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 최초 등록일
- 2005.12.05
- 최종 저작일
- 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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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초현실주의는 191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까지 약 20년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전위적인 문학·예술운동으로, 다다이즘과 미래주의등 20세기에 등장한 다른 전위운동에 비해 제1차, 제2차 세계대전동안 가장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논쟁적인 예술운동이었다.
목차
초현실주의
달리, 그의 작품과 작품세계
정신 착란의 그림
정신 착란적 주제들
역설적인 이미지들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
본문내용
정신 착란적 주제들
1930년대는 달리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10년이었다. 이 때 그의 대부분의 주제들이 표면화되는데 유연하게 늘어진 시계(<기억의 영속성>, 1931)나 이중 이미지(<보이지 않는 남자>, 1929~1933), 부패한 음식들과 신체 기관(<섹스어필의 환영>, 1934), 밀레의 <만종>에 대한 집착과 같은 주제들이 표현된다. 다른 여러 이론적 글들을 통해 그의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의 윤곽이 드러났으며 공동작업한 <황금의 시대>라는 영화가 프랑스의 검열에 의해 상영이 금지됨으로써 그의 추문이 더욱 더 확고하게 굳어졌다. 달리는 과장되고 세속적인 이미지들을 계속하여 만들어냄으로써 곧바로 대중적인 인기 작가로 변하여 갔고 언론의 덕택으로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대단한 성공을 맛보게 되었다.
브르통과 이 어수선한 시대에 좌익에 연루된 다른 초현실주의자들과 달리는 차츰 불편한 사이가 되었는데 이는 그가 히틀러를 지지하기 때문이었고 - 달리는 항상 이를 부정했다 - 그칠 줄 모르는 돈에 대한 그의 탐욕 - 달리가 이를 부정한 바는 없다 - 때문이었다. 이것은 달리의 작품과 그의 지적인 총명성에 찬탄을 보내던 브르통의 존경어린 표현과 칭찬을 유보하게 만들었으며 30년대 중반부터 그 조짐을 보였듯이 공식적인 결별을 하게 되어 드디어 1939년 달리는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추방된다. 그 때부터 달리는 "달러화에 굶주린 화가"로 초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 통하게 되었는데 그 별명을 브르통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역설적인 이미지들
우리시대 예술에 달리가 이룩한 큰 공헌은 조형 언어나 재현에 있어서의 혁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인 이미지 창조에 있습니다. 1926년부터 입체주의를 포기한 달리는 홀로 전통회화를 무기로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데 이러한 의존은 그의 화업 중반 이후 브르통과 초현실주의자들과 결별 이후에 한결 강해지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