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전 학기 수업에서 실학사상에 대해 배운 것이 있어서 실학사상가의 책 중에 하나를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처음에는 다산 정약용이 쓴 책을 읽어 볼 마음으로 책장을 뒤적거리다가 정약용이 성호 이익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글을 읽었다. 부끄러운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과제물을 하기 전에 성호 이익은 경세치용학파의 실학가 정도 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찾아보게 된 것이 이익의 성호사설이다. 첫 장을 폈는데 한 항이 1~2페이지를 넘지 않아서 읽기가 수월하여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서양과학에 대한 것이나, 정치, 경제, 사회, 사상, 역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쓴 글이어서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당시 성리학이 지배적이었던 사회에서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는 것에 흥미가 갔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서민이나 노비까지 관심을 보이고 그들에게 보이는 애정이 그대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가 책에서 당시의 붕당, 과거제, 수취체제에 대한 비판과 대책법, 경세치용에 관한 이론들이 모두 실제 서민들에 대한 애정에서 우러나왔음을 알 수 있다.이와 함께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비교를 하게 됨은 당연하였다. 현 정치인들의 권력 양립 구도나 자신들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한 부정, 부패는 조선시대나 현재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서도 이익과 같이 소외계층에 대한 애정과 부조리한 현실 타파를 위해 진정으로 힘쓰는 사람이 있는가?
1. 성호 이익의 생애
이익(李瀷)은 숙종7년(1681) 아버지 하진(夏鎭)의 유배지인 평안도 운산(雲山)에서 다섯째아들로 태어났으며, 영조 39년(1763)83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호는 성호(星湖), 자는 자신(子新)이며, 본관은 여주(驪州)이다. 그는 경기도 광주(廣州)와 첨성리(瞻星里)에 살았는데, 그래서인지 스스로 별호를 성호(星湖)라고 하였다. 이익은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가 유배지에서 별세하자 광주부 첨성리로 돌아와 어미니 권부인 슬하에서 자라나고, 둘째형 섬계(剡溪) 이잠(李潛)에게 수업을 받았으며, 25세 때인 숙종 31년(1705) 증광시에 합격했으나 이름을 기록한 것이 격식에 맞지 않아 회시(會試)에 응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듬해 둘째형 이잠이 노론 집권당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역적으로 몰려 장살(杖殺) 당하는 바람에 큰 충격을 받아 벼슬길에 오르기를 단념하고 평생을 시골에 묻혀 살며 학문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는 44살 때에 정부에서 감역의 벼슬을 주었으나 사퇴하였고 오로지 은폐하여 교육에 종사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대체로 이 시기의 시대적 환경의 산물로 당시 정부의 실권이 서인 노론파에 속하고 있었고 더욱이 형의 살해와 관련하여 벼슬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과 관련되였다.
목차
1. 성호 이익의 생애2. 시대적 상황과 저술배경
1)시대적 상황
2)저술배경과 편찬경위
3. 체제와 내용
4. 『성호사설』의 특징과 의의
본문내용
이익(李瀷)은 숙종7년(1681) 아버지 하진(夏鎭)의 유배지인 평안도 운산(雲山)에서 다섯째아들로 태어났으며, 영조 39년(1763)83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호는 성호(星湖), 자는 자신(子新)이며, 본관은 여주(驪州)이다. 그는 경기도 광주(廣州)와 첨성리(瞻星里)에 살았는데, 그래서인지 스스로 별호를 성호(星湖)라고 하였다. 이익은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가 유배지에서 별세하자 광주부 첨성리로 돌아와 어미니 권부인 슬하에서 자라나고, 둘째형 섬계(剡溪) 이잠(李潛)에게 수업을 받았으며, 25세 때인 숙종 31년(1705) 증광시에 합격했으나 이름을 기록한 것이 격식에 맞지 않아 회시(會試)에 응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듬해 둘째형 이잠이 노론 집권당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역적으로 몰려 장살(杖殺) 당하는 바람에 큰 충격을 받아 벼슬길에 오르기를 단념하고 평생을 시골에 묻혀 살며 학문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는 44살 때에 정부에서 감역의 벼슬을 주었으나 사퇴하였고 오로지 은폐하여 교육에 종사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대체로 이 시기의 시대적 환경의 산물로 당시 정부의 실권이 서인 노론파에 속하고 있었고 더욱이 형의 살해와 관련하여 벼슬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과 관련되였다.이익이 50여년이 넘게 오로지 독서하고 학문 연구에만 몰두해 이룩한 저술은『성호선생문집』『성호선생속집』『성호질서(星湖疾書)』『성호사설(星湖僿說)』『사칠신편(四七新編)』『예설유편(禮說類編)』『곽우록(藿憂錄)』『관물편(觀物編)』『백언해(百諺解)』 등 대략 144권 95책(성호전서)이나 된다.
이익은 이와 같이 평생 동안 공부와 저술에만 전념하여 근기학파(近畿學派)의 대종이 되었다. 근기학파는 우리 나라 실학(實學)의 한 유파이며,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이용후생파(利用厚生派)에 대하여 경세치용파(經世致用派)라고 불렀다. 한편으로는 영남학파(嶺南學派)와 대칭으로도 불리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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