화의 황금기였으며 유성 영화의 도입을 앞두고 있었다. 이 당시 영화는 상업성이 짙은 매체였고, 예술과 그 가치를 논하는 미학계는 영화의 미학적 가치에 대해 회의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벨라 발라즈는 영화라는 예술의 전례없는 대중성과 그 사회적 효과를 말미암아 영화의 예술 이론을 정립과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벨라 발라즈가 영화라는 예술 형태를 인간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관찰하려 했다는 점이다. 영화의 대중예술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대중의 정신이 영화를 이루는 것이 아닌, 영화가 대중의 정신을 이룬다고 표현할 정도로 영화의 사회 예술로서의 특징을 강조했으며 이는 그가 말하는 ‘가시적 인간’과 깊게 관여되어 있다. 그는 미학 상에서 독립된 예술이 존재하기 위한 조건으로 ‘다른 예술 형태와 구분되는 특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이러한 명제를 바탕으로 미학 연구에 영화를 편입시키려 노력하는데, 영화의 고유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문학’과의 비교를 빈번하게 사용한다. 문학이 주 비교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가 인류의 예술을 인쇄술의 발달을 전후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벨라 발라즈는 시각 예술과 언어 예술을 엄격하게 구분하는데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을 ‘시각 예술의 황금기’라 칭한다. 미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예술을 ‘인간 정신과 그 표현’으로 간주한다. 미학자인 벨라 발라즈가 이 시기를 황금기라고 부른 이유는 이 때의 회화와 조각 중심의 시각적 예술이 인간을 훌륭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당시 예술가들에게 인간은 영혼과 정신, 그리고 육체를 따로 분리할 필요없는, 그 보이는 형태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었다. 언어 예술 시대와 다르게 당대의 예술은 이면의 것이라던지, 개념, 단어 등을 다루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 육체에 대한 원초적 표현이 곧 예술이 되었다. 인쇄술이 발달한 이후로는 기존이 시각적 예술의 형식이 완전히 전복되었으며 벨라 발라즈의 현대까지 이어지게 되는 섬세한 언어 예술이 그 자리를 지배하게 되었다. 영혼 정신, 그리고 육체 사이가 언어와 문자, ‘말’을 통해 매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말’은 육체와 영혼의 간극을 만들었으며 이 간극은 ‘말’이 영혼의 대변자가 됨으로서 육체만의 일방적인 의미 상실로 이어졌다. 즉, 인간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이러한 예술의 변화는 영화 기술이 탄생하면서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영화를 통해 사람들은 인간의 운명, 분위기, 느낌 등을 ‘말’을 매개로 하기 보다는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인쇄술의 발달 이후 오랫동안 잊혀진 인간의 몸짓 언어와 얼굴 표정 등 가시적인 인간 영혼의 활동을 재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육체는 더 이상 텅 빈 껍데기가 아닌 영혼을 표현하는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되찾았다. 영화와 문학의 차이는 이렇듯 명확히 드러났다. 그렇다면 시각 예술이라는 점에서 다른 시각 예술 종류와 어떤 차이를 가지는지에 따라 영화의 예술으로서 고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회화와 영화의 관계는 정적 예술과 동적 예술이라는 명확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같은 동적, 시각 예술인 연극이나 무용과의 차이는 어떨까? 벨라 발라즈가 영화의 핵심으로 보는 것은 바로 ‘몸짓 언어’이다. 영화에서는 배우가 대사를 가지고 있더라고 대사의 내용 자체보다 대사와 함께 오는 배우의 표정, 손짓 등의 행동이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연극의 ‘말하는’ 배우에게 이러한 표정과 손짓은 말로 표현을 다 하지 못하고 남은 것들의 부산물이다. 따라서 연극에서는 배우의 몸짓보다 배우가 말하는 단어들의 의미와 그 것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용의 춤 역시 영화의 몸짓 언어와는 다르다. 무용에서의 몸짓은 춤으로, 단지 개성적 인간의 개성적인 표현에 그친다. 춤은 삶과의 괴리를 가지며 하나의 예술 형태에 국한 된다. 응용 예술로서 삶의 일상적 소재가 인간 정신을 통해 통합되어 드러나는 문화가 될 수 있는 영화와는 다르다. 벨라 발라즈는 영화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기존의 문학으로 대표되는 언어 예술의 한계인 인간의 의미 상실과 비가시화를 이겨낼 수 있는, 그 몸짓 언어로 표상되는 인간의 가시화 가능성에 두었다. 무성 영화가 인기 있던 시절 창시된 그의 이론은 많이 달라진 현대 영화에는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까? 그가 본 영화의 고유의 특징인 몸짓 언어는 현대 영화에도 적용되는 듯 하다. 그는 몸짓 언어를 바벨탑의 붕괴로 인간 언어가 분화된 이래로 최초의 국제적 언어의 탄생으로 보았다. 현대 영화 시장은 여전히 할리우드의 영향권 하에 있으나 더 이상 독점적이지는 않다. 각국이 자체적인 영화를 생산하고 있으며 그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기도 한다. 아무리 자막으로 배우들의 대사가 번역이 되더라도 영화는 벨라 발라즈가 언급했듯이 연극처럼 대사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화 촬영에 통용되는 구체적 문법이 정형화된 것 외에, 인류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정신적 표현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영화만의 차별화되는 고유한 가치를 확연하게 포착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그의 논지에 동의한다. 그는 문학을 기초로한 영화에는 회의적이었다. 영화의 토대인 시나리오는 문학적으로 창조되어서는 안되며, 감독의 비전에서 나온 산물이어야 함을 주장했다. 문학을 영화화 할 때 문학의 스토리 라인만을 차용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문학에서는 그 스토리라인 자체보다 문학만의 심오한 사고, 서정적 여운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요소들을 반영하지 못한 채 그저 영화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를 보자, 스콧 피츠제럴드의 저서 가 위대한 이유는 그의 문학 작품의 당시의 시대상과 미국이라는 정체성을 개츠비라는 인물로 환원하여 그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정체성을 부여받는 과정에서 개츠비라는 인물은 단지 개별적 특성만을 인간 성격으로 고쳐놓은 것이 아닌, 인간 자체로서의 고뇌와, 자기 모순, 도덕성에 대한 고민을 가진 살아있는 인간을 반영한 인물이다. 영화는 원작에서의 개츠비라는 인물상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비가시적 의미까지 완전히 담아냈으며,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특성인 ‘몸짓 언어’가 풍부히 사용되었다. 영화는 문학과 다르게 표면 예술이기에 문학에 존재하는 사고 영역에서 파생하는 영혼의 갈등이나 순수한 지적 가치에 대한 생각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간 정신이 자아내는 고뇌와 사색이 영화에 담길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비가시적 부분이 영화에 담길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충분히 비가시적인 인간의 존재에 대한 고뇌나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고민들이 담긴 영화들이 존재하며, 그 작품들은 와 마찬가지로 벨라 발라즈가 강조한 ‘몸짓 언어’를 충실히 반영하고 수행한다. 찰리 카우프만이 감독하거나 각본을 쓴 작품들이 벨라 발라즈의 주장에 대한 훌륭한 반증이다. 그는 인간 정신과 육체의 합일을 영화적으로 써내었다. 그의 대표작인 인간의 육체와 자아의 관계에 대해 논하는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변화하는 인간 육체를 통해 보여주는 는 인간이 육체라는 실체와는 별개로 떠올리는 생각들을 배우의 육체와 가시적인 영화적 장치들로 휼륭하게 묘사해낸다.
0. NGO의 활동 영역 중 가장 중요한 이슈NGO의 활동 영역은 매우 다양하나 그 중에서 가장 NGO의 영향력이 필요한 부분은 ‘환경 이슈’이다. 그 이유는 환경 이슈는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가 주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말미암은 환경 문제는 필연적으로 경제적 이해관계를 수반한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동반되는 순간 대의보다는 자신들, 집단의 이익을 주장하는 경향이 도드라지는데 특히 그것이 국제 단위일 때는 그 정도가 더 커진다. 이는 현대 환경 이슈가 국제적 문제 양상을 크게 띄며 세계 단위의 해결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해결에 있어 큰 어려움을 촉발하는 원인이 된다.따라서 환경 이슈에 관하여 이해 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새로운 제3자의 개입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때 NGO는 각 나라의 이기주의와 국익 싸움에서 벗어나 환경 이슈를 객관적으로 조명하여 협의와 행동 변화를 촉구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있다. 환경 문제가 갈수록 심화되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이 문제에 있어 NGO의 개입과 영향력이 증대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1. 환경 이슈의 중요성과 개념 및 내용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세계적 단위에서 약 3배라는 수치의 인구 증대와 20배의 세계 경제 성장이 일어났다. 이러한 증폭은 단기간에 일어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가지는데 1950년대를 기점으로 현재 수치에 이르기까지의 개발과 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급속한 산업활동의 확대는 도시와 인구의 증가와 그 늘어난 인구의 도시 집중을 동반했다. 초기엔 지역적, 국가적 양상을 띄던 이러한 현상들은 국제 무역이나 국제 교류 같은 세계화 현상에 힘입어 국제적 범위로 확장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환경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들기에 충분한 수준에 도달했다.최근 부각되고 있는 환경 이슈 중에는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해양오염, 지구 생물 종의 감소 등이 있다. 이러한 환경 이슈들은 전 지구적 차원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모든 국가들이 동참한 전 지구적 차원의 공동의 노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그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가장 큰 갈등 형태로 세계 지구 환경 파괴 문제를 선진국 탓으로 돌리며 재정 지원 및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개발도상국들과 이러한 혐의와 책임을 부인하는 동시에 회피하려하는 선진국의 이해 충돌이 대표적이다.이러한 지구적 환경 문제에 대한 심각성과 중요성은 1972년 로마클럽에서 발표한 ‘성장의 한계(limit to growth)’라는 보고서를 계기로 세계 시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같은 1972년 유엔 UN으로부터 인간환경회의라는 이름의 회의가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열렸다. 인간환경회의에서는 인간환경선언, 원칙선언, 행동을 위한 109개 권고안, 제도 및 재정상황에 대한 결의 및 지구환경의 날을 제정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198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UN이 지구 환경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고 신경 쓰기 시작했는데 1983년대에는 UN총회의 결의에 따라 세계환경개발위원회(World Committee Envirnmental Development: WCED)를 구성하였고, 1985년에는 오존층 보호를 위한 비엔나협약을 채택하였으며, 1987년에는 후속의정서인 몬트리올의정서를 제정하였다. 그리고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가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를 발간하여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에 대한 개념이 UN 및 각국정부의 기본이념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환경 이슈는 세계적 영향력을 가지며 그 원인 또한 세계적 단위의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 해결이 쉽지 않다는 특성을 가지며 그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이는 꽤나 골치아픈 문제이다. 따라서 다른 이슈들에 비해 사안의 심각성 및 해결의 어려움이라는 두 가지 큰 이유로 더 중요성을 띈다고 볼 수 있다.2. 환경 이슈와 관련한 NGO 단체들의 활동+ 한계와 대안지난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 (리우회의)는 21세기를 맞이하며 “의제 21‘과 ’리우선언‘ ’시후변화방지협약‘ ’생물종 다양성 협약‘ 등을 채택하며 환경 관련 실천 계획들을 구체화 시켰다. 이 때 다양한 국가와 그들의 정부들이 모이기도 했지만 NGO 대표들도 이 자리에 빠지지 않았다. ’의제21‘에 상응하는 ’NGO’ 조약 등을 채택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는 환경 관련 이슈에 대한 대응은 단지 성장과 개발에 주력하는 정치와 그 정치를 수행하는 국가단위의 주체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다는 시민 단체들의 생각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환경 보호가 어느 한 국가에 국한 되어서는 제대로 성과를 도출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결과로 환경 운동에 있어 국제적 연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이러한 국제적 연대를 바탕으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들은 대표적으로 1992년 네덜란드에서 시작해 현재 50여개 지부를 세계 각 국에 보유하고 있는 '지구의 벗' (Friends of Earth International), '지구감시단 (Earth Watch)' '그린피스 (Greenpeace International)' 등의 환경운동단체들이 존재한다. 상술한 단체들은 국제적 연대에 의한 환경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환경 문제의 심화에 따라서 보다 발전된 형태를 띄고 있다. 핵심적인 특징으로는 특히 정치권력의 사각지대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펼친다는 것이다.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함을 통해 대안을 내놓는 역할은 정부 기구가 아닌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정치나 견제와 같은 이해관계 속에서 독립적일 수 있는 NGO 단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환경 관련 NGO로 가장 잘 알려진 ‘그린피스‘는 ”지구의 목소리를 대신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활동하는 단체이다. 세계 최대의 환경운동단체라는 위상에 걸맞게 대양한 국제기구 활동과 국제협약에 관여하고 있는데 주된 활동 분야로는 기후변화 방지, 원시림 보존, 해양 보호, 고래 잡이 방지, 유전자 조작 반대, 핵위협 저지, 독성물질 제거, 반전 운동 등이 있다. 그린피스는 자체 선박을 활용한 환경 보호 활동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그린피스 이름부터가 선박에 내건 깃발에 쓴 문구로부터 유래한 것일 정도로 선박 활용에 적극적이다. 자체적으로 선박에 대해 ’환경감시선‘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선박을 통해 환경 파괴를 감시하는 역할이 주이다. 환경 보호가 그 목적인 만큼 자체 선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 또한 최소화한 것이 특징으로 가장 대표적 선박인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선박 역사상 가장 친환경적인 배이다. 아울러 그린피스는 환경 문제에 있어 튼 영향력과 결정권을 가진 기업들을 대상으로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을 가속하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들이 실제로 빛을 보고 있다. 대표적 성고 사례로는 글로벌 석유 시추 기업인 쉘(Shell)의 북극 석유 시추를 막은 일이다. 그린피스는 북극 해양생태계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석유시추를 막기 위해, 그린피스는 3년간 강력한 캠페인을 펼쳤고, 마침내 2015년 쉘은 북극 석유 시추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과 관련한 사례도 존재하는데 2017년부터 그린피스가 주장해온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대안이 삼성 기업에 영향을 준 것이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기업이라는 입지를 가진 삼성의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한 막중한 책임을 지적하며 재생에너지 100% 사용 약속을 받아낸 바 있다.
교과목명 :학 과 :학 번 :성 명 :연 락 처 :* 유사도검사 결과 첨부필수(리포트 페이지 적용안됨)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연구배경 : 19세기 중반, ‘산업화’, ‘도시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빠르게 진행됐던 서구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일련의 새로운 예술이 태동했다. 이러한 새로운 예술정신을 추구했던 인상주의 및 후기인상주의는 기존의 서구예술전통과 차별화된 전략을 다양하게 적용, 발전시켰다. 이러한 배경 하에 다음의 과제 Ⅰ, Ⅱ를 탐색, 기술하시오.○ 과 제 : Ⅰ. 새로운 예술을 추구했던 이들 예술가들의 차별화된 전략을 적용한 작품을 사례로 들어, 표현방식 및 매체적 관점에서 기존 예술전통과 어떻게 다른 관점을 제시했는지 정리하시오.Ⅱ. 서구예술전통과 차별화된 대안적 시각성을 비서구권의 예술형식, 예컨대, 일본예술의 영향, 원시주의 적용 등의 사례를 들어, 새로운 시각문화로의 전환을 성취했는지 여부를 평가, 기술하시오.(저용량 이미지 5점 이내로 사용)- 이하 과제 작성 중간고사 리포트- 19세기 모더니즘의 등장과 현대미술까지의 흐름 -대학교 과2023. 4. 24 중간고사 리포트- 19세기 모더니즘의 등장과 현대미술까지의 흐름 -000대학교 000과학번 000Ⅰ. 서론Ⅱ. 과제 1번 문항0. 서론1. 모더니즘의 탄생2. 리얼리즘3. 마네4. 인상주의5. 후기인상주의Ⅲ. 과제 2번 문항0. 서론1. 우키요에2. 아프리카 미술3. 비서구권 예술의 유입과 새로운 시각문화Ⅳ. 결론Ⅰ. 서론‘근대’로 분류되는 19세기는 변화과 대격변의 시기로,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 사회적 변화가 가속화되고, 유럽이 이끄는 제국주의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본래 예술은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산물이기에 19세기의 예술 또한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변화와 그러한 변화에서 말미암은 혼란과 새로운 사고를 담기 시작했다.인류사에서 과학 기술의 발달이나 혁명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예술에 대한 필요성이 등장했다. 19세기 새로운 예술의 등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존의 예술 전통을 이겨냄으로서 현대까지 이어질 새로운 사고 방식의 시사점이 된다는 점이다.이러한 새로운 예술 사조의 등장은 쿠르베 등으로 대표되는 리얼리즘에서 태동하여 후대까지 이어질 ‘현대 시각성’의 결정적 단초가 된 인상주의 그리고 후기인상주의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상술한 화풍의 작가들과 작품들을 상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1. 모더니즘의 탄생19세기 새로운 예술의 도래는 기존 예술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기존 예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이 시기의 새로운 회화의 등장이 어떠한 맥락적 함의를 가지는지, 그 혁신성을 느낄 수 있다.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부분이 과거와의 차별성인데, 19세기 이전을 모두 과거라고 뭉뚱그리기에는 과거에도 19세기의 혁신처럼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19세기의 모더니즘이 이전의 예술을 한 덩어리처럼 ‘기존의 서구 예술 전통’으로 칭할 수 있는 이유는 기존 예술이 한 범주로 묶여 개념화 될 수 있게 하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며, 모더니즘은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차별성을 바탕으로 서양미술사를 모더니즘 이전과 현대미술까지 이어지는 이후로 구분할 수 있게 한다.모더니즘 이전의 기존 서구 예술 전통은 르네상스 시대 개발된 ‘원근법’을 중심으로 한다. 원근법은 보기 방식의 일종으로 특정 시각성을 내포한다. 모더니즘 이전의 회화는 대상을 화폭에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는데, 원근법은 2차원 평면의 캔버스에 3차원을 재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기법으로 활용됐다. 2차원에 3차원을 그대로 담으려 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실제 감각으로서의 시각과 회화에 포착하고자 하는 대상 사이의 괴리가 발생한다. 원근법은 2차원 평면의 회화에서 3차원의 환영을 느끼게 해주어 괴리를 가린다. 그러나 원근법은 그 인위성과 감추고 있는 괴리에도 수 있는 것을 정체성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 때 매체는 성립 조건으로서 기능하여 각 분야의 고유성과 자율성을 제공한다.결국 모더니즘은 기존 체제에 저항하며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고 각 예술 분야의 본질을 매체를 통해 탐색하는 성격을 가진다.2. 리얼리즘쿠르베, 도미에, 밀레로 개표되는 리얼리즘 시기에는 모더니즘이 중점적으로 고민하고 다루었던 언근법의 파괴라던지 기존 회화 형식의 완전한 전복에 대한 시도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보다는 그 기반을 마련한 시기이다. 모더니즘의 탄생은 시대적 배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린 리얼리즘 작품들이 그런 시대적 배경을 민감하게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본격적 표현 방식이나 매체 변혁 보다는 회화의 소재부터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과거처럼 고착화된 아름다움을 재현하지 않는 소재를 주로 그려냈다.쿠르베의 은 의도적으로 일반 대중이라는 소재를 화폭에 담아낸 작품이다. 시골 마을의 장례식을 통해 기존에 회화의 소재로 쓰이지 않던 대상을 그려냈다. 이를 통해 고착화된 아름다움의 묘사를 위해 사용되던 한정적 소재 외에 것을 다루면서 그가 회화에 특정한 의미를 담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의미란 기존 예술계에 대한 저항으로 일반 대중과 괴리된 snob한 예술이 외면하던 존재들을 재조명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반영하려 했다.밀레 역시 쿠르베처럼 등의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동안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역시 예술에서도 외면되었던 계층을 화폭에 담아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3. 마네마네는 인상주의 태동에 선구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마네의 작품에서 역시 소재의 변화가 드러나는데 기성 회화의 대표적 소재인 위대한 인물, 신화, 역사적 사건 대신 에서처럼 당대에 통용되던 예술적 맥락에서는 다루지 않던 대상을 그렸다. 는 특히 서양 미술사의 전통적 여성 누드를 재해석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회화 대상뿐만 아니라 표현 방식도 차이가 있었다. 에서는 중경 여인의 위치가 원근법을은 작품에서 깊이감을 표현하는데 색체를 사용했다. 멀리 있는 틀판은 초록색, 가까운 들판은 노란색을 이용해 표현했으며 차가운 느낌의 파란면은 후퇴하는 공간으로, 따듯한 노란 빛은 전진하는 공간으로 활용했다.세잔의 에서는 기존의 화가 눈높이에서 그려난 단일 시점의 회화와는 다르게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정물을 한 폭에 담았는데, 이는 눈에 보이는 현실 이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구조를 보게된 세잔의 시각이 반영한 것이다.또 다른 후기인상주의 화가인 고흐는 작품을 통해 고흐 본인이 당시 느꼈던 감정을 담아 보여주려고 했다. 그는 방안의 사물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고 그 사물을 통해 느낀 감정을 담을 수 있는 표현 방식으로 묘사했다. 예로 가구의 선이 완강한 것은 침해받지 않은 휴식을 표현하기 위함이며 침대와 의자 크기의 괴리와 같이 대상의 왜곡을 통해서도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고흐 역시 회화에서 재현적 가치 이상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고갱은 서구 물질문명을 벗어난 타히티를 소재로 하였으며 원색의 강렬한 색체를 이용했다. 에서 역시 강력한 원색의 색체를 주관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서구 물질문명에서 환멸을 느끼고 비서구문명을 그 대안적인 순수성과 삶의 본질로서 그려내고자 했다.세잔, 고흐, 고갱과 같은 후기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들은 동시대의 인정을 갈구하지 않았다. 이런 그들의 용감하고 혁신적 행보는 젊은 예술가들의 관심을 얻었으며 후에 현대 미술까지 이어지는 흐름의 시작이 되었다. 세잔은 피카소의 입체주의에, 고흐는 표현주의에 영향을 주었으며 고갱은 원시주의라는 새로운 화풍을 창조하였다.6. 결론모더니즘 회화는 기존 미술에서 벗어나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탄생한 다른 예술 장르와의 차별성을 꾀하기 위해 회화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을 회화라는 매체적 특성에서 찾고자 했다. 이런 일련의 시도는 리얼리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에서 관찰되었으며 새로운 시각성을 제공하는 작품으로 환원되었다. 이 때 고안된 새로운 시각성은 이 당시의 서양 화가들에게 새로운 시각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관점에서의 예술의 가치를 재고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 당시 비서구권 예술의 유입은 예술계의 유럽중심주의가 해체되고 예술의 세계화를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모더니즘부터 시작된 유럽중심주의를 탈피하고자 하는 흐름은 현대까지 이어졌으며 현대의 예술세계화의 기반이라고 볼 수 있다.1. 우키요에우키요에는 일본 에도시대(1603-1868)의 회화 풍조이다. 19세기에 접어들며 일본은 개방을 선택하고 서양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시작한다. 문화적 교류 역시 이루어지며 일본의 문화가 서양에 소개되었는데, 이 때 함께 전달 된 것이 우키요에이다. 우키요에는 19 20세기 서양 예술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우키요에를 비롯해 당시 화가들 사이에서의 일본 미술의 유행과 이를 반영한 화풍의 변화는 자포니즘이라는 용어로 정리되기도 한다.새로운 시각성을 모색하고 있던 시기에 완전히 새로운 시각 스타일이나 소재, 테크닉을 담은 우키요에는 특히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고흐와 모네, 드가는 우키요에 판화에 묘사된 일상과 자연에 대한 강조, 대담한 구성, 생생한 색상에 큰 인상을 받았다. 이들은 우키요에에서 접한 새로운 시각성을 자신들의 회화에 담아 서구 예술계에 소개하여 전통적 예술 관습을 타파하고자 했다. 클로드 모네는 라는 작품을 그렸는데, 아내 카미유가 일본의 전통 복식인 기모노를 입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배경에도 일본풍의 부채를 그려놓았다. 고흐는 을 그렸다. 제목처럼 탕기 영감의 초상화이지만 인물의 뒤편에 보이는 배경에는 일본풍의 소재들로 장식되어 있다.우키요에는 후에 아르누보 양식의 탄생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아르누보는 19세기 후반에 태동한 장식적 예술 사조로 알폰소 무하, 구스타프 클림트 등의 화가가 속한다. 아르누보 양식은 유기적인 형태, 흐르는 선, 복잡한 패턴의 미학을 가지며 이는 회화에서 뿐만 아니라 포스터, 일러스트레이션, 장식품 등 다양한 예술 형식에 반.
과거 만연했던 식민주의의 역사를 위로하고 현대의 우리는 제국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식민시배의 시대의 잔재에서 벗어나고 과거를 성찰하는 탈식민주의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고 있다. 1988년 데이비드 황의 희곡으로 초연, 1993년에 영화화된 이러한 탈식민주의 흐름에 화답하는 작품으로 작가 스스로가 직접적인 의도를 가지고 창작했음을 밝히는 작품이다. 는 오리엔탈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의 패러디 작으로 역시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다루며, 에 영향을 받은 만큼 사랑과 섹슈얼리티, 오리엔탈리즘에 담긴 젠더 구도가 작품의 중심이 된다. 20세기 초반의 오리엔탈리즘과 섹슈얼리티를 상징하는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에 담긴 동일 주제와 이를 다루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서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오리엔탈리즘?섹슈얼리티 담론의 방향성에 대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먼저 제국주이 이념과 섹슈얼리티의 관계를 살펴 봐야한다. 제국주의는 주로 서구 백인 지배자가 착취와 약탈의 식민지배에 대한 옹호로 몇 가지 정당화 논리를 중심으로 한다. 첫째로 백인의 인종 우월성, 미개인들을 위한 문명화라는 시혜성이다. 이 정당화 논리의 기저에는 타자화가 존재한다. 모든 비서구권 문화는 서구의 지배의 대상으로 몰이해와 왜곡된 관점으로 받아들여진다. 오리엔탈리즘은 비서구 중 동양에 대한 왜곡된 시선으로 그 뿌리 깊은 오해는 ‘할렘’ 이미지에서 시작된다. 할렘은 성적 대상화된 환상으로 오리엔탈리즘-섹슈얼리티의 유혹적 유색인 여성 이미지의 근원이 된다. 성적 환상으로서 할렘은 서구 백인 남성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지배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백인 남성의 문명이 해방시켜야할 미개한 곳으로 인식된다. 또한 18세기 인도 거주 영국인의 90%가 현지처를 두는 등 식민지배 과정에서 지배 남성들의 피지배 여성들에 대한 성적 착취가 더해지면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섹슈얼리티는 관념적인 부분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 현상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결국 할렘은 식민 지배를 위해 관념적으로 동양여성의 환상화와 성적 대상화를 일삼았으며 이는 실제 동양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로 이어졌다. 그 이상으로 제국주의 논리와 섹슈얼리티는 깊은 관계를 맺는다. 할렘이 타자화 중 성적 타자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에서 여성성이라는 성적 표상이 가지는 상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할렘의 사례에서 신비로운 여성성은 곧 동양을 상징하게 된다. 이는 동양 ? 여성/ 서양 ? 남성의 이분법으로 구체화되며 제국주의 지배논리는 결국 여성을 나약성이자 지배대상으로 남성을 여성을 보호하고 지배할 자로 보는 가부장적 지배 질서와 합치된다.은 이런 지배구도를 초초와 핑커톤의 사적 러브스토리로 환원하여 사랑의 아름다움과 나비부인의 순종성을 부각함으로서 오리엔탈리즘-섹슈얼리티 구도를 재생산, 강화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고자 하는 측면에서 을 완전히 뒤집어 패러디하고자 한 또한 보다는 발전된 담론을 이야기하지만 표면적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만 가득하며 결국 오리엔탈리즘-섹슈얼리티 관계의 핵심에는 근접하지 못한다. 가 을 전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나비와 백인 남성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초반부에는 일명 ‘드레곤 레이디’ 섹슈얼리티를 가진 여성인 송을 내세워 프랑스 대사관 직원인 르네의 정부로 보여주지만 극이 전개되면서 사실 송은 중국의 이익을 위해 첩보활동을 하는 여장 남성으로 르네를 이용했음을 밝힌다. 또한 송의 배신으로 감옥에 가게된 르네가 나비부인 분장을 하고 자살하며 송은 본국으로 떠나는 결말로 백인 남성인 르네에게 역으로 동양 여성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런 구도는 오리엔탈리즘-섹슈얼리티 구도의 핵심은 건드리지 못하고 단순히 역할만 반전시킨 결과물이다. 정리하자면 동양 여성의 표상인 나비가 사실 남성이었다, 더해서 르네가 버려지고 자살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동안 동양 여성이 수행하던 것을 백인 남성인 르네가 수행하면서 그에게 동양 여성성의 상징이 부여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리엔탈리즘-섹슈얼리티 구도에서 우리가 해체해야할 부분은 타자화의 상징으로서 ‘여성’ 상징이 동양에 투사되었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술했듯이 가부장제 ? 제국주의 ? 오리엔탈리즘 ? 섹슈얼리티의 계보를 이해하고 근원부터 지적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데이비드 황은 전복 시도를 제국주의에서부터 시작하여 가부장제에 대해서는 간과하였으며 이는 가 결국 1차원적인 우화적 측면에서의 역할반전일 뿐 동.서 관계와 오리엔탈리즘-섹슈얼리티에 투사된 권력관계와 특히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시선이 잔존한다. 작품의 제목의 M이 M.S도 M.R도 아닌 그저 M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동양을 의미하는 송의 성별의 모호하게 하여 그러한 성별구도를 벗어나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단순히 남-서/여-동 상징체계를 전복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제국주의-오리엔탈리즘-젠더’는 내부의 가부장 질서가 더 큰 국가적 권력으로 확장된 것임을 간과한다.는 또한 우화적 구도를 차용하기 위한 과정에서 송과 르네의 사적 러브스토리로 환원되면서 다루고자 하는 이념을 무색하게 만드는 한계를 지닌다. 알레고리 자체의 한계라기 보다는 작가의 한계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특히 영화에서 잘 드러난다. 르네는 작품을 이끌어가며 관객은 르네의 1인칭 시점에 몰입하게 된다. 르네의 시점에서 중국의 정경은 신비스러운 동양풍 음악과 함께 보여지기도 하며 미개하게 비춰지는 등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중국에서 일을 하면서 중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며 현지인과 소통해야하는 과정에서도 영어로 말을 하는 르네의 모습이나 중국어를 못 알아듣는 르네의 시점이기에 중국인의 대사는 자막으로 번역되지 않는 점 등이 역시 해당된다. 이는 르네가 비판을 위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언뜻 정당한 연출처럼 보이나 르네를 단순히 처음부터 비판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극을 시작했지만 결국 전개부분에서 연출 등을 통한 극 내외부의 르네라는 제국주의 백인 남성에 대한 비판적 요소의 부족으로 단순히 인물의 시선만을 재현한 부분만 남는다. 또한 알레고리 즉, 극화의 성질로 인해 르네 갈리마르의 최후 또한 감옥에서의 쇼로 묘사되어 68년 파리에서 감상한 나비부인 오페라 극과 겹쳐보이는 ‘극’이 된다. 이로 인해 르네의 죽음은 단지 무대의 주인공 ‘르네라는 한 개인’의 최후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송과의 이별의 연장선으로서 제시된 르네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연출적 실수로 인해 관객들에게 르네의 죽음은 사랑에 배신당한 인물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연민적으로 비춰진다. 이런 연출적 과오와 르네가 뒤집어쓴 나비부인의 정체성은 작가가 그나마 의도하고자 했던 제국주의 백인 남성의 몰락-단죄로도 받아들여지기 힘들게 만든다.작가의 제국주의 이면의 가부장질서에 대한 몰이해는 역시 작품 내에서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오리엔탈리즘과 젠더의 관계를 다루면서도 특히 오리엔탈리즘에 투사된 ‘여성’을 다루면서도 이 작품에는 여성이 배제되어있다. 송은 처음에는 여성 섹슈얼리티를 표방하나 결국 생물학적 남성이며 스스로도 이를 인정하는 측면에서 결국 여성 젠더는 껍데기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송과 다르게 ‘드레곤 레이디’의 섹슈얼리티를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여성 인물들은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동양여성을 신비한 성적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재생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진 동지는 인민복을 입고 화장을 하지 않은 여성으로 송을 억압하는 당국의 부역자로 묘사된다. 진은 여성으로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 행위를 비판하는데 이는 극에서 여성이 여성을 표방하는 남성에게 가하는 비판이 아닌 송에 대한 억압으로 표현되어 정당한 비판의 기능을 상실하게 만든다. 또한 송의 경극의 여성 역할을 남성 배우가 맡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진이 가부장제를 이야기 하지만 송이 이를 ‘남성이 여성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더 잘 알기 때문에’라고 정정해버린다. 송의 이 대사로 송이 결국 남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과 작가의 여성관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동양 여성이 아닌 서양 여성의 경우에도 별 다르지 않다. 서양 여성은 드레곤 레이디처럼 특정 섹슈얼리티로 대상화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성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더해서 작품에서 제국주의 식민지배가 거의 남성으로 표상되나 제국주의 국가의 여성 역시 동참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다뤄진다. 르네의 아내는 제국주의 서양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거나 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다. 그러나 나비를 묘사하던 그녀의 장면 바로 다름으로 르네가 화면을 향해 파리채를 휘두르는 장면으로 연결되며 직관적인 비판으로 이어진다. 르네의 최후가 서정적으로 묘사되어 모호한 비판이 되어버린 부분과 비교된다. 더 심각한 부분은 식민지배에 있어 섹슈얼리티가 지배 도구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상징체계의 역할 이상으로 그런 이념적 부분이 현실의 동양 여성들에게 성적 착취로 가해되었음을 너무 가볍게 다룬다. ‘여성’으로서 르네에게 성을 바치고 다시 남성 정체성으로 되돌아간 후에는 르네를 버리고 떠나는 송의 서사는 실제 성을 착취당했던 여성들에 대한 남성의 ‘대신 복수하기/사과받기’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