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이황
- 최초 등록일
- 2006.09.17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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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A+맞은 레포트 입니당 ^^
16세기는 그야 말로 사림파선비들의 수난의 시대였다. 먼저 연산군시대에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일어났고, 그후 중종반정을 통해 중종이 즉위하고 나서 기묘사화가 일어났으며, 명종 즉위 초에 을사사화가 일어나는 등 사화의 연속인 시대였다. 이러한 사화들을 통해 선비들의 기풍이 많이 침체되어갔으며, 이것이 후에 붕당정치의 원인이 되어 선조때 성립된 붕당은 결국 임란을 맞이하기에 이른다.
각 사화들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면 가장 먼저 1498년 즉 연산군4년에 무오사화가 발생하였는데, 이것은 김일손과 유자광의 갈등, 김종직과 이극돈의 대립에 의해 당시 사관으로 있던 김종직이 세조즉위과정을 비난하는 글을 씀으로써 일어났다. 이에 의해 이미 죽었던 김일손의 시체가 파헤쳐져 목이 잘리는등 사림파의 세력이 급감하였다. 두 번째로 일어났던 갑자사화는 역시 연산군시대의 일이었다. 1504년 즉 연산군10년에 임사홍과 연산군의 주도하에 일어난 이 사화는 표면적인 명목은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윤씨의 복위문제 때문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연산군의 공신․선비들의 제거의 목적이 있었다. 세 번째 1519년 중종 14년에 일어난기묘사화는 조광조가 주축이 된 신진사류와 남곤등의 훈구세력의 대결이었다. 이 사건은 중종을 옹립한 사림세력이 훈구세력을 소인으로 규정하여 몰아내기 위한 ‘위훈삭제’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목차
1. 참고자료
2. 16세기 정치상황
3. 퇴계의 생애
(1) 가계
(2) 퇴계의 생애구분
4. 퇴계의 저술
(1) 소(疏)
(2) 성학 관련서적
(3) 기타
5. 역사적평가
본문내용
16세기는 그야 말로 사림파선비들의 수난의 시대였다. 먼저 연산군시대에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일어났고, 그후 중종반정을 통해 중종이 즉위하고 나서 기묘사화가 일어났으며, 명종 즉위 초에 을사사화가 일어나는 등 사화의 연속인 시대였다. 이러한 사화들을 통해 선비들의 기풍이 많이 침체되어갔으며, 이것이 후에 붕당정치의 원인이 되어 선조때 성립된 붕당은 결국 임란을 맞이하기에 이른다.
각 사화들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면 가장 먼저 1498년 즉 연산군4년에 무오사화가 발생하였는데, 이것은 김일손과 유자광의 갈등, 김종직과 이극돈의 대립에 의해 당시 사관으로 있던 김종직이 세조즉위과정을 비난하는 글을 씀으로써 일어났다. 이에 의해 이미 죽었던 김일손의 시체가 파헤쳐져 목이 잘리는등 사림파의 세력이 급감하였다. 두 번째로 일어났던 갑자사화는 역시 연산군시대의 일이었다. 1504년 즉 연산군10년에 임사홍과 연산군의 주도하에 일어난 이 사화는 표면적인 명목은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윤씨의 복위문제 때문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연산군의 공신․선비들의 제거의 목적이 있었다. 세 번째 1519년 중종 14년에 일어난기묘사화는 조광조가 주축이 된 신진사류와 남곤등의 훈구세력의 대결이었다. 이 사건은 중종을 옹립한 사림세력이 훈구세력을 소인으로 규정하여 몰아내기 위한 ‘위훈삭제’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참고 자료
- 퇴계집 (장기근, 홍실문화사)
- 퇴계평전 (정순목, 지식산업사)
- 한국사 시민강좌 권 30 (일조각편집부, 일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