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독후감] 말의 가격, 사람의 값 - 조지 버나드 쇼 [피그말리온]

목차

1. 서론: 혀끝에 걸린 신분

2. 본론
2.1 발음 교정의 기술과 권력
2.2 엘라이자의 목소리 — ‘꽃 파는 소녀’에서 ‘귀부인’까지
2.3 히긴스·피커링·도리틀: 계급 풍자와 인간적 결핍
2.4 로맨스의 공백이 주는 해방감
2.5 ‘옷’과 ‘언어’의 연극성 — 무대가 보여준 사회적 코스프레
2.6 오늘의 ‘말투’ 정치 — 표준어, 스펙, 말하기 코칭 산업에 대하여

3. 결론: 말로 만든 인간, 말로 벗어나는 인간

본문내용

1. 서론: 혀끝에 걸린 신분

『피그말리온』을 읽는 내내 입 안이 건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말 몇 마디, 그 말의 발음과 억양이 사람의 값을 정한다는 설정이 불편하게 정확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꽃을 팔던 엘라이자가 언어를 ‘교정’받아 사교장의 귀부인처럼 보이게 되는 과정은, 단지 신데렐라식 변신담이 아니다. 발음과 문법을 고치는 일이 곧 신분을 끌어올리는 기술이라는 사실을, 쇼는 익살스럽게도 잔혹하게도 보여준다. 그 잔혹함은 계급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삶과도 밀착해 있다. 나는 구직 면접을 준비하며 말투를 점검하고, 회의에서 ‘논리적’으로 들리기 위해 호흡과 속도를 조절하고, 메시지에 이모지를 몇 개나 붙일지를 계산한다. 이런 사소한 조정들이 내 가치를 결정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그런 조정이 실제로 문을 열어주는 순간들을 본다. 바로 그 간극이 『피그말리온』을 읽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작품 속 언어학자 히긴스는 인간의 소리를 해부하는 과학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문지기다. 그는 발음의 차이를 구분해 계급의 차이를 증명하고, 그 차이를 없애 새 사람을 만든다. 쇼는 그 메커니즘을 풍자하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의 히긴스가 되어 타인의 말투로 사람을 가늠하고 있음을 들춰낸다. 그래서 이 희곡은 로맨틱 코미디의 옷을 입었지만, 읽고 나면 마음에 남는 것은 달콤함이 아니라 씁쓸함이다. 나 또한 내 말투를 경계하면서 타인의 말투를 채점해온 것은 아닐까. 엘라이자의 발성이 교정될수록, 내 귓속에서는 ‘나는 누구의 기준으로 말하고 있나’라는 질문이 커졌다.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