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학,조선후기] 조선후기 역사가 이종휘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5.09.27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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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후기 사학자 이종휘의 생애와 학문과 <동사>편찬과 그의 사학사적 업적에 대하여 알아본다.
목차
1. 생 애.
2. 학 문 관.
3. 역사서 편찬.
(1) 역사관계 저술.
(2) <동사> 편찬의 동기와 체재.
(3) <동사>의 내용.
4. 역사인식과 사학사적 위치.
본문내용
이종휘는 그의 백부인 이정걸과 그 자신의 교유인물, 아들인 이동직의 활동을 통해서 소론계 학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집안에 소장된 많은 도서는 이정철에게 전해졌던 이정걸의 소장본과 이정철 자신의 필사본 수백권이 합쳐진 것으로 이종휘의 학문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정주학 계열의 학자였으며, 경학과 사학을 표리관계에 있는 학문으로 중시하였다.
이종휘는 양명학의 장점을 인정하여 정주학을 보완할 수 있는 학문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양명하기 다른 학문에 대해 배타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 실천성에 장점이 있다고 보았으며,왕양명의 양지(良知)해석이 불교의 선학(禪學)과 통하는 점이 있지만 그가 가졌던 선비로서의 의리와 절개를 높이 평가하여 호걸지사(豪傑之士)로 표현하였다.
이종휘는 양명학에 대한 평가는 관료생활이 시작되면서 부정적인 평가가 강해졌는데, 여기에는 당시의 학계가 이단으로 취급하였던 양명학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던 현실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였다.
또한 이종휘는 문학에서도 개방적이었다. 그는 육경과 사서가 가장 올바른 문장서이지만, 그 외에 제자백가나 당송의 팔가문(八家文), 양명학 계열의 문자, 패사(稗史)소설의 문장까지도 알아야 할 것으로 보았다.
그는 문장의 맛을 음식에 비유하여 그 특징을 설명하였는데, 육경과 사서는 평화롭고 온순한 오곡에, 기타 문장은 진기한 맛의 팔진미(八珍味)에, 패사와 소설은 술찌끼에 비유하여, 육경 사서가 제일 좋은 것이지만 배고픈 사람은 소설이라도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종휘가 청의 문장을 강하게 비판했던 이면에는 조선의 문장을 칭찬하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그는 조선의 자음 중8성이 중국과 다르지만, 청의 음도 중간에 오랑캐의 시대을 거쳐 원래의 음은 아닌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조선의 경우 한강의 북쪽지역은 은(殷)의 유민이, 남쪽지역은 주(周)의 유민이 정착한 곳으로 오랑캐의 시대를 거치지 않아 한자의 음이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당시로서는 조선만이 진한의 정음이라 할 만큼 원형을 잘 보전하였다고 했다.
이는 그의 청에 대한 비판이 조선이 가진 문화적 우수성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이어진 것이다.
참고 자료
조선후기 사학사 연구-한영우 저/일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