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교육학이 하나의 학문적 분과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2세기가 넘어가고 있는데, 그 기간동안 학문으로서 기독교교육학을 정의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있어왔다. 그 논의의 시간들 속에는 정통신학의 주변에 머물면서 학문으로서 자리와 위상이 위태로웠던 기간도 있었다. 기독교교육을 단순히 그 교육적 행위 자체로 성경을 가르치거나, 신학적 교리나 명제들을 전달하는 기술에 불과한 것으로 보려는 편협한 시각은 기독교교육을 신학과 연결 짓는데 장애가 되어 왔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기독교교육학은 성경을 텍스트로 삼고 하나님을 교육의 주체로 인식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실천적 교육을 넘어선 경건의 학문이다.그렇다면 기독교교육이 하나의 학문으로서 연구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기독교교육의 행위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학습자로 하여금 행위의 변화를 동반하는 실천을 일으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목적, 과정, 내용, 평가 등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적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둘째, 기독교교육이 학습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실천적인 특성만이 강조되어, 학문적 이론이 없는 하나의 응용기술에 머무르는 것을 탈피하기 위함이다. 이론적 기초가 마련되고, 더욱 성숙한 학문으로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인접 학문과의 상호 발전적인 관계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셋째, 인간과 인간생활의 모든 것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인간의 궁극적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 사회과학과 같은 실천적 학문의 방법을 빌어 더욱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근대의 교육이 인간의 변혁에 있어서 실패하며 지난 수년간 비판을 받아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 기독교 교육학자들 역시 기독교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시도가 요청되고 있다.
I. 구약시대의 예배 1. 모세 이전 시대의 예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짓게 하신 이후로 성막에서의 제사가 행해졌기 때문에 모세를 기준으로 모세 이전과 모세 이후의 예배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A. 인류 최초의 예배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특정한 제의나 형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삶에서 하나님과 교제 하는 것까지 예배의 정의를 확대한다면 인류 최초의 예배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 서 보냈을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예배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성경에 나타난 인류 최초의 예배는 창세기 4장 3-5절에 기록된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그 시작을 찾 을 수 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는 제물이 나오고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도 함께 나타난다. 창세기에 나타난 족장시대 이전의 또 다른 제사는 노아의 제사이다. 창세가 8장 20-21에서 노아는 홍수 심판이 끝난 후에 심판으로부터 구원과 보호하 심에 대한 감사로써 제사를 통한 예배를 드렸다. B. 족장시대의 예배 족장시대의 예배는 아브라함의 제단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에 대한 감사와 가나안으로부터 인도하여 내 신 언약의 성취에 대한 감사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 를 떠나 평생을 장막에 우거하는 동안 그와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믿음 안에서 반응하며 제단을 쌓았다. 세겜 땅 모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제단을 쌓았고(창 12:7), 여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며 그곳에서 하 나님의 이름에 담긴 그 언약의 신실성 앞에서 제단을 쌓았다(창12:8). 아브라함을 지나 이삭과 야곱 또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믿음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이들 이스라엘 족장들의 제사는 모두 하나님과 개인의 직접적인 인격적 만남에 근거한 것이다.
1 요한복음의 예비적 고찰1.1 심오한 책공관복음에는 비교적 적은 어휘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특이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어휘들이 다양한 문화권에서 쉽게 인지될 수 있는 어휘들로 기술되어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반복적인 일상어와 적은 수의 상징어들인 빛과 어둠 같은 대조를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피상적인 수준에서 읽히는 복음서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요한복음은 신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심오한 책이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자신의 학문적 성숙기에 요한복음을 연구하기 시작하기도 한다.1.2 요한복음에 대한 두 관점1.2.1 비판적 관점독일계의 비판적 신학자들은 요한복음이 요한의 독자적 자료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공관복음의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요한복음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있다. 요한복음과 공관복음 사이의 공통점은 모두 예수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모두 같다고 볼 수 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사이의 차이점은 예수께서 설교하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공관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많은 비유로 가르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영생’이나 ‘생명’ 같은 상징적 언어로 긴 설교를 해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요한복음은 ‘직접 기독론적’자료로 가득아 있다.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이 다루는 이적의 종류는 비슷하는 그 구체적인 내용은 지리적 위치나 시기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비판적 학자들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이러한 차이점을 저자가 마가나 누가로부터 취한 자료를 자신의 견해대로 신학적 해석을 해 놓은 것으로써 요한복음에서는 역사적 예수를 찾을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1. 들어가기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세가지 직무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그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신 그 직무로 우리의 신앙이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우선적이며 유 일한 이유가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하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하나님이 계획하심을 따라 양성합일의 신비 가운데 도성인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대한 순종과 속제의 희생이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전제되어 있으며, 그의 삼중직이 주는 신학적 의미를 통해서 각 개인의 신앙을 넘어 인류에 보이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확인하고자 한다. 예수님은 도성인 신 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선지자, 제사장, 왕의 직분자로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 구약시대에 이 세 직을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시고 하나님으로 부터 성령의 상징인 기름 부음을 받았다. 이러한 구약시대의 기름 부음으로 그 권위가 신성 에 의한 것으로 여겨졌던 세 직무는 인간에 의해서 수행된 것으로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대한 그림자였지만, 그의 도성인신의 낮아짐으로 그림자는 비로소 실체가 될 수 있었다.2. 선지자직구약의 선지자(예언자)는 일반 백성 보다 먼저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백성에게 그 말씀을 전했던 사람들을 말한다. 이러한 직분을 감당하던 모세적 예언자는 왕정 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그 역할이 시작되었으며, 이스라엘 역사는 이러한 모세와 그의 반차를 따르는 선지자들이 향도(嚮導)하고 계도한 역사였다. 1 이러한 모세와 그 를 뒤따르는 선지자들의 등장은 시내산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두려워했던 이스라엘 회 중이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해 줄 중보자를 세워달라는 요청에 모세만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 다.하지만 이처럼 구약시대를 관통하는 긴 역사 동안 있어 왔던 그 어떤 선지자 보다 가장 위대하고 완전한 선지자는 예수그리스도이다.
‘오경’이란 이름은 최소한 기원전 2세기 이후부터 히브리 구약성서의 첫 번째 다섯 권을 지칭하며 ‘토라’(히브리어: 토라, Torah)라는 말로도 불려 왔다. 오경을 뜻하는 헬라어 ‘Pentateuch’라는 헬라어 용어는 “다섯 개의 상자”라는 뜻의 헬라어 펜타튜코스 (pentateuchos)에서 유래하며 “다섯 권의 율법서”를 가리켜 왔는데, 이 헬라어 용어는 1세기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의 헬라파 유대인들에 의해서 대중화된 것으로 본다1.이스라엘 민족은 유대교의 경전인 타나크(히브리어: Tanakh)에서 오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현대의 신약시대 성도 역시 오경을 신약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 삼기때문에 역시 중요한 성경으로 읽으며 상고하고 있다. 오경의 저술과 관련하여 성경 어디에도 저자에 대한 언급은 물론이고 다섯 권의 구분에 대한 어떤 암시도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오경 앞에는 ‘모세’가 더해져서 ‘모세 오경’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후대의 많은 학자들은 역사비평을 통하여 모세가 오경의 저자가 아니라는 많은 가설들을 세워 나가며, 오경의 모세 저작설을 부인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경을 누가 기록했는지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일까? 현재 오경이 저술과 관련한 연구는 몇 장의 페이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고든 웬함이 지적2한 바와 같이 여러 시대의 여러 연구는 당시의 학문적 방법의 틀 안에서 학자 개개인의 학문적 성향에 따라 다양한 결과들로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는 복잡한 결과들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특정 학문적 가설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경의 권위를 수호하고 신앙적 믿음 안에서 복음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해석학적 방향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