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과 허균의 글쓰기

소개

허균의 가족과 그의 삶, 그의 특징적인 글쓰기인 척독에 대해 생각해 본 글입니다.

목차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나다

너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본문내용

그러나 그는 다른 사대부들과는 잘 섞이지 못했다. 그의 광범위한 독서는 사대부들의 이데올로기인 유학에만 국한될 수 없었고, 또 그의 벗들은 사대부만이 아니었고, 그의 새로운 글쓰기는 사대부들이 쉽사리 인정할 만한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아주 사대부들의 세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대부들처럼 과거를 보아 급제했고, 높은 벼슬도 여러 번 했지만, 다른 사대부들과는 천성이 달랐을 뿐이다. 성리학적 질서의 준수보다는 자신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겼고, 더 좋은 관직을 차지하려고 눈이 시뻘개진 사대부들 보다는, 재능이 넘치지만 시대가 허락하지 않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벗하기를 즐겼다. 그래서 다른 사대부들의 눈에는 그가 ‘경박자’로 보였을 것이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성리학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 체제를 세우고, 그 테두리를 벗어나는 사람은 가차 없이 이단자로 몰아버리는 사대부들의 눈에 그가 곱게 보일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이단인 불교, 도교의 사상에 무한한 관심을 보였던 허균은, 부처를 섬긴다는 이유로 파직되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여러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정통했다고 해서 이단자로 몰려야 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한편, 기생과 너무 자주 어울린다는 이유로 벼슬에서 내침을 당하기도 하였으니 천재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덕목이 바로 시대와의 불화라면 허균은 그 덕목을 유난스럽게도 갖춘 사람이 아닐까.
허균은 이렇듯 시대와 화합하지 않는 성질로 인해 험난한 인생살이를 하다, 신변의 안전을 위해 세력가가 된 동기 이이첨에게 아부하기도 하였으나, 권력의 중심을 빼앗길까 불안한 이이첨에 의해 역모죄로 몰려 처형당하고 만다. 다른 이보다 좀 더 뛰어나고, 새로운 생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모질게 살고 모질게 죽은 허균의 일생이 너무나 억울하다. 그리고 역적이 되어 후세까지 그 천재적인 문장들이 전해지지 못하고, 묻혀 있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시대의 규범 때문에 엄청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고, 평생 경박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간 허균은 시대를 잘못만난 박제가 된 천재라 아니할 수 없다. 세월이 흘러, 먼 후손에게라도 뛰어난 천재라 칭송받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참고자료

· 누추한 내 방(허준 산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