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사물들` ,나의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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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선우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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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수선한 틈을 타 나의 기질은 더욱 빛난다. 나는 ‘MBTI검사’로도 인증된 지독하게 정리를 못하는 인간이다. 내 분야는 가방 정리와 옷 정리인데, 그날 썼던 가방은 책도 안 꺼내놓고 구석 꼭 그 자리에 던져두고, 옷도 그대로 구석에 홀랑 벗어놓는다. 특히 가방이나 짐이 들어있는 봉투를 정리안하는 것은 심하다. 어머니는 그것들을 보따리라고 부르시고 나를 노망든 보따리장수라 부르신다. 노망이 들면 보따리를 싼다나 어쩐다나. 그에 비해 우리 어머니는 내가 보기에는 아주 희한한 사람이다. 머리를 빗고 청소기를 돌리시는 사람, 바로 그런 분이시다. 그런 어머니에게 내 방은 자신의 건강을 생각해 항상 출입금지 구역이 되었다.
어느 날, 방문을 열자 구석이 아주 환해져 가방을 던져놓기 미안해졌다. 깨끗이 청소가 된 내 방. 그리고 벽에는 여섯 개의 못이 일렬로 박혀 있었다. 어머니는 못을 박으면서 내 욕을 심하게 하셨나보다. 못은 다 똑같은 크기의 여섯 쌍둥이인데, 대가리를 위로 쳐든 놈, 아래로 떨구는 놈, 몸통이 작은 놈, 제각각 이다. 그 여섯 못의 목에는 친구에게 빌려줬던 겨울원피스가 담겨져 있는 비닐봉투, 파일이 담긴 가방, 면 가디건, 저번 주에 목욕할 때 가져간 목욕가방도 걸려 있다. 첫 번째 못을 본다. 수업이 많을 때 들고 가는 저 분홍 가방은 ‘핑’하고 떨어질 거 같은데 못은 그 작은 몸으로 잘도 버티고 있다. 여섯 개의 못은 모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못들을 보니 엄마의 잔소리가 들린다. ‘가방 좀 정리해라’, ‘안 쓰는 것 좀 빼서 버려라.’, ‘확 버려버린다.’ 잠시 웃다가 내 보따릴 들고 있는 못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좀 가볍기라도 하면 버티기 쉬울 텐데. 이 노망난 보따리장수를 위해 고생하는 구나.

벽을 위해 못의 용도는 무엇일까? 예쁜 아이가 살 집 목재의 연결고리도 안 되고 고작 내 보따리나 목에 걸고 있는 가방을 보며 `못에 걸다’라는 숙명을 가지고 사는 못이 불쌍해졌다. 못이 박힌 벽은 슬프다. 우리는 가슴에 못을 박았다고 말하고, 못 박힌 자리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라고 말한다. 상처를 주는 자, 우리는 못을 욕한다. 그러면 벽에 박혀 무엇인가를 걸기 위한 못은? 못은 목을 빼 대가리를 쳐들고 무거운 짐의 끈을 건다. 아무리 무거울수록 버텨야 한다. 그것이 제 몸이 박힌 벽에게, 자기로 인해 상처를 입은 벽에게 보답하는 길임을 알기에, 평생 죄책감으로 살아가는 못은 벽을 위해 목에 십자가만큼 무거운 죄를 건다.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