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 훈민정음 반포 이전의 우리말
- 최초 등록일
- 2004.10.29
- 최종 저작일
- 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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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훈민정음 반포 이전에, 조상들이 어떻게 우리말을 쓰기 위해 노력해왔는가. 그 과정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향찰, 구결, 이두 등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우리 글의 시작
2. 한자어의 정착과 차자표기의 발달
2.1. 한자어의 정착과정
2.2. 삼국시대의 한자음
2.3. 한자차자 표기
3. 서기체 표기
4. 이두
4.1. 이두의 성립
4.2. 초기 이두
4.3. 본격적인 이두 4.4. 고려와 조선의 이두
5. 구결
5.1. 구결의 개발
5.2. 토
5.3. 한자 차용 구결의 예
5.4. 구결의 정리
6. 향찰
6.1차자형식
6.2. 말음첨기법
6.3. 한자음의 음절구조
6.4. 향찰의 소멸
본문내용
1. 우리 글의 시작
한자는 우리 조상들이 접한 최초
의 문자였다. 우리나라에 고유한 고대문자가 있었다는 설이 있기는 하지만, 믿을 만한 것은 못 된다. 한자는 고대 동아시아의 유일한 문자였던 것이다. 이것이 주변 민족들 사이에 퍼지는 과정에서 맨 처음 뿌리를 박은 것이 우리나라였다.
한자의 수입은 중국과의 언어 접촉의 결과였다. 이 접촉 초기에 있어서는 아마도 단어의 차용과 같은, 어느 두 언어의 접촉에서나 보통 일어나는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중국의 영향이 가중되면서 한자의 전체계를 도급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국세가 팽창하고 국정이 복잡해짐에 따라 지배계층은 기록의 절실한 필요를 느끼게 되었으며 이것을 위해서는 한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두 방향의 노력이 싹텄을 것임을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첫째는 중국어로 쓰는 것이요, 둘째는 자국어로 쓰는 것이다.
2. 한자어의 정착
2.1. 한자어 정착의 과정
(1) 순외국어로서의 한어(B.C.195-313)
B.C. 108년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하고 한사군을 두었는데, 이 때부터를 한자와 한문화의 유입시기라고 본다. 한사군은 기원 313년에 고구려에 망하여 고구령의 땅이 되므로, 고구려가 세워진 B.C. 37년에는 한자가 이미 받아들여졌을 것이다고 추측한다. 약 5세기 동안 정치적으로 제 부족의 이동과 할거를 통하여 부족통합을 이룩하고 집권적 국가체계를 갖추는 시기였고, 문화적으로 한문화의 영향으로 석기문화에서 철기문화로 옮아 여러 문물제도에의 접촉과 모방으로 원시성을 벗어나 개화되어 가는 시기였다. 국사를 편찬하고, 학교를 세워 교육한 시기에는 한문이 상당히 보급된 시기라고 생각한다.
참고 자료
참고 문헌 : 국어사개설 이기문 저 태학사