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통해 본, 언어의 기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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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통해 본, 언어의 기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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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44년에 출간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실린 단편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의 주인공 푸네스는 주위의 모든 것들을 모두 기억해내는 비상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그의 뇌는 그의 머릿속에 저장되는 모든 사물들을 스스로 응용하지 못하고 단지 잘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기억력은 마치 쓰레기 하치장과도 같지요.” 라는 푸네스의 말처럼 그에게는 인지하는 모든 것들을 영원히 기억하는 능력만 있을 뿐, 그것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분하여 단계적인 묶음으로 종합하고 표현하는 사고가 결여되어 있다. 특히나 특정 사물들을 분류하고 규정하는 과정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정도의 사고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심지어 같은 사물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른 사물로 인지했다.
또한 푸네스는, ‘개’라는 종목별 기호가 다양한 크기와 형상들을 가진 상이한 수많은 하나하나의 개들을 포괄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마치 아무런 지시가 내려지지 않은 기계컴퓨터처럼, 그는 주위의 것들을 쉴 새 없이 머릿속으로 흡수하고 기억해내지만 그 정보들을 가지고 아무런 처리작용을 수행하지 않는다. 소설의 화자는 푸네스가 사고를 할 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은 단순히 문장 그대로 푸네스가 사고 자체를 전혀 할 수 없었다라기보다는, 정보처리적 사고를 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입력된 기억정보를 처리하고 표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는 큰 어려움을 느꼈고, 하는 수 없이 푸네스는 그만의 ‘독창적인’ 대책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그는 수많은 기억들을 다른 하나씩의 기호들로 대체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7013 대신 막시모 뻬레스, 7014 대신 철도, 심지어 500을 9라고 기호화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그가 이런 대책을 수립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입력된 정보를 ‘일반적인 방법으로’ 처리하기에는 그의 뇌가 수용할 수 있는 정보의 양보다 입력된 정보의 양이 훨씬 더 많아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흔히 사람들은 푸네스를 ‘컴퓨터 기계덩어리’에 비유하며 지식과 정보의 체계성 내지는 정보홍수의 시대상과 정보처리 능력을 이야기하곤 한다.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정보의 홍수 시대를 맞이하면서, 이제는 ‘어떻게’(know-how)가 아니라, ‘어디에’(know-where)를 아는 것이 지식인의 조건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게다가 정보화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정보는 앎이고, 정보를 찾는 능력은 곧 학문적 역량인 듯이 여겨진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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