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단군신화에 대한 역사적 인식
- 최초 등록일
- 2006.06.08
- 최종 저작일
- 2004.06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단군 신화의 단군은 역사적으로 고대로부터 국조로서의 대접을 받아왔으며,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면 언제나 민족의 힘을 결집시키는 핵심체로서 작용해왔다. 그러나 아직 국사나 민족사의 출발점인 민족과 나라의 뿌리조상, 즉 국조인 단군에 대한 역사는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국민들이 단군이 국조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신화적 인물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단군신화의 올바른 정립과 연구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도 많은 관계가 있으므로 올바른 단군신화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목차
단군신화에 대한 역사적 인식
고려시대의 단군신화 인식
조선시대의 단군신화 인식
근세 이후 단군에 대한 인식
대종교
광복이후 단군에 대한 인식
우리의 인식
본문내용
고려시대의 단군에 대한 인식
고려 전기에는 각각 삼국이나 삼한에 대한 향수 관념을 벗어나지 못해 그 이전인 단군까지 가지 못하다가 후기에 가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를 포함한 단군에 대한 기록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의 단군에 대한 인식
고려 후기의 단군 인식은 조선 건국으로 이어져 국호 정의 이유가 되었고, 이런 분위기가 태조 즉위 년인 1392년에 조복등의 상소에서 "조선의 단군은 동방에서 처음으로 天命을 받은 임금"이라면서 단군과 기자에게 제사할 것을 건의하는 데서도 볼 수 있듯이, 조선 초기 사대부들이 명과의 외교관계 때문에 표면상으로는 기자에 대한 처우를 높이면서도 더불어 단군도 모시는 선으로 가다가 몇 년 후 변이양의 상서에서 `단군이 우리의 시조이고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왔으므로 조선이 천자의 분봉국이 아니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내용이 나타나고, 세조 때 하늘에 대한 제사를 지내던 단군의 신위명이 바뀌는 것으로 보아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인식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5세기가 후반중화문명에 대한 문화사
근세 이후의 단군에 대한 인식
19세기 말부터 일본의 집요한 침략과 열강의 각축 때문에 생긴 국권회복 운동과정에서 민족적 단결과 독자성을 강조하는 의식이 크게 고조되어, 단군을 국조로 모시고 숭배하는 단군 사상이 급속히 부각되고, 이를 구심점으로 해서 정신적 단결을 이루어 일제침략에 대항하려는 단군민족주의가 대중적으로 부활하게 되어, 모든 민족투쟁에서 `단군의 자손`이 그 주체가 되는 등 항일독립운동의 중요한 정신적 에너지로 작용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