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직후 북한 정치
- 최초 등록일
- 2007.04.11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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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46년까지 북한의 정치상황과 관련된 내용이고 연표와 자료까지 있습니다`- `
목차
◉ 해방 직후 한반도의 상황
◉ 해방 후 북한에서의 소련의 영향과 정권수립 개괄
◉ 당시 북한 주요 정치세력
◉ 해방 후 북한 정치 상황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까지의 행정‧정권 기관
◉ 광복 후 주요 인물의 정치적 입장 비교
◉ 광복 후 주요 정치 세력의 노선 비교
◉ 북한 현대사 연표
본문내용
◉ 해방 후 북한에서의 소련의 영향과 정권수립 개괄
8월8일, 소련은 대일 선전포고를 함과 동시에 8월 9일부터 만주와 한반도로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소련군은 8월말까지 38도선 이북의 거의 전 지역에 진주하였으며, 8월 24일 평양에 진격한 후 “소련군의 관할구역을 북위 38도선 이북으로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38도선은 소련군의 남하저지와 일본군의 항복을 받기 위해 군사적 목적에서 설정된 잠정선 이었지만, 결국 정치적 분할선이 되어 우리 민족과 국토가 남북으로 갈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곧이어 북한지역의 소비에트화는 각 도인민위원회(道人民委員會)를 조직하여 일제로부터 접수한 행정권을 인계받아 행정의 공백을 메우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북한지역 점령군 사령관인 로마넨코 소장은 평양에 있던 건국준비위원회(건준) 평남지부
(대표 조만식)와 조선공산당 평남지부(대표 현준혁)를 통합하여 ‘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45. 8. 27)가 구성되었으며, 유사한 단체들이 북한의 나머지 4개 도에도 속속 조직되었다.
1945년 10월 8일 로마넨코는 북한 5개 도에 설치되었던 임시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를 소집하였고, 10월 28일「5도행정국」이 발족되었다. 5도행정국은 소련군정 하에서 각급 인민위원회를 중앙에서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기구였다.
이후 소련군 사령부는 북한지역의 조선공산당 5도 책임자를 중심으로「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만들었다. 이는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1국 1당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조선 분국의 설치는 북한에 서울과 별개의 공산당을 조직하여 김일성으로 하여금 그 지도권을 장악케 하려는 소련군 사령부의 의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참고 자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김성보‧기광서‧이신설 웅진 2004
「한권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101장면」 고대우 가람기획 2000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과 좌절」 유호열 생각의 나무 2004
「자료 한국근현대사 입문」 이종범‧최원규 편. 혜안 1995
한국 역사 연구회 (http://www.koreanhistor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