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52세때, 성균관 대사성- 68세때, 사단칠정변론- 도산으로 귀향, 제자양성에 힘씀4. 퇴계의 저술(1) 소(疏)- 갑진걸물절왜사소(甲辰乞勿絶倭使疏), 1545년- 무진 ... 에 대한 유화책을 건의한 데에서는 그의 소신의 투철함을 발견한다. 이른바 갑진걸물절왜사소인데 그 내용을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옛임금은 이적을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춘추에 오랑캐 ... 강직함도 빠뜨릴 수 없다. 1545년 삼포왜란후 강경책 위주의 조정분위기를 무릅쓰고, 함경도를 넘어 더 강한 세력의 북로가 왜구와 동시에 침략할 가능성을 대비하는 뜻에서, 왜
을 얻으면 책임을 다하고 소신껏 일을 하였다.관직에 있으면서 행한 일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문무를 겸비한 국방책, 침범한 왜적을 용서하고 수교를 해야 한다는 외교정책인 걸물절왜 ... 사소(乞勿絶倭使疏), 왕도를 깨우친 무진육조소, 파면을 당하면서도 궁중의 기강을 바로 세운 진언, 성학십도를 올려 나라의 교학을 개혁한 일, 군수로 나가서는 수리시설을 하여 농업 ... ·국화·연(송·죽·매·국·연)을 다섯 벗으로 삼아, 자신을 포함하여 여섯 벗이 한 뜰에 모인 육우원을 이루어 어울리는 흥취를 즐겼다.61세 봄에는 도산서당 동쪽에 절우사의 단을 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