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세사시대구분론
- 최초 등록일
- 2008.07.01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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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나말여초설, 삼국성립기설, 통일신라기설, 무신란기설에 관한 Report입니다.
통일신라기를 중심으로 하여, 나머지 3개는 언급하는 수준입니다.
목차
들어가면서
1.나말여초설
2.무신란기
3.삼국성립시기
본론-통일신라기를 기점으로 한 고대와 중세의 시기 구분론
1.짚고 넘어가기
2.정치적 변동
3.경제적 요인
마치면서
본문내용
들어가면서
고대와 중세를 나누는 시기 구분법에는 크게 4가지 설을 들 수 가 있다. 먼저 김철준 선생등이 주장한 나말여초설과 기전회등이 시초가 되어 주장한 무신란에서 고려말 시대, 세 번째로는 백남운, 김용섭 선생 등이 주장한 통일신라기를 기점으로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왔다고 보는 성격이다. 마지막으로 북한 학자들이 주를 이루면서 주장한 삼국의 성립기설 등이 있다. 나는 앞으로 이어질 내용에서 먼저, 나말여초설과 무신란 설 그리고 삼국 성립기설을 먼저 간단히 소개하고자 하며, 이 후 세 번째 통일신라기를 기점으로 한 중세구분론에 대해 좀 더 중점적으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나말여초설
신라말 고려초의 시기를 중세의 시작이라고 보는 설은 현재에 이르러 가장 큰 부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당대가 가장 혼란한 시기이기도 하며, 여러 가지 사상이나 계급적, 경제적 등에 이르러 사회 전반적으로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전 신라사회를 지탱해오던 혈육적 지배체제, 즉 골품제가 무너진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말여초시기 이전의 시대에는 기층사회, 즉 귀족사회에 있어서 이런 골품적 제도가 존재하지만, 이는 동족이나 동성에 관한 유대관계가 깊히 남아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고대에 있어 부, 즉 경제에 중점을 두고 보자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노예냐? 농노냐?는 설인데, 통일 신라기에는 노예로 보고 있고, 이 시기, 즉 중세에 이르면 노예보다도 토지를 부의 원천으로 보고 있다.
또한 친족집단의 규모 역시 이전까지는 7세대 7세대는 128명 5세대는 32명으로 1/4로 줄었음을 알 수 있다.
를 단위로 했으나 사회적 경제적 변동으로 5세대를 단위로 보고 있다. 이런 구성은 통일신라기까지 중앙귀족신분을 정점으로 한 6~4두품족에 이르는 분파된 친족집단을 형성. 통제하며 실질적인 정치세력의 기반을 형성했음을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1. <<한국사강론>> 국사교재편찬위원회 형설
2. <<한국사>> 국사교육연구회 형설출판사
3. <<한국사 1-53>> 국사편찬위원회 탐구당
4. <<북한의 한국사 연구동향 1-4>> 국사편찬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
5. <<한국사>> 강만길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