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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군산 독립운동가 이야기
    군산 독립운동가 이야기
    (1) 임병찬 선생과 역사인식돈헌 임병찬 의병장은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 광월마을의 남산밑에서 출생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고 한다. 그런데 돈헌 선생은 이복 동생 병대, 아들 응철, 손자 진, 수명 등 3대가 함께 항일 구국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었던 보기드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가문이다. 선생은 열여섯 나이에 전주부 식년감시에 장원급제후 가세가 빈한해 옥구현 형방을 시작으로 전주감영 공방 등 향리의 길로 나섰다.조선 후기에는 전라도 향리의 위세가 대단해서 흥선대원군은 전라도 향리들의 작폐를 충청도 사대부, 평안도 기생과 더불어 조선의 3대 폐단으로 지목했을 정도였다. 학문이 뛰어나고 계산에 밝았던 그는 향리들의 관행에 힘입어 막대한 재산을 모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그러나 모은 재산을 모두 백성들의 빈민구제 활동과 독립운동에 내놓아 후손들은 만주 등지를 떠돌며 빈한한 생활을 하였다.임오군란이 일어나던 해 시국이 불안해지자 서른 두 살의 젊은 나이에 아내의 고향 정읍 산내면 장금리 산골로 친족들을 이끌고 이사를 했다. 그 후 영국군함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는 사건이 생기자 거문도에 성을 쌓는 설진별감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낙안군수로 1년 남짓 선정을 베풀다 귀향한 곳이 산내면 종송리(후에 종성리로 개명)였다. 그동안 집안에서는 동생 병대가 무과 전시 급제를 했고 아들 응철이 문과 전시에 급제를 한 경사가 있었다
    독후감/창작| 2026.04.15| 51페이지| 50,000원| 조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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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재 송병선의 생애와 임피 유적지 관리빙안
    교수 : 최규홍 연재 송병선의 생애와 임피 유적지 관리방안 1연재송선생진상송병선 (1836 -1905 12. 30 사시 ) 휘 : 병선 , 시호 : 문충 호 : 연재 , 동방일사연재 송병선 위정척사운동의 영향이이 ➡ 김장생 ➡ 김집 (1574-1656) : 김장생 자 군산 최고 사액 봉암서원 ( 서원마을 ) : 1660 년 창건 ( 조산두 , 조산후 등 유림 ) - 愼獨齋 金集 (1574-1656) :1664 년 배향 , 임피현령 (1628.12-1629.7) - 自庵 金絿 (1488-1534) : 1666 년 배향 , 임피유배 (1531-1533) - 滄江 趙涑 (1595-1668) : 임피현령 (1634-1639), 追配 상소 : 죽봉 고용집 (1672-1735) 등 유림 ➡ 송시열 (1607-1689) : 김장생 , 김집 문하 , 송병선 9 대조 ➡ 송달수 , 송근수 : 백부 , 숙부 ➡ 송병선 ( 1836-1905) - 鳳 巖書 院 :1695 년 사액 ( 고용집 등 지역 유림 사액 소청 ) 1868 년 훼철 - 考巖書院 : 1695 년 사액 ( 송시열 배향 고암서원 창건 , 죽봉 고용집 등 소청 ) 1871 년 훼철 ) 연재 송병선의 학통考巖書院 - 우암 송시열 (1607-1689) 배향 - 1695 년 사액서원 창건- 소재지 : 임피면 술산리 383-1 - 1858 년 (23 세 ) : 완산이씨 (24 세 ) 沒 - 1887 년 (51 세 ) : 임피 술산리 꽃달메산 移葬 - 1887 년 (51 세 ): 문생 전지수 간찰 - 1891 년 (55 세 ) : 임피 향약을 만듦 - 1891 년 (55 세 ) : 부모 송면수 , 완산이씨 유택 마련 ( 임피 축산리 산 124 번지 ) : 1891 ( 辛卯 ) 년 10 월 1 일에 문생 田芝秀가 宋秉璿에게 연재의 생모 이씨의 산소를 회덕 용두리에서 임피 축성산으로 이장하는 일에 관한 간찰 연재 송병선 선생 유택우암 가계 송병선 학통 계승도 우암 송시열 ➡ 권상하 ➡ 한원진 ➡ 송능상 ➡ 송환기 ➡ 송치규 ➡ 백 에서 순국함 .국왕을 움직여 일제를 배격할 수 있는 정책을 도모하는 데에 실패 재차 국왕을 독대하고자 하였으나 실패 일제는 송병선의 서울상경과 국왕면담 , 그를 추종하는 제자그룹 등을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고 판단 경무사 윤철규 ( 尹喆圭 ) 로 하여금 송병선을 유인케 하여 대전으로 압송 12 월 28 일 대전으로 압송되어 온 다음날 유소 작성 ‘도 ( 道 ) 의 수호 ’ 를 위해 죽음을 선택 . 송병선이 의미하였던 ‘도의 수호’는 이 나라를 지탱하는 ‘백성 , 민족 , 조국 ’ 연재 송병선 遺疏 ( 乙巳年 1905. 12. 29.)초야에 있는 송병선은 목숨을 끊으려 하면서 삼가 대궐을 향하여 피눈물을 흘리며 상소를 올려 우리 성상 ( 聖上 ) 께 영결을 고합니다 . ------- 아 ! 여러 역적들을 처단하지 않고 강제로 체결된 조약을 폐기하지 않는다면 오백년 종묘사직은 지금 멸망할 것이고 삼천리 강토는 오늘 없어질 것이며 수백만 백성들은 지금 멸망할 것이고 오천년을 내려오던 도맥이 오늘 끊어질 것이니 신이 오늘 산다 한들 무엇 하겠습니까 ? ------- 바라건대 ---- 여러 역적들을 속히 처단함으로써 나라의 법을 집행하고 강제로 체결된 조약을 속히 폐지함으로써 국권을 회복하소서 . 인재를 선발하여 직책을 맡겨 우리 백성 을 보전하고 종묘 와 사직 을 영원히 받들어 끊어져 가는 도맥을 부지한다면 신은 죽어서도 오히려 살아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 정 신이 혼몽하고 기가 막혀 말에 두서가 없습니다 . 죽음에 임하여 삼가 아룁니다 . 遺 疏장례식 문생 유위 , 전지수 , 이형순 등이 앞장서 생전 물색하였던 임피 술산리 묘소 정함 고봉산 낙영당 임피 유생 ( 儒生 ) 들이 산앙사 ( 山仰祠 ) 사당 창건하여 매년 음 3 월 중정에 추모 제사연재 송병선 임피현 강학활동연재 송병선 임피현 강학활동 樂英堂 上樑文은 ‘ 歲在壬戌五月九日開基同月十日午時堅柱 ’ 1862 년 ( 임술년 ) 5 월 9 일 : 樂英堂 상량문에는 개기 , 5 월 10 일에 견주한 것으로 기록적군산지역 연재 관련 유적 ( 2) 의비공임지묘 ( 義婢恭任之墓 ) : 소재지 : 임피면 술산리 3 83-1 - 금산 성곡리 ( 星谷里 ) 에서 이장 . - 1906 년 음력 1 월 16 일 자결 (16 세 ). - 시비 ( 侍婢 ) 로서 영동에서 연재 선생의 죽음 소식을 듣고 주인의 상식을 위하여 10 여일 통곡으로 날을 지새다 충신대감을 지하에서 모시겠다며 자결 . - 의비 공임의 묘 : 유언대로 연재 선생의 묘 앞에 안장 -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 (2018. 10)군산지역 연재 관련 유적 (3) 낙영당 ( 樂英堂 ) 편액 : 개정면 아산리 121-2 樂英堂丁酉中秋霞翁書 : 하석 이용원 , 1897 년 음력 8 월 15 일에 씀 . 하석 이용원 : 연재 처남 , 이조 , 형조판서 , 대사헌 . 연재 , 면암과 함께 위정척사운동 - 연재 사후 일제 남작 , 부친 이병식과 함께 친일매국인사로 규정군산지역 연재 관련 유적 (5) 상량문 : 세재 임술 (1862 년 )군산지역 연재 관련 유적 (6) 연재 부 송면수 , 모 완산이씨 유택 - 임피면 축산리 산 124 번지 (7) 原本 樂 英堂 稧 案의 樂 英堂稧 座目 - 丁酉 3 월 (1897 년 ) 에 쓴 낙영당 운영 문서책자 - 낙영당기 ( 이용원 판서 ), 부양루기 ( 김학진 판서 ), 낙영당계첩서 , 입의 , 상벌 , 학규 및 낙영당계 후원인사 기부금 명세를 기록군산지역 연재 관련 유적 ( 강학활동 : 낙영당계좌목 ) 順 官職 名 字 , 號 , 出生 金 1 判書 李容元 字 景春 , 號 霞石 , 壬辰生 , 全 州人 十兩 2 祭酒 ( 좨주 ) 宋秉璿 字 華玉 , 號 淵齋 , 丙申生 , 恩 津人 十兩 3 判書 金鶴鎭 字 聖天 , 號 後夢 , 戊戌生 , 安 東人 十兩 4 都事 宋秉珣 字 東玉 , 號 心石 , 己亥生 , 恩 津人 五兩 5 李億純 字 聖淵 , 己 酉生 , 全 州人 五兩 6 蔡相夏 字 公三 , 己酉生 , 平康人 二兩 7 李觀淳 字 公彬 , 乙卯生 , 星州人 二兩 8 鄭峻燮 字 聖極 , 丙 辰生 을 건립 , 조선 태조 고종황제를 배향하고 1926 년 9 월 12 일 향사 1927 년 봄 제사를 지내고자 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제일 ( 祭日 ) 변경 제관 ( 祭官 ) 은 10 인으로 한정하여 몰래 제사 일본의 방해와 파괴 공작으로 1927 년에 훼철다 . 진안지역 연재 관련 유적 광복 후인 1947 년 회덕전에 단군과 조선 태조 , 세종대왕 등을 배향 , 명칭을 이산 정사 ( 駬山精舍 ) 에서 이산사 ( 駬山祠 ) 로 개칭 임금을 배향했기 때문에 성균관 사림 의견에 따라 이산묘로 개칭 회덕전 아래 동쪽 사우 : 영모사 ( 永慕祠 ) 에 조선 名儒 40 위 배향 서쪽 사우 : 영광사 ( 永光祠 ) 에 을사늑약 이후 순국한 선열 34 위 배향다 . 진안지역 연재 관련 유적 (2) 용암 ( 龍巖 ) :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92 번지마이산 입구 - 용암 , 주필대 , 마이동천 암각 연재 송병선과 문인들 암각 - 탐진인 최제학 , 최은상 등의 이름 암각 : 경자 (1900.8) 습재 최제학 - 습재실기의 저자 - 송병선 문인 , 최익현 무성창의 12 의사 중의 한사람 - 1906 년 최익현 삼우당 (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 에 머물면서 진안 순행다 . 진안지역 연재 관련 유적 (3 ) 영광사 ( 永光祠 ) 제현사적 - 연재 송병선 외 33 위 - 전북지역 제현 5 인 정재 이석용 해산 전기홍 , 오천 김석진 모은 정동식 의사 백정기다 . 진안지역 연재 관련 유적 순번 제현명 ( 諸賢名 ) 순번 제현명 ( 諸賢名 ) 1 충정공 산재 조선생 ( 忠正公 趙秉世 ) 17 의사 안중근 ( 義士 安重根 ) 2 충정공 민선생 ( 忠正公 閔泳煥 ) 18 일완 홍범식 ( 一阮 洪範植 ) 3 충정공 홍만식 ( 忠正公 洪萬植 ) 19 오천 김석진 ( 梧泉 金奭鎭 ) 4 부재 이상설 ( 溥齋 李相卨 ) 20 소송 정재건 ( 小松 鄭在健 ) 5 일성 이준 ( 一醒 李儁 ) 21 모은 정동식 ( 慕隱 鄭東植 ) 6 녹천 고광순 ( 鹿泉 高光洵 ) 22 향산 이만도 ( 響山 李晩燾 ( 全海山 ), 한사국 ( 韓士國 ), 이광삼 ( 李光三 ) - 총 지 휘 : 박갑쇠 ( 朴甲釗 ), 곽자의 ( 郭子儀 ), 임종문 ( 林宗文 ) - 도로부장 : 김사원 ( 金士元 ), 김공실 ( 金公實 ), 김성율 ( 金成慄 ) - 보 급 : 한규정 ( 韓圭井 ), 박금동 ( 朴金東 ), 박문국 ( 朴文局 ) - 군 량 : 오기열 ( 吳琦烈 ), 조영국 ( 趙榮國 ), 김학문 ( 金學文라 . 임실지역 연재 관련 유적 (2) 大東倡義團 義兵將 全海山과 配의 墓所라 . 임실지역 연재 관련 유적 (3) 연재의 문인 念齋 趙 熙 濟 묘비 念齋趙熙濟先生之 墓 :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소재 대전 현충원 이장 (2013.4.29)이석용 ( 李錫庸 ) 의병장 창의동맹단 ( 倡義同盟團 임실 등지에서 이석용 ( 李錫庸 ) 이 창의동맹단 ( 倡義同盟團 ) 을 조직하자 전해산은 동단에 합류 , 참모로 활동 본격적 의병항쟁 대열에 참가 倡義同盟團 진용 대 장 : 이석용 ( 李錫庸 ) 선 봉 : 박만화 ( 朴萬華 ), 송판구 ( 宋判九 ), 최덕일 ( 崔德逸 ) 중 군 : 여운서 ( 呂雲瑞 ), 김성학 ( 金成學 ) 후 군 : 김사범 ( 金士範 ), 윤명선 ( 尹明善 ), 김성학 ( 金成鶴 ) 참 모 : 전해산 ( 全海山 ), 한사국 ( 韓士國 ), 이광삼 ( 李光三 ) 총 지 휘 : 박갑쇠 ( 朴甲釗 ), 곽자의 ( 郭子儀 ), 임종문 ( 林宗文 ) 연 락 : 홍윤무 ( 洪允武 ), 박성무 ( 朴成武 ), 윤병준 ( 尹秉俊 ) 도로부장 : 김사원 ( 金士元 ), 김공실 ( 金公實 ), 김성율 ( 金成慄 ) 보 급 : 한규정 ( 韓圭井 ), 박금동 ( 朴金東 ), 박문국 ( 朴文局 ) 군 량 : 오기열 ( 吳琦烈 ), 조영국 ( 趙榮國 ), 김학문 ( 金學文 라 . 임실지역 연재 관련 유적소충사 전경라 . 임실지역 연재 관련 유적 ( 정재 이석용 의병장 생가 ) 이석용 의병장 손자 이명근 회장 ( 전 광복회 전북지회 임실무주진안장수 연합지회장 )정재 이석용 의병장의 생가라 . 임실지w}
    기타| 2026.04.14| 90페이지| 50,000원| 조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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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헌 임병찬 선생 기념사업 추진방향
    군산문화원 무성서원 병오창의 113 주년 기념 항일의병장 돈헌 임병찬의 병오창의와 대한독립의군부의 조명 심포지엄최 규 홍 제 3 주제 돈헌 임병찬 선생의 현양유적과 기념사업 추진 방향돈헌 임병찬 선생 影幀 林炳瓚 (1851-1916) 영정 遯軒林公影幀讚 山嶽正氣忠義一身 名垂宇宙誰久誰新 義王春菴 큰 산의 정기와 충의가 일신에 배어 있도다 . 그 이름은 언제나 새롭게 우주까지 오래도록 남을 것이로세 . - 義親王 李堈 친필 ( 고종 다섯째 아들 ) - 御用畵師 , 石芝 蔡龍信 ( 定山 ,1850-1941) 作 - 제작년도 신해년 (1911 년 ) - 돈헌회 소장품돈헌 임병찬 선생 기념사업 추진 방향 林炳瓚 (1851-1816) 1962 년 독립장 - 遯軒先生年譜 : 哲宗熙倫大王二年二月五日 先生生 于全羅北道沃溝縣 西面大寺里南山第 ( 현 옥구읍 상평리 남산마을 ) 林炳大 ( 1869-1936 ) 돈헌의 弟 , 1996 년 건국포장 林應喆 (1871-1942) 돈헌의 子 , 1990 년 애족장 林鎭 (1889-1967) 돈헌의 孫子 , 서훈 신청 예정 - 大韓獨立義軍元帥府秘書局秘書 秘書 林 鏡 (1897-1977) 돈헌의 孫子 , 1992 년 건국포장병오창의 관련 顯揚 자료 조사 光復會 전라북도지부 조사자료 지역별 의병관련 현양 장소 67 개소 집계 기타 조사 자료 : 도내외 현양 장소와 자료 조사 돈헌회 소장 자료 遯軒 임병찬 선생과 一味堂 임응철 선생 유품시 , 군별 주요 현양 장소 : 군산시 遯軒 林炳瓚 先生 生家터 (1851-1882),32 세에 이거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 769 번지 ( 沃溝縣 西面 大寺里 南山第 )군산시 건립 생가터 ( 生家址 ) 비석 : 타지역 임시 설치 - 抗日義兵將 遯軒 林炳瓚 先生 生家터 군산시군산시 돈헌의 옥구 생가 기록 1. 홍영기 교수 저 , 독립의군부의 지도자 임병찬 , 역사공간 , 2016., 14 쪽 , 147 쪽 . - ‘ 옥구의 집은 제각으로 사용 ’ 내용 2. 돈헌유고 연보편 , 274 쪽 . - 1882 년 임오 191927 년 배향 , 돈헌 임병찬 1946 년 배향 ) ➡ 賢忠祠 (2011 년 ) : 향교 서편 사방 1 칸 맞배 지붕 사당 매년 양력 9 월 29 일 제사 - 옥구향교 유림들의 면암 , 돈헌에 대한 尊崇思想으로 배향 - 의병장 고봉민 (1862-1919) 선생의 子 고수장 ( 전 고병우 장관 父 ) 典校 의 功德군산시 沃溝鄕校 賢忠祠 : 옥구읍 광월길 33-50( 상평리 626)군산시 五賢 位牌 文昌候 崔致遠 , 忠翼公 趙泰采 , 忠愍公 李健命 (3 현 ) 勉庵 崔益鉉 (1927 ), 遯軒 林炳瓚 ( 1946 ) : 5 현군산시 沃溝鄕校 賢忠祠 勉庵 崔先生 位牌 , 遯軒林先生 位牌군산시 勉庵崔先生位 , 遯軒林先生位 賢 忠壇 ➡ 賢 忠祠 앞으로 移設 (2011 년 )군산시 면암 최익현 , 돈헌 임병찬 선생 비문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 , 충이공 이우당 조태채선생 , 충민공 한포재 이건명 선생 면암 최익현 선생 (1927), 돈헌 임병찬 선생 (1946)군산시 면암 최익현 , 돈헌 임병찬 선생 비문군산시 군산근대역사박물관 李永三 (1875-1910) : 2017 년 애국장 , 1909.7. 박찬중 의진 10. 임병대 (1869-1936): 1996 년 건국포장 11. 임응철 (1871-1936) : 1990 년 애족장군산시 독립의군부 각군 대표인 명단 중 沃溝郡 , 臨陂郡 代表人 - 군산지역 임병찬 외 총 35 인 - 독립운동서훈자 : 임병찬 , 임병대 , 임응철 포함 8 명 臨陂郡人 17 인 강중견 , 고규상 , 고원곤 , 고익상 , 문형모 , 이승수 , 이춘길 , 이충백 , 이헌제 , 이현문 , 이호순 , 임병일 , 서정록 , 전경인 , 조준환 , 최용환 , 최종국 沃溝郡 人 18 인 고봉민 , 고한일 , 김덕장 , 두철수 , 문종각 , 조남필 , 조사현 , 이준영 , 임병대 , 임병연 , 임응철 , 송익범 , 전오풍 , 전우표 , 전원혁 , 전태서 , 전한표 , 차경윤 출처 : 전북향토문화연구회면암 초상 , 면암 ㆍ 돈헌 압송도 ( 군산➡청양군 ) - 영회 최만식시 , 군별 주요 현양 장소 : 순창군 회문산 돈헌 임병찬 선생 묘지 전경 - 구림면 안정리 회문산 (830m) 정상 기슭 아래 , 등산로 우측순창군 묘소 사초작업 ( 2019.10 월 )순창군 상석 비문 (1946 년 ) : 資憲大夫獨立義軍元帥府 司令總將 平澤林公諱炳瓚 之墓 乾坐 檀紀四千二百七十九年丙戌五月一日 不肖孫 鎭 鉉 奉安 ) 참고 : 司令總將 품계 , 정 2 품 벼슬 2019.10 월 : 돈헌회가 봉분과 석축 공사를 완료한 상태 2020. 4 월 : 봉분 , 둘레석 , 비석 , 상석을 바로 세우고 望柱石을 양쪽에 세울 계획시 , 군별 주요 현양 장소 : 고창군 一狂 記念館 : 鄭時海 의사 추모 기념관 - 병오창의 유일한 殉國 의병 정시해 의사 (1872-1906) - 2 층에 영당 마련 - 1990 애국장시 , 군별 주요 현양 장소 : 익산시 의병장 梧下 李圭弘 (1877-1928) 의사 : 1990 년 애국장 - 기념비 및 묘 ( 팔봉면 석암리 관동 ) - 병오창의 , 독립의군부 : 박이환 , 문형모 와 함께 참여 - 부친 李琪榮 (1849-1922) : 군자금 지원 , 건국포장 (2015)익산시 의병장 梧下 李圭弘 ( 1877-1928 (1) 1907.11. 6.- 1908.4.20.: 병오창의 후 대표적 의병전쟁 의병장 이규홍 , 부장 박이환 , 참모장 문형모의 의병창의 , 일본군 129 명 사살 , 아군 85 명 순국 (2) 1918 년 상해 망명 , 김규식 경비 지원 , 김좌진 독립군 양성자금 지원익산시 의병장 梧下 李圭弘 의사 기념사업 추진 (1) 2013 년 9 월 23 일 비영리단체 ‘ 익산의병기념사업회 ( 이용희 ) 등록 (2) 2016 년 7 월 20 ( 사 ) 익산의병기념사업회 설립 (3) 2019 년 5 월 1 일 국가보훈처 사업 승인 총 사업비 98 억 1,400 만원 중 - 국비 24 억 7,260 만원 확보 - 도비 27 억 6,940 만원 - 시비 27 억 6,940 만원 - 자부담 18 억 560 만원 ( 시민金東 ), 박문국 ( 朴文局 ) 군 량 : 오기열 ( 吳琦烈 ), 조영국 ( 趙榮國 ), 김학문 ( 金學文임실군 이석용 의병장 손자 이명근 (97 세 ) 선생 전 광복회 전북지회 임실 , 무주 , 진안 , 장수 연합지회장 이석용 의병장 생가 복원임실군 靜齋 李錫庸 의병장 생가 (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시 , 군별 주요 현양 장소 : 정읍시 무성서원 전경정읍시 병오창의기적비 - 무성서원 내 1992 년 건립정읍시 태인향교 - 태인의병 주둔 , 전력 강화 (1906. 음 4.13) 40정읍시 河淸祠 터 , 동의기념비 - 산외면 오공리 야정마을 . 하청사 소실 , 同義紀念碑 보존 - 하청사 : 1928 년 이희봉 , 권영모 등 유림 34 인 발의 , 일제에 항거한 최익현 , 임병찬 , 오계엽 , 박재규 , 박재구 등 독립운동가 5 인 을 향사하기 위해 하청사 창건 1929 년 유림 264 명이 하청사와 비 건립에 동의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한국전쟁시 하청사 소실 1974 년 현재 자리에 同義紀念碑 移設정읍시 同義紀念碑 - 산외면 오공리 193, 향토문화유산 제 9 호 - 1930 년 동의기념비 창건 - 義親王 李堈 ( 고종 다섯째 아들 ) 비문 씀정읍시 同義紀念碑정읍시 병오창의 기록화 ( 檄文 낭독 형상화 그림 ) - 盟主 최익현 , 總司令 임병찬 (1851-1916), 議官 김영상 (1936-1911) - 정읍 태산선비문화사료관 ( 안성렬 관장 ) 소장품 , 홍순무 作정읍시 泌陽祠 - 무성서원 옆 - 春雨亭 金永相 ( 1836-1911) 선생 배향시 , 군별 주요 현양 장소 : 김제시 春 雨 亭 金永相 ( 1836-1911) - 1991 년 애국장 投水圖 ( 殉節投水圖 ) - 가로 95cm, 세로 133cm - 御用畵師 , 石芝 蔡龍信 ( 定山 ,1850-1941) 作 작품 해설 - 은사금 사령서 찢어 버림 - 1911 년 4 월 군산형무소로 헌병대 압송 도중 만경강 신창진 ( 萬頃沙倉 , 사창이 , 새챙이 ) 나루터 바다에 투신 - 1911 년 5 월 일미당 선생 유품 목록 : 16 점 西行日記 - 1907 년 2 월 9 일 - 3 월 14 일까지 대마도에서 還國後 일기돈헌회 소장 돈헌 , 일미당 선생 유품 목록 : 16 점 丙午日記 ( 對馬島日記 ) 1906 년 7 월 9 일 – 8 월 7 일까지 대마도 유폐중 쓴 일기 - 돈헌유고 초고 필사본돈헌회 소장 돈헌 , 일미당 선생 유품 목록 : 16 점 林書 테라우치 총독 , 일본 내각총리대신에게 보내는 항의서한 등돈헌회 소장 돈헌 , 일미당 선생 유품 목록 : 16 점 對馬島 日記 (5 권 ) 1907 년 1 월 1 일 이후 돈헌유고 필사본돈헌회 소장 돈헌 , 일미당 선생 유품 목록 : 16 점 管見 ; 돈헌유고 권지사 , 독립의군부 活動 方略 , 조직 등 論天下大勢 論時局形便 知己 知彼 天時 制勝 定算 料人 大韓獨立義軍府官制 料事 備禦 附下別錄돈헌회 소장 돈헌 , 일미당 선생 유품 목록 : 16 점 林郡守遯軒褒狀 ( 原本 ) 전북 유림에서 遯軒 先生 별세후 수여한 포장돈헌회 소장 돈헌 , 일미당 선생 유품 목록 : 16 점 褒狀 ( 原本 ) - 성균관에서 수여한 것으로 보이는 돈헌 선생 별세후 수여한 포장돈헌회 소장 돈헌 , 일미당 선생 유품 목록 : 16 점 遯軒先生家狀 ( 原本 ) 돈헌 선생 별세후 장자 일미당 임응철 선생이 부친의 행적을 기록한 문서돈헌회 소장 돈헌 , 일미당 선생 유품 목록 : 16 점 一味集 (原本 ) - 손자 임진 , 임경 등이 편집 , 간행한 것으로 추정 - 일미당 임응철의 문집으로 봉장일기 , 철장일기 , 별세후 문인들의 추모 글 등을 수록돈헌회 소장 돈헌 , 일미당 선생 유품 목록 : 16 점 義兵抗爭日記 돈헌유고 개정판 , 한국인문과학원 , 1986 년 인쇄본 간행 - 순국 70 주년 기념 복간돈헌회 소장 돈헌 , 일미당 선생 유품 목록 : 16 점 건국공로훈장증병오창의 , 독립의군부 관련 유물 , 사적 , 기념물 기타지역 관련 유물 , 사적 , 기념물 1. 거문도 ‘ 大韓獨立義軍元帥府司令總長遯軒林炳瓚義士殉國碑 ’ ( 여ow}
    기타| 2026.04.14| 67페이지| 50,000원| 조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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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금만평야의 자부심으로 새만금광역시를 지향하자
    금만평야의 자부심으로 새만금광역시를 지향하자
    금만평야(金萬平野)의 자부심으로 ‘새만금광역시’를 지향하자최 규 홍(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 임피향토사연구회 대표)오늘날 우리 전북의 심장부인 새만금을 둘러싼 현실은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선조들이 천 년을 일궈온 비옥한 터전을 눈앞에 두고 지자체 간의 관할권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치닫더니, 이제는 역사적 정통성 마저 무시한 행정통합 논의로 민심이 분열하고 있다. 최근 김제시의회에서 제기한 전주와의 통합 논의를 보며, 필자는 형언할 수 없는 비애와 위기감을 느낀다. 과거 임피현, 옥구현과 만경현이 인접하여 이뤘던 드넓은 들녘을 선조들은 ‘금만평야(金萬平野)’라 불렀다. 이제 ‘금만평야’는 단순히 쌀을 생산하는 땅에서 새만금으로 재탄성되었고 현대차의 새만금 투자로 로봇·수소·AI 산업단지로 비상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앞의 현실은 참으로 참담하기만 하다. 금강, 만경강, 동진강의 하류 도시에 불과했던 이들 지자체들은 2010년 새만금 방조제 준공 후 이제까지 매립지와 기반시설의 관할권을 놓고 싸우기만 했다. 그 이유는 새만금신항의 항만물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더니 선거철이 돌아오자 최근 김제시의회에서는 전주시와 통합을 논의하여 도민들을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든다.‘금만평야’의 역사를 잊었는가. 김제(金堤)와 만경(萬頃)의 이름이 합쳐진 그 명칭 안에 이미 군산과 김제는 하나의 경제 공동체이자 운명 공동체로서 역사적 지정학적 정통성이 깃들어 있었다. ‘새만금’이라는 이름 역시 새로운 ‘만경·김제 평야’를 개척한다는 뜻이 아니었던가. 그 이름의 주인인 우리가 왜 정작 그 정통성을 도외시한 채 밖으로 눈을 돌리려 하는가.강물은 하류에서 다투지 않고 하나로 만난다. 군산, 김제, 익산, 부안은 각각 떨어진 점의 도시가 아니다. 금강, 만경강, 동진강이라는 세 줄기 젖줄이 이 하류 도시로 흐르고 흘러 서해의 끝자락에서 하나로 만나 생명의 터전을 이뤘다. 지자체 간에 인위적인 선으로 나누기 전에, 우리는 같은 강물을 마시고 같은 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만백성(萬百姓)들 이었다. 세 강이 만나는 새만금에서 지자체들이 하나로 융합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자 지정학적 순리이다. 전주에서 새만금 까지 걸리는 시간이 불과 15분 거리라 하여 김제가 전주의 일부가 될 수는 없다. 행정 통합의 원칙에는 반드시 역사적 맥락과 지정학적 정통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독후감/창작| 2026.04.14| 1페이지| 20,000원| 조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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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가족
    가족
    백릉 채만식의 가족 이야기---------최규홍백릉 채만식이 간 지 70여 년이 흘렀지만 남긴 작품세계는 군산항 선창가에 불멸의 화신처럼 남아 있다. 고향의 후학들은 1984년 6월 11일 ‘탁류’의 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월명공원 정상에 「백릉 채만식선생문학비」를 건립했다. 문학비 전면에는 ‘탁류’의 머릿글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이렇게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 채 얼려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강이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도회지)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탁류’는 일제강점기 장마철 흙탕물 같이 세태에 휩쓸린 여인의 운명을 그린 사회상을 집약한 것이다. 그러면서 잔잔하게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처럼 유려하고 토속적인 사투리가 펼쳐진다. 후면에는 이고장 시인 홍석영의 ‘글’이 새겨져 있다. 「---‘탁류’는 한 시대의 역사적 현장으로서 세태의 혼탁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인간의 탐구에 기여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군산항 내항 주변 미두장 터 가까이 쌀 창고가 있던 곳에는 ‘탁류’에서 미두장 투기로 재산을 탕진했던 서천 출신 정주사와 그의 딸 초봉, 고태수, 곱추 장형보 등의동상이 세워져 있다. 암울한시대를 살았던 그들이 타임머신을타고 와 째보선창가를 거닐고 있는 것만 같다.채만식은 중앙고보에 재학중이던 1920년 4월 부모로부터 결혼하러 급히 귀향하라는 편지를 받았으나 반응하지 않았다. 결국은 맏형이 상경하여 당시 교장이던 김성수에게 사실을 말하자 교장이 명령을 내려 부득히 귀향했다. 부모의 강권으로 함라에 사는 규수 은선흥(1901-1993)과 1920년 4월 21일 결혼(혼인신고 8월 15일) 했다. 그들은 구습에 따라 조혼을 했지만 결혼 초부터 별거를 했다.채만식은 부인 은선흥 사이에 무열(1924-1945)과 계열(1928-2004) 두 아들을 두었으나 남편과 정이 없었다. 그녀는 고아로 자란 여아(복열, 1926-1991)를 입양하며 외로움을 달랬다. 광복 직전 부인 은선흥이 시댁의 고된 시집살이 끝에 분가하여 친정 함라에서 살 때 일이었다. 채만식이 탄 버스가 처가가 있는 함라를 지날 때 장남 무열이 우연히 그 버스에 승차했다. 부자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으므로 채만식과 동행했던 사람이 ‘네 아버지’라고 언질을 주었다. 하지만 무열은 ‘나에겐 아버지가 없어요’라고 대답을 했다. 그때가 채만식이 고향 임피에 잠시 내려와 있을 때로 추정이 된다. 무열은 1945년2월 열병으로 함라면 함열리 358번지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은선흥은 무열이 친부와 만난 충격으로 죽었다고 생각했다. 장남을 의지하며살았던 그녀는 남편을 원망했고 상심은 매우 컸다.그후로채만식이 찾아와 대문을 두드려도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후 그녀는 가족을 이끌고 구리 교문리로 이사해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갔다. 5년 전 서울에서 만난 채석재(백릉의 자 계열씨의 장자)는 1993년 10월 21일 노환으로 별세(92세)하여 ‘남양주 모란공원’에 모신 조모의 묘소로 필자를 안내했다. 그는 조모가 생전에 사용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손때 묻은 재봉틀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채만식에게는 혼외부인 김씨영(金氏榮)과의 사이에 아들 병훈(1942-1985), 출가한 딸 영실(1944-생존추정), 영훈(1947-1996)을 두었다.백릉 채만식의 가족 이야기---------최규홍백릉 채만식이 간 지 70여 년이 흘렀지만 남긴 작품세계는 군산항 선창가에 불멸의 화신처럼 남아 있다. 고향의 후학들은 1984년 6월 11일 ‘탁류’의 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월명공원 정상에 「백릉 채만식선생문학비」를 건립했다. 문학비 전면에는 ‘탁류’의 머릿글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 채 얼려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강이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도회지)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탁류’는 일제강점기 장마철 흙탕물 같이 세태에 휩쓸린 여인의 운명을 그린 사회상을 집약한 것이다. 그러면서 잔잔하게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처럼 유려하고 토속적인 사투리가 펼쳐진다. 후면에는 이고장 시인 홍석영의 ‘글’이 새겨져 있다. 「---‘탁류’는 한 시대의 역사적 현장으로서 세태의 혼탁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인간의 탐구에 기여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군산항 내항 주변 미두장 터 가까이 쌀 창고가 있던 곳에는 ‘탁류’에서 미두장 투기로 재산을 탕진했던 서천 출신 정주사와 그의 딸 초봉, 고태수, 곱추 장형보 등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와 째보선창가를 거닐고 있는 것만 같다.
    독후감/창작| 2026.04.14| 1페이지| 20,000원| 조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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